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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데이비스 논평:
코로나19: 기어이 괴물이 오고야 말았다

저명한 마르크스주의자인 마이크 데이비스가 코로나19의 대유행에 대해 말한다. 마이크 데이비스는 미국의 사회주의자로 도시사회학·역사학·생태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마르크스주의 분석을 발전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국내에 번역된 책으로는 《조류독감 : 전염병의 사회적 생산》(돌베개, 2008), 《슬럼 지구를 뒤덮다》(돌베개, 2007), 《엘니뇨와 제국주의로 본 빈곤의 역사》(이후, 2008년), 《한권으로 읽는 자동차 폭탄의 역사》(전략과문화, 2011년), 《제국에 반대하고 야만인을 예찬하다》(이후, 2008), 《자본주의 그들만의 파라다이스 : 두바이에서 요하네스버그까지 신자유주의가 낳은 불평등의 디스토피아》(Archive, 2011), 《미국의 꿈에 갇힌 사람들》(창작과비평사, 1994) 등이 있다.

코로나19. 기어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연구자들은 이 바이러스의 특징을 알아내려고 밤낮으로 일하고 있지만, 세 가지 큰 난관에 봉착해 있다.

전 세계 코로나19 발병 현황 ⓒ이미지 출처 Coronavirus COVID-19 Global Cases by the Center for Systems Science and Engineering (CSSE) at Johns Hopkins Univ.

첫째, 진단 키트 부족이 계속되거나 사용 불가능해 방역에 대한 모든 희망이 무너졌다. 게다가 이 때문에 증식률, 감염자 수, 사망하지 않은 감염자 수 같은 주요 변수들을 정확하게 추정하기 어려워졌다. 그 결과는 혼란스러운 수치들이다.

그러나 코로나19가 몇몇 국가의 특정 집단에 끼친 영향에 대해서는 비교적 신뢰할 만한 자료가 있다. 이는 매우 무시무시하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와 영국에서는 65세 이상의 사망률이 훨씬 높다고 발표됐다. 트럼프는 ‘코로나 독감’ 운운하며 대수롭지 않은 듯 굴지만, 코로나19는 노령 인구에게 전례 없는 위험이며 수백만 명의 사망자를 낳을 위험성이 있다.

둘째, 매년 유행하는 독감과 마찬가지로 코로나19는 연령 구성과 후천 면역 체계가 상이한 인구 집단들을 거치면서 변이하고 있다. 미국인이 걸릴 가능성이 가장 큰 변종은 이미 우한에서 처음 발병한 것과 약간 다르다. 이후의 돌연변이는 사소할 수도 있지만, 바이러스의 독성에 민감한 인구 집단이 바뀔 수도 있다.(현재 코로나19의 독성은 연령에 따라 증가하는 분포를 보인다. 즉 영아나 소아는 심각한 감염 위험이 거의 없지만 80대는 바이러스성 폐렴으로 사망할 위험이 크다.)

셋째, 코로나19가 안정되고 거의 돌연변이를 일으키지 않는다 해도 빈곤국과 빈곤층에서는 65세 미만 집단이 받는 영향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1918~1919년에 국제적으로 발병한 스페인 독감을 보라. 스페인 독감은 당시 인류 전체의 1~2퍼센트를 사망케 한 것으로 추정된다. 코로나 바이러스와는 달리 스페인 독감은 젊은 성인에게 가장 치명적이었다. 젊은 성인들은 상대적으로 더 강한 면역 체계를 갖고 있는데, 면역 체계가 과민 반응을 일으켜 폐세포에 치명적인 ‘사이토카인 폭풍’을 일으켜서 그런 것으로 흔히 설명된다. 초기 H1N1[스페인 독감 바이러스]는 병영과 참호에서 쉽게 퍼져 수많은 젊은 병사의 목숨을 앗아간 것으로 악명이 높다. 1918년에 독일의 춘계 공세가 무너지고 독일이 결국 전쟁에서 패한 것은 연합국이 독일 등 동맹국과는 달리 병든 군인들을 새로 파병된 미군으로 보충할 수 있었던 덕분이라고 평가돼 왔다.

그러나 당시 전 세계 사망자의 60퍼센트가 인도 서부에서 나왔다는 사실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당시 인도 서부에서는 영국으로의 막대한 곡물 수출과 가혹한 징발에 극심한 가뭄이 맞물렸다. 그 결과 식량 부족으로 수많은 가난한 사람이 기아선상으로 내몰렸다. 이들은 면역 반응을 약화시키는 영양실조와 세균성·바이러스성 폐렴의 유행이 낳은 재앙적인 상승 작용에 희생됐다. 또 다른 사례로, 영국 점령하 이란에서는 수년간의 가뭄, 콜레라, 식량 부족에 이어 광범하게 퍼진 말라리아가 스페인 독감과 만나 인구의 약 5분의 1이 목숨을 잃었다.

이런 역사(특히 영양실조나 기존 전염병과의 상호작용이 초래한 잘 알려지지 않은 결과)를 보면, 코로나19가 아프리카와 남아시아의 슬럼에서 더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경각심을 느껴야 마땅하다. 언론과 서방 정부들은 전 세계 빈곤층이 처한 위험을 거의 전적으로 무시한다. 그런 곳에 관해 내가 본 유일한 기사는, 서아프리카 도시는 세계에서 평균 연령이 가장 낮아서 코로나19의 영향이 가벼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1918년 경험에 비추어보면 어리석은 추론이다. 나이지리아의 라고스, 케냐의 나이로비, 파키스탄의 카라치, 인도의 콜카타에서 앞으로 몇 주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유일하게 확실한 것은 부자 국가들과 부자 계급들이 국제적 연대와 의료 지원은 배제한 채 자신들을 살리는 데에 집중할 것이라는 점이다. 즉, 백신이 아니라 장벽을 택할 것이다. 이보다 더 악랄한 미래상이 있을 수 있을까?

1년 뒤에 우리는 중국의 성공적인 방역에 감탄하고 미국의 방역 실패에 경악하며 지금을 돌아보게 될 지도 모른다.(지금 나는 전파가 급격히 감소했다는 중국의 발표가 어느 정도 정확하다는 모험적인 가정을 하고 있다.) 물론 미국의 기관들이 판도라의 상자를 닫지 못하는 것은 별로 놀랍지 않다. 2000년 이래 일선 의료 서비스는 거듭 붕괴해 왔다.

예를 들어 2018년 겨울 독감이 전국의 병원들을 압도하자, 병상이 터무니없이 부족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20년 동안 이윤 논리에 따라 입원 병상을 줄여 온(이것이 의료 산업에서의 ‘적시 재고 관리’다) 결과다. 마찬가지로 시장 논리에 의해 민간 병원과 자선 병원이 폐쇄되고 간호 인력이 부족해지면서 빈곤 지역과 농촌 지역의 의료 서비스가 황폐화됐고,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공립 병원과 재향군인 병원의 부담이 늘어났다. 이러한 기관들의 응급실 여건은 이미 계절성 감염병에 대처하기에도 부족했는데, 응급 환자가 속출할 것이 임박한 지금 상황에는 어떻게 대처하겠는가?

미국은 의료판 카트리나[2005년 미국, 특히 미국의 가난한 지역을 휩쓴 강력한 태풍]의 초기 단계에 있다. 수년간 조류독감과 다른 유행병들에 대한 경고가 있었지만, 인공호흡기 같은 기본적인 응급 의료 장비의 재고는 닥쳐올 응급 상황의 홍수에 대처하기에 충분치 않다. 캘리포니아와 다른 주들의 투쟁적인 간호사 노조들은 N95 마스크 같은 필수적인 보호 물자를 충분히 비축하지 않으면 매우 위험하다는 것을 모두에게 일깨우려고 하고 있다. 게다가 저임금을 받고 과로에 시달리는 수십만 재가 요양보호사와 요양원 직원들은 사각지대에 놓여 있어 더욱 취약하다.

250만 명의 노인들(대부분이 메디케어[미국의 노인 의료 보험] 수급자다)을 돌보는 요양원과 보호 시설 산업은 미국의 국가적 추문이 된 지 오래다. 〈뉴욕 타임스〉에 따르면 기본적인 감염 관리 절차의 소홀함 때문에 매년 요양원 환자 38만 명이 사망한다. (특히 남부 주에 있는) 많은 요양원들은 직원을 더 고용하고 제대로 훈련시키는 것보다 위생 규제 위반으로 벌금을 내는 것이 더 싸게 먹힌다고 여긴다. [요양원에서 증상자가 대거 발생한] 시애틀 사례가 경고하듯 요양원 수십, 어쩌면 수백 곳이 사실상 코로나19 배양소가 될 것이고, 거기서 일하는 최저 임금 노동자들은 합리적 판단에 따라 자기 가족을 지키기 위해 출근을 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그러면 요양 시스템이 붕괴할지도 모른다. 주 방위군이 환자들의 요강을 비워주러 오기를 바랄 수는 없을 것이다.

코로나19 확산은 보건 영역에서 극심한 계급 격차를 즉각적으로 드러냈다. 좋은 의료 보험에 가입해 있고 집에서 일하거나 가르칠 수 있는 이들은 세심한 안전 조치만 따른다면 편안하게 격리될 수 있다. 의료 혜택을 적당히 누릴 수 있는 공무원과 조직 노동자들은 수입과 자기 보호 사이에서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 한편 수많은 저임금 서비스 노동자, 농업 노동자, 보험이 없는 파견 노동자, 실업자, 노숙자들은 속수무책일 것이다. 비록 미국 정부가 진단 실패 소동을 해결하고 진단 키트를 충분히 제공한다 해도, 보험에 들지 않은 사람들은 여전히 검사 비용을 의사나 병원에 지불해야 한다. 전반적인 가구 의료비 지출이 치솟을 것이다. 안 그래도 수많은 노동자들이 직장을 잃고 보험을 잃는 마당에 말이다. “모두를 위한 메디케어”[전 국민 단일 의료 보험 체계]가 필요한 이보다 더 강력하고 절실한 근거가 있을까?

그러나 보편적 의료보험은 단지 첫걸음일 뿐이다.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토론에서 샌더스나 워런 어느 누구도 거대 제약회사들이 새로운 항생제와 항바이러스제 연구와 개발을 방기한다는 점을 폭로하지 않은 것은 곱게 말해 실망스럽다. 18개 대형 제약회사 중 15개 사가 이 분야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심장약, 중독적인 신경안정제, 남성 발기부전 치료제는 이윤 창출의 선두주자일 뿐, 병원 내 감염, 신종 질병, 전통적인 열대 감염병에 대한 방어책이 아니다. 보편적인 인플루엔자 백신(즉, 바이러스의 표면 단백질 중 변하지 않는 부분을 겨냥한 백신)은 수십 년 동안 실현 가능한 영역 내에 있었지만 결코 수익성 있는 우선적인 개발 대상이 아니었다.

항생제 혁명이 후퇴함에 따라 새 감염병과 함께 옛 감염병이 부활하고 병원은 시체 안치소가 될 것이다. 심지어 트럼프조차 터무니없이 높은 진료 비용을 기회주의적으로 비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의약품 독점을 타파하고 구명 의약품을 공적으로 생산하기 위한 더 대담한 비전이다. (예전에도 구명 약품은 공적으로 생산됐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 육군은 최초의 독감 백신을 개발하기 위해 조너스 소크와 다른 연구자들을 징집했다.) 나는 15년 전 《조류독감: 전염병의 사회적 생산》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백신, 항생제, 항바이러스제를 포함한 구명 의약품 이용은 보편적이고 무상으로 누릴 수 있는 인권이어야 한다. 그러한 의약품을 저렴하게 생산할 동기를 시장이 제공할 수 없다면, 정부와 비영리 기관들이 그것의 제조와 유통을 책임져야 한다. 가난한 사람들의 생존이 언제나 거대 제약회사의 이윤보다 더 우선시돼야 한다.

코로나19가 유행하는 지금은 여기서 더 나아가야 한다. 진정한 국제적 공중 보건 인프라가 없는 자본주의적 세계화는 이제 생물학적으로 지속가능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대중 운동이 거대 제약회사와 영리 의료의 힘을 꺾기 전에는 그러한 인프라는 결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