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를 해결한다며 발표한 이른바 ‘중동평화구상’이 팔레스타인과 아랍 대중의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

트럼프가 발표한 ‘중동평화구상’의 핵심은 유엔이 인정한 팔레스타인 영토(1948년 이스라엘 수립 이전 영토의 절반도 못 된다) 중 그간 이스라엘이 전쟁을 벌여 무단 점령하거나, “유대인 정착촌 건설”이라는 이름으로 팔레스타인인들을 내쫓고 차지한 지역 등을 상당 부분 이스라엘의 공식 영토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도둑이 훔친 장물을 도둑의 것이라고 공인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요르단강 서안 지구의 많은 지역이 이스라엘로 넘어가고 서안 지구에서 “팔레스타인 국가”는 이스라엘 내 고립된 지역으로만 남는다.

또한 세 종교(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성지이자 원래 팔레스타인인들이 살던 예루살렘의 대부분은 이스라엘에 넘어간다. 70여 년에 걸쳐 이스라엘이 벌인 전쟁으로 양산된 팔레스타인 난민 수십만 명은 고향으로 돌아올 권리를 부정당한다.

한편, 팔레스타인은 자체 군사력도 갖지 못하고 이스라엘의 군사 ‘보호’ 아래 있어야 한다.(현재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는 선출된 무장단체 하마스가 통치하며 이스라엘과 대치하고 있다.) 트럼프는 이 모든 것의 대가로 일정 금액을 투자하겠다며 돈다발을 흔들었다.

트럼프는 이 구상이 “팔레스타인인을 위한 마지막 기회”라고 했다. 팔레스타인인들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스라엘의 영토 확장 시도를 계속 지지할 것이라는 협박이다.

당연히 팔레스타인인들은 반발하고 나섰다. 대단히 부패한데다 이스라엘에 협조적이기로 악명 높은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예산을 이스라엘을 통해서 받는다) 수반 압바스조차 트럼프의 구상을 “쓰레기통에 버릴 것”이라고 답했다.

걸프 지역의 대표적인 친미 국가인 요르단도 이번 구상을 비판했다. 트럼프가 취임 후 첫 해외 방문지로 찾았던 사우디아라비아조차 이번 구상을 겉으로 대놓고 환영하길 꺼렸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식민지화하는 것을 보며 자국 국민들이 수십 년간 분노하고 있고 팔레스타인에 연대하는 전통이 강력하기 때문에 자칫 반정부 정서에 불을 지필까 우려한 것이다.

그만큼 트럼프의 제안은 팔레스타인은 물론이고 중동 전역의 민중에게 모욕적이다. 그러나 트럼프의 정치적 목적이 더 고약하다. 트럼프가 이스라엘에 힘을 실어 주는 것은 이스라엘이 이란과 군사적으로 대치할 능력과 의지를 갖춘 몇 안 되는 중동 국가이기 때문이다. 즉, 트럼프의 이번 발표는 이란 압박의 연장선상에 있고 평화는커녕 중동에 더 큰 불안을 가져올 것이다.

“평화정착 노력”?

한편, 문재인 정부는 이런 구상에 넌지시 지지를 보냈다. 1월 30일 외교부는 대변인 논평을 내 “미국과 국제사회의 중동평화 정착 노력을 평가하며 두 국가 해법에 기초하여 관련 당사자 간 대화와 타협을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두 국가 해법”에 대해서는 기사 아래의 글 ‘“한 국가 방안” — 팔레스타인의 진정한 독립과 해방을 위해’ 참고.]

같은 날 외교부 대변인 브리핑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중동 평화에 전혀 관심이 없고 한미동맹과 그에 따른 이익에 온통 관심이 쏠려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당시 한 기자가 외교부 대변인 논평에 대해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유엔의 입장을 지지한다고 이해하면 되겠습니까” 하고 묻자 대변인은 처음에 동문서답을 했다. 대변인의 난처함을 간파한 기자가 “원칙적으로는” 유엔 입장을 지지하는 것으로 이해하겠다며 마무리하려고 하자, 대변인은 그의 말허리를 자르며 그것도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동안 유엔은 팔레스타인에 대해 알량한 권리만을 인정해 왔는데, 트럼프는 그조차 무시하고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식민지화를 지원한다. 문재인의 외교부는 트럼프의 이 정책에 지지를 밝히는 데 흠집이 날까 봐 ‘유엔과 같은 입장이냐’는 질문에 예민하게 반응한 것이다.

사실 오랫동안 한국 정부는 팔레스타인 문제에서는 모호한 입장을 취하면서 쟁점에 연루되는 것을 피해 왔다. 가장 최근에는 2017년 말에 트럼프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라고 선언하자, 유엔 회원국 다수는 이를 무효라고 선언하는 (효력은 없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는데 당시에는 문재인 정부도 무효 선언 표결에 동참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일은 트럼프의 중동 구상에 정부가 전보다 더 발맞춘 것으로 볼 수 있다. 정부가 최근 미국의 요청에 따라 호르무즈해협 한국군 파병을 강행한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미국의 중동 패권을 지원한 대가로 한미동맹을 강화하고 한국 지배자들의 이해관계를 추구하겠다는 더러운 야심이 갈수록 드러나고 있다.

“한 국가 방안” — 팔레스타인의 진정한 독립과 해방을 위해

트럼프는 자신의 구상이 “현실적인 두 국가 방안”이라고 말한다. 트럼프를 비판하는 많은 주류 논평가들은 트럼프가 “제대로 된 두 국가 방안”을 휴지조각으로 만들었다고 비판한다. 한편, 문재인 정부도 ‘두 국가 방안’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것만 봐도 “두 국가 방안”에는 많은 동상이몽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두 국가 방안”이란 팔레스타인 영토에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라는 국가 2개를 세운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스라엘이 철저하게 시온주의를 바탕으로 수립, 운영되는 국가라는 것이다. 시온주의는 팔레스타인 식민지 운동으로 처음엔 영국, 이후엔 미국이 지원했다. 서방에 대한 반감이 높은 중동에서 서방 제국주의에 절대적으로 의존할 세력을 양성하기 위한 프로젝트다.

1948년 이스라엘은 국가 수립을 위해 팔레스타인인 약 100만 명을 쫓아냈고 이를 위해 살육도 서슴지 않았다. 건국 이후에도 침공에 나서고, 정착촌이라는 이름으로 팔레스타인 땅을 빼앗고,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를 폭격하기를 반복하고 있다.(자세한 내용을 알려면 시온주의에 비판적인 유대인 사회주의자 존 로즈가 쓴 책 《강탈국가 이스라엘》을 추천한다.)

여기에는 영토 욕심 이상의 정치적 목적도 있다. 바로 팔레스타인 등과 상시적으로 군사적 대치 상태를 유지하며 기회가 될 때마다 전쟁을 벌여 서방 지배자들에게 자신의 유용성을 입증하려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높은 수준의 경제를 발전시켰지만 여전히 서방의 지원이 없으면 장기적 존속이 불안정하다.

그래서 1993년에 “두 국가 방안”이 공식 채택됐지만 그동안 서방 국가들의 압도적 지원과 묵인 속에 이스라엘은 계속 영토를 약탈해 왔다.

“두 국가 방안”은 이렇듯 세계 열강이 중동 지배를 위해 시온주의 국가를 지원하는 상황과 떼어 놓고 볼 수 없다. “두 국가”를 건설하자는 제안이 현실에서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더 식민지화하는 것을 방치하는 결과로 이어진 이유다.

그러나 수천 년 동안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인과 팔레스타인들이 함께 살았고,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유대인들이 다른 이들과 어울려 사는 데서 보듯 시온주의는 전혀 근거 없는 사상이다. 20세기 초까지 시온주의는 소수 유대인만 받아들인 사상이었다.

이처럼 제국주의 식민지 건설 프로젝트에 뿌리를 둔 국가(이스라엘)가 아니라 팔레스타인과 유대인이 함께 민주적이고 세속적인 국가를 이루는 “한 국가 방안”이야말로 팔레스타인 문제의 진정한 해결책이다. 이를 달성하려면 중동 지배력을 위해 이스라엘을 후원하는 제국주의 열강과 거기에 영합하는 중동의 토착 지배자들을 타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