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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시장 논리가 코로나19 국내 확산 사태를 악화시켰다

서울 중구보건소 선별진료소를 찾은 시민들을 의료진들이 체온 측정과 함께 증상을 확인하고 있다 ⓒ조승진

대구·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코로나19 확진자가 계속 늘고 있다. 이 추세대로라면 한국은 중국 후베이성을 제외하고 확진자와 사망자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지역으로 기록될 듯하다. 베이징(400명)과 상하이(336명) 등 대도시는 물론이고 후베이성 다음으로 확진자가 많은 광둥성(1347명)과 저장성(1205명)보다도 확진자가 많아질 전망이다. 사망자도 후베이성(2615명)과 허난성(19명) 다음으로 많다.

중국의 확산세가 다소 주춤거리는 것은 시진핑 정부의 매우 강경한 도시 봉쇄·격리 조처 때문으로 보인다. 한 보도를 보면, 1월 중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25퍼센트나 줄었다. 산업은 물론이고 일상생활 자체가 마비된 곳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런 조처를 지지할 순 없다. 시진핑 정부가 사실상 가둔 우한 시 주민들은 극도의 공포 속에서 두 달 가까이 지내고 있다.

한국에서 확진자가 크게 늘어난 데에는 특정 지역에서 열린 신천지 교회의 행사가 큰 영향을 준 듯하다. 이 행사는 전국에서 매일 벌어지는 수많은 단체 행사 중 하나였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은 전국 어디에서나 벌어질 수 있는 일이었다고 봐야 한다.

이 교회 행사를 다녀온 사람들에게 코로나19가 처음 확산되기 시작한 시점은 1월 말~2월 초였다. 당시에는 우한에 다녀온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확진자가 거의 없었다. 정부 자신도 이 점을 강조했다. 1월 30일부터 2~3차 감염자가 생겼지만 정부는 지역사회 감염 가능성은 낮다고 발표했다. ‘선제적 대응’을 말했지만 여전히 사태를 추수하는 태도였다. 중국 상황을 보며 코로나19 전파가 경제에 끼칠 영향을 걱정하느라 그랬을 것이다. 중국산 자동차 부품 부족으로 국내 생산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었다.

게다가 2월 중순에 접어들면서는 정부 자신이 경계를 완화했다. 경제부총리가 나서서 경제 활동을 활발히 하라고 조언했다. 문재인 자신은 재벌 총수들을 만나 투자를 독려하며 상황이 악화하지 않을 것이라는 인상을 주려 애썼다. 중국에서 코로나19의 무증상 감염·전파 사례가 적잖이 보고되고 있었지만 이전 경험들만을 토대로 그럴 가능성은 ‘낮다’고 발표했다.

따라서 대구에서 시작된 코로나19 전파는 가톨릭 교회, 조계종 사찰 등 밀접 접촉이 많은 종교 시설은 물론이고 출퇴근 지하철이나 극장 등 어디서나 시작될 수 있었다.

감염 가능성이 큰 사람들을 격리시키는 조처는 필요하다. 그러나 더 큰 책임이 있는 문재인 정부가 이제 와서 신천지 교회 탓을 하는 것은 세월호 참사 당시 박근혜의 구원파 속죄양 삼기를 연상케 한다.

코로나19 폐렴 환자를 치료한 중국 의사들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초기에는 증상이 경미해도 일단 폐렴이 시작되면 급속히 악화하는 특징이 있다. 손쓸 시간도 없이 죽음에 이른다는 것이다.

후베이성 사망자들은 대부분 초기에 아무런 조처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었던 듯하다. 그런데 환자 수가 급격히 늘자 기존의 의료 인력·시설이 부족해졌고, 감염 초기인 경증 환자들이 뒷순위로 밀리다가 중증으로 진행되는 악순환이 반복됐을 것이다. 특히, 사망자 대부분을 차지한 후베이성 주민들의 경우, 병실이 없어 집에 방치된 채 죽어간 사람이 부지기수라고 한다. 시진핑 정부가 국제적 망신을 무릅쓰고 체육관과 전시장에 야전병원을 설치한 이유다.

자가 격리

중국 정부는 한국과 일본에서 확진자가 늘어나는 조짐이 보이자 몇 가지 정보를 전했는데, 코로나19 감염증의 특징 때문에 ‘자가 격리’는 하지 말라는 말도 덧붙였다.

별다른 지원도 없이 확진자와 감염의심자들을 집에 방치해서는 안 된다. 누군가 그의 24시간을 돌봐줘야 하는 데다 동거인이 있다면 방과 화장실도 각각 두 개 이상 있어야 한다. 숙련된 의료진도 환자와 접촉을 피하는 기법을 거듭 훈련하지 않으면 실수하기 쉽다는 점을 고려하면, 알아서 격리하라는 조처는 사실상 확률 낮은 도박에 가깝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불안해했지만 오로지 이들을 격리할 음압병실 등이 없다는 비극적 사실만이 자가 격리를 용인하게 만든 이유였다.

진정한 문제는 대구 지역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음압병실이 부족해 집에서 대기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의료 인력이 코로나 방역에 집중되면서 다른 의료 기능에 차질이 생길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응급실이 줄줄이 폐쇄되고 응급의료 인력이 격리되면서 긴장감도 높아지고 있다. 환자가 급증하면서 우한 시에서 벌어진 일이 대구에서도 재연되고 있는 셈이다.

이 터무니없는 상황의 한쪽 끝에는 청도대남병원이, 다른 한쪽 끝에는 매일 접촉자 수백 명을 찾아내고 하루 수천 건씩 유전자 검사를 해내는 엄청난 기술력이 있다.

청도대남병원 5층은 정신병동이다. 이 병동에 입원한 환자 103명은 전원 확진 판정을 받았다. 2월 26일 현재 전체 사망자 12명 중 7명이 이 병원에서 나왔다. 자세한 구조를 알 수 없지만 이런 시설들의 경우 수십 명이 한 병실을 사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사실상 치료보다는 수용(보호) 목적이 큰 병원인 듯하다.

놀랍게도 이들은 바로 그 병동에 아직도 함께 수용돼 있다. 이른바 ‘코호트(집단) 격리’다. 첫 사망자를 포함해 수십 년 동안 외부와 접촉이 차단된 채 입원해 있는 환자들은 면역력이 매우 낮은 데다,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경우도 많아, 가장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들을 집중치료 시설로 옮기지 않고 통째로 가둬 둔 이유는 뻔하다. 제대로 항의하지도 못하고, 대신 항의해 줄 사람도 없고, 돈이나 권력을 가진 지인도 없다는 게 이들을 이등시민 취급하는 이유일 것이다.

하늘의 별 따기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 마스크 매진 안내판이 걸려있다 ⓒ이미진

집단 격리

한편, 현재 감염은 몇몇 거점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지만 중간 고리를 찾지는 못하고 있다. 예전 같으면 이 정도로 감염이 퍼지면 감염 경로를 파악하려는 시도를 포기하고, 방역망 바깥에서 감염이 확산되고 있다고 판단했을 상황이다. 즉, 지역사회 감염 상황임을 선언하고 그에 걸맞은 조처들이 취해져야 한다. 사람들의 접촉이 많을 수밖에 없는 대중교통 이용을 최소화해야 하고 그러려면 부득이 공장과 사무실 등의 운영을 중단해야 한다. 시진핑이 춘절 휴가를 1주 이상 연장한 이유다. 문재인은 대구와 경북지역에서라도 이렇게 할 수 있을까?

문재인 정부는 그러기보다는 여전히 감염자들의 전파 경로를 찾아내는 데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유전체 분석 기술과 GPS(위성위치추적장치) 등 감염자의 이동 경로를 알아내는 기술이 발전한 덕분에 아직까지는 아슬아슬하게 꼬리를 붙잡고 있다. 이를 근거로 지역사회 감염 상황에 필요한 조처를 최소화하고 있다.

예컨대, 개인 방역에 필수적인 마스크가 주기적으로 품귀 현상을 보이자 문재인 정부는 이제야 공급과 배포를 통제하기 시작했다. 하루 1100만 개를 생산할 능력이 있는데, 확진자들과 의료진, 취약계층에 우선 보급하기 위해서다.

이런 조처는 진작에 시행했어야 했다. 국가는 그럴 능력이 있다. 그런데 왜 이제야, 그것도 50퍼센트만 통제하겠다는 것일까? 학교도 쉬고, 학원도 쉬고, 어린이집도 쉬는데, 아이들은 누가 돌봐야 할까? 직장도 유급으로 휴가를 줘야 하지 않을까?

문재인 정부가 말과 달리 ‘선제적 대응’에 거듭 실패하는 이유는 이런 조처들이 시장 논리에 위배된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만약 이런 조처들이 지금 가능하다면, 왜 공공의료를 강화하지 않는가? 왜 필수재들을 계속 시장에 맡겨 둬야 하는가? 총선을 앞두고 문재인 정부가 가장 피하고 싶은 질문들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