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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6 부동산 대책:
보유세 인상과 대출 억제만으로 주택난 해결 못 해

12월 16일, 국토교통부가 ‘주택 시장 안정화 방안’을 주제로 부동산 정책을 발표했다. 이 정부 들어 열여덟 번째 부동산 대책이다. 이번 정책은 9억 원이 넘는 고가 주택에 대해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을 종전 40퍼센트에서 20퍼센트로 인하, 15억 원이 넘는 아파트의 경우 담보 대출 금지, 종합부동산세 비율 일부 상향, 서울·경기 민간 택지 분양가 상한제 적용 지역 일부 확대를 골자로 한다.

이번 발표는 지난해 9·13 부동산 대책 이후 최근 6개월 동안 서울 집값이 상승한 것에 대한 반응이다.

집값이 계속해서 오르는 근본적인 이유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경제 위기로 투자처를 찾지 못한 돈이 부동산으로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단기 유동자금 규모는 1000조 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집값 상승은 세계적 현상이다. 주요 국가들이 내놓은 저금리 정책으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자금이 주요 도시 아파트와 주택 시장으로 몰리면서 유럽과 미국의 집값도 상승하고 있다. 독일 베를린은 2016~2017년 사이에 주택 가격이 20.5퍼센트 상승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스웨덴 스톡홀름, 스페인 마드리드 등지의 부동산 가격은 30퍼센트 넘게 상승했다. 이 때문에 유럽의 부동산 버블이 터질지 모른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더군다나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투기 억제를 위한 규제와 부동산 시장 지원을 오락가락하면서 실효성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 발표 직후 자유한국당을 포함한 우파들은 반(反)시장 정책이자 세금 폭탄이라며 비난을 퍼붓고 있다. 그러나 이런 비난은 부자들을 위한 것일 뿐이다.

12월 8일 〈경향신문〉 보도를 보면, 최근 2년간 서울 아파트의 평균 시세차익은 1억 4305만 원이지만 종부세 부담 증가액은 67만 원 수준이다. 시세차익 대비 종부세 부담 증가율은 평균 0.8퍼센트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지난해 참여연대는 2017년 기준 종부세를 납부하는 인원은 다주택자의 10.4퍼센트이고, 1주택 소유자 중에서는 단 0.6퍼센트에 불과하다고 발표했다. 현재 한국의 부동산 보유세는 OECD 평균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노동자 · 서민에겐 그림의 떡 주택난은 계급 간 불평등의 문제다. 서울시 송파구의 한 부동산 ⓒ조승진

한편 “역대급”이라는 주류 언론들의 호들갑과는 달리 이번 대책이 노동자·서민의 집값 부담을 줄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최근 문재인 정부 하에서 집값이 대폭 올랐다고 발표해 청와대와 논쟁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9억 초과 주택 LTV 20퍼센트 축소는 대상도 작을 뿐더러 이미 전세를 낀 현금부자들이 사재기하는 현실에서 실효성을 발휘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또한 대출이 아닌 현금을 이용한 투기가 다른 지역에서 이뤄질 것이라는 얘기도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그동안 문재인 정부는 임대사업자들에게 과도한 세제 혜택을 줘서 비난을 샀는데, 이번에도 세제 대상 요건을 살짝 강화했을 뿐이다.

정부는 시장을 달래려고 수도권 공급 확대 대책도 내놓았는데 규제 완화를 기본으로 한 것들이다. 서울 내 상업지역과 준주거지역의 용적률을 상향하고 준공업지역의 규제를 푸는 정책 등은 토지소유자들과 건설업체에게 돌아가는 개발이익을 확대할 것이다.

또한 국토부는 땅값을 책정하는 공시지가를 7년 이내에 실거래 가격의 70퍼센트 수준에 맞추겠다고 했다. 공시지가는 세금의 기준이 되는데, 정부는 그 인상률을 1년에 1퍼센트포인트 상승시키는 꾀죄죄한 계획을 내놓았다. 한국의 5대 재벌이 소유한 토지자산 규모가 73조 원에 이르는데 말이다(경실련).

양질의 공공임대주택을 확충하라

노동자·서민들의 주거 문제를 해결하려면 저렴하고 질 좋은 공공임대주택을 대폭 공급해야 한다. 2017년 기준 한국의 무주택가구 비중은 전체 가구수의 44퍼센트(867만 가구)가 넘는다. 소득 하위 20퍼센트 임차가구는 소득 중 40퍼센트 이상을 주거비로 사용한다(2019년 국토연구원).

저소득 가구의 10퍼센트는 주거환경이 최저주거기준에도 미치지 못하고, 2015년 기준 39만 명 이상이 비닐하우스, 고시원, 컨테이너 등 ‘집 아닌 집’에서 산다. 2005년에 견줘 6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주택수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2015년 주택보급률은 103.3퍼센트로 일반가구 전체 수보다 더 많은 주택이 건축돼 있다(국토부).

따라서 집을 구입하기 어려운 무주택자, 저소득층을 위해 저렴한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고 거주자들에게 쾌적한 환경을 보장하도록 국가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의 정책은 이런 상황을 해결하기에 한참 모자라다. 문재인 정부는 10년 이상 임대 가능한 공공임대주택 수가 136만 가구라고 발표했다. 전체 가구 수의 6.7퍼센트에 해당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일정 기간 이후 소유권이 시장으로 넘어가는 분양전환, 임대료가 상대적으로 높은 행복주택, 임대료를 보조하는 전세임대가 포함돼 있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주거복지로드맵을 발표해 2018년부터 2022년까지 공공임대주택을 연 평균 13만 호 공급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 중에서 저소득층을 위한 공공임대주택인 영구임대주택과 국민임대주택 공급은 줄이고 있다. 분양원가 공개도 일부 제한적으로 시행했을 뿐이다. 이런 정책들이 건설 자본의 이해관계를 거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문재인 정부는 올해 초 건설 경기 부양을 위해 사회간접자본 투자 계획을 내놓았다.

최근 박원순 서울시장이 종부세 인상 등으로 불로소득을 환수해 공공주택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해 주목을 받았다. 한국의 끔찍한 계급 간 불평등을 고려하면 옳은 주장이다. 하지만 그간 서울시가 주택 문제에서 시장주의에 기반한 정책을 펴 온 것을 보면 미덥지 못하다. 서울시는 도심 임대주택을 늘리겠다면서 용적률 확대 등 규제 완화 정책을 시행했고, 최근에는 재개발한 세운3구역에서 민간사업자가 사업을 위해 공공임대주택을 매입·매각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규제완화로 민간 주택사업자들은 땅값 상승에 따른 이익을 누린 반면, 여전히 너무 비싼 입주 비용 탓에 저소득층 다수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종부세 인상은 국회를 통과해야 하는데 우파들의 공세 속에서 누더기가 될 공산도 크다. 이미 노무현 정부가 이런 전철을 밟았다.

한국의 공공임대 정책은 1987년 노동자 투쟁의 파고 속에서 도시 철거민들의 투쟁의 영향으로 1989년에 시작됐다. 저렴하고 양질인 공공임대주택을 늘리려면 계급투쟁의 강화가 뒷받침돼야 한다.

근본적으로 주택 문제를 해결하려면 부동산 소유권 문제를 제기하고 이윤 중심의 체제에 전면으로 도전해야 한다. 자본주의 초기부터 노동계급은 주택난에 시달리고 값싼 임대료를 찾아서 저질 주거지를 전전해야 했다. 1872년 엥겔스는 《주택문제》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수요와 공급의 점진적인 경제적 조정을 통해 해결”하려 해서는 “주택난을 겪지 않을 수 없다.” “주택난을 끝장내려면 지배계급에 의한 노동계급의 착취와 억압을 전반적으로 제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