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한국의 방위비분담금 협상이 해를 넘겨 진행된 가운데,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7차 회의가 2월 중순 서울에서 열린다. 이번에 협상이 타결될 공산이 크다는 얘기가 나온다.

트럼프 정부는 한국에 방위비분담금 대폭 인상을 집요하게 요구하고 있다. 무려 50억 달러(한화 약 6조 원)를 매년 미군 지원금으로 내놓으라는 것이다. 최근 협상 과정에서 미국의 요구액이 낮아졌다는 말이 나오지만, ‘대폭 인상’ 요구 자체는 변함없다.

1월 16일 미국 국무장관 마이크 폼페이오와 국방장관 마크 에스퍼가 공동 기고한 글이 〈월스트리트 저널〉에 실렸다. 이 글에서 그들은 한국이 방위비분담금을 더 내야 한다고 노골적으로 요구했다.

1월 29일 주한미군사령부는 협상이 타결되지 않으면 4월 1일부터 주한미군에서 일하는 한국인 노동자들에게 무급휴직을 시행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노동자 9000명이 4월부터 임금을 받지 못할 수 있는 것이다. 같은 날 주한미군 사령관 로버트 에이브럼스는 한국 재향군인회장을 만나 협상 타결 지연 때문에 “전투준비태세 유지가 우려된다” 하고 말했다.

이처럼 한국의 4월 총선을 앞두고 트럼프 정부는 여러 방법으로 문재인 정부에 ‘대폭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방위비분담금은 그 자체로 문제다. 미국은 자국의 이해관계와 자본주의 체제 수호를 위해 전 세계 곳곳에 미군을 주둔시키고 있다. 특히, 주한미군은 중국을 견제하는 최전선 군대이자, 일본을 비롯한 서태평양에서 미국의 이해관계를 지키는 데서 중요하다.

전前 국방장관 제임스 매티스가 주한미군 유지에 회의적인 트럼프에게 “해외 주둔 미군은 [미국의] 안보를 지키는 ‘이불’ 같은 역할을 한다” 하고 말했다는 점은 시사적이다. 밥 우드워드가 쓴 《공포》에 따르면 매티스는 “우리는 [주한미군] 2만 8500명의 병력을 전진 배치함으로써 [미국] 본토를 방어할 능력을 확보하고”, “자본주의 체제를 가진” 한국을 “강력한 보루로 확보할 수 있다”고 트럼프에게 말했다.

그래서 주한미군의 존재 자체가 한반도와 그 주변 정세를 불안케 하는 한 요인이다.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제국주의 경쟁에 한반도를 휘말리게 하기 때문이다. 이런 주한미군을 위해 한국민이 막대한 비용을 부담해야 할 이유가 없다.

돈과 군대

한국이 방위비분담금을 내는 것은 미국 패권의 상대적 약화와 관련 있다. 냉전이 끝날 무렵 미국 경제가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냉전 초기에 견줘 많이 줄어들었다. 즉, 그만큼 경쟁국들이 미국 경제와의 간극을 줄였다. 미국의 군사력은 여전히 다른 경쟁국들을 압도했지만, 미국 지배자들은 패권 유지에 드는 비용을 점차 부담스러워했다.

냉전 시절에 미국은 자국이 주도하는 동맹 체제 안으로 주요 자본주의 국가들을 포섭하면서, 그 국가들에게 경제·안보 면에서 일정한 이익을 보장해 줬다. 물론 이 국제 질서의 최대 수혜자는 미국이었지만 말이다.

그러나 냉전 종식 이후 미국은 자국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공세(예컨대, 신자유주의의 확산, 나토의 동유럽 진출, 2003년 이라크 전쟁 등)를 펼치는 동시에 동맹국들에게 부담을 나누자고 적극 요구하기 시작했다. 예컨대, 1991년 이라크를 공격하면서(걸프전) 미국은 동맹국들에게 전쟁 비용 500억 달러 중 360억 달러를 내라고 요구했다. “우리는 개입을 실행하고 남들은 그 비용을 치른다.”

미국은 한국에도 돈과 군대를 요구했다. 1989년 한국 정부가 처음으로 주한미군 경비로 4500만 달러를 지원했다. 1990~1991년 걸프전이 일어나자 한국은 군대를 파병하고 5억 달러를 전비 분담금으로 냈다.

1991년 미국과 한국은 방위비분담 특별협정(SMA)을 정식 체결했다. 그 후 방위비분담금은 지속적으로 인상됐다.

트럼프 정부는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워 이전 정부들보다 훨씬 강하게 동맹국들에게 ‘안보 분담’을 요구한다. 안보에 무임승차하지 말라는 거친 표현까지 동원하면서 말이다.

이런 변화는 단지 트럼프 개인의 성향만이 아니라 미국 제국주의의 딜레마가 전보다 더 깊어졌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세계 주요 지역(북미, 유럽, 동아시아, 중동)을 모두 통제해야 하는 처지에서, 오늘날 미국은 여러 곳에서 터져 나오는 도전에 대처해야 한다.

지난해 미국 국방부가 내놓은 《인도·태평양 전략 보고서》는 인도·태평양의 “평화와 번영”(미국 주도의 기존 질서)을 유지하는 데서 동맹국들이 더 많이 기여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리고 “군사적 우위를 지킴으로써 힘으로 평화를 유지하고, 공동 위협에 맞서는 부담을 공평하게 분담하기 위해 동맹과 파트너에 기대는 것”이 미국의 이해관계라고 밝힌다.

그래서 이번 방위비분담금 협상 과정에서 미국은 한반도 밖의 미군 비용도 한국에 요구한다. 미군 순환 배치, 역외 훈련 비용이 포함된 이른바 ‘준비태세’ 항목을 SMA에 신설해, 그 비용도 한국이 내라는 것이다.

최근 한국군 호르무즈해협 파병과 연관지어 보면, 트럼프 정부의 요구는 분명하다. 즉, 한국이 돈과 군대를 대고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뒷받침해 달라는 것이다. 그리고 미국은 이것이 한국 지배자들의 이해관계에도 부합한다고 설득하고 있다.

호르무즈해협으로 파병된 한국 청해부대 ⓒ출처 해군 작전사령부

“합리적이고 공평한 수준의 분담”

진보·좌파 다수는 옳게도 방위비분담금 인상에 반대한다. 미국 패권을 지원하는 금액을 늘리는 게 부당하고 한반도 평화에도 도움이 안 된다는 이유에서다.

일각에서는 방위비분담금 인상 요구가 “미국의 강요”임을 강조한다. 즉, 이 문제가 미국과 한국이 “주종 관계”임을 보여 주는 일이라는 것이다.

물론 트럼프 정부가 노골적으로 문재인 정부를 압박하고, 양국 정부 간에 인상 폭을 놓고 견해차가 불거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 지배자들은 미국이 주도하는 제국주의 질서 속에서 나름의 이해관계를 추구해 왔다. 즉, 한미동맹이 한국 자본주의에도 이익이라고 믿는다. 문재인 정부도 한국 지배계급의 한 정치 분파답게 마찬가지 생각을 한다. 2018년 문재인 정부가 발표한 《국가안보전략》은 “한미동맹은 한반도 및 역내 평화·번영의 핵심 축”임을 분명히 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액수는 협상 쟁점이지만 방위비분담금 자체는 동맹 강화를 위해 치를 만한 비용일 것이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는 이미 한 차례 대폭 인상(2019년, 8.2퍼센트)에 동의해 준 바 있고, 지금도 인상 자체에 반대하는 게 아니라 “합리적이고 공평한 수준의 분담”을 얘기한다.

지금 문재인 정부는 4월 총선을 앞두고 방위비분담금 문제가 너무 부각되는 것은 피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방위비분담금의 인상 폭을 낮추되 미국산 무기 구입 비용과 국방 예산을 늘리는 대안도 모색하고 있다. 정부는 전시작전권 전환을 비롯한 “책임국방”(노무현 정부는 ‘자주국방’이라고 불렀다)을 추진하기 위해 군비 증강을 추진하고 있다. 트럼프의 ‘안보 분담’과 문재인의 ‘책임국방’이 맞아 떨어지는 부분이다.

미국의 방위비분담금 인상 요구에 맞서 “초당적 대처”를 호소하는 게 부적절한 까닭이다. 문재인 정부가 친제국주의적 선택을 할 것임을 경고하고 그 선택에 반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