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13일 노동부는 ‘직무·능력 중심의 공정한 임금체계 확산 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이에 앞서 기재부는 올해 경제정책방향에서 “직무·능력중심 임금체계로 개편+임금 연공성 완화”를 특별 중점관리 과제 중 하나로 제시했다. 공공기관에 직무급제를 본격 확산하고 민간부문에도 임금체계 개편을 적극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직무급제 추진 상황을 공공기관 경영평가 항목에 포함시켰다. 경영평가 점수에 따라 기관장 평가, 성과급 삭감, 예산 불이익이 수반된다. 그래서 공공기관 경영평가는 정부 정책을 관철하는 수단으로 활용돼 왔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도 기업 복지 삭감, 임금피크제와 성과연봉제 도입을 이런 방식으로 강제했다.  

문재인은 당선 초기 ‘이전 정권의 임금체계 변경 일방 추진 방식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내놓았었다. 그러나 역시 그 약속도 뒤집고 추진 방식조차 박근혜를 똑같이 따라 하고 있다. 기재부는 개별 기관들을 불러 시행을 압박하고 있다.

오죽하면 문성현 경사노위 위원장조차 경사노위 논의 등 사회적 대화를 ‘패싱’한 정부의 일방 추진에 당혹감과 우려를 표했다. 물론, 그는 임금체계 개악 필요성에는 문재인과 한목소리다. 다만 일방 시행 시 만만찮은 반발이 일 수 있음을 우려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공격하는 연공급제는 박근혜 정부도 표적으로 삼았지만, 노동자들의 반발이 커 제대로 개악을 관철하지 못했다. 박근혜 퇴진 운동의 불씨가 됐던 노동자 투쟁이 바로 성과연봉제에 반대한 철도 파업이었다.

그럼에도 지금 문재인 정부가 임금체계 개악을 본격 추진하는 것은 한국 경제 상황이 매우 심각하기 때문이다. 경제 침체가 오래 지속돼 온데다 올해 경제 전망은 지난해보다 더 나쁘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의 수익성을 보장해 주려고 노동자들의 임금을 공격하고 나선 것이다.

임금 억제

직무급제 도입의 목적은 명백히 임금 억제에 있다.

정부는 “호봉제가 기업의 부담을 증가시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호봉제는 과거 한국 자본주의 성장 초기에 사용자들이 미래의 (평생 고용과 연공급제에 따른) 임금 인상을 미끼로 젊은 노동자들의 충성을 끌어내고 낮은 초임을 정당화하려고 도입했다. 기업주들은 청년 노동자들을 저임금에 부려 먹으며 이윤을 증대시켜 왔다. 

그런데 이제 노동자들의 연령이 높아지고 경제가 저성장 위기에 빠지자 과거에 기업주들에 유리했던 그 방식이 이제는 부담이 됐다. 더구나 1987년 투쟁으로 초임이 대폭 오르는 등 그동안 노동자들이 임금을 인상시켜 왔기 때문에, 근속에 따른 임금 상승폭이 더 커졌다.

문재인 정부는 이런 기업주들의 부담을 줄여 주려고 호봉제를 폐지·약화시키고 임금 인상을 억제할 다른 임금체계(직무급제)를 꺼내 든 것이다.

정부는 직무급제 임금 개편이 임금 손해를 낳지 않는다는 점을 노동자들에게 잘 설득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말은 노동자들을 잘 속여야 한다는 것이지, 실제 불이익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정부가 사례로 제시하는 직무급제는 직무 등급마다 임금 상한선을 정해 둬 상위 직무 등급으로 승급하지 못하면 어느 시점에선 임금 인상이 중단된다. 직무 등급의 승급은 자동이 아니라 시험이나 평가 절차를 거쳐야 한다.

2018년 새만금개발공사에 도입된 직무급제가 이렇게 설계됐다. 직무 등급 내 임금 상한선이 있고, 같은 직무 등급 내의 임금 인상은 성과 평가 비중을 가장 크게 반영해 개인별로 정하도록 했다.

2019년 직무급제가 도입된 한국석유관리원도 비슷하다. 이곳은 직무와 역할에 따라 등급을 나누어 임금을 차등 지급하고, 임금 인상률과 성과급 지급률에 개인별 차등을 두었다.

두 기관 모두 등급 내 임금 상한을 두어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이 계속 오르지 못하도록 설계된 것이다. 이는 기존 호봉제와 비교해 임금 상승이 대폭 제약되는 효과를 내게 된다.

또 성과 평가를 대폭 강화했다. 직무급제가 “이름만 바뀐 성과연봉제”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이간질

정부는 임금체계 개편에 대한 노동자들의 반발을 최소화하려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청년과 장년 노동자를 이간질하고 있다.

가령, 정부는 호봉제가 정규직에게만 이롭다며 직무급제야말로 비정규직에게도 이로운 ‘공정 임금’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추진한 직무급제(표준임금체계)는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이 평생 유지되는 것이다. 정부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무기계약직이나 자회사로 전환하면서 노동자들이 요구한 호봉제는 한사코 반대했다. 대신 전환된 노동자들의 업무(청소, 시설관리, 조리 등)에 적합한 “시장 가치”대로 임금을 지급하겠다며 직무급제를 도입하도록 했다. 평생 저임금을 고착화하는 것이 공정하다는 황당한 논리를 들이대면서 말이다.

또, 정부는 호봉제가 장년 노동자들만 위한다며 능력과 성과에 따라 임금을 주고 직급을 부여하는 직무급제가 청년 노동자들에게 이롭다고 말한다. 

그러나 직무·성과에 따른 임금체계가 청년 노동자들에게 이롭다는 주장은 사기이다. 박근혜 정부도 이런 이유를 대며 성과연봉제를 추진했지만, 전체 임금 인상을 억제하면서 노동자들 사이에 실적 경쟁을 강화하고 사측 관리자들의 권한을 강화시키며 노동자들을 줄 세우는 효과를 노린 것이었다. 노동자들이 노조로 단결해 성과 평가를 약화시키고 근속 승진을 도입하거나 단체협약으로 조건을 지키는 것이 훨씬 이롭다.

부분 개편 꼼수

정부는 노동자들의 반발을 의식해 부분에서 시작해 전면 확대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일정 기간 임금을 보전해 주거나, 부분적 임금체계 개편(호봉 수를 줄이기, 성과평가에 연계해 호봉 차등하기, 성과급 비중 늘리기 등 이른바 ‘연공성 완화 방안’)을 먼저 하라는 것이다.

이런 조처들이 당장 전면적인 개편보다는 피해가 적다고 여겨질 수도 있지만, 정부도 밝히고 있듯이 이는 직무급제 도입으로 가는 과도기적 조처일 뿐이다. 정부는 임금 손실 보전은 ‘일시적 조처’여야 한다고 특별히 당부하기도 했다.

노동운동은 이런 꼼수를 경계하면서 정부의 직무급제 도입 시도에 단호하게 반대하는 것이 중요하다. 댐에 구멍이 뚫리면 무너질 위험이 커진다.

기존 임금체계를 지키는 데에 급급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노동운동 내에 적지 않다. 하지만 일단 개악을 저지해야 그 힘으로 개선도 이룰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그 점에서 정부와의 임금체계 개편 논의를 통해 임금 격차를 줄이고 노조의 임금 교섭권을 보장받는 기회로 삼자는 안이한 접근도 경계해야 한다.

특히 정부가 사실상 일방 추진을 하고 나선 만큼, 공공부문 노조들은 시급하게 직무급제 도입 저지 투쟁을 시작해야 한다.

지금 정부는 경사노위 공공기관위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직무급제 개편 논의 등에 따라 도입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태도가 아니다. (공공운수노조와 보건의료노는 민주노총의 경사노위 불참 방침에 따라 이 위원회에 직접 참여하고 있지는 않지만, 양대노총 공대위 공조를 통해 이 논의에 깊게 관여하고 있다.) 이 논의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기재부와 노동부가 버젓이 직무급제 개편 추진을 선언하고 나선 것은 정부의 추진 의지를 보여 준다.

문재인 정부가 노동시간 단축과 노동권 보장 약속 등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친 데서 보듯, 정부와의 대화를 통해 임금 개악을 막을 수 없다. 이번 임금 개악이 공공부문과 민간부문, 정규직과 비정규직 모두를 겨냥하고 있는 만큼, 민주노총 차원의 임금 개악 저지 투쟁이 조직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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