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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마사회 고 문중원 기수의 죽음:
성과주의와 경쟁 강요가 노동자를 죽였다

한 달 전, 공기업인 한국마사회 소속 부산경남경마공원의 기수였던 문중원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무엇이 자신을 자살로 몰고갔는지 고발하는 유서를 남긴 채, 어린 아들딸과 아내를 남겨 두고 억울한 생을 마감했다.

그는 유서에서 이렇게 썼다.

“조교사들의 부당한 지시에 놀아나야만 했다. ... 어떤 말을 타면 다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목숨 걸고 타야만 했고 비가 오든 태풍이 불든, 안개가 가득 찬 날에도 말 위에 올라가야만 했다.”

이처럼 기수들이 위험하고 부당한 지시를 감수해야 했던 데에는 마사회의 구조적인 문제가 있었다.

한국마사회는 1993년 이래 “선진경마”라는 미명 아래 성과 경쟁을 강화해 왔다.

이 과정에서 정규직으로 고용돼 있던 기수들은 특수고용노동자(개인사업자)가 됐다. 마사회가 조교사에게 기승료를 지급하면, 조교사가 이를 또 나눠 기수에게 지급하는 다단계 구조 때문에 조교사의 권한이 커졌다.

하루 빨리 조교사가 되기 위한 경쟁 또한 치열해졌고, 이런 환경은 부정 청탁의 토양이 됐다.

(유서 중에서) “[조교사] 면허 딴 지 7년이 된 사람도 안 주는 마방을 갓 면허 딴 사람들한테 먼저 주는 이런 더러운 경우 ... 마사회에 밑[밉]보이고 높으신 양반하고 친분이 없으면 안 [된다.]

“마사회는 선진경마를 외치는데 도대체 뭐가 선진경마일까? 그저 시설 좋고 경주 기록 좋아지고 외국 나가서 좋은 성적만 나면 선진경마인가? 더럽고 치사해서 정말 더는 못하겠다.”

부산경남경마공원은 한국마사회 소속 경마장 중에서도 특히 경쟁 체제가 심했다고 한다. 경쟁과 상관 없이 지급하는 상금[월 고정 수입]을 최저임금 수준으로 줄이고 경기 성적에 따라 배분하는 상금 비중을 늘려, 등수에 들지 않을 경우 생계 유지조차 힘들게 만든 것이다.

성과주의 때문에 경마장의 연간 재해율은 전국 평균의 25배를 넘는 수준이다. 이마저도 은폐된 사고들은 제외된 숫자다.

고 문중원 씨도 유서에서 “어느 때부터인가 다리, 허리, 목 어디 성한 곳이 없어 잠을 못 이[뤘다]”고 호소했다. 그의 죽음 이전에도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만 2005년 개장 이래 6명의 기수와 말 관리사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계속되는 죽음

“국민의 여가 증진”이라는 미명 아래, 공기업에 경쟁 체제를 강화하고 노동자를 열악한 처지로 내몬 한국마사회와 정부는 고 문중원 씨 죽음에 책임을 져야 한다.

고인의 가족들은 문중원 씨를 죽음으로 몰고간 한국마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개선하고 책임자를 밝혀내 처벌하기 위해 장례도 미룬 채 투쟁에 나섰다. 지난 12월 27일에는 공공운수노조와 함께 시민대책위를 결성하고, 문재인 대통령에게 문제 해결을 요구하기 위해 고인의 시신과 함께 서울로 올라왔다.

노조는 “한국마사회와 관계 부처 농림축산식품부, 더 나아가 공기업에서 벌어진 잇따른 죽음에 대해 관리 감독의 책임이 있는 문재인 정부가 이번 사태를 책임지지 않고 더 악화시키고 있”다고 규탄했다.

노조와 시민대책위는 27일 오후 3시 청와대 앞에서 집회를 하고 행진한 뒤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앞에 시민분향소를 차렸다.

그런데 정부는 이날 오후 유가족을 만나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던 말과 달리, 경찰을 동원해 고인의 시신이 있는 운구차를 폭력적으로 막아섰다. 이 때문에 울부짖는 유가족과 경찰 사이에 대치가 벌어졌다.

유가족과 시민대책위는 분향소 주변에서 농성에 돌입했다. 고인의 부인은 남편이 사망한 지 한 달이 다 되도록 사과 한 마디 않는 마사회와 이를 비호하는 경찰을 규탄하며, “돈 있고 빽 있는 사람만 사는 세상 같다고 다시 느낍니다. 비참하고 분통이 터집니다” 하고 울부짖었다.

김용균의 죽음 이후에도 공공부문에 질 좋은 정규직 일자리를 늘리진 못할망정 제2의 억울한 죽음을 양산하고 유가족을 거리로 내몰고 있는 문재인 정부를 규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