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지배자들은 오랫동안 확고한 한미동맹이 한국 자본주의에 정치·경제·군사적 이득이라고 여겨 왔다. 한국 자본주의의 성장이 보여 주듯, 실제로 한미동맹은 한국 자본주의와 이 체제에서 혜택을 얻는 지배계급에게 확실히 이득이었다.

그런데 냉전 해체 후 30여 년 동안 세계 제국주의 질서는 변해 왔다. 미국은 소련과의 대결에서 승리했지만, 냉전이 해체됐을 때 미국 경제의 세계적 지위는 상대적으로 쇠퇴한 상태였다. 물론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패권 국가이고, 특히 막강한 군사력을 자랑했다. 그러나 냉전 동안 서방 진영의 독일(서독), 일본 경제가 미국 경제를 빠르게 뒤쫓는 등 경제적 경쟁이 다극화했다. 당시 미국 지배자들은 이런 경제적 다극화가 훗날에 지정학적 다극화로 이어질까 봐 우려했다. 

동아시아에서 두드러진 특징은 중국의 부상이다. 1990년대 이래 중국은 매년 10퍼센트 성장률로 급속히 성장했다. 중국의 성장은 동아시아 국가들 사이의 경제적·정치적 관계 변화를 동반했다. 2000년대 아시아 국가들의 대중국 수출 의존도가 매우 커졌고, 중국은 아시아 국가들의 외화 획득과 시장으로서 미국의 구실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한국 전체 수출에서도 대미 수출 비중은 1970년대 50퍼센트에서 2000년대 20퍼센트대로 하락했다. 대신 대중국 수출 비중이 늘어났다.

한편, 냉전을 거치며 한국 자본주의도 크게 성장했다. 한국전쟁이 끝난 1953년에 한국은 1인당 국민소득이 67달러로 세계에서 제일 가난한 나라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한국은 1990년대 들어 1인당 국민소득이 1만 달러를 넘어섰고, 1995년에 이른바 ‘선진국 클럽’이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도 가입했다.

변화하는 세계 질서와 한국 자본주의의 변모를 배경으로, 한국의 상층 중간계급과 지배계급 일부에서 한국이 미국과 맺어 온 전통적 동맹 관계에 대한 문제제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한국의 성장한 “위상”에 맞게 한미동맹이 바뀌어야 하고(이른바 “수평적 한미관계”), 새로운 국제 질서에 맞춰 외교 관계도 다각화해야 한다(이른바 “균형 외교”)는 것이다. 그리고 남북 관계에서도 남한 국가가 주도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은 일부 엘리트들의 이런 문제의식을 나타낸 것이었다. 문재인 정부도 두 민주당 정부의 정책을 계승하고 있다.

2002년 말 중학생 신효순·심미선의 미군 장갑차 압사 사건에 항의하는 운동 물결 속에서 치러진 대선에서 노무현은 “미국에 할 말은 하겠다” 하고 공언했다. 

냉전적 보수 세력과 언론들은 김대중·노무현의 외교·안보 정책이 “반미”이고 “친북”이라고 공격했다.

그러나 민주당 정부가 표방해 온 “수평적 한미관계”는 “미·일 등 전통적 우방과의 협력 강화”(노무현 후보 공약)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지, 그 자체의 변화를 뜻하는 게 아니었다. 중국과의 관계도 “한미동맹을 중시하되 한중협력을 균형적으로 사고”해야 한다고 그 비중을 매겼다.

무엇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입장은 동아시아에서 제국주의적 긴장이 점증하고 미국이 대중국 견제 전략을 발전시키는 상황에서 모순에 봉착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2000년대에 미국은 중국의 부상을 신경쓰면서도, 중국을 대놓고 “적”이라고 규정하지는 않았다. 여전히 미국과 중국 경제 사이의 격차가 컸고, 미국·중국의 경제적 상호 침투가 주는 이득을 기대할 만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오늘날 트럼프 정부가 하듯이) 중국을 직접 겨냥하기보다는 “불량 국가” 위협을 명분으로 동맹을 강화하고 군사력을 배치해 중국을 견제하는 방식을 주로 취했다.(동아시아에서는 북한이 그 핑계거리였다.)

그러나 중국의 경제력(과 군사력)이 더한층 성장하고, 2008년 경제 위기로 미국 경제의 취약성은 더 드러나는 상황에서 미국 지배자들은 더 노골적으로 변했다. 미국은 중국을 “적”이라 규정하고, 중국위협론을 내세워 일본·한국 등 동맹국들을 미국의 중국 견제 전략에 끌어들이려 애써 왔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 정부는 미국의 제국주의적 이해관계에 도전하지 않고, 한미동맹을 훼손시키지 않는 선에서 타협을 거듭하면서, 한계와 모순을 드러냈다.

대표적으로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한국은 미국 미사일방어체계(MD) 참여를 공식 선언하지는 않았지만, 결국 조금씩 MD 협력 수준을 높여 왔다. 이런 조처들은 모두 “MD 편입의 하드웨어를 제공한 측면이 있다.”(평화네트워크 정욱식 대표)

노무현 정부는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라며 이라크에 파병했고, 자주 국방을 명분으로 주한미군의 평택기지 확장에 동의하고 전략적 유연성도 합의해 줬다. MD의 전초기지가 될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시작한 것도 바로 노무현 정부 때였다. 노무현 정부는 미국과의 경제적 관계를 강화할 한미FTA도 추진했다.

당시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 아시아 선임 보좌관이었던 마이클 그린이 “한미동맹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기여는 전두환·노태우 이상이다” 하고 평가한 데는 그럴 만한 까닭이 있었던 것이다.

한국 지배자들의 처지에서 미국과의 관계는 통상 규모로만 따질 수는 없는 중요성이 있다. 아직은 미국 경제가 세계 최대 경제이고, 달러는 여전히 기축 통화이며, 군사력은 압도적이다. 민주당 정부도 이 점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노무현 정부에게 2003년 미국의 바그다드 점령은 미국이 여전히 제1의 패권 국가임을, 따라서 한미동맹을 강화하는 것이 한국 자본주의에 확실히 이득임을 각인시켰을 것이다.  

악수하는 노무현과 전 미국 대통령 조지 부시 당시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 아시아 선임 보좌관이었던 마이클 그린은 “한미동맹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기여는 전두환·노태우 이상이다” 하고 평가했다 ⓒ출처 백악관

한편, 역대 민주당 정부가 추진했고, 문재인 정부도 계승한 ‘자주국방’ 정책은 세계 10위권 경제의 위상에 걸맞는 군사력을 갖추고자 하는 지배자들의 열망을 반영한 것인 동시에 미국의 필요와도 딱 맞아떨어지는 것이었다.

미국은 주한미군이 세계의 분쟁 지역에 신속하게 개입할 수 있게끔 기동성을 높이고자 했다(전략적 유연성). 이를 위해 적어도 한반도 ‘안보’는 남한이 스스로 책임져 주기를 바랐다. 2003년에 청와대를 방문한 미국 국방장관 럼스펠드는 이렇게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10년 내에 자주국방을 실현하겠다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이 적합한 목표라는 데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실제로 김대중, 노무현 정부 10년간 한국의 국방비는 곱절로 증가했다. 특히 노무현 정부 시절 국방예산은 해마다 8퍼센트가 넘게 늘어, 1980년대 이후 최고의 국방비 증가를 기록했다. ‘자주’ 국방이라더니 사들인 무기는 대부분 미국산이었다. 

1990년대 이래 동아시아와 한반도는 제국주의 국가 간 군비 경쟁이 가장 치열하게 벌어지는 곳인데, 이곳에서 민주당 정부는 군비 경쟁의 한 주체로서 이 지역의 군사적 긴장 증대에 일조한 것이다. 

남북관계

민주당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에 의욕을 보였지만, 이조차 한미동맹의 틀 속에서 그렇게 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정경분리 관점에 따라 한반도에서 정치·군사적 문제 해결과 남북 경제협력 문제를 분리한다고 했다. 그래서 정치·군사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도 경제협력을 꾸준히 추진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현실에서 ‘경제’는 ‘정치’에 종속됐다. 미국의 대북 압박이 있을 때마다 남북교류는 흔들렸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이런 미국의 대북 압박을 진지하게 반대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미국의 대중·대북 정책에 협력하면서 한반도에서 긴장을 해소한다는 것은 완전한 모순이었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한미동맹 전력 증강이나 MD 추진을 대북 적대 정책으로 여길 수밖에 없었다.

바로 이런 점들 때문에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등 남북 경제 협력이 가장 활발할 때조차 서해 교전 등 군사적 긴장이 사라지지 않았다.

게다가 애초에 민주당 정부의 대북 정책(‘햇볕정책’, ‘포용정책’ 등으로 불린다)은 남북 평화와 화해에 결정적으로 기여하지 못했다. 사실 민주당 정부의 대북 정책은 북한의 급격한 붕괴가 아니라 연착륙이 남한 경제의 부담을 줄일 수 있기에 북한 정권과 교류·협력을 해야 한다는 인식에 바탕을 뒀다.

그래서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등 남북 경제 협력이 그 핵심 내용이었지, 실질적으로 군사적 긴장을 완화할 군축 같은 조처들은 관심 밖이었다. 오히려 남북 관계를 남한 주도로 이끌고자 하는 민주당 정부의 구상은 강력한 군사력을 기본 전제로 했다.

김대중은 “햇볕 정책은 공산당에 대한 유화책이나 패배주의적 정책이 아니”라며 “확고한 안보 태세가 햇볕론의 전제”라고 주장했다. 그 결과 남북 정상회담과 6.15 선언의 해인 2000년에조차 남한 군사예산은 전년도에 견줘 21퍼센트나 증가했다. 노무현 정부도 자주국방의 목표를 “일차적으로 북한에 대한 억지력을 완비하는 것”이라고 제시했다.

제 몫 챙기기

민주당의 외교·안보 정책은 냉전 종식 이후 갈수록 불안정해지는 동아시아에서 살아남아, 제 몫을 챙기려는 일부 한국 지배자들의 고민을 보여 준다. “자주”, “평화”, “균형”을 내세우지만, 그것의 실체는 미국과 동맹을 긴밀하게 유지하면서도 중국의 고도 성장으로부터 이익을 얻는 ‘균형’을 누리고자 하는 것이었다. 또한 남한 주도로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고, 국력을 강화해 동아시아 지역에서 ‘제 몫’을 확보하자는 것이다.

이처럼 민주당 정부의 주장은 달라진 주변 질서를 반영하고 있지만, 제국주의적 갈등의 심화 속에서 동요와 타협을 거듭하며 결국 실천에서는 한미동맹 강화로 귀결돼 왔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계승하는 문재인 정부는 집권 직후 순식간에 사드 배치, 인도·태평양 전략 지지 등 미국의 핵심 이해관계를 지지했다. 한미군사훈련 등 대북 적대 정책도 지속해 왔다. 호르무즈해협 파병으로 미국의 전쟁 노력을 지원했다.

민주당 정부의 역사는 반전 평화 운동이 왜 민주당 정부로부터 독립적이어야 하는지를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