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중순 이래로 코로나19 감염 확산과 경제 침체가 두드러지자 민주당이 4·15 제21대 총선에서 승리하지 못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그러자 진보 정치세력들의 문재인 정부 강화론과 비례민주당 참여가 늘고 있다. 다행히 정의당은 비례민주당에 불참하기로 했다. 민중당은 지도부의 다수가 (소수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참여 입장이라고 하는데, 오늘 이상규 상임대표가 당의 참여 입장을 밝혔으므로 아쉽지만 민중당을 지지 정당의 하나로 삼을 수는 없겠다.

다른 한편, 초좌파는 선거와 투표를 부정하고 냉소주의로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부르주아(노골적 친자본주의) 정당들만의 정당 체제보다는 보수 대(對) 진보 양당 체제가 조금 더 낫다. 전자가 더 효과적으로 노동계급의 정치적 표현을 제한하고, 계급적 불만을 무디게 만들기 때문이다. 특히, 게임을 연상케 하는 부르주아 정당간 경합과, 광고 캠페인을 연상케 하는 용의주도하고 정교하게 고안한 이미지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 진정한 이슈는 한 곁으로 밀려난다. 부르주아 정당들만이 선택 가능한 옵션인 양하는 제도적 협약을 창출함으로써 말이다. 정의당(또는 민중당) 같은 정당에 투표하는 것은 사표로 취급된다. 그런 행위는 제도적 경계를 넘은 무의미하거나 기이한 취향쯤으로 묘사된다.

이처럼 부르주아 정당 주류 체제의 명백한 목적은 노동계급 진보(온건 좌파) 정당의 영향력 확대를 차단하거나, 되도록 어렵게 만드는 것이다. 부유층은 흔히 통합당의 전신들을 선호했지만, 때로 민주당이 필요하거나 적합하다고 여길 때는 민주당 지지도 결코 마다하지 않았다. 두 정당의 차이는 보수와 진보의 차이가 아니라 ‘좀 더 보수적’과 ‘좀 더 자유주의적’의 차이다. 물론 민주당은 종종 진보 포퓰리즘 전략을 통해 진보 정당의 지지를 구하려 하므로 노동자 진보 정당이 특정 쟁점을 둘러싸고 불가피하게 민주당과 제휴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가령 지난해 패스트트랙). 하지만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경험해,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진보 염원 대중이 민주당의 (친제국주의적·친시장적) 본질을 똑똑히 알게 됐다. 민주당이 차악처럼 비치는 것은 오직 우파 정당과 비교되는 것을 통해서밖에 없다. 통합당이 노동자 임금을 10퍼센트 삭감하자고 주장하면 민주당은 터무니없다며 요란스럽게 반대하다가 갑자기 5퍼센트 삭감을 제안하는 식이라는 걸 진보 염원 대중은 이제 안다. 그리고 ‘차악도 악은 악’이라는 좌파적 주장도 이제는 비교적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래서 민주당과 문재인의 지지율은 근래 급속히 떨어졌다.

그럼에도 차악론은 진보 정치의 최대 장애물이 되고 있다. 바로 차악론에 이끌려 민중당 지도부의 다수파는 비례민주당 참여 입장을 채택했다. 그래서 앞으로 민중당의 실질적인 정치적 자주성은 약화될 수 있다. 그러나 미국 최초의 노동자 정당 소속 대통령 후보였던 유진 뎁스(1855-1926)가 한 다음 말을 곱씹어 봐야 한다. “원하지 않지만 갖고 있는 것에 투표하기보다는 원하지만 갖고 있지 않은 것에 차라리 투표하겠다.” 마르크스도 1850년 노동계급은 가능하다면 자신의 정치적 후보를 내세워야 한다며 아래와 같이 말했다.

당선 가능성이 전혀 없어도 노동자들은 자신의 후보를 내세워 자신의 독립성을 보존하려 해야 하고, 자신의 세력을 계산하려 해야 하고, 자신의 혁명적 태도와 정당적 입장을 대중 앞에 내놓으려 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노동자들은 민주당의 주장, 예컨대 노동자들이 자체 후보를 내세우는 바람에 민주 진영이 분열되고 수구 인자들이 이길 수 있게 된다는 주장에 혹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 얘기들의 궁극적 의도는 모두 프롤레타리아를 속이는 것이다. 그런 독자적 행동으로써 프롤레타리아 진영이 이루려는 진보는 대의 기구에 몇몇 수구 인자들이 있게 됨에 따른 불이익보다 비할 데 없이 더 중요한 것이다.1

엥겔스도 미국 사회주의자들이 미국 노동자들의 독자적 노동자 정당 결성 노력을 지지하라고 조언했다. 그래서 1886년 뉴욕 중앙노조가 뉴욕광역시 독립노동당을 결성해 뉴욕시장 선거 후보로 헨리 조지를 내세웠을 때 엥겔스는 그를 지지했다. 《진보와 빈곤》(살림출판사, 2007년)의 지은이로 오늘날에도 유명한 헨리 조지는 노동운동 출신도 아닌 중간계급 포퓰리스트였는데도 말이다. 엥겔스는 말했다.

이제 새로 운동에 입문한 나라에서 실로 결정적인 첫걸음은 노동자들이 독자적인 노동자 정당을 결성하는 것이다. 독자적 노동계급 정당으로서 [다른 정당들과] 구별된다면야 결성 방식은 문제 될 것이 없다. 그런데 우리 예상보다 훨씬 일찍 이 행보가 내디뎌졌다. 이 점이 중요한 것이다. 이 당의 첫 강령이 뒤죽박죽이고 매우 불충분하다는 점, 또 이 당이 헨리 조지를 후보로 내세웠다는 점은 덧없기는 해도 불가피한 결점이었다. 대중에게는 진화할 시간과 기회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실수에 실수를 거듭하며 추동되고 쓰디쓴 경험으로 배우는 자기 자신의 운동이 있어야만 ― 형태가 어떻든 그들 자신의 운동이라면 ― 그런 기회도 얻게 될 것이다.2

엥겔스는 1893년 미국인 동지에게 보낸 편지에서 미국에서는 “두 지배 정당에 던지지 않은 투표는 죄다 사표처럼 보이게 만드는 정치 체제”가 노동자 정당의 결성에 방해가 된다고 지적했다.3 그럼에도 1880년대에 그랬듯이 일시적일지라도 제3의, 노동계급의 대안이 가능할 때가 있다고 엥겔스는 강조했다. 그런 경우에 사회주의자들은 양대 부르주아 정당에 맞서 일종의 항의성 계급 투표를 호소할 수 있다. 부르주아 주류 정당 체제에 균열을 내고 독자적인 노동계급 정치를 위한 공간을 열기 위해서 말이다.

거의 30년 뒤인 1920년, 국제공산당 코민테른은 노동자 정당이 선거 운동을 통해 아래와 같은 것들을 이룰 수 있다고 했다.4

  • 평상시보다 훨씬 더 폭넓은 범위의 사람들에게 사회주의적 선전을 할 수 있다.
  • 공직에 당선된 사회주의자는 자신의 직위를 활용해 자본주의를 폭로하는 선전을 할 수 있다.
  • 주류 정당들의 부패와 특정 계급 친화성을 폭로한다.
  • 선동 등을 통해 제도권 바깥 투쟁의 조직을 지원한다.
  •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의 한계를 들춰낸다.

미국의 사례로 보듯이 부르주아 주류 정당 체제는 노동조합에 기반을 둔 대규모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형성을 억제하는 구실을 한다. 1930년대처럼 독자적 노동자 정당의 성장을 지지하는 노동계급 대중의 정서가 강한 상황에서 애석하게도, 당시 최대 좌파이자 노동계급 정당인 미국 공산당은 운동을 이와 다른 방향으로, 민주당 지지로 돌리는 구실을 했다. 오늘날 노동계급 투쟁이 강력하지 못한 상황에서 차악론은 계속 기승을 부려, 민주적사회주의당(DSA)이 민주당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을지도 확실한 건 아니다.

모순된 계급 의식과 접점 찾기

노동자들의 투쟁성이 반자본주의적 사회주의 의식으로 곧장 나아가는 단순하고 단선적인 운동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1970년대 남부 유럽의 스페인·포르투갈·그리스와 1980년대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브라질의 경험은 개혁주의 조직들이 매우 빨리 발전해서 노동계급에 대한 영향력을 장악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개혁주의 조직은 장기 불황기에 진정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다. 자본주의 경제의 위기로 개혁주의 정당들의 운신의 폭은 아주 제한돼 있다. 그래서 지난 몇 년 새 중도좌파 정당들이 서구 곳곳에서 붕괴되거나 크게 약화됐다. 그 대신에 우익 정당들이 급속히 부상했다.

그러나 한국처럼 새로 선진 자본주의 세계에 진입한 나라에서 전개되는 노동자 운동은 일종의 학습 과정에 있다. 특히, 노동자 의식의 모순과 개혁주의 정치의 본질에 대한 명료한 인식을 배워 익힐 수 있는 학습 현장이다. 개혁주의의 본질, 장단점을 이해할 때만 개혁(진보) 염원 대중의 마음을 얻기 시작할 수 있다.

만일 혁명적 좌파가 노동계급 대중의 (모순된) 의식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그 의식과 제대로 소통하지 못한다면 혁명적 좌파는 도태되고 개혁주의자들이 계속 승승장구할 것이다. 혁명적 좌파는 한편에 민주당과 기회주의적으로 연합하는 정치적 실용주의자들이 있고 반대편에 광범한 노동자 대중의 (모순된) 의식을 이해하지 못한 채 추상적인 ‘좌파적’ 슬로건만 남발하는 종파주의자들 사이에서 당혹스럽고 난감한 처지에 놓이게 될 것이다.

그러면, 노동계급의 의식은 어떤가? 분명 문재인 정부나 민주당 ‘개혁파’의 배신을 통감한 노동자들은 다시는 민주당에 투표하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더 많은 노동자들은 민주당이 미워도 통합당의 득세를 막으려면 민주당과 비례민주당에 투표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두 노동자 집단 모두와 소통하려면 분명한 입장을 취해야 한다. ‘좌익적’ 언사를 구사하며 기권이나 어정쩡한 준(準)기권 입장을 취하면 안 된다.

  • 제1선호 투표: 정의당을 지지함으로써, 민주당/비례민주당이 아닌 노동계급적 대안을 지지한다.(정의당 후보와 민중당 후보가 당락을 놓고 경합하는 선거구의 경우에는 단일화될 후보에게 투표하면 될 것이다.) 어떤 선거에 대해서든 혁명적 좌파의 입장은 전술적인 것이다. 즉, 자신의 후보를 출마시키든 다른 정치단체에 투표하든 혁명적 좌파의 최대 주안점은 노동자들의 자신감을 높이는 것과 그들과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비록 민주당과 정의당의 차이가 그리 크지 않은 것처럼 보일지라도 노동자들의 자신감이라는 점에서는 누가 당선되느냐가 실제로 차이를 낳는다.
  • 제2선호 투표: 그다음으로, 정의당이나 민중당 후보가 출마하지 않아 마땅한 대안이 없는 선거구에서는 민주노총이 지지 정당으로 결정한 진보정당 중 하나에 투표하면 된다.

선거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민주당은 경제 불황기에 저하되는 수익성을 높이고자 애쓰는 사용자들의 압력 하에서 오래지 않아 통합당과 그다지 다르지 않게 행동할 것이다. 설사 만에 하나 승리한다 해도 민주당의 운신의 폭은 좁을 수밖에 없다. 비례민주당의 구성 성분들도 다양한 압력을 받을 것이다. 정당 투표에서 혁명적 좌파가 진보적인 제3의 대안을 표방하는 정의당에 지지를 호소하는 것은 이 미래 저항에 참여하는 활동가들과 소통할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이 활동가들의 일부는 혁명적 좌파가 경제 위기의 효과에 맞서 함께 싸우게 될 사람들일 것이다.


  1. Karl Marx, “Address to the Central Committee of the Communist League,” in Padover, Saul K.(ed) 1971, On Revolution, McGraw-Hill, New York , p 117.

  2. Engels to Friedrich Adolph Sorge, Marx and Engels 1995, Collected Works, Vol. 47, Engels: 1883-1886, Progress Publishers, New York, p 532.

  3. Engels to Frederick Adolph Sorge, December 2, 1893, in Marx and Engels 1979, Marx and Engels on the United States, Progress Publishers, Moscow, p 333.

  4. Riddell, John 1991, The Communist International in Lenin’s Time, Vol. 1: Workers of the World and Oppressed Peoples, Unite! Proceedings and Documents of the Second Congress, 1920, Pathfinder Press, New York, pp 470—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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