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아랍의 봄’ 혁명 당시 대중 항쟁에 밀려 퇴진했던 이집트 독재자 호스니 무바라크가 2월 25일에 사망했다. 그의 나이 91세였다. 무바라크는 비무장 시위대의 살해를 지시한 혐의로 2012년에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지만, 이후 쿠데타로 집권한 엘시시 독재 정부 하에서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났다.

무바라크의 퇴진과 죽음은 ‘아랍의 봄’이 처한 혁명과 반혁명의 현실을 보여 준다. 다음은 이집트 혁명적사회주의자단체(RS)가 2월 25일에 발표한 성명이다.


2011년 혁명 당시 한 시위자가 무바라크의 대형 초상화를 찢고 있다 ⓒ출처 Alquds Alarab

2011년 1월 ‘아랍의 봄’ 혁명으로 무바라크가 권좌에서 쫓겨난 지 9년이 흘렀다. 그 9년 동안, 절대 군주처럼 30년 간 군림했던 무바라크가 이집트 정치에 깊은 상처를 남겼음이 증명됐다.

무바라크는 30년 동안 어떤 반대파든지 고립시키고 정치 운동을 길들임으로써 후대의 독재자가 탄생할 길을 놓았다. 이 때문에 엘시시 독재는 무바라크 독재보다 훨씬 극단적인 형태로 돌아올 수 있었다.

무바라크가 조심스럽게 추진했던 경제 ‘개혁’들이 엘시시 하에서 전례 없는 속도로 추진됐다. 이 때문에 정부 공식 통계만 보더라도 전체 인구의 3분의 1이 빈곤층으로 전락했다.

정치적 반대파를 고립시키고 길들였던 무바라크의 방식과 달리, 엘시시는 반대파를 완전히 말살하는 방법을 택했다.

무바라크가 미국·이스라엘과 동맹을 맺는 수준이었다면, 엘시시는 나아가 걸프 연안 자본을 맹목적으로 추종하고 이집트 영토를 사우디아라비아에 양도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무바라크의 죄악은 엘시시의 죄악보다 결코 가볍지 않다. 무바라크 30년의 철권 통치가 더 최악의 새로운 독재[엘시시]를 낳은 토대가 됐기 때문이다.

[‘아랍의 봄’ 혁명에 밀려] 권좌를 떠나야 했던 무바라크가 오늘 세상을 떠났지만, 결국 세상에서 사라져야 하는 것은 무바라크가 남기고 간 강압 통치와 수탈 정책의 유산이다. 그래야만 자유롭고 정의로운 사회를 건설할 수 있을 것이다.

2020년 2월 25일

이집트 혁명적사회주의자단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