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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팬데믹:
4월 개학은 위험천만한 도박이 될 것이다

지금 문재인 정부는 개학 시점을 두고 고민에 빠져 있다. 현재로서는 4월 6일 개학은 사실상 방역을 완화한다는 뜻이다. 감염은 십중팔구 확산될 것이다. 30명의 확진자가 생긴 1~2월의 1차 파도 때도, 수천 명의 확진자가 발견된 2~3월 2차 파도 때도 정부는 확산을 가까스로 통제할 수 있었다. 전국적 휴교령이 이를 가능하게 했을 것이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괜찮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는 헛된 것이다. 호주와 동남아시아에서도 감염이 확산되고 있다. 인플루엔자 유행 패턴을 보면 아이들 사이에 감염이 확산되면 가족 내 감염으로 이어질 개연성이 매우 크다.

신도림역 퇴근길 여전히 확진자가 수십 명씩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방역 조처를 완화하는 것은 커다란 위험을 낳을 것이다 ⓒ조승진

한국의 병상 수가 OECD 1위라는 보도가 많다. 1000명당 13개 정도로 일본과 1~2위를 다투고 있다.

2019년 말 현재 한국의 병상 수는 70만 3468개로, 2005년 37만 6364개에 비해 크게 늘었다. 그러나 늘어난 병상의 대부분은 요양병원으로, 2000년대 이래 크게 늘어 30만 2840개를 차지한다. 이를 제외한 수치를 ‘급성기 병상’ 수라고 부르는데, 이 수치는 1000명당 7개 정도로, 1980년대 OECD 평균 수준이다.(그 사이에 유럽 ‘복지국가’에서는 병상 수가 줄어 지금은 1000명당 다섯 개 정도로 줄었다.)

같은 기간 한국의 중환자실 병상은 2500개가량 줄었다! 중환자실 설치 기준이 강화됐기 때문인데, 병원급 의료기관들이 이 기준을 따를 경우 적자가 난다며 중환자실을 그냥 없애버렸다. 민간 병원들에 의료를 맡겨 둔 결과다. 현재 한국의 중환자실은 1만 개가 조금 넘는데, 병상 이용률은 90퍼센트 가까이 돼, 코로나19로 인한 중환자가 1000명만 넘겨도 참극이 벌어질 수 있다.

단지 앞날에 대한 얘기가 아니다. 3월 24일 국회 앞에서 열린 무상의료운동본부 주최 기자회견에서 현정희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장은 현재 대구의 상황을 이렇게 폭로했다.

“대구시장이 뭔가 안정돼 가는 것처럼 보도하지만 엄청나게 많은 환자가 일반 병실에 입원해 있습니다. 대구에는 국가지정음압병실이 겨우 23개 있습니다. 그런데 병원 노동자들은 [바이러스 노출 위험이 있는 상황에서] 보호장구도 제대로 지급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요양원에서 확진자가 늘면서 거동이 불편한 환자도 계속 늘고 있습니다. 간호사 한 명이 확진자 19~20명을 봐야 합니다. 똥오줌도 받아내야 합니다. 여기에 정부는 숙련되지도 않는 국군간호학교 졸업생들을 보냈습니다. 이들이 어떻게 이런 일을 견뎌 내라는 얘깁니까?”

대구에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을 검사할 수 있었던 것은 젊고 사명감 있는 20대 의사들(공보의, 군의관 등)을 대거 투입해 집집마다 방문해 검사를 했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토록 위태로운 상황을 못 본 체하고 문재인 정부가 개학을 했다가는 겉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

세계 지도자들의 대응은 대중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코로나19 대처를 두고 전 세계 지배자들이 갈팡질팡하고 있다. 트럼프가 대표적이다. 미국은 유럽에 이어 새로운 진원지가 됐다. 트럼프는 국내에서는 ‘외출 제한령’을 내려 인구의 절반 가까이를 집에 격리시켰다. 그러나 늦어도 너무 늦었다. 확진자는 매일 1만 명씩 늘고 있고 조만간 이탈리아와 중국을 앞지를 것 같다.

트럼프가 신종 감염병의 위험을 무시한 대가를 미국 노동계급이 톡톡히 치르고 있다.

뉴욕의 코로나19 사망자 추이는 지금까지 최악의 상황을 기록한 이탈리아 롬바르디아보다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주는 진단 키트가 턱없이 부족해, 정부가 지정한 의심환자만 검사하기에도 벅찬 수준이다. 트럼프가 문재인 정부에 진단 키트를 지원해 달라고 한 이유다.

주요 도시의 사망자 증가 추이 뉴욕은 이탈리아의 롬바르디아보다 사망자 증가 속도가 빠르다 [확대]

이대로라면 경제 불황이 1930년대 대불황을 방불케 할 것이라는 전망 때문에 트럼프는 하루빨리 “평상시”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자신이 명령한 격리 시한인 3월 30일 이후에는 격리를 완화하고 경제 활동을 재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 자본주의의 수장으로서 기업주들의 이윤 창출이 중단되는 것을 지켜보고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윤 창출은 노동자들의 노동에 의존한다는 단순한 사실 때문에 트럼프는 진퇴양난에 빠졌다. 영국 총리 보리스 존슨이 꺼냈다가 곧 철회해야 했던 ‘집단 면역 획득’은 미국에서만 200만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 중 대부분은 노인들이겠지만 그 노인들의 자녀인 노동자들이 그런 상황을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대규모 저항이 벌어질 수도 있고(그러길 바란다), 소극적 저항(도피)만 만연해져도 생산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노동계급 대중의 목숨을 두고 벌인 도박에서 자신도 패배할 것이다.

그러나, 전 세계 지배자들의 고민도 트럼프의 딜레마와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다.

치료제

인류는 아직 ‘사스-코로나바이러스-2’에 대해 잘 모른다. 그러나 지금까지 경과를 봤을 때 코로나19의 위협에서 벗어나는 길은 세 가지밖에 없어 보인다.

첫째, 치료제를 개발하는 것이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인플루엔자에는 치료제(타미플루)가 개발돼 있어서 인플루엔자 유행 때문에 사회가 마비되는 일은 피할 수 있다.

그러나 코로나19 치료제 개발은 지금으로서는 얼마나 걸릴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에이즈 치료제나 에볼라 바이러스 치료제(개발 중), 기생충 약 등을 써 보고 있지만 의사들 자신이 그 효과를 반신반의하는 상황이다.

둘째, 백신을 개발하는 것이다. 백신이 있다면 불과 몇 달 안에 2009년 신종플루 때처럼 집단 면역을 획득할 수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백신 개발까지는 아무리 빨라도 1년 이상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변이가 빠른 바이러스라서 개발을 해도 그 효과를 장담하기가 어렵다. 수십억 명을 대상으로 팔 수 있는 상품인데도 대기업들이 쉽게 뛰어들지 않는 까닭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하듯이, 당장 정부가 대규모 투자로 백신을 개발하고 공적으로 관리·통제하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셋째, 지금 남은 (인간적인) 유일한 대안은 백신이 개발될 때까지 버티는 것이다.

그때까지 우한, 대구, 롬바르디아, 뉴욕 같은 상황을 피하려면 증가 속도를 낮춰야 한다. 환자 수가 공공의료 시설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면 병실이 없어 대기하다가 병세가 악화돼 사망하고, 그 과정에서 감염이 더 확산되는 악순환을 겪기 때문이다. 물리적 거리 두기가 제대로 시행돼야 하는 이유다.

문재인 정부가 지금처럼 공장과 사무실이 제대로 가동되도록 지원하는 것은 사실상 보리스 존슨의 계획이 머릿속 한켠을 차지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일 뿐이다.

한계치

그렇다면, 이제 문제는 확진자의 증가 속도를 얼마나 늦추느냐는 것이다. 공공의료 시설이 제공하는 한계치가 얼마냐가 결정적일 것이다.

한 계산법에 따르면, 미국에서 공공의료 시설의 한계 이내로 증가 속도를 조절하려면 앞으로 5000일 동안 환자 증가를 통제해야 한다. 그러려면 지금보다 더 엄격한 격리와 방역 조처를 취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랬다가는 경제 위기가 얼마나 심각해질지, 얼마나 오래갈지 어림짐작하기조차 어렵다. 이는 세계 자본주의 속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지위를 위협할 수도 있다.

역사적 경험으로 보면, 미국 지배자들은 지위 약화를 막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할 것이다. 근린궁핍화와 무역 보호 정책 등으로 다른 경제들이 더 빨리 망하도록 하려 할 수도 있고, 국내 억압을 강화해 노동자들이 희생을 참고 버티도록 할 수도 있다. 심지어 제국주의적 전쟁도 옵션에서 배제되지 않을 것이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의 보도를 보면, 중국 지배자들은 후자를 선택한 듯하다. 무려 4만여 명의 확진자를 통계에서 누락시켰다는 것인데, 정부가 규정한 ‘증상’이 없으면 검사를 하지 않는 식으로 무시했다고 한다. 중국 정부는 “그들[무증상 감염자]은 감염력이 낮다”고 답해 이 보도를 사실상 인정했다. 중국 정부는 보리스 존슨이 말로만 했고 트럼프가 할까 말까 망설인 그 방법을 실천에 옮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른 나라들은 어떨까? 신자유주의와 긴축으로 공공의료를 크게 약화시킨 나라들에서 참사가 벌어지고 있다. 이미 통제를 벗어난 나라들 — 이탈리아, 스페인, 미국 등 — 도 있고 아슬아슬한 나라들도 있다. 이들 모두 언제까지 이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이 투쟁의 끝에 이들 사이의 서열과 미래 경쟁력이 달라질 수도 있다. 주요국 지배자들의 대응과 미래 선택이 아주 위험해 보이는 까닭이다.

OECD 국가들의 공공병상 감축은 감영병 대처 능력을 갉아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