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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구성원에게 등급을 매기는 재외동포법

지난 5월 국회는 ‘국적법중개정법률’안을 의결했다. 이것은 한나라당 홍준표가 이중국적을 이용한 병역기피를 차단하겠다며 발의한 것이다.

그 뒤 1천6백여 명의 이중국적자들이 한국 국적을 포기했다. 언론은 이들을 ‘병역 기피자’라고 비난했다.

이에 힘입어 홍준표는 한국 국적을 포기한 이중국적자를 모두 병역 기피자로 간주하고 불이익을 주는 재외동포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국적 포기자 중에는 여성도 있었는데 말이다. 다행히 개정안은 국회에서 부결됐다.

개정안이 통과됐다면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병역 의무 부과가 강화될 터였다.

병역 의무가 없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이나 탄압도 강화될 터였다.

또한, 병역 의무라는 사상은 병역 의무가 없는 여성에 대한 차별을 강화할 것이다.

개정안이 국회에서 부결됐기는 했지만 국적, 즉 한 민족(국가)의 구성원이 될 수 있는 기본적 조건을 둘러싼 논란과 차별·배제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재외동포는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한민족 혈통을 가진 자를 가리킨다. 2002년 현재 재외동포는 6백만 명으로 추산된다.

그 중 재미동포가 2백만 명, 재중동포가 1백90만 명, 재일동포가 1백20만 명, 재CIS(독립국가연합)동포가 52만 명이다. 이들이 전체 재외동포의 90퍼센트 이상을 차지한다.

같은 ‘배’(胞)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동포라고 불리지만, 재외동포는 한반도의 분단과 그 뒤 남한에서 반쪽짜리 근대 민족국가가 건설되는 과정에서 외국인 취급을 받았다.

재외동포법은 제정 당시부터 재외동포를 국가의 이해관계와 행정편의에 따라 등급화하고 차별하고 배제했다. 사실, 재외동포법은 한 민족(국가)의 구성원의 조건과 등급을 규정하는 장치 중 하나다.

중국의 조선족과 옛 소련 지역의 고려인에 대한 차별이 대표적인 사례다.

재외동포법은 1999년 9월에 제정돼 그 해 12월부터 시행됐다.

당시 재외동포법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1948년 이전에 한국을 떠난 재외동포를 제외시켰다. 그 때문에 2001년 11월 29일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 판정을 내렸다.

2004년 1월에 국회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전에 국외로 이주한 사람도 재외동포로 인정하는 개정안을 의결했다.

그 결과, 조선족 동포와 고려인 동포도 재외동포로 인정받게 됐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차별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재외동포법 개정과 함께 출입국관리법 시행령과 시행규칙도 개정됐다. 그 법에 따르면, 재외동포의 법적 지위를 가진 자들은 단순 노무 행위를 할 수 없다.

이것은 대체로 단순 노무직에 종사하는 조선족 동포를 겨냥한 것이다. 그들에게 재외동포의 법적 지위는 주되 출입국관리법 위반자로 만든 것이다.

개정 재외동포법은 무국적 난민으로 분류되는 조선적 재일동포와 ‘원정출산’으로 이중국적을 가진 출생지주의 나라 동포를 여전히 배제한다.

이것은 한민족 혈통주의가 허구일 뿐임을 보여 준다.

조선적 재일동포는 일제 식민지와 한반도 분단의 피해자들이다. 그들은 식민지 시기에 강제 또는 자의로 일본으로 이주한 뒤, 해방 후 분단된 한반도로 돌아가지 않고 일본에 남기로 선택한 사람들과, 그 후손들 중 한일수교 당시 대한민국 국적을 선택하지 않고 자신들의 조국 그러나 이미 사라진 조선을 선택한 사람들이다.

한민족 혈통주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들은 통일 한민족의 정신을 보존하고자 한 민족주의자들이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이들을 재외동포로 보지 않을 뿐더러 입국마저 금지했다.

이것은 일본에서 난민으로 인정받은 이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기도 하다.

재외동포법은 재외동포에게 법적 지위를 제공하기보다는 재외동포의 출입국을 통제하는 일종의 이민법이다.

한국인의 이주 역사는 인류의 이주 역사와 같이한다고 볼 수 있을 만큼 오래됐다.

어떤 사람들은 한민족의 기원을 알타이와 그 동쪽의 사얀산맥에 살면서 순록을 키우고 숭배한 유목민족에서 찾으려 한다. 이 유목민족이 만주 쪽으로 이동한 뒤 한반도에 정착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한반도의 ‘진정한’ 원주민을 찾기는 매우 어렵다.

그러나 근대 국가가 건설되는 과정에서 국가는 민족의 구성원을 규정하고 이질적인 구성원을 차별하고 배제했다. 또한 국경 내 구성원뿐 아니라 국경 밖 외국인들의 출입국을 통제했다.

세계화와 한국 경제의 성장 때문에 해외로 이주한 재외동포들이 다시 입국하거나 이중적인 경제적·사회적 연결망을 형성하는 추세가 증가하자, 한국 정부는 재외동포의 입국과 이중적인 경제·사회 활동을 파악하고 체계화해 통제할 필요성을 느꼈다.

김영삼 정부 시절에 재외동포 정책에 변화가 생겼다. 김영삼 정부는 ‘교포의 세계시민화’와 ‘교포의 본국과 거주국 간의 교류 증진 교량적 역할’ 지원을 목표로 재외동포 정책을 정립했다.

김영삼 정부는 세계화와 세계 경쟁 속에서 한국 경제의 경쟁력을 높이고 싶어했다.

김영삼 정부는 세계시장 관련 정보 수집이나 해외 유수 인력 영입 그리고 한국과 타국 간의 교두보 구축을 위해 재외동포를 수용·활용하고자 했다.

김영삼 정부는 세계화추진위원회를 통해 이중국적 허용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그러나 납세의무와 병역 의무 등을 도덕적 양심의 문제로 보는 우파의 이데올로기 공세와 여론 때문에 이중국적 허용 계획은 무산됐다.

당시 우파의 이데올로기 공세는 오늘날 이주노동자를 차별하고 탄압하는 우파의 주장과 다를 바 없다. 둘 모두 재외동포와 이주노동자를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한다.

최근 ‘병역 기피를 위한 국적 포기’ 논란에서도 언론과 우파는 이중국적자들이 모두 병역을 기피할 것이라고 간주하고 있다. 또, 이중국적자는 모두 탈세할 것이라고 간주한다.

재외동포법은 제3세계 출신자와 제1세계 출신자, 남성과 여성을 차별한다.

‘병역 기피 이중국적자’라는 딱지에는 이중국적자가 여성일 수 있다는 것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병역 의무가 없는 여성도 병역 기피자로 간주돼 남성 이중국적자와 함께 불이익을 당한다.

김대중 정부는 세계화 시대에 홍콩과 동남아시아 화교의 자본과 인력이 중국 경제 성장의 밑거름이 됐다는 사실을 주목했다.
그리하여 한국에서 국제 전문직에 종사하거나 한국에 투자할 재미동포와 재일동포를 물색했다.

김대중 정부는 이들의 왕래와 경제 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이중국적 지위는 아니지만 영주권 수준에 준하는 재외동포 법적 지위를 부여했다.

이것이 재외동포법의 본질이다.

이렇듯 재외동포법은 이주노동자와 한국민 심지어 한인동포를 구별하고 등급화한다. 이를 통해 이민 통제 강화, 민족국가 특히 한국 내 병역 의무제를 다시 강화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