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4일 한국갤럽 총선 여론 조사에서 “정권 심판론”이 “야당 심판론”보다 더 많은 것으로 나왔다. 문재인 정부 들어 처음이다.

여당이 각별히 공들인 ‘중도층’에서도 정권 심판론이 절반이다. 여론조사에서 처음으로 야당 심판론(39퍼센트)을 앞섰다. 무당층에서도 정권 심판론이 더 많다.

다른 조사들에서도 문재인 국정수행 지지율과 민주당 지지율은 하락 추세다. 우파가 재통합한 미래통합당과의 격차도 좁혀지고 있다.

여당 지지율이 떨어져도 자유한국당과의 격차는 크게 좁혀지지 않던 때와 다른 것이다.

여당은 최근에 사람들의 반감을 살 만한 짓을 계속 해 왔다. 조국 임명 국면에서 드러난 위선과 부패의 옹호, 청와대 실세들에 대한 수사를 막아 보려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추한 꼼수, 민주당 비판 칼럼을 썼다고 해서 임미리 교수를 선거법 위반으로 고발하는 둔감함과 오만 등.(심지어 민주당은 여론의 역풍 때문에 임 교수 고발을 철회하면서도 사과 대신 안철수 지지자라서 선거법 위반인 건 맞다는 식으로 나왔다.)

그러나 한 주 만에 여당은 많은 쟁점에서 저자세로 돌아섰다. 위기감이 커진 것이다. 여론조사뿐 아니라 선거운동 과정에서도 바뀐 여론을 체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2월 18일 국회 연설에서 이인영 원내대표가 공식 사과했다. “누구를 탓하기 전에 우리부터 반성하겠다. 검찰 개혁, 집값 안정, 그리고 최근 임미리 교수를 둘러싼 논란에 이르기까지 우리 민주당을 향했던 국민의 비판적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겠다. … 송구스럽다는 말씀을 드리며 더욱 낮고 겸손한 자세로 민생에 집중[하겠다.]”

이보다 하루 앞서 전 국무총리이자 민주당 공동선대위원장인 이낙연이 임 교수 고발은 겸손을 잃은 행태라며 사과했다. 그는 서울 종로구에서 자유한국당 대표 황교안을 상대로 대선 전초전이자 이번 총선을 상징하는 선거를 치르고 있다.

그러나 조국 수호를 비판했던 민주당 금태섭 의원 선거구에 당내 경선 경쟁자로 강경 조국 수호파인 김남국 변호사가 출마했다.

사실 지지율 하락에 대한 여당의 위기감이 갑자기 생긴 것은 아니다. 그동안 여당은 위기일수록 핵심 지지 기반에 충실해야 한다는 자세였다. 그래서 실은 임 교수 고발 자체가 위기감의 발로였다. 그러나 이제는 선거를 앞두고 핵심 지지층만 볼 수가 없는 상황인 것이다.

전통적 지지층과 정계·재계·법조계·학계 등의 상층부에 진입하는 데 성공한 이른바 86세대 집단이 민주당의 핵심 기반이다. 그들의 조국 방어 논리가 청년층 서민들이 전혀 공감할 수 없는 기득권 옹호의 성격을 띠었던 이유다.

전염병 관리 대책이 아니라 기업주 지원 대책을 논의했다 2월 13일 코로나19 대응 경제계 간담회 ⓒ출처 청와대

기업 지원 확대 약속

이러한 정치 불안정이 단지 여야 대결의 격렬함이나 부패에 대한 서민 청년들의 불만 때문만은 아니다. 문재인 정부의 정치 위기에는 더 깊고 큰 요인들이 작용하고 있다.

경제 상황도 나쁘고, 임기 1년 즈음에 지지율 재상승의 추진력이 돼 준 남북 화해 조짐도 새로운 진척 없이 지지부진하다. 여당은 집권 후 줄곧 촛불 운동에 참가한 보통 사람들의 지지를 얻으려고 했던 진보 개혁 약속들을 거의 다 나 몰라라 하거나 저버렸다.

여기에 최근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정부 대응에 대한 불신이 커졌을 뿐 아니라 감염증 확산이 경제에 위축 효과도 내고 있다. 중국에서 부품 공급이 원활하지 않는 등 타격도 있지만, 민간 서비스 부분에서 소비가 위축된 것의 영향도 있다.

이런 요인들 때문에 문재인 정부의 정책에 대한 찬반 문제뿐 아니라, 또 진영 논리뿐 아니라, 위기 관리 능력까지도 도마에 오른 것이다. 2017년 대선과 임기 초반에 사회 상층부가 문재인에게 지지를 제공했던 것은 문재인이 사회 상층부의 부패와 특권에 분노한 대중을 달래어 정치 시스템을 안정시키고, 노동개악 등 경제 위기에 잘 대처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문재인은 이런 기대를 충족시키려고 더디지만 노력해 왔다. 항일 민족주의, 검찰 개혁, “노동 존중”과 “사회적 대화”, 진보계 출신자 일부 등용 등 포퓰리즘적 책략을 부림으로써 노동운동 활동가들을 달래려 애써 왔다.

그런가 하면 문재인은 기업들을 위한 “특단의 대책”을 연일 부르짖고 있다. 코로나19로 경제가 위축되면 안 된다며, 과거에 어땠는지에 구애받지 말고, 경기 진작과 기업 지원을 위한 특단의 대책을 내놓으라고 관료들을 채근하고 있다.(전염병 관리를 위한 특단의 대책이 아니라!)

2월 13일에는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삼성, SK, LG, 현대차 등 재계 총수들과 만나 경제 활성화를 논의했다. 이재용, 최태원, 구광모 등이 참석한 이 자리에서 문재인은 재계가 기존에 약속한 대규모 투자 약속을 이행해 주면 정부가 혁신 성장과 경제 활력을 위해 기업 지원을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경제부총리 홍남기는 17일 혁신 성장 분야에 45조 원이 넘는 정책 금융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도 문재인처럼 전국의 기업체를 돌며 기업 지원을 약속하고 있다.

결국 기업인들은 코로나19 사태와 여당의 지지율 위기를 현 정부를 더욱 친기업적으로(오른쪽으로) 유도하는 기회로 삼고 있다. 문재인 정부도 이에 적극 호응하고 말이다. 국방부는 최근 지난해보다 더 늘어난 (주로 미군과 연계된) 해외 연합 군사 훈련 계획을 발표했다.

3년간 찌질한 언행이나 남발하면서 분열해 있던 우파가 (갈등 요인을 해소하지도 않은 채로) 서둘러 재통합한 것은 이런 기회를 살리기 위해서다.

물론 문재인은 사회적 대화나 지소미아 연장 종료 등 진보진영 상층 지도자들을 달랠 포퓰리즘 언사도 계속 동시에 취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동안 문재인 정부가 그럴듯한 말로 기대만 키우다가 뒤통수 친 경험에서 배워야 한다. 즉, 문재인의 말과 행동을 예리하게 구분해야 한다.

노동운동이 우파의 부활을 막겠다고 문재인 정부를 감싸거나 옹호해서는 (총선에서) 우파의 부활도, 노동개악도, 각종 친기업 개악도 막을 수 없다. 민주당 정부의 개혁 배신, 위선, 부패에 불만과 염증을 내는 대중을 더 적극 대변해 지배계급이 세력균형을 오른쪽으로 되돌리지 못하게 해야 한다. 단기적 손실을 겁내다가 장기적 이득을 놓치는 기회주의적 오류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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