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읽기 전에 “미국 민주당 예비경선: 샌더스 밀어내려고 합심한 민주당 기득권 세력”을 읽으시오.

미국 민주당이 그래도 공화당보다는 낫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공화당은 보수적이지만 민주당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는 식이다.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미국 민주사회주의당(DSA) 당원인 하원의원)도 “민주당은 좌파 정당이 아니라 중도, 혹은 중도-보수 정당”이라면서도 “민주당을 좌경화하려 애쓰는 좌파적 당원들이 민주당 안에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역사를 살펴보면, 민주당이 좌파적 요구를 단속하고 대중 운동을 가라앉히는 등 진정한 변화 염원을 억제하는 구실을 해 왔음을 알 수 있다. 특히 1950~1960년대에 분출한 운동들의 사례가 이를 생생히 보여 준다.

자본가 정당 민주당은 변화 염원을 억제하는 구실을 한다. 1968년 민주당 정부의 명령으로 민주당 대회장 앞 시위대를 진압하는 미국 경찰 ⓒ출처 시카고 공공 도서관

남북전쟁 때만 해도 노예 소유주들의 정당이었던 민주당은 20세기 초까지도 남부 대자본과 농업 부문의 이해관계를 옹호하고 흑백 분리를 지지하는 반동적 정당이었다.

하지만 대공황과 노동자 투쟁이 미국을 뒤흔든 1930년대에 민주당은 거의 재창당 수준의 변모를 겪었다. 남부 인종차별주의자들뿐 아니라 북부 제조업 대자본가들, 심지어 노동조합 상층 관료들도 민주당을 지지하게 됐다.(당시 노동자 투쟁에서 중요한 구실을 했던 미국 공산당은 인민전선 전략에 입각해 민주당을 지지했고, 이 때문에 미국 노동계급은 심각한 패배를 겪어야 했다. 이에 관해서는 본지 112호 ‘미국 ‘매카시즘’ 마녀사냥의 진실과 교훈’을 보시오.)

시민평등권

제2차세계대전이 끝난 후 흑백 분리 제도(짐 크로우 법)에 맞서, 민주당이 장악한 미국 남부에서 시민평등권 운동이 분출했다. 

마틴 루서 킹 목사가 속한 남부기독교지도자회의(SCLC)와 흑인 개신교 교회들이 1950년대에 이 저항을 선도했다. 1960년대에는 더욱 급진적인 흑인 반란이 분출했다.

시민평등권 운동은 놀라운 투지를 발휘했지만, 이들이 취했던 비폭력 전술 뒤에는 국가가 인종차별을 철폐시키리라는 실현되기 어려운 기대가 있었다. 한편, 시민평등권 운동의 몇몇 온건한 지도자들, 노동조합 관료들, 일부 좌파들은 민주당을 “재편”해 남부 인종차별주의자들이 아니라 좌파·노동조합에 친화적인 정당으로 바꾸는 전략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1960년대 흑인 반란을 주도했던 인종평등회의(CoRE), 학생비폭력조정위원회(SNCC) 등은 미국 남부에서 강력한 인종차별 반대 운동을 건설했다. 이들은 인종차별이 기승을 부리는 미국 남부에서 (때로는 목숨을 걸고) 흑인들의 저항을 조직했다.

이 운동은 민주당 (존 F 케네디) 정부에 대한 직접적 도전이었다. 케네디 정부는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조처가 민주당을 분열시킬까 봐 걱정했다.

케네디는 1960년 대선에서 흑인 표 덕에 간신히 승리했다. 케네디는 흑인 표를 민주당 지지로 묶어두는 한편 대중적 시민 불복종 운동은 꺾으려 했다. 

케네디 정부는 흑인 투표권을 법제화한다는 도박을 걸어 워싱턴DC에서 열릴 예정인 대규모 시위의 기세를 꺾으려 했다. 그러나 결국 워싱턴 시위는 벌어졌고, 이 시위는 흑백 분리 제도 철폐를 축하하는 자리가 아니라 흑인 차별 철폐를 주저하는 정부를 규탄하는 시위가 됐다.

운동의 압력에 밀린 민주당 정부는 1963년 케네디가 암살당한 뒤 인종 차별 종식을 법제화하는 공민권법을 통과시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민주당의 소망과 달리, 인종차별 반대 운동은 법안 통과에 만족하고 끝나지 않았다.

케네디와 그 뒤를 이은 부통령 린든 존슨의 민주당은 운동의 전투성을 억누르려고 집요하게 노력했다. 당시 시민평등권 활동가였던 제임스 파머는 (대통령 케네디의 형인) 법무장관 로버트 케네디와의 만남을 이렇게 회고했다. “[로버트] 케네디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연좌 농성이니 뭐니 하는 짓거리는 다 집어치우고 유권자 등록 운동이나 하쇼. 그러면 당신들[인종평등회의와 학생비폭력조정위원회]에 면세 혜택을 주리다.’”

1964년 민주당 대선후보 예비경선은 그런 압박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잘 보여 준 사례였다.

당시 인종차별 반대 운동가들은 민주당 내 인종차별주의자들에 맞서려고 미시시피자유민주당(MFDP)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예비경선에 참가했다.(인종차별주의자들의 공격 때문에 이는 거의 목숨을 건 일이었다.) 그러나 민주당 지도부는 이들에게 한 손으로 꼽을 정도의 대의원만 할당했고, 상당수 대의원을 당내 인종차별주의자들에게 할당했다. 

인종차별 반대 투사들과 청년 대의원들은 이에 항의해 민주당을 탈당했다. 그러나 킹 목사를 비롯한 운동의 온건한 지도자들은 공화당 강경 우파에 맞서야 한다는 이유로 계속 민주당을 지지했다. 

전쟁

4년 후인 1968년 민주당 예비경선 때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민주당은 당내 남부 인종차별주의자들이 탈당할 듯하자, 주류 정치에 순종하지 않은 일체의 진보 세력들을 핍박했다. 인종차별 반대 운동뿐 아니라 당시 급부상한 베트남 전쟁 반대 운동도 핍박 대상이 됐다.

케네디 정부와 그 후임인 존슨 정부가 베트남 전쟁을 잔혹하게 수행한 것 때문에, 특히 대학가를 중심으로 반전 운동이 대규모로 부상했다. 당시 운동의 지도적 단체인 ‘민주사회를 위한 학생연합(SDS)’은 민주당과 협력할 태세가 돼 있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전쟁 수행 당사자인 민주당에 비판적이었다.

반전 운동이 워낙 강력했기 때문에 당시 대통령 존슨은 불출마 선언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일부는 존슨을 비판하면서도 민주당을 “정화”할 수 있다는 환상을 품었다. 이들은 민주당에 재입당해 당시 예비경선 후보였던 유진 매카시를 지지했고, 일부는 당대회장 앞에서 시위도 벌였다. 그러나 존슨 정부는 경찰력을 동원해 이들을 폭력 진압했다(위 사진).

민주당이 운동의 온건한 지도부를 당으로 끌어들여 운동을 길들이면서도 대중의 진보 염원은 거듭 억누르자, 소수는 혁명적으로 급진화했다. 그러나 1970년대가 되면서 시민평등권 운동과 반전 운동을 지지했던 다수는 민주당에 투표하는 것 말고는 대안이 없다고 여기기 시작했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 미국에서 벌어진 가장 강력한 두 운동이 방향을 잃고 끝내 자본가 정당에 종속됐다. 이후 오늘날까지도 민주당 문제는 미국의 운동에 중요한 쟁점으로 남아 있다.

이는 2020년 민주당 예비경선이 진행 중인 지금도 중요한 쟁점이다. 2016년에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했듯이 2020년에도 민주당 권력층의 대변자인 조 바이든을 지지해야 하는가? 극심한 양극화, 차별, 착취, 기후 재앙에 항의해 운동이 조금씩 성장하는 지금?

미국 대중의 진보적 변화 염원이 민주당에 대한 투표로 제약된다면 이는 역사에서 얻은 교훈을 올바르게 적용하지 못하는 일이 될 것이다. 진정한 변화를 추구하는 좌파라면 자본가 정당 밖에서 대중 운동을 건설하려 애쓰고, 양대 자본가 정당에 의존하지 않는 진정한 급진적 구심을 건설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 기사는 토마시 텡글리-에반스와 개비 소프가 영국의 반자본주의 주간지 〈소셜리스트 워커〉에 쓴 ‘U.S. Democrats will not bring real change’를 많이 참고해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