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30일 트랜스젠더 여성(이하 트랜스 여성)이 2020년 숙명여자대학교 법과대학에 합격해 입학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이 언론을 통해 전해졌다.

해당 학생은 지난해 8월 성전환 수술을 마치고(남성→여성), 10월에 법원에서 성별정정허가를 받았다. 

우선, 해당 학생이 자신의 성별 정체성을 당당히 밝힌 용기에 지지를 보내며 대학 합격을 축하한다. 트랜스젠더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만연한 사회에서 자신을 긍정하고 드러내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일부 학생들이 온라인 게시판에 트랜스 여성 입학에 대한 불편함과 거부감을 드러냈다. 그중 일부는 더 적극적으로 트랜스젠더 학생의 입학을 반대하는 오픈 카톡방을 만들어 이 학생의 입학에 대해 입학처와 동문회에 항의하자고 호소하고 있다.

이들은 트랜스 여성은 ‘진짜’ 여성이 아니고 남성일 뿐이라거나, 트랜스 여성은 ‘여성의 공간을 위협하는 위험한 존재’라고 주장한다. 이는 트랜스젠더 권리를 둘러싼 논쟁에서 자주 등장하는 편견에 찬 주장들이다.

물론 입학에 반대하는 학생들을 모두 트랜스젠더 혐오주의자라고 싸잡을 수는 없을 것이다. 성별 이분법이 뿌리 내린 사회에서는 트랜스젠더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많고, 학생들도 이런 사회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편견을 갖고 트랜스젠더 학생을 내치는 것은 옳지 않다. 이 세상에는 타고난 성과 자신이 인식하는 성이 다른 사람들이 많이 존재한다. 트랜스젠더가 차별 없이 자신이 원하는 성별로 살 수 있도록 지지해야 한다.  

트랜스젠더를 상징하는 깃발

성별 정체성을 존중해야 한다



많은 트랜스젠더들이 성별 이분법적인 사회에서 고통받는다. ‘남자답지 못하다’ 혹은 ‘여성스럽지 못하다’며 비난받거나 별종 취급을 받고, 사회적 성별 규범에 맞게 행동하기를 끊임없이 강요받는다. 까다로운 성별 정정과 비싼 수술 비용 때문에 법적 성별 정정을 꿈도 못 꾸는 트랜스젠더도 많다. 이들은 구직, 투표, 화장실 등 일상 생활에서 차별을 감내하고 숨죽이며 산다. 성전환 수술을 해도 여전히 차별을 겪는다. 

트랜스 여성 입학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트랜스 여성은 진짜 여성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사람들이 성별을 스스로 결정하고 표현할 권리가 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주장이다. 

성별 정체성은 흔히 오해하듯이 단지 ‘느낌’이나 ‘기분’이 아니다. 트랜스 여성이자 마르크스주의자인 로라 마일스는 성별 정체성을 “자신의 생물학적 성에 대한 내면적 인식(그 성을 부정하거나 불편하게 여기는 것 등)과 사회의 성별 규범이 상호작용하면서 생겨나는 실재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많은 트랜스젠더들은 오랫동안 자신의 성별 정체성에 대해 고심하며, 일부는(전부는 아니다) 만만찮은 비용과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성전환 수술을 한다. 성별 정체성은 개인의 핵심 자아 중 하나로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해당 학생도 어려움 속에서도 커밍아웃 한 이유는 자신처럼 고통받는 다른 트랜스젠더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트랜스젠더 여성은 여성이다


일각에서는 트랜스젠더 학생이 ‘여성들의 공간(여자 화장실, 여자 기숙사 등)’을 위험하게 할 것이라며 두려움과 편견을 부추긴다.

그러나 이것은 정말 근거 없는 편견일 뿐이다. 트랜스 여성이 여성 전용 공간에서 ‘시스젠더’(타고난 성과 성별 정체성이 일치하는 사람) 여성을 공격했다는 사실이 보고된 바는 세계적으로 거의 없다. 반대로 트랜스 여성이 남성 화장실 등을 쓸 수밖에 없을 때 폭력과 괴롭힘의 대상이 된 경우가 많다.

그동안 여자대학 안에서도 트랜스젠더, 젠더퀴어, 논바이너리 등 다양한 성별 정체성의 사람들이 존재해 왔다. 트랜스 여성의 여자대학 입학 소식이 널리 알려진 것은 이번이 처음일 뿐인 것이다. 그리고 여자대학 안에도 남성인 교강사, 직원 등이 이미 대학 구성원으로 공존하고 있다. 


물론 트랜스 여성을 배척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누구나 마음 편히 사용할 수 있는 성중립화장실을 마련하는 것도 필요하다. 

한편, ‘트랜스 여성은 남성이고 위험한 존재’라는 생각은 남성의 생물학적 본성이 여성을 공격하고 차별한다는 급진 페미니즘의 견해와도 관련 있다. 하지만 여성 차별의 원인은 생물학으로 환원될 수 없다. 이런 견해는 생물학을 근거로 여자의 본분과 성격을 규정하는 보수적 견해의 거울 이미지다. 여성 차별은 남성의 본성 때문이 아니라 사회가 계급으로 나뉘는 계급사회에서 체계적으로 발전했다(자세한 설명은 이 글을 보시오).

해당 학생을 여성이 아니라며 거부하는 주장으로 ‘트랜스 여성이 여성으로 길러지는 경험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진정한 여성이 아니다’라는 주장도 나온다. 남성으로 길러졌기 때문에 신체를 바꿨어도 남성이라는 것이다.

물론 남성과 여성의 사회화 과정은 다르지만, 여성들 사이에서도 사회화 과정은 동일하지 않다. 특히, 부유한 여성들과 평범한 여성들이 살아온 과정은 매우 다르다. 홍라희 삼성미술관 관장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자라온 경험과 그 호텔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의 성장 경험이 과연 얼마나 비슷할까? 

무엇보다 트랜스 여성도 (그가 남들에게 여성으로 인식된다면) 여성 차별에 시달리곤 한다. 

트랜스 여성을 여대로 받아들이면 오히려 성별 규범이 더 강화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트랜스 여성들이 소위 ‘여성스러움’을 지향하는 게 여성 차별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성 차별의 문제를 트랜스젠더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별 고정관념은 가족제도에 뿌리를 두고 있고, 가족제도와 여성 차별적 관행을 지탱하는 핵심 주체는 국가기구·기업·주류 언론 등 사회의 권력자들이다.

트랜스젠더 때문에 성별 고정관념이 강화되는 게 아니다. 오히려 트랜스젠더는 기존 규범과 충돌하기에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 된다. 

설사 트랜스 여성이 ‘주류적 여성상’에 부합하려 애쓴다고 하더라도 그 개인을 문제 삼아서는 안 된다. ‘여성의 몸은 여성 자신의 것’이라는 주장은 여성 운동이 옹호해 온 가치다.

트랜스 여성의 권리와 시스젠더 여성의 권리는 본질적으로 서로 대립되지 않는다. 오히려 트랜스 여성이 겪는 고통과 시스젠더 여성의 고통은 연결돼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지배자들은 고정된 성 역할을 부추기고, 이분법적 성별 규범 틀에 사람들을 욱여넣으려 한다. 이는 트랜스젠더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고통을 준다.

타고난 성별만을 인정하는 생물학적 결정론은 오히려 성별 고정관념과 규범에 저항할 가능성을 좁힌다. 

숙명여대에 합격한 트랜스 여성은 최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대학에 등록할 수 있을지 무섭다”고 말하면서도 “어떤 소수자가 정체성을 드러내면 차별과 멸시가 있으니 숨어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데] … 굉장히 잘못됐다” 하고 일침을 놨다.

숙명여대 안팎으로 그녀를 지지하는 목소리도 계속 나오고 있다. 숙명여대 공익인권학술 동아리와 숙명여대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가 입학 환영 입장을 낸 데 이어, 지지하는 동문들의 목소리도 모이고 있다.

이런 목소리가 더 커지길 바란다.


이 기사는 《트랜스젠더 차별과 해방》(로라 마일스 외 지음, 책갈피)를 참고해 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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