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3일(현지 시각),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예비경선의 ‘빅 이벤트’인 16개 지역 동시 선거(‘수퍼 화요일’)가 열렸다.

이제껏 선두를 달리던 ‘민주사회주의자’ 버니 샌더스는 이날도 대의원이 가장 많은 캘리포니아주(州)에서 승리하는 등 선전했지만, 민주당 기성 정치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후보 조셉 바이든이 많은 주들에서 승리하며 선두로 올라섰다. 반면 이 날만 바라보고 수억 달러를 광고에 쏟아부은 언론 재벌 마이클 블룸버그는 크게 뒤처졌고, ‘진보적 자유주의자’를 자처하는 엘리자베스 워런은 자신이 상원의원으로 있는 매사추세츠주에서조차 3위에 그쳤다.

경선 초 민주당 실세는 ‘샌더스 대항마’가 뚜렷하지 않아 고심하다가 이번 동시 선거를 샌더스를 저지할 기회로 보고 바이든에 지원을 집중했다. 〈워싱턴 포스트〉 출구 조사를 보면, 바이든 지지 표는 두 가지 구호, 즉 ‘중도·보수’, 전국민 단일건강보험(샌더스의 핵심 공약 ‘메디케어 포 올’)에 대한 반대를 중심으로 결집했다.

반면 샌더스는 인구가 많고 다양한 인종이 섞여 사는 지역들에서 많이 득표했는데, 특히 18~29세 청년층과 히스패닉계에서 지지가 높았다. 〈워싱턴 포스트〉는 출구 조사 결과를 분석하면서, 샌더스에 투표한 사람들의 핵심 기준을 소득 불평등으로 꼽았다. 

이들은 평범한 사람들을 진정 대변하는 후보가 샌더스뿐이라고 여겼다. 샌더스를 지지하며 예비경선 투표에 참가한 제니퍼 니덤은 이렇게 말했다.

“샌더스는 진심으로 사람들을 위합니다. 부자들이 너무 많은 돈을 가져간다고, 아플 때 [돈이 없어서] 병원에 갈지 끼니를 때울지 고민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샌더스뿐입니다.” 전국민 단일건강보험, 연방최저임금 15달러로 인상해 생활임금 보장, 3세 이하 영아가 있는 가정에 보편적 아동수당 지급, 은행 규제 강화와 부유세 도입 등 샌더스의 공약이 인기를 끄는 까닭이다.

3월 2일, ‘수퍼 화요일’을 앞두고 미네소타에서 유세하는 버니 샌더스 ⓒ출처 Lorie Shaull(플리커)

이런 공약들은 미국 노동계급 대중이 권력층에 느끼는 깊은 분노를 담은 것이다. 그들은 극심한 양극화, 형편없는 임금과 복지 수준, 무자비한 인종차별로 점철된 열악한 현실에 시달려 왔다. 미국 친기업 잡지 〈포브스〉조차 이렇게 썼다. “청년들은 자라면서 재정적으로 자립해 ‘아메리칸 드림’을 이룰 수 있다고 들어 왔지만, 그 말을 의심하는 것이 당연한 현실이다. 샌더스 득표가 치솟고 사회주의 사상이 청년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이들은 도널드 트럼프가 연두교서에서 미국의 실업률이 역대 최저이고 경제가 호조를 달린다며 으스댄 것에 반발한다. 니덤은 이렇게 말했다. “트럼프는 경제가 잘 나가기 때문에 자기가 훌륭한 대통령이라고 합니다. 부자들에게야 좋았겠죠. 대중은 아득바득 살고 있습니다. 블룸버그나 바이든 같은 자들이 이런 상황을 개선할 수 있겠습니까?” 

샌더스는 미국의 극단적인 불평등을 비판한다. “지난 3년 동안 억만장자들은 자산이 8500억 달러 늘었습니다. 평범한 미국인들은 상황이 다릅니다. 2019년 실질임금 상승률은 1퍼센트 이하입니다. 미국인 절반이 하루 벌어 하루 삽니다.”

2011년 미국에서 시작된 ‘점거하라’ 운동은 바로 이런 현실에 대한 분노의 표현이었다. 뒤이어 경찰의 흑인 살해를 규탄하는 ‘흑인들의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 차별에 맞선 ‘여성 행진’ 등 중요한 대중 운동이 미국에서 벌어졌다.

미국 노동자 운동도 조금씩 성장세를 보이는 듯하다. 미국 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2019년 파업 참가자 수는 2018년(33년 만에 최다)에 뒤이어 지난 10년간 두 번째로 많았다. 1000명 이상 참가한 파업 수는 지난 10년간 최다였고, 2만 명 이상 참가한 대규모 파업은 1993년 이후 최다였다. 특히, 도합 27만 명이 참가했던 교육 노동자 파업, 노동손실일수가 133만 일을 넘겼던 지엠 파업이 두드러졌다.

이런 상황에서 부상하는 샌더스를 미국 권력층은 매우 꺼린다. 한 TV 뉴스 진행자는 샌더스의 네바다주 예비경선 승리를 1940년 나치의 프랑스 점령에 빗대기까지 했다!

진정한 변화를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

이번 예비경선 후에도 민주당 실세는 샌더스 밀어내기에 열을 올릴 것이다. 

설령 샌더스가 예비경선에서 계속 선전하더라도 민주당 실세는 간선 대의원(“수퍼대의원”)을 총동원해 샌더스를 주저앉히려 들 것이다. 민주당 지도부에 친화적인 〈뉴욕 타임스〉조차 1952년 민주당 예비경선 사례가 되풀이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당시 민주당 지도부는 ‘혜성처럼 등장한 스타 정치인’ 에스테스 키포버가 아니라 자신들이 선호한 후보 애들레이 스티븐슨을 당선시키려 “수퍼대의원”을 매수했다.

샌더스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우려가 있다. 그런 우려는 특히 샌더스의 “정치 혁명”이 선거 정치만을 강조하는 것과 연관돼 나오고 있다. 샌더스의 많은 공약들은 그간 미국 노동계급 대중이 운동으로 제기한 요구들과 맞닿아 있지만, 샌더스가 말하는 ‘정치 혁명’은 대중 운동으로 권력층에 맞서자는 것이 아니라 투표를 하라는 것이다.

캘리포니아주에 사는 샌더스 지지자 로베르토는 이렇게 지적했다. “샌더스는 ‘정치 혁명’이 일어날 거라고 말합니다. 그 ‘혁명’이 무엇이든 권력층 전체가 샌더스를 반대할 겁니다. 

“그런데 [샌더스가 말하는 ‘정치 혁명’에는] 공약한 바를 대중 운동으로 쟁취하자는 부분은 없습니다. 제가 보기에 ‘정치 혁명’이라면 마땅히 그래야 하는데 말이죠.

“샌더스가 [예비경선에서] 패하면 남는 것이 없을까 걱정입니다.” 

이런 우려에는 지난번 예비경선 경험도 영향이 있을 것이다. 2016년 예비경선 패배 후 샌더스는 트럼프를 저지하려면 (뼛속까지 주류 후보였던) 클린턴에 투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트럼프도 저지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진보적 변화를 염원하는 대중을 혼란과 사기 저하에 빠뜨렸다.

이런 문제는 기존 국가를 ‘민주적’으로 이용해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샌더스의 관점에서 비롯한다. 그렇게 보면 이제껏 그 국가를 운영해 왔던 자들, 즉 대자본과 긴밀히 얽힌 선출되지 않은 권력과의 ‘타협’이 중시되게 마련이다. 그리고 대자본에 기반을 둔 민주당은 이를 이용해 변화 염원을 흡수하고 투표 부대로 종속시킨 끝에 좌절시켰던 오랜 역사가 있다.

샌더스가 특히 대외 정책에서 별로 진보적이지 않은 것도 이와 연관 있다. 샌더스는 기존 세계 질서 속에서 합의를 통해 평화를 이룰 수 있다고 보는 듯하다. 그러나 그런 관점은 실제 정책에서는 미국 지배자들이 고수해 온 논리를 따르게 되곤 하는 것이다.(이에 관한 더 자세한 설명은 ‘[개정증보] 주류 정치인들을 누르고 샌더스가 떠오를까?’를 보시오.)

진정한 변화를 이루려면 작업장·거리·캠퍼스 등에서 기성 권력에 도전하는 대중 운동이 부상해야 한다. 미국에서 이런저런 중요한 운동들과 노동자 운동이 성장세이고, 그 와중에 사회민주주의 정당 미국민주사회주의당(DSA)이 성장하는 것은 그 좋은 징조다.

샌더스 열풍에서 엿볼 수 있는 대중적 변화 염원이 투표 부대로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그런 운동의 부상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혁명적 좌파는 그 일부가 돼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