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8일 문재인은 경제 주체 원탁회의라는 이름으로 재계와 노동계 인사들을 청와대로 불렀다. 경제와 보건 위기라는 양대 위기 국면에서 각계 각층이 힘을 모으자는 것이다. 경총 같은 사용자 단체 대표들, 기업 경영자들과 양대 노총 위원장이 이 자리에 참석했다.

그동안 청와대가 민원 들어주겠다며 초청하는 자리는 기업인들 차지였다. 대기업, 수출기업, 중소기업, 외국기업, 벤처기업 등등 종류도 다양하게 불러서 맥주도 대접하고 쓴소리 단소리 들어왔었다.

노동계 대표들에게는 그런 일이 없었다. 그런데 코로나와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해 각계 협력(양보)이 필요하다는 자리에는 노동계 대표들을 부른 것이다. 이것이 문재인 식 노동 존중이다. 노동계는 고통 분담의 주체인 것이다.

그런데 고통을 분담하는 것이긴 할까? 문재인 정부가 경제 주체 원탁회의를 앞두고 한 일들을 생각해 보자. 고용노동부장관 이재갑은 개학 연기로 인한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휴업은 정부 탓이 아니므로 휴업수당을 줄 책임이 없다고 발표했다. 보건복지부장관 박능후는 전 국민을 일주일에 마스크 2개 구하려고 한 시간씩 줄을 서게 만들고는 보건 노동자들이 포함된 방역 의료진들이 마스크를 쌓아놓고 있다고 비난했다.

문재인이 내놓은 추경 예산에는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예산이 없거나 있어도 턱없이 부족하다. 민주노총도 추경 예산이 “취약계층에 대한 재난 수당은 아예 막아 버[렸다]”고 비판했다. 코로나19에 감염되고도 병원에 입원하지 못하고 죽는 일이 생기는데도 병상 확대 예산은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병상 확보를 위해 민간 병원을 통제하는 조처를 취하는 것도 아니다. 말로는 ‘전례 없는’ 대책 운운하면서 말이다.

그러면서 현장 노동자와 인력들을 투입해 겨우겨우 틀어막은 방역 성과를 정부의 성과로 치장해 홍보하기 바쁘다. 정부의 방역 실패를 현장에서 만회하려고 공무원 노동자들이 과로로 죽고, 보건 노동자들이 감염 위험에 노출되면서도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문재인이나 고위 관료들이 이들을 위해 어떤 조치를 취했나?

 친기업 지원

문재인은 이미 2월 초부터 방역(대중의 안전)보다 코로나 위기가 경제(즉 기업)에 미치는 부정적 효과를 줄이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그래서 감염자들이 폭증하기 직전에 이제는 안심하고 경제 활동에 참가하라는 대국민 메시지를 내놨던 것이다.

문재인이 경제 주체 원탁회의에 노동계 대표자들을 부른 것도 노동계 민원을 듣겠다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자신이 추진하는 친기업 위기 대응 기조에 노동계도 협조해 달라는 것이다.

이 점은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이 재난생계소득 100만 원 보편 지급과 노동자 지원 등을 요구한 것에 대해 정부가 취한 태도만 봐도 알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총선을 앞두고 급해진 여당 일각의 보편적 소득 지원 요구를 거절하고 있다. 이를 추경에서 배제하고, 앞으로도 그럴 방침이 없다고 밝힌 경제부총리 홍남기를 두둔한 것은 대통령 자신이다.

오늘(3월 19일) 문재인이 또 전례 없는 대책 어쩌고 했지만 소득 지원 같은 것은 언급도 하지 않았다. 중소 상공인 저리 대출이나 대출이자 감면 조치는 있지만, 이것도 채권자들이 빚을 잘 받아내도록 돕는 것이다. 이처럼 문재인 정부는 코로나 위기와 경제 위기라는 이중의 위기 국면에서 확고하게 친기업 지원 방향을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도 재계 대표자들은 코로나 사태를 이용해 노동시간 제약을 풀고 법인세 감면을 촉구하는 등 더 노골적인 친기업 정책을 요구하고 있다. 민주노총 등의 재난생계소득 지급에는 적극 반대한다. 소득 위기(생계 위협)에 처한 보통 사람들에게 돈 쥐어주지 말고, 기업이 투자할 수 있도록 지원하라는 것이다. 법인세 감면은 기업 이윤을 늘려달라는 청원이자 그래야 투자할 수 있다는 압박이다. 또 기업들은 코로나 사태를 이용해 이미 고려 중이던 구조조정도 추진하려 한다.

 사회적 대화를 통한 위기 극복?

이처럼 정부와 기업의 위기 해결 방안은 노동자들의 위기 해결 방향과 전혀 다르다. 노동계가 정부와 기업주들을 만나 대화로 노동자들의 재난 대책을 설득할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은 몽상이다. 고양이가 쥐 생각해 주길 바랄 순 없다. 현재의 코로나 사태로 인한 노동자·서민의 생계 위기를 사회적 대화로 해결할 수 없는 이유다.

이런 점에서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이 경제주체 원탁회의에 참석하고, 향후 비상경제회의에도 참석할 뜻을 밝힌 것은 우려스럽다.

비상경제회의는 대통령 주재 하에 경제 관료들이 주요 참석 대상이고 “위기 상황 긴급 대응 및 경제 살리기”를 중점 논의 추진하는 기구이다. 필요시 관계부처 장관을 비롯해 사용자 단체장과 양대노총 위원장 등을 참석시킨다는 것인데, 전체 구성에서 노동계를 대변하는 인물은 이 둘이 고작이다. 이와 같은 구성과 의제를 봐도 노동계 요구가 수용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민주노총이 내놓은 재난생계소득 등 노동자들의 긴급한 생활상의 요구는 (앞에서 살펴본 이유로) 정부와의 대화나 각계각층과의 대화로 성취할 수 없다. 친기업으로 맞춰진 정부의 위기 대책 방향을 바꾸려면, 정부를 강제할 집단행동의 힘을 발휘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민주노총이 고통받고 있는 노동자와 취약계층 등에게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길이다.

안타깝게도 민주노총 집행부 일부는 코로나 위기 국면을 사회적 대화 재개의 계기로 삼으려는 듯하다. 노동조합도 국가적·국민적 위기 극복에 동참해야 한다고 보면서 말이다. 민주노총 집행부는 재난 극복을 위한 재정 마련을 위해 노동자 측의 양보 추진 의사도 시사했다. “진보적 조세개혁을 통한 복지증세, 고용보험 등 사회보험료 인상, 코로나 사회연대기금 조성 방안 등을 위해 조직내 논의를 추진할 것[이다.]”

이것은 그동안 노동운동 내에서 논의돼 온 ‘사회연대 방안’들로서 정규직 노동자들의 세금 부담을 늘리거나 임금 일부를 양보해 기금을 마련하자는 내용과 유사하다. 그러나 지금 사용자들이 코로나 사태를 명분으로 임금 억제, 노동시간 연장, 노동법 개악 등을 압박하는 마당에 노동자 양보를 시사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이는 최소한의 요구를 위한 투쟁조차 어렵게 만드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 운동을 분열시키고 마비시킬 위험이 있기 때문에 더 그렇다.

지금 코로나 사태에 직면해 노동자들이 재난 대책을 요구하는 방식은 결국 투쟁일 수밖에 없다. 방심하다가 방역에 완벽하게 실패한 이탈리아 정부마저도 지금 ‘60일간 노동자 해고 전면 금지’를 내놓은 것은 이탈리아 노동자들이 긴급 재난 대책을 요구하면서 파업을 벌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정부와 기업들은 이 기회를 오히려 구조조정 추진과 노동권을 약화시키는 계기로 삼으려 할 것이다. 노동자들도 고통 분담에 동참하라는 이데올로기를 앞세워서 말이다. 1998년(IMF를 불러들인 경제 위기)에 정부와 사용자들이 민주노총 지도부를 노사정위원회로 끌어들여서 정리해고와 파견법 등에 합의하도록 했던 일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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