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27일 부산작전기지에서 청해부대 31진 왕건함이 출항하고 있다 ⓒ출처 해군 작전사령부

문재인 정부가 다음 달(2월)에 청해부대를 호르무즈해협에 파병하기로 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온 가운데, 지난해 12월 27일 청해부대 왕건함이 아덴만 해역으로 출항했다. 해군은 “임무지역이 변경될 수 있다”고 왕건함 선원들에게 통보했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가 (미국이 주도하는) 호르무즈해협 호위함대 지휘통제부에 장교 1명을 파견한 뒤 전투 병력을 보내려 한다는 구체적 파병 방안도 언론에서 보도되고 있다.

최근 미국이 이라크 내 친이란 민병대 시설을 폭격하면서, 호르무즈해협과 그 주변을 둘러싼 군사적 긴장은 더 심각해졌다. 그전부터 미국이 이란과 맺은 핵협정을 일방적으로 탈퇴해 이란을 제재하고 위협하면서부터 그곳의 긴장은 꾸준히 커져 왔다. 지난해에는 그곳을 지나는 유조선들이 의문의 공격을 당하고 미국과 이란이 서로 무인기를 격추하는 등 위험한 일들이 꾸준히 벌어졌다.

호르무즈해협으로 한국군을 파병하면 한국도 이런 갈등에 휘말릴 것이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는 기어이 파병을 할 듯하다.

문재인은 방위비 분담금(주한미군 지원금) 대폭 인상을 요구하는 미국에 양보를 얻어 낸다는 명분도 제시하려는 듯하다. 12월 19일 문재인 정부는 호르무즈해협 파병을 포함한 “한국의 동맹 기여도”가 “방위비 협상에서 상당 부분 논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미국 측 협상대표는 파병 등의 “기여”는 논의된 바 없고 관심사도 아니라고 일축했다. 미국은 방위비 협상에서 쉽게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한국과의 협상이 일본, 나토(NATO) 등 다른 동맹들과의 방위비 협상에도 영향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국은 경제력의 쇠퇴로 동맹국들에게 손을 벌려야 하는 처지다.

파병을 정당화하는 또 다른 논리는 북·미 관계가 다시 냉랭해지는 상황에서 미국의 협조를 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노무현 정부가 미국의 요청에 따라 이라크에 파병할 때 써먹은 논리이기도 하다(이른바 ‘평화 교환론’).

그러나 당시 미국은 한국의 이라크 파병 후에도 북한을 계속 압박했고 결국 북한은 2006년 1차 핵실험을 했다. 오히려 미국이 이라크전에서 어려움에 빠진 것이 이후 한반도 상황에 도움이 됐다. 미국은 한국의 호르무즈해협 파병 여부와 관계없이 자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동아시아 전략을 추구할 것이다.

미국의 딜레마

현재 미국은 중동에서 딜레마에 처해 있다. 미국은 중동 개입을 줄이고 중국·러시아 등을 견제하는 데에 집중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미국은 중동을 포기할 수도 없다. 그래서 미국은 자신의 뜻대로 우선순위를 조정하지 못하고 있다. 단적인 사례로 미국 대통령 트럼프는 대선 후보 시절에 “끝없는 전쟁”에서 벗어나겠다고 공약했지만, 트럼프의 지금까지 재임 동안 중동에 투입된 군사력은 오히려 증대했다.

게다가 중동 상황은 점차 미국의 통제를 벗어나고 있다. 이라크전 이래 이란은 중동에서 꾸준히 영향력을 키워 왔다. 2001년 이래 아프가니스탄에서도 미국은 탈레반과 전쟁을 벌이는 데에 9000억 달러 이상을 투여하고 2000여 명의 전사자를 냈음에도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러시아와 중국이 중동으로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최근 이란은 호르무즈해협과 가까운 인도양 북부 해역에서 중국·러시아와 합동군사훈련을 했다. 시리아 북부에서 미군이 철수하면서 생긴 군사적 공백은 러시아군이 메웠다. 지난해 12월 26일 트럼프는 러시아·이란·시리아 정부가 시리아 반군 근거지인 이들립에서 민간인을 학살하고 있다며 이를 막기 위해 “터키가 노력하고 있다”는 글을 트위터에 게시했다. 미국이 그곳에서 사태를 좌우할 능력이 감퇴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게다가 터키는 시리아에서 러시아가 지원하는 세력과 대리전을 벌이고 있으면서도 정작 러시아와 꾸준히 관계를 진척시켜 왔다.

이처럼 중동은 제국주의 열강의 각축장이다. 미국 패권의 (상대적) 약화로 중동이 평화로워질 것이라는 시각은 일면적이다. 오히려 미국이 남긴 공백을 둘러싸고 치열한 제국주의적 경쟁이 벌어질 것이며, 미국도 영향력을 지키려 위험한 모험을 감행할 수 있다. 한국 정부의 호르무즈해협 파병은 이런 갈등 속에서 미국 제국주의를 지원하는 짓이 될 것이다.

미국이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중국을 견제하는 전략을 계속해서 추구해 왔다는 점도 봐야 한다. 이는 사실 오바마 정부 시절부터 견지한 노선이고, 트럼프 정부는 이를 더 단호하고 강경하게 추진하려 한다. 트럼프 정부는 일본·호주·인도 등을 중심으로 동맹국들을 규합해 중국을 견제하는 “인도·태평양 전략”을 수립하고, 우주사령부 창설, 첨단무기 개발 등 군 전력 증강에 애써 왔다. 지난해에는 러시아와 맺은 중거리핵전력조약을 탈퇴해 중국을 겨냥한 미사일을 개발했고 이를 한국과 일본 등지에 배치하겠다고도 했다.

미국의 중국 견제 움직임은 동북아시아에서 긴장을 증대시켜 왔다. 중국이 첨단 무기를 개발하거나 러시아와 협력을 강화하고, 지난해 러시아 전투기들이 한반도 주변을 선회하는 무력 시위를 벌인 것도 이런 맥락 속에 있다.

트럼프는 힘의 한계를 느끼면서도, 세계적 패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그 부담을 동맹국들과 분담하려 한다. 호르무즈해협 파병 요청도 이런 노력의 일환이다. 문재인 정부가 중동에서 미국의 숨통을 틔워줄수록 미국은 더 많은 군사력을 중국 봉쇄를 위해 돌릴 수 있을 것이고, 이는 동북아의 긴장을 더 악화시킬 것이다. 이렇듯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 문제는 이런 더 큰 지정학적 질서의 종속변수다.

물론 이런 모든 위험에도 문재인 정부는 결국 파병을 추진할 듯하다. 미국의 압력을 받아서가 아니라, 제국주의 질서 내에서 자체의 위상을 높이는 것이 한국 지배계급에게도 득이 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일본이 이란에 양해를 구하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결국 호르무즈해협 인근의 오만해에 해상자위대를 보내려 하는 마당에, 문재인 정부도 이에 뒤쳐지지 않으려 할 것이다.

현재 문재인 정부는 국회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청해부대의 작전 구역을 아덴만 일대에서 호르무즈해협으로 넓히는 방식으로 파병을 추진하려는 듯하다. 그럼으로써 파병 논란을 우회하려는 듯하다. 문재인도 (고故 서동만 전 국정원 기획조정실장이 회고했듯이) 노무현 정부를 결정적 위기에 빠뜨렸던 이라크 파병을 기억하고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국회 동의를 구하게 되더라도 국회를 지배하고 있는 주류 정당들은 파병을 지지할 공산이 크다. 사실 노무현 정부가 이라크에 보낸 자이툰 부대든, 아덴만으로 간 청해부대(우리 선박 보호를 핑계로 소말리아 어민들의 삶을 망치고 서방의 군사력 투사에 일조하고 있다)든 모두 국회의 동의를 받고 파병됐다.

반전·평화 세력은 문재인 정부와 국회가 언제든 파병을 결정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아직 파병을 공식 결정하지 않았다는 점 때문에, 반전·평화 운동의 중요한 일부가 파병 반대 운동 착수가 이르다며 주저하는 듯하다. 그러나 지난해 내내 문재인 정부가 ‘파병을 결정한 바 없다’고 언론에 발표하는 동안에도, 파병 계획은 꾸준히 가시화되며 착착 진행돼 왔다. 문재인 정부가 이미 내부적으로 파병을 결정해 놓고 발표의 타이밍과 상황을 재고 있을 개연성이 큰 것이다. 적어도 정부 내부에 파병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상당함은 분명하다.

무엇보다도 사전에 파병을 결정하지 못하도록 견제하는 운동을 만들어 놓지 않으면, 파병 결정이 공식화된 후에 반대 운동을 일으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은 아니어도) 만만치 않게 어려울 것이다. 그러므로 파병에 반대하는 움직임을 지금부터 조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