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천지 ‘이단’ 운운이 정치적 진보파에도 의미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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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지는 코로나19 감염 확산에 책임 있다는 정부·여당이 조성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물론 그 종교단체가 대구·경북 지역에서 코로나19 확산과 상당 부분 상관있는 것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인과관계와 상관관계를 구별해야 한다. 전기 스위치를 켜면 전등이 켜진다. 그렇다고 전등 점화의 원인이 스위치라고 할 수는 없다. 전등 점화의 원인은 전기
코로나19 감염증의 원인은 ‘사스-코로나바이러스-2’이고 이 바이러스가 생겨난 직접적 원인은 정확히는 알 수 없다. 형태로 보아 모종의 실험실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듯하다는 추정도 있지만 아직 추정일 뿐이다.
분명한 것은 사스-코로나바이러스-2를 생겨나게 한 본질적인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바로 자본주의 시스템이 생태계를 함부로 건드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본주의 정부와 기업이 이윤과 권력을 보호하기 위해 감염 확산 저지에 꼭 필요한 조처들을 취하길 꺼린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천지 교회가 일부 지역에서 감염 확산을 촉진시켰다는 게 사실일지라도 그들에게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어느 대규모 옥내집회도 그럴 수 있
정통? 이단?
그런데 신천지는 어떻게 정부·여당과 친여권 언론의 손쉬운 속죄양이 됐을까? 처음 그리스도인들도 유대교의 한 ‘이단’ 종파였음을 기억하지 못하는 ‘정통’ 그리스도교 전체가 신천지를 ‘이단’으로 규정한 것이 이런 일을 용이하게 만들었다. 요컨대 그 종파의 신념
그러나 정치적 진보파들이 ‘이단’, ‘컬트’ 운운하는 것은 옳지 않다. 게다가 이단이나 컬트를 비도덕적인 것과 동일시하는 것은 더더욱 틀린 생각이다. 소위 ‘정통파’들이 신천지를 ‘이단’이라고 규정하고 매도하는 쟁점은 주로 다음 세 분야에 관한 것이다. 예수의 천국 비유에 대한 해석
이런 밀교적 쟁점들을 둘러싼 정통/이단 논쟁이 정치적 진보파들에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말이 나온 김에 덧붙이자면, 오늘날의 소위 ‘정통주의자’들은 자기들끼리도 예수의 비유를 놓고 해석이 분분하고, ‘구원론’
그리고 예수의 신성과 인성을 모두 인정해야 한다면서도 실제로는 그의 신성을 강조하는 ‘정통파’의 주장은, 진정한 정통
게다가 ‘정통’을 자처하는 자들 사이에서도 ‘이단’ 시비가 잦다. 변승우 목사라는 사람은 ‘이단’의 괴수처럼 취급받다가 ‘이단’ 해제 판정을 받고 한기총에 가입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에 반대하는 우익 집회를 주도하는 전광훈 한기총 대표회장이라는 자가 변승우 목사의 가입을 허용할 때 그 대가로 수억 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가 포착돼, 보수 개신교계가 시끄럽다고 한다.
몇 년 전에는 최삼경 목사라는 사람이 주도해 소위 정통파들이 몇몇 종파들의 삼위일체론을 문제 삼아 한동안 신나게 ‘이단’ 낙인 찍기를 자행했는데, 그 최삼경 목사 자신이 삼위일체에 대한 ‘이단적’ 사상을 갖고 있는 것이 드러나, 정통파들의 체면이 구겨진 일도 있었다.
1970년대까지 조용기 순복음교회 목사는 ‘이단’ 취급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교회가 세계 최대 교회로까지 급성장하자 그를 둘러싼 이단 시비는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보수 개신교계에서는 치유나 예언 등의 기적이 아직도 있을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둘러싼 논쟁이 여전히 치열하다. 서로 ‘이단’이라고 부르면서 말이다.
개인숭배
‘이단’ 사냥꾼들은 신천지 교주 이만희 개인에 대한 숭배도 뒤섞어서 비판하는데, 이것도 별 설득력이 없다. 가톨릭 교회의 교황 무오류설은 어떤가? 개신교 ‘정통’은 그 대안으로 성경 무오류설을 내놓았지만, 그 실천적 결과는 성경의 수많은 모순된 구절들을 그럴듯하게 조화시켜 설교하는 많은 메가처치 담임목사 개인에 대한 숭배였다. 물론 이 ‘개인숭배’는 때로 파산해 살벌한 교회 분열을 낳지만, 또 다른 목회자 개인을 숭배하는 것으로 끝나기 일쑤다.
신천지의 교리보다는 특정 정치 세력과의 연계를 문제 삼는 속죄양 삼기도 진보 언론들 사이에서 유행이다. 이만희가 박근혜 손목시계를 차고 대국민 사과 큰 절을 했다는 것인데, 그렇다고 신천지의 그 많은 청년 신도들을 박근혜 지지자들로 여겨서는 안 될 것이다. 이들이 신천지로 이끌렸던 것은 신천지가 개신교의 부패한 지도적 목사들과 그 기구
장기 불황으로 고통받고 좌절한 수많은 요즘 청년들 가운데 일부가 소속감과 연대감을 느끼게 해 주는 독특한 종교단체에 이끌릴 수 있다는 것은 조금치도 이상하지 않다. 그다지 큰 문제도 아니다. 서구처럼 파시즘 정당이나 다른 인종차별적 극우 정당에 이끌리는 것보다야 훨씬 낫지 않은가. 진보계의 청년 활동가들은 낯선 종교단체에 끌리는 동료 청년들을 깔보는 듯한 태도나 가르치려 드는 태도로 대해서는 안 될 것이다.
종파
어떤 종교든 외부인과의 경계가 명확하고 엄격한 종파들과 그렇지 않고 느슨한 종파들이 포함돼 있다. 엄격한 종파의 신도들은 조직의 내부인과 외부인에 대한 확고한 이해를 갖고 있다. 이런 종파에 소속되려면 특정 교리들을 주저함 없이 고수해야 한다. 그리고 특정 행사와 활동에 참여해야 한다. 그런 믿음과 그런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구원’ 받은 내부인들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길 잃은’ 외부인들이다.
이런 엄격한 형태의 자기인식은 가령 온건한 장로교인들의 자기인식과는 대조된다. 이들은 자기들이 신의 예정에 따라 선택됐다고 생각하기는 할 테지만, 오직 자기들만이 선택됐으므로 자기네 교회를 떠나 예컨대 감리교회로 이적한 사람은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범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모든 사회집단과 그 성원은 자기인식을 갖고 있어서, 경계
그런데 외부인
이런 심한 갈등은 시초 그리스도인 공동체 내부로도 내면화돼, 입회
이와 비슷하게, 지난 10년간 신천지가 구축한 자기방어와 자기인식은 기독교
이런 상황에서 정치적 진보파 활동가까지 신천지 공격에 가세하면, 기성 종교의 무능과 부패, 독선에 식상해 신천지에서 종교적 위로와 소속감, 유대감을 찾는 청년들을 내치고 자칫 그들을 보수 정치 세력의 품 안으로 내몰 위험이 있다. 총선을 앞두고 진보 정당들을 지지하기보다는 여권을 돕는 셈이 된다는 점 외에도 말이다.
맺으며
《희생양》으로 유명한 프랑스 철학자 르네 지라르
“에페소 시에 페스트가 번지자 무질서와 혼란이 극에 달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현자
2000년 전 페스트와 달리 코로나19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산물이고, 에페소 시 당국보다 오늘날의 국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