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1월 15일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이 주최한 한 토론회에서 당 중앙위원이자 기관지 편집자이자 공동사무국장인 찰리 킴버(하단 사진)가 발제한 내용을 녹취·번역한 것이다.

[ ] 안의 말은 〈노동자 연대〉 편집팀이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첨가한 것이다.


연설 중인 찰리 킴버 ⓒ출처 영국사회주의노동자당(SWP)

오늘의 주제는 세계를 변화시킬 노동계급 잠재력 얘기입니다. 그런데 이 얘기는 저 멀리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이 아니라 이곳[런던]에서 아주 가깝고 또 이곳과 비슷한 곳에서 그 잠재력을 보여 주고 있는 사건에 관한 것입니다.

물론 우리 편이 이기고 프랑스 사회가 변하는 것으로 이번 투쟁이 결말을 맺을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지난 몇 주 동안 프랑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크게 주목할 만합니다.

운동의 규모

먼저 투쟁의 규모를 봅시다. 한 달 동안 130만~150만 명가량 참가한 대규모 시위가 세 차례 있었습니다. 참가자 다수는 노동자들이었습니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은 파업 중이었지만 또 아닌 이들도 많았습니다. 그들은 모두 연금 개악에 반대해서 거리로 나왔습니다. 그 개악은 프랑스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정책입니다.

이 운동의 중심에는 프랑스의 핵심 산업인 국영 철도 회사 SNCF와 파리대중교통서비스 RATP에 고용된 노동자들의 무기한 파업이 있습니다.

이들은 12월 5일부터 무기한 파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파업이 매우 오랫동안 유지되고 있는데, 프랑스 역사상 최장기 철도 파업입니다. 과거 프랑스에서 벌어진 매우 중요한 파업들인 1995년 대파업이나 1986~1987년 파업보다도 깁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철도 노동자들이 파업 중인 건 아닙니다. 프랑스의 공식 노동조합 조직률은 영국보다 한참 낮습니다. 그럼에도 기관사와 관제사처럼 철도 운영에서 핵심적인 구실을 하는 사람 중 40~60퍼센트는 12월 5일 이래로 계속 파업 중이고, 때때로 파업 참가율이 더 오르기도 합니다.

파리 지하철은 14개 노선 중 겨우 한두 노선만이 제대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제대로 운영되는 노선은 사실상 자동 무인 노선 두 곳뿐입니다. 지하철 노동자들은 “절대 자동화를 받아들이지 말라”는 교훈을 얻을 수 있겠네요.(웃음)

그러나 그밖에도 파업 중인 노동자들이 많습니다. 많은 교사들도 파업에 나섰습니다. 보건 노동자들도 파업 중인데, 그들은 그동안 자주 파업에 나섰습니다. 그밖에도 소방관, 우체국 노동자, 청소 노동자, 공무원, 정유소 노동자, 발전 노동자 등등 많습니다.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노동자들도 파업을 했는데, 파리 오페라 극장의 무용수들이 그렇습니다. 그들은 이번 운동의 아이콘처럼 부각됐는데, 아무래도 피켓라인을 지키는 [대체인력 저지 행동] 노동자들이 〈백조의 호수〉에 맞춰 춤을 추고 있으면 다른 부문, 예컨대 석유 노동자들보다 당연히 더 눈에 띠지 않겠습니까?(웃음) 물론 자본주의 경제에 미치는 타격이라는 관점에서는 석유 노동자들의 영향력이 더 클 테지만 파리 오페라 극장 무용수들도 함께 파업한다는 것은 매우 감명 깊습니다.

정부가 일부 양보하겠다고 했는데도 투쟁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총리 에두아르 필리프는 연금 수령 연령을 높이려던 계획을 적어도 일시적으로는 철회하겠다고 최근 발표했습니다. 보통의 운동이었다면, 이 정도 양보안을 받아들이고 마무리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은 전혀 그렇지 않았고 저항을 계속 이어가고 있습니다. 받아들일 수 없는 다른 개악들이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경찰관들만이 정부의 양보안을 받아들였습니다. 제가 보기에 정부는 이렇게 말한 셈입니다. “연금 수령 연령을 높일 예정이지만, 노동자들을 때려잡고 지난 1년간 노란조끼 시위대에 몽둥이를 휘두른 경찰은 예외다.”

일부 노동조합 지도자들도 정부 양보안을 수용했는데 그들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얘기하겠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지금 프랑스에서는 대단한 운동이 진행 중입니다. 12월 5일 이래 대규모 파업이 벌어지고, 100만 명 넘는 거리 시위가 세 번이나 있었습니다. 또, 아주 높은 수준의 저항 각오, 희열, 마크롱에 맞선 굳센 단결을 볼 수 있습니다.

노란조끼 운동의 영향

우리가 알아야 할 또 다른 사항은 대단히 희망적인 것인데, 바로 이번 운동에 앞서 치러졌던 2017년 [프랑스] 대선은 좌파에게 완전한 재앙이었다는 것입니다. 지난달 우리가 치른 영국 총선보다도 더 참담한 대선이었습니다.

2017년 대선에서 가장 많이 득표한 좌파 후보는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 당의 장뤼크 멜랑숑으로, 26퍼센트 득표했습니다. 사회당[주류 사회민주주의 정당]은 6퍼센트를 득표해 5위에 그쳤습니다.

대선 결선은 유럽 전역의 신자유주의자들이 치켜세운 마크롱과 파시스트 정당인 국민연합[라상블르망 나시오날]의 당대표 마린 르펜, 이 둘을 놓고 치러졌습니다. 좌파가 선거에서 지독하게 주변화했다는 점에서 끔찍한 선거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운동을 보면, 선거만 보고 향후 몇 년 동안 벌어질 일을 예단해선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대선이 끝난 지 18개월이 채 되지 않아 프랑스에서는 노란조끼 운동이 부상했습니다.

노란조끼 운동이 초기에 매우 모순돼 그 안에 서로 충돌하는 사상들이 많았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 운동은 가장 주목할 만한 저항을 일으켰습니다. 그래서 끔찍한 경찰 폭력에 시달렸습니다. 단적인 예로, 프랑스 경찰이 노란조끼 운동 시위대에 사용한 최루탄의 양은 홍콩 경찰이 사용한 것보다 더 많습니다. 홍콩 시위대에 대한 탄압도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지만 프랑스에서는 더 끔찍했던 것입니다. 수십 명이 시위진압용 고무공 “플래시볼”에 맞아 실명했습니다. 플래시볼 때문에 손가락을 잃은 사람은 6명이나 됩니다. 시위 와중에 목숨을 잃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주류 언론 보도에서는 꼭꼭 숨겨져서 이런 일이 프랑스에서 벌어진다는 것을 많이들 모릅니다.

이번 파업의 핵심 특징

현재 진행 중인 대규모 파업들과 시위들은 바로 이런 노란조끼 운동에 뒤이어 벌어진 것입니다. 이 점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번 파업과 시위는 여느 노동조합 투쟁과 두 가지 점에서 다르기 때문입니다.

첫째, 현장조합원들이 높은 수준의 주도력을 발휘한다는 것입니다. 노조 지도부의 지침을 기다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지도부를 압박하고 때때로 지도부가 하려는 것 이상으로 행동에 나서기도 합니다. 모든 직장에서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부 직장에서는 파업 노동자들이 매일 정기적으로 집회를 열어 파업 지속 여부와 운동의 투쟁성을 높일 방법을 논의합니다.

사례를 몇 가지 들겠습니다. 파리 북부역 현장 소식입니다.

“파업 노동자 150명과 그들이 소속된 4곳의 노조 깃발을 앞에 두고 연사들은 하나같이 분열 책동에 맞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실상 모든 이들이 같은 구호를 외쳤다. ‘정부와 협상은 없다. 파업 투쟁을 계속 이어가자.’ 거의 만장일치로 이런 주장이 통과됐다.”

한 가지 눈에 띠는 것은 이것이 어느 특정 노조 조직의 집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해당 역에 조합원이 있는 노조 4곳이 한데 모여 모임을 했습니다. 또, 어느 노조에도 소속되지 않은 사람들도 참가하고 파업위원회 선출에도 참가했는데, 이는 기존의 경계를 넘는 것입니다. 마치 영국에서 유니슨[공공부문 노조], GMB[일반노조], 유나이트[운수일반노동조합과 통합기계공전자 노조의 통합 노조] 조합원들과 그 외 비조합원까지 모두 모인 것과 같습니다. 그 노동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 파업을 이끄는 것은 우리이고, 우리는 단결해 있고, 이 파업을 지속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를 위해 노조의 일상적 조직을 통하기보다는 우리만의 독자적인 조직을 만들 것이다.’ 매우 급진적입니다.

여기 또 다른 보도가 있습니다.

“투르 시에서 교사 200명이 참가한 한 집회에서는 ‘파업 연장 제안을 환영하고, 다른 단체들도 파업에 동참하도록 격려하며, 노란조끼 운동과 함께 시위를 벌이기’로 표결했다.

“12월 12일에는 도시 르아브르와 주변의 대규모 공단이 완전히 봉쇄됐다. 이 도시 노동자들의 총회와 노조간 조율 기구가 이를 호소했기 때문이다.”

이런 모습들은 중요한 변화를 보여 줍니다. 파업 운동을 주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상층 지도부가 결정하길 기다리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들이 스스로, 그리고 파업 중인 다른 노동자 집단들과 함께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모색합니다. 기층에서 노동자 민주주의의 중대한 전진이 있는 것입니다.

2019년 12월 27일 파리를 행진하는 노동자들 ⓒ출처 O Phil des Contrastes

이뿐 아니라 중요한 정치적 변화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예컨대, 파업 중인 발전 노동자들은 발전소를 가동합니다. 이들은 특히 자기네 사용자들을 공격 대상으로 삼는 한편, 평범한 사람들의 전기요금 부담을 덜어 주는 정치적 행동을 했습니다. 다음 보도를 보십시오:

“보르도 시에서 프랑스전력공사(EDF) 노동자들은 이케아, 식료품 유통센터 리들, 프랑스에서 가장 큰 전자상거래 웹사이트인 씨디스카운트의 물류센터, 버스터미널 등으로 가는 전력을 차단했다. 노동자들은 이처럼 대기업들의 전력을 끊은 반면, 8만 명을 오프 피크 요금제[전력 수요가 낮은 시간대에 물리는 저가 요금제]로 돌렸는데, 그 덕에 사람들의 전기세가 크게 줄었다.

“노동총동맹(CGT) 조합원 바스티앙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부자들의 전력을 빼앗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돌려줬습니다.’”

마지막 발언은 정말 대단합니다! 전기를 누구에게 공급하고 차단할지를 다름아닌 우리들이 결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밖에도 크리스마스 연휴 동안 파리 교외에 있는 아마존 물류창고의 전기가 끊겨서 문이 닫혔습니다.

또, 노동자들은 새로 설치한 전기계량기 사용을 중단시키겠다고 밝혔습니다. 이 신형 계량기들은 전기요금이 체납되면 전기를 끊는 기능이 있습니다. 이곳 영국에서 전기요금이 체납되면 돈을 먼저 납부한 후 열쇠로 잠금을 풀어야만 하는 것과 비슷한 종류인 것이죠.

그 노동자들은 “가난 탓에 크리스마스에 촛불을 켜야 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그들이 대단히 정치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파업 노동자들과 시위대가 함께하는 대규모 운동이 벌어지고, 노조의 기층에서 민주주의 요소들이 발전하고, 거기에 더해 파업 노동자들이 정치적 결정을 내리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것이 소비에트, 즉 노동자평의회는 아닙니다. 그럼에도 파업이 높은 수준으로 발전하면 노동자들이 통상적인 노동조합 운동을 넘어설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신자유주의 공세와 저항의 역사

왜 지금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요? 이를 이해하려면 좀 더 긴 역사를 알아야 합니다.

1990년대 이래로 프랑스에서는 프랑스 판 마거릿 대처가 되겠다고 자임하고 나선 자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그들은 1980년대에 신자유주의가 어떤 변화를 낳았는지를 보고 프랑스에서도 비슷한 변화가 필요하다고 거듭 주장했습니다. ‘노동자들의 권리를 없애 버리고 연금 받을 자격을 더 엄격하게 하고 프랑스 자본주의를 더욱 경쟁력 있게 만들어야 하고, 그러려면 노동조합들의 힘을 분쇄하고 노동자들을 굴복시켜야 한다.’

1995년에 이런 공격이 처음으로 만만찮게 벌어졌는데, 알랭 쥐페[당시 프랑스 총리]가 나섰습니다. 그는 연금을 개악하려 했다가 대규모 파업에 직면했는데 여러 점에서 지금과 비슷했습니다.(차이점에 대해서는 조금 이따 얘기하겠습니다.) 철도 노동자, 우체국 노동자 등이 서로 연대하며 파업에 나섰습니다. 대단히 큰 운동이었고, 당시에도 지역위원회가 꾸려졌고, 이 위원회들이 서로 소통하고 행동을 조율했습니다. 대규모 시위도 여럿 벌어졌습니다.

그때 제가 취재하면서 프랑스 전역에서 80만 명이 시위에 나섰다고 쓴 기억이 납니다. 당시로서는 아주 커다란 집회였습니다. 물론 지금은 그때보다 더 큰 시위들이 벌어지고 있지만 말입니다.

이 자리에서 자세하게 설명드릴 순 없지만, 노조를 겨냥한 첫 번째 만만찮은 공격이었음에도 결국 알랭 쥐페가 패배해 후퇴해야 했습니다. 처음에 그는 개악안의 일부 조항을 양보했고, 그러다 더 많이 양보했고, 결국 연금 개악 구상을 통째로 거둬들여야 했습니다.

알렝 쥐페는 프랑스 판 마거릿 대처가 되려던 첫 번째 인물이었지만 마지막은 아니었습니다. 그 뒤로도 비슷한 인물들이 나섰습니다. 니콜라 사르코지[2007~2012년 프랑스 대통령]는, 기억하시는 분도 계실 테지만, 몇 해 전 프랑스 대통령이었습니다. 2008년 그를 인터뷰한 〈피가로〉 신문의 기사는 이렇습니다. “대통령은 자신의 참모들에게 ‘먼 훗날 사람들은 내가 마거릿 대처만큼 많은 개혁을 이뤘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사르코지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노조의 힘을 박살내어 복지를 후퇴시키려던 계획이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가 일방적으로 패배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노동계급이 승승장구했다는 인상을 여러분들께 주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건 진실이 아닙니다.

프랑수아 피용[사르코지 정부의 총리]도 마거릿 대처의 열렬한 지지자였고 개악을 밀어붙이고 싶어 했습니다. 그때도 일부 노동자들의 생활수준은 나빠졌지만, 지배계급이 바랐던 돌파구는 열리지 않았습니다.

마크롱의 공격은 이런 흐름의 최신 국면입니다. 그리고 그는 제가 앞서 거명한 인물들보다 더 만만찮게 덤비고 있습니다. 그는 흔히 말하는 ‘중재 기구들’을 이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는 노동조합 지도자들을 경멸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평온한 협상으로 얻어 낼 수 있다고 조금치도 생각지 않습니다. 그는 노동계급 운동과 정면으로 붙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마크롱은 성과를 일부 거두기도 했습니다. 그는 2018년, 연금 개악을 놓고 벌어진 철도 파업에서 중요한 승리를 거뒀습니다. 그는 노조법을 개악했고, 일부 수당을 없앴고, 일터에서의 권리를 제약했습니다. 마크롱이 항상 이긴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번에 그는 대단히 큰 공격에 나섰습니다. 바로 프랑스 노동자들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연금을 겨냥한 것입니다.

기존 연금 체계 하에서는, 연금 지급 방식에 따라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상당수 노동자들이 62세에 은퇴합니다. 이는 프랑스인들이 영국인들보다 장수하는 비결 중 하나입니다. 영국인들보다 더 일찍 은퇴하고 더 나은 연금 제도를 누립니다.

일부 노동자들은 62세 이전에 은퇴합니다. 약 100만 명 정도가 그에 해당하는데, 광원, 철도 노동자, 지하철 노동자 등이 그런 경우입니다. 노동이 더 고되거나 아니면 더 나은 조건을 쟁취했기 때문입니다.

철도 노동자들의 연금은 제2차세계대전 종전 뒤 쟁취한 것인데, 그들이 [나치 독일 점령군에 맞선] 레지스탕스에서 아주 중대한 구실을 했기 때문입니다. 또, 파리 오페라 극장 무용수들의 연금은 17세기에 처음 도입됐고 그 이래로 무용수들은 이를 지켜 왔습니다. 60대가 25세처럼 춤출 수 없다는 명백한 이유 때문이어서 그들에게는 사활적인 문제입니다.

주사관을 따라 우리의 분노가 흐른다! 파업에 동참한 프랑스 구급대원들 ⓒ출처 Photothèque Rouge /JMB

마크롱이 하려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는 노동자들의 은퇴 연령 기준을 62세에서 64세로 올리려 합니다. 그의 구상대로라면 모든 노동자들이 64세에 은퇴하는 것도 아닙니다. 적절한 연금을 받으려면 많은 노동자들이 65~67세까지 일해야 합니다.

마크롱은 ‘점수 기반 연금제도’를 도입하려 하는데, 노동자들이 일하는 동안 점수를 쌓고 그 점수만큼 연금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정부가 점수당 금액을 중간에 바꿀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노동자는 자기 연금이 주당 200유로일 거라고 예상했는데, 정부가 ‘아냐, 150유로밖에 안 돼’ 하고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연금 보험료 납입 기간과 경제 상황을 판단해서 정부가 정하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마크롱은 또한 철도 노동자와 지하철 노동자 등에 적용됐던 특별 규정도 모조리 없애 버리려 합니다.

또한 연금액을 정하는 기준도 개악하려 합니다. 현행 제도는 전체 납입 기간 중 가장 임금이 높았던 시기의 임금을 기준으로 삼습니다. 마크롱은 이를 고쳐서 전체 납입 기간의 평균 임금을 기준으로 삼으려 합니다. 왜냐하면 지난 몇 년 또는 몇십 년 동안 안정적으로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거나 아주 저임금만 받은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결국 연금 금액을 깎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마크롱은 유럽 곳곳에서, 또 세계 여러 나라에서 했던 전형적인 연금 개악, 즉 더 오래 일하지만 연금은 덜 받도록 개악하려 합니다.

바로 이런 끔찍한 공격에 대응해서 지금 프랑스인들이 저항에 나선 것입니다. 마크롱은 물러서지 않을 태세를 단단히 갖추고 있습니다. 마크롱은 이번 연금 개악에 사활을 걸었습니다. 이번에 패배하면 그가 추진하려는 다른 신자유주의 정책들도 모조리 제동이 걸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지배계급이 노리는 바입니다. 노동계급의 힘을 꺾으려는 장기 프로젝트의 일환이고 이를 통해 신자유주의를 전보다 더 많이 추진하려는 것입니다.

노동조합 운동이 “노란조끼처럼 하자”

그러면 우리 편은 어떨까요? 어떻게 우리 편은 지금처럼 대단한 수준으로 투쟁할 수 있었을까요? 프랑스만의 뭔가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번 투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첫째, 오랫동안 생활수준이 개선되지 못했고, 불평등은 경악스러운 수준으로 벌어졌고, 그에 대한 반감이 자랐습니다. 프랑스는 극단적으로 불평등한 사회입니다. 상층의 소수 엘리트들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부유합니다. 반면 대부분의 프랑스인들은 금융 위기 이후 생활 수준이 거의 나아지지 못했거나 오히려 나빠졌습니다. 이에 대한 반감이 큽니다.

그러나 반감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 점에서 노란조끼 운동이 한 구실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노란조끼 운동은 떨쳐 일어나 싸우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 저항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줬습니다. 게다가 노란조끼 운동은 과거의 저항 운동들이 따랐던 경계를 허물었습니다. 지금 프랑스에서는 노동조합 운동이 “노란조끼처럼 하자”는 얘기가 많은데, 바로 노조 지도자들이 지침 내리기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또, 누가 나와 같은 노조인지 아닌지 경직되게 가를 필요가 없고, 또 우리가 같은 산업부문에서 일하는 노동자인지 아닌지 따질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노동자들은 그런 구분을 넘어서 더 광범한 쟁점을 제기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슬로건입니다. 노란조끼 운동에서 초기 정치적 토론과 열띤 논쟁을 거쳐서 등장한 슬로건 하나는 “이달의 끝, 이 세계의 끝”입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우리가 받은 임금으로 이달이 끝날 때까지 버틸 수 있을까’ 걱정스럽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호의 앞부분에 해당하는 내용입니다.

“이 세계의 끝”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아시다시피 노란조끼 운동을 촉발한 것은 [보조금 삭감으로] 유가 인상이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저 시위는 기후변화에 무관심한 사람들이 벌이는 것이다’ 하고 힐난했습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시위에 나선 사람들이 누구 못지않게 기후변화도 우려한다는 것이 드러났고 구호의 뒷부분은 이를 표현한 것입니다.

이렇듯 아주 계급적인 요구(“우리의 임금과 연금이 이달 말까지 남아 있을까?”)가 기후위기 문제와 결합이 돼 있는 것입니다. 또 다른 구호, “우리는 단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살고 싶다”는 구호도 노란조끼 운동에서 처음 제기돼 연금 개악 반대 운동으로 확산된 경우입니다.

연금 파업에 관한 많은 온라인 토론에서 흔히 나오는 단어가 “생존”입니다. 이들에게 “생존”은 ‘내 연금이 충분할까?’, ‘내가 일을 그만둔 뒤에도 살 수 있을까?” 하는 문제의식과 나란히 “지금 세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지?”, “내가 이런 세계에서 계속 살 수 있을까?” 하는 것을 담고 있습니다. 이번 연금 파업에서 감명 깊은 것은 파업 노동자들이 노란조끼 운동, 환경단체, 여성단체, 학생단체 등등 프랑스 사회의 각종 시위대와 함께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연금 파업은 프랑스 사회 구석구석에 존재하는 모든 분노와 저항을 모아내는 피뢰침 구실을 하게 됐습니다. 마치 전에 노란조끼 운동이 그랬듯이 말입니다.

노란조끼 운동과 노동계급의 힘이 결합된 덕분에 지금의 운동이 그토록 대단하고, 급진적이고, 그래서 지배계급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고 있습니다.

운동의 정치

그렇다면 이 운동의 정치는 어떨까요? 첫째, 프랑스 노조 지도자들은 영국의 노조 지도자들이 할 법한 일에 똑같이 나서고 있습니다. 즉, 노동자들의 투지를 때때로 고무하지만, 동시에 정부와의 협상을 모색합니다.

실제로, 가장 큰 노총 중 하나인 프랑스민주노동자총연맹(CFDT)은 늘 그랬듯 운동을 지지하는지 여부조차 불분명합니다. 그 지도부는 자신이 정부의 사회적 동반자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마크롱과 협상을 타결할 태세가 돼 있습니다.

전국자율노조연맹(UNSA)은 크리스마스 때 철도 파업을 중단시키려 했습니다. 지도부는 이를 관철시키려 대단히 애를 썼습니다. “휴전을 해야 한다. 크리스마스는 가족과 모든 이들에게 중요한 시기인 만큼 사람들이 부모님 등을 만나기 위해 기차를 탈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만큼 크리스마스 기간에는 파업을 멈추자.”

다행스럽게도 UNSA의 현장조합원들이 크게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노동자들은 “무슨 소리냐. 파업을 멈춰선 안 된다” 하고 말했습니다. 14개 지역에서 UNSA 소속 조합원들이 파업을 중단하지 않겠다고 밝혔고, 결국 파업 중지 시도는 먹히지 않았습니다. 이런 아래로부터 압력이 아니었다면 노조 지도자들이 파업을 끝내려 했을 것이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좌파 정당들은 이 문제를 놓고 대체로 모호했습니다. 파업을 이어가야 한다는 주장을 지지하는 데 아주 굼떴습니다.

극우 인사인 [파시스트 정당 ‘국민연합’의 대표] 마린 르펜은 어떨까요? 그에게 ‘파업을 지지한다’는 말은 감히 입에 담기 어려운 말입니다만, 그럼에도 그는 기회가 될 때마다 ‘이번 운동에는 뭔가 진지한 게 있다, 마크롱이 틀렸다’ 하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다음번 대선에 출마해서 마크롱에 맞서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아래로부터 운동의 친구인 양 행세하려 합니다. 문제는 이 운동이 그가 기대하는 수준보다 한참 더 나아갔다는 것입니다.

어제[1월 14일] 마린 르펜은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노동총연맹CGT과 그 위원장 필리프 마르티네스를 증오할 이유는 충분하다.” “우리는 이들을 대단히 증오한다.” 왜냐하면 파업이 너무 발전해서 어느덧 그 자신이나 그의 지지 기반인 극우 인종차별주의자들이 받아들이기엔 너무 급진적으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지금 프랑스에는 거대한 정치적 간극이 있습니다. 문제는 그런 간극만으로는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이나 새로운 정당, 새로운 사회주의 운동 등이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금 운동에서 제기되는 주장은, 첫째 파업을 보편적인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총파업이 필요하다는 것, 일부 부문의 파업으로는 충분치 않고 대다수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서 마크롱에 가하는 압력을 증대시켜야 한다는 것, 노동자들은 분명 이길 수 있지만 그러려면 무기한 총파업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주장은 정치에 관한 것입니다. 바로 노동계급 전체의 저항의식과 단결을 담아 낼 조직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조직의 맹아는 여러 파업들과 현장조합원들의 자체 행동에서, 그리고 그에 앞서 노란조끼 운동에서도 언뜻 드러나곤 했습니다. 그런데 혁명적 조직은 바로 그런 구실을 하기 위한 조직입니다. 또한 혁명적 조직은 그런 단결을 이루고자 운동 안에서 인종차별·성차별 등 각종 분열에 맞서고, 파업과 기후변화 문제를 결합시키고, 연금 이상의 문제들을 제기하고, 우리가 살고 싶은 사회가 어떤 모습이고, 이를 어떻게 노동자의 힘과 저항을 통해 이룰 수 있는지 제시하는 조직입니다.

지금 프랑스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중요한 까닭은 이렇습니다. 그 운동은 노동계급의 잠재력을 보여 주는 동시에 혁명적인 정치 조직의 필요성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반자본주의신당(NPA)에서 활동하는 프랑스 국제사회주의 경향 동지들이 지난주에 쓴 말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이번 파업은 아름답다. 운동의 힘 앞에서 심란해서 말을 더듬는 장관들·의원들·신문 편집장들만큼이나 아름답다. 마크롱의 세계는 전경들로 에워싸인 기업인들만의 세계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바로 그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든 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이 말은 단지 시적이고 아름다울 뿐 아니라, 세계를 바꿀 잠재력이 노동계급에 있고, 우리의 [혁명적인] 정치가 그 중심에 있어야 할 필요성을 보여 준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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