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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데이비스 특별 기고:
코로나19, 전염병의 해

이 글은 3월 14일에 번역 소개된 글 ‘코로나19: 기어이 괴물이 오고야 말았다’를 개정·증보한 것이다. 마이크 데이비스는 《코로나19, 자본주의의 모순이 낳은 재난》(책갈피, 근간) 발간 소식을 듣고 자신의 글을 개정·증보해 보내줬다. 책갈피 출판사 측의 양해를 구해 먼저 게재한다. 

마이크 데이비스는 미국의 사회주의자로 국내에 번역된 책으로는 《조류독감 : 전염병의 사회적 생산》(돌베개, 2008)《슬럼, 지구를 뒤덮다》(돌베개, 2007)《엘니뇨와 제국주의로 본 빈곤의 역사》(이후, 2008년), 《한권으로 읽는 자동차 폭탄의 역사》(전략과문화, 2011년), 《미국의 꿈에 갇힌 사람들》(창작과비평사, 1994) 등이 있다.

코로나바이러스[1]는 여러 번 본 옛날 영화 같다. 이미 1995년에 리처드 브레스턴이 르포 《핫존: 에볼라 바이러스 전쟁의 시작》에서 중앙아프리카 동굴의 비밀스런 박쥐 동굴에서 탄생한 (훗날 에볼라바이러스로 알려진) 죽음의 악마를 소개한 바 있다. 에볼라는 인류의 면역 체계가 경험하지 못 한 ‘미개척지’(적절한 용어다)에서 잇따라 발생한 새로운 질병들 가운데 최초의 사례였을 뿐이다. 뒤이어 조류독감이 1997년 인간에게 전파되기 시작했고, 2002년 말에는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이 등장했다. 두 질병 모두 세계 제조업의 중심지 광둥성에서 처음 발병했다.

당연히도 헐리우드는 전염병 유행이라는 소재를 가져다 자극적이고 무서운 영화들을 게걸스럽게 만들어냈다. (그중 스티븐 소더버그의 2011년작 〈컨테이젼〉은 과학적으로 엄밀하고 작금의 혼돈을 귀신같이 예측한 탁월한 영화다.) 감염병이 한 번 번질 때마다 영화뿐 아니라 수없이 많은 선정적 소설들, 수백 권의 진지한 분석서들, 수천 편의 과학 논문들이 쏟아져 나왔다. 다수는 그런 신종 감염병을 발견하고 대처할 태세가 전 세계적으로 형편없이 안 돼 있다고 강조했다.

컨테이젼

그러니 코로나19라는 익숙한 괴물이 우리 눈앞으로 걸어온 것이다. 바이러스의 유전체(연구가 활발히 이뤄진 사스와 매우 유사하다)를 분석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지만, 가장 중요한 부분들은 아직 미지의 영역이다. 연구자들은 이 바이러스의 특징을 알아내려 밤낮으로 일하고 있지만, 세 가지 큰 난관에 봉착해 있다. 첫째, 특히 미국과 아프리카에서 진단 키트가 계속 부족해 증식률, 감염자 수, 사망하지 않은 감염자 수 같은 주요 변수들을 정확하게 추정하기 어려워졌다. 그 결과는 혼란스러운 수치들이다.

둘째, 매년 유행하는 인플루엔자와 마찬가지로 코로나19는 연령 구성과 건강 상태가 상이한 인구 집단들을 거치면서 변이하고 있다. 미국인이 걸릴 가능성이 가장 큰 변종은 이미 우한에서 처음 발병한 것과 약간 다르다. 이후의 변이는 사소한 것일 수도 있지만, 바이러스의 독성에 민감한 인구 집단이 50세 이상 연령층인 현 상태가 바뀌는 [작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트럼프가 ‘코로나 독감’ 운운하는 것은 최소한 (면역 체계가 취약하고 만성적 호흡기 질환이 있는) 미국 노년층 중 4분의 1을 치명적 위험에 빠뜨리는 것이다.

셋째, 코로나19가 안정되고 거의 변이를 일으키지 않는다 해도 빈곤국과 빈곤층에서는 나이 어린 집단이 받는 영향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1918~1919년에 국제적으로 발병한 스페인 독감을 보라. 스페인 독감은 당시 인류 전체의 1~2퍼센트를 사망케 한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과 유럽에서, 초기 H1N1[스페인 독감 바이러스]은 젊은 성인에게 가장 치명적이었다. 젊은 성인들은 면역 체계가 비교적 더 강력한데, 그 면역 체계가 과민 반응을 일으켜 폐세포를 공격하고 바이러스성 폐렴과 패혈성 쇼크를 유발한 결과라고 흔히 설명된다. 그러나 최근 역학자들 몇몇은 당시 노년층이 바이러스가 처음 유행했던 1890년대에 [바이러스에 감염돼] ‘면역 기억’을 얻었을 수도 있다는 이론을 제시하기도 한다.

여하간에,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는 병영과 참호에서 쉽게 퍼져 수많은 젊은 병사의 목숨을 앗아간 것으로 악명이 높다. 1918년 독일의 춘계 공세가 무너지고 결국 전쟁에서 독일이 패한 것은 독일 등 동맹국과는 달리 연합국은 병든 군인들을 새로 파병된 미군으로 보충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평가가 있다.

그러나 빈국에서는 스페인 독감의 양상이 달랐다. 당시 전 세계 사망자의 60퍼센트(적게 잡아도 2000만 명이다)가 인도 서부의 펀자브, 봄베이 등지에서 나왔다는 사실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당시 이곳에서는 영국으로 막대한 양의 곡물을 수출했고, 곡물 징발이 가혹하게 시행됐으며, 극심한 가뭄까지 겹쳤다. 그 결과 식량 부족으로 수많은 빈민이 기아선상으로 내몰렸다. 결국 이 지역 사람들은 면역 반응을 약화시키는 영양실조와 세균성·바이러스성 폐렴의 유행이 겹쳐 만들어진 재앙적인 상승 작용에 희생됐다. 이와 비슷한 사례로, 영국 점령하 이란에서는 스페인 독감이 오랜 가뭄, 콜레라, 식량 부족에 뒤이은 말라리아 대유행과 만나 이란인 약 5분의 1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런 역사(특히 영양실조와 기존 전염병이 상호작용해 낳은 잘 알려지지 않은 결과)를 보면, 코로나19가 아프리카와 남아시아의 북적대고 질병이 들끓는 빈민가에서 더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경각심을 느껴야 마땅하다. 일각에서는 사하라 이남 지역 아프리카 도시의 평균 연령이 세계에서 가장 낮고 65세 이상 노년층은 전체 인구의 3퍼센트밖에 안 되기 때문에 (반면 이탈리아는 노년층 인구가 23퍼센트다) 코로나19의 영향이 가벼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1918년 경험에 비춰 보면 어리석은 추론이다. 그런 가정대로라면 코로나19는 계절성 인플루엔자와 마찬가지로 따뜻한 지역에서는 약화돼야 할 것이다. (영화배우 톰 행크스와 그의 배우자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코로나19에 감염됐는데, 감염 당시 오스트레일리아는 여름이었다.)

오히려 3월 15일 《사이언스》가 아프리카는 “시한폭탄”이라고 경고한 것이 더 그럴듯하다. 인구 다수가 영양실조 상태일 뿐 아니라 면역 체계가 취약하다는 점은 폭발적인 바이러스 확산의 동인이 된다. 지난 한 세대 동안 HIV(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에이즈로 아프리카인 3600만 명이 죽었다. 연구자들은 지금도 아프리카인 2400만 명이 HIV 보균자일 것이고 300만 명 이상이 폐결핵 환자일 것이라고 추정한다. 케냐 키베라, 남아프리카공화국 하엘리샤 같은 초대형 빈민가에서 사회적 거리 두기란 명백히 불가능하며, 아프리카인 절반 이상에게는 깨끗한 식수나 기초적 위생 시설도 없다. 그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보건·의료가 가장 취약한 여섯 나라 중 다섯 군데가 아프리카에 있고, 그중 하나는 여섯 나라 중 인구가 가장 많은 나이지리아다. 케냐는 의사·간호사를 해외에 파견하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케냐의 중환자 병상은 정확히 130개고, 코로나가 케냐에 번지면 이에 대처할 수 있는 중환자전문간호사는 200명뿐이다.

아프리카

1년 뒤 우리는 중국의 성공적인 방역에 감탄하고 미국의 방역 실패에 경악하며 지금을 돌아보게 될지도 모른다.(지금 나는 전파가 급격히 감소했다는 중국의 발표가 어느 정도 정확하다는 모험적인 가정을 하고 있다.) 물론 미국의 기관들이 판도라의 상자를 닫지 못하는 것은 별로 놀랍지 않다. 2000년 이래 일선 의료 서비스는 거듭 붕괴해 왔다.

20년 동안 이윤 논리에 따라 입원 병상을 줄여 온 결과, 인플루엔자가 전국의 병원들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유행했던 2009년과 2018년 모두 병상이 터무니없이 부족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이 위기는 로널드 레이건이 집권해 친기업적 공세를 가하고 민주당 지도부가 신자유주의의 대변자로 탈바꿈한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병원협회AHA에 따르면, 1981~1999년 사이 미국에서 입원 병상의 39퍼센트가 사라졌다. ‘재원 환자 수’(병상을 차지한 환자 수)를 늘려 수익성을 높이려는 목적에서였다. 그러나 경영진이 목표한 병상 이용률 90퍼센트 달성이 뜻하는 바는, 전염병 유행기나 의료적 비상 시기에 폭증하는 환자를 수용할 능력이 이제는 없다는 것이다.

민간 부문에서는 단기배당금과 수익성을 늘려야 한다는 주주가치론 때문에, 공공부문에서는 긴축 재정과 주정부·연방정부 편성 예산 감축 때문에 21세기 들어 응급의료 영역이 계속 축소됐다. 그 결과 중증 코로나19 환자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는 지금 이 환자들을 수용할 중환자 병상이 [미국에는] 4만 5000개뿐이다(미국 인구 1000명당 병상 수는 남한의 3분의 1밖에 안 된다). 〈USA투데이〉 탐사보도를 보면, 미국에서 8개 주州만이 코로나19에 취약한 60세 이상 인구 100만 명을 감당할 만큼의 병상을 보유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공화당은 2008년 불황으로 예산이 삭감돼 파탄 난 사회안전망을 복구하려는 노력 일체를 극구 거부하고 있다. 감염병 방어전의 사활적 최전선인 지역 및 주 보건 당국은 주가가 폭락한 12년 전 ‘검은 월요일’ 당시에 견줘 인력이 25퍼센트 적다. 설상가상으로,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 실질 예산은 지난 10여 년간 10퍼센트 줄었다. 도널드 트럼프 취임 이후 재정 감축은 상황을 악화시켰을 뿐이다. 최근 〈뉴욕 타임스〉는 이렇게 보도했다. “2017회계년 당시 지역 병원 예산이 21퍼센트 감축됐다.” 트럼프는 백악관 산하 유행병상황실도 없앴다. 이 기구는 버락 오바마가 2014년 에볼라바이러스 유행 후 신종 전염병에 맞서 잘 조율된 전국적 대응을 신속히 조직하려고 설립했던 것이다.

미국은 의료판 카트리나의 초기 단계에 있다. 전문가 모두가 응급의료를 대폭 확충하라고 권고했는데도 투자하지 않아, 미국에는 인공호흡기나 응급병상 같은 재래식 장비마저 부족하다. 전국적으로나 지역적으로나 비축량은 유행병 모의실험에서 나온 결과에 비춰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진단 키트 부족으로 소동이 일어났을 때 의료인력을 위한 보호 장비도 턱없이 모자랐다. 미국 사회의 도덕적 지주인 전투적 간호사들은 N95 마스크 같은 필수적인 보호 장비를 충분히 비축하지 않으면 매우 위험하다는 것을 모두에게 일깨우려 하고 있다. 이 간호사들은 황색포도상구균과 클로스트리듐 디피실 등 항생제 내성균이 자라는 최적의 조건이 병원에 형성됐고, 병동에 환자가 과밀하게 되면 항생제 내성균에 의한 사망자가 속출할 수 있음을 환기시켰다.

N95 마스크

코로나19 확산으로 보건 영역에서 계급 격차가 극심하다는 점이 즉각 드러났다. [버니 샌더스 선거운동 지지자들의 단체] ‘아워 레볼루션’이 이를 전국적 쟁점으로 만들었다. 좋은 의료 보험에 가입해 있고 집에서 일하거나 [자녀를] 가르칠 수 있는 이들은 안전 조처만 주의 깊게 따른다면 편안하게 격리될 수 있다. 의료 혜택을 어정쩡하게 누리는 공무원과 조직 노동자들은 소득과 자기 보호 사이에서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 수많은 저임금 서비스 노동자, 농업 노동자, 보험이 없는 파견 노동자, 실업자, 노숙자들은 속수무책일 것이다.

모두 알다시피 보편적 의료보험이 의미 있으려면 유급 병가가 보편적으로 보장돼야 한다. 현재 미국 노동 인구 45퍼센트가 유급 병가를 보장받지 못하며, 이 때문에 감염병 전파자가 되느냐 입에 풀칠도 못하느냐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한편, 공화당은 자신들이 주정부를 잡은 14곳에서 ‘부담 적정 보험법’ 도입을 거부하고 있다. 이 법은 저소득층 건강보험(‘메디케이드’)을 가난한 노동자들에게 확대 적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때문에 예컨대 텍사스주 인구 4분의 1이 [일반 병동에 입원하기에는] 보장 범위가 좁은 보험의 적용을 받고 있어서, 지역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려면 응급실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전염병이 창궐하는 시기에 민간 보험이 갖는 치명적 모순은 미국 노인 250만 명을 수용하는 영리 요양 산업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들은 대부분 노년층 건강보험(‘메디케어’) 대상자다. 영리 요양 산업은 저임금, 인력 부족, 불법적 비용 절감을 특징으로 하는 매우 경쟁적인 산업이다. 요양 시설이 기초적 감염병 대응을 방기하고 정부가 관리 책임을 지지 못해 매년 수만 명이 사망한다. 고의적 살인이라는 말 외에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특히 미국 남부 주들에 있는) 많은 요양원들은 인력을 충원하고 충원 인력에 적절한 훈련을 제공하는 것보다 위생 관리 기준을 위반하고 벌금을 무는 것이 싸게 먹힌다고 본다.

시애틀 교외의 커클랜드에 있는 요양원 ‘라이프케어센터’가 지역사회 감염의 첫 번째 중심지였던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나는 시애틀 지역 요양원 노동조합 조직자인 내 오랜 벗 짐 스트라웁과 얘기를 나눴다. 그는 최근 《더 네이션》에 관련 글을 기고하고 있다. 스트라웁은 ‘라이프케어센터’가 “미국에서 인력이 가장 부족한 곳 중 하나”라고 묘사했고, 워싱턴주의 요양원 제도 전반을 “미국에서 재정이 가장 열악하고 첨단 산업의 돈이 흘러넘치는 곳에서 내핍으로 고통받는 어처구니 없는 오아시스”라고 묘사했다.

더 나아가 스트라웁은 ‘라이프케어센터’에서 시작된 감염이 인근 요양원 10곳으로 눈 깜짝할 새 번진 핵심 요인을 공중보건 당국이 간과한다고 지적했다. “미국에서 가장 비싼 임대시장에서 일하는 이 요양원 노동자들은 하나같이 일자리가 여러 개입니다. 보통은 여러 요양원에서 일하는 거죠.” 스트라웁은 당국이 이 노동자들의 두 번째 직장 이름과 위치를 찾아내는 데 실패해 코로나19 확산에 대한 통제력을 모조리 상실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현재까지 어느 누구도 감염병에 노출된 노동자들에게 유급 휴직을 권고하지 않고 있다.

미국 전역에서 요양원 수십 곳, 십중팔구 수백 곳이 코로나19의 주요 온상이 될 것이다. 결국 많은 노동자들이 푸드뱅크 신세를 질지, 그토록 열악한 조건에서 일할지, 아니면 [일자리를 잃고] 집에 있을지 사이에서 선택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요양 시스템이 붕괴할지도 모른다. 주방위군이 환자들의 요강을 비워주러 오기를 바랄 수는 없을 것이다.

요양원

코로나19 대유행 사태가 악화되는 국면마다 보편적 의료보험, 유급휴가 보장의 정당성이 널리 회자된다. 바이든은 트럼프 비판에 소극적이지만, 버니 샌더스가 제안했듯 진보 진영이 단결해 민주당 전당대회장을 전국민 단일건강보험(‘메디케어 포 올’)으로 휩쓸어야 한다. 샌더스와 워런의 대의원 수를 합치면 민주당 전당대회장에서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할 만하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거리에서 하는 구실도 똑같이 중요하다. [집세 미납으로 인한] 퇴거에 맞서, 해고에 맞서, 유급휴가 쟁취를 위해 지금부터 투쟁하는 것 말이다. (코로나19 때문에 거리로 나오기 두려운가? 그러면 시위 참가자들 사이에 3미터 간격을 두고 서라. TV에 더 강렬한 이미지로 비칠 것이다. 우리는 거리를 되찾아와야 한다.)

그러나 보편적 의료보험 및 그와 연관된 요구들은 단지 첫걸음일 뿐이다. 실망스럽게도 민주당 대선 후보 예비경선 1차 토론에서 샌더스나 워런 어느 누구도 거대 제약회사들이 새로운 항생제와 항바이러스제 연구·개발을 방기한다는 점을 폭로하지 않았다. 대형 제약회사 18곳 중 15곳이 이 분야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심장약, 중독적인 신경안정제, 남성 발기부전 치료제는 이윤 창출의 선두주자일 뿐, 병원 내 감염, 신종 질병, 전통적인 열대 감염병에 대한 방어책이 아니다. 보편적인 인플루엔자 백신(즉, 바이러스의 표면 단백질 중 변하지 않는 부분을 겨냥한 백신)은 수십 년 동안 실현 가능한 영역 내에 있었지만 결코 수익성 있는 우선 개발 대상이 아니었다.

항생제 혁명이 후퇴함에 따라 새 감염병과 함께 옛 감염병이 부활하고 병원은 시체 안치소가 될 것이다. 심지어 트럼프조차 터무니없이 높은 진료 비용을 기회주의적으로 비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의약품 독점을 타파하고 구명 의약품을 공적으로 생산하기 위한 더 대담한 비전이다. (예전에도 구명 약품은 공적으로 생산됐다. 제2차세계대전 당시 미국 육군은 최초의 독감 백신을 개발하려고 조너스 소크와 다른 연구자들을 징집했다.) 나는 15년 전 《조류독감: 전염병의 사회적 생산》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백신, 항생제, 항바이러스제를 포함한 구명 의약품 이용은 보편적이고 무상으로 누릴 수 있는 인권이어야 한다. 그러한 의약품을 저렴하게 생산할 동기를 시장이 제공할 수 없다면, 정부와 비영리 기관들이 그것의 제조와 유통을 책임져야 한다. 가난한 사람들의 생존이 대형 제약회사들의 이윤보다 언제나 더 우선돼야 한다.

코로나19가 유행하는 지금은 여기서 더 나아가야 한다. 이제 자본주의적 세계화는 진정한 국제적 공중 보건 인프라 없이는 생물학적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은 듯 보인다. 그러나 대중 운동이 거대 제약회사와 영리 의료의 힘을 꺾기 전까지 그런 인프라는 결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려면 인간 생존에 관한 사회주의자들의 독립적 전망이 필요하다. ‘제2의 뉴딜’도 그 전망의 일부지만 사회주의자들의 전망은 그 이상이다. [2011년] ‘점거하라’ 운동의 나날들 이후 진보 진영은 소득과 부의 불평등에 맞선 투쟁을 성공적으로 시작했다. 훌륭한 성취다. 그러나 이제 사회주의자들은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의료 산업과 제약 산업을 당면한 목표로 삼고 경제 권력의 사회적 소유와 민주화를 주장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신의 정치적·윤리적 약점을 정직하게 평가하기도 해야 한다. 새로운 세대가 좌경화하고 ‘사회주의’라는 단어가 정치적 논쟁의 장에 귀환한 것 때문에 우리 모두 고무됐지만, 진보 운동 안에는 새로운 애국주의와 거울쌍인 자국 중심주의라는 껄끄러운 요소도 있다. 미국 좌파들은 미국 노동계급과 미국의 급진적 역사만 말한다.(유진 뎁스가 뼛속까지 국제주의자였음을 망각한 듯하다.) 때로 미국 우선주의의 좌파적 버전과 흡사하게 튀기도 한다.

팬데믹에 대처함에 있어 사회주의자들은 국제사회주의의 시급성을 일깨울 기회를 모든 상황에서 모색해야 한다. 사회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진보적인 친구들과 그들이 따르는 인기 정치인들이 진단 키트, 보호 장비, 구명 약품 대량 생산과 빈곤국들에 대한 무상 분배를 요구하게끔 선동해야 한다. 보편적 보건·의료가 국내 정책뿐 아니라 대외 정책 또한 되게끔 하는 것은 우리 손에 달렸다.



[1] 과학 용어가 굉장히 혼란스럽게 사용되고 있다. 국제바이러스분류위원회는 이 바이러스의 정식 명칭을 ‘사스-코로나바이러스-2’라고 지정했다. ‘코로나19’는 이 바이러스가 전염되는 유행 상태를 지칭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