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가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생산 차질을 빌미로 노동시간 연장을 추진하고 있다.

현대차 사측은 법적으로 제한된 주당 52시간 근무에 더해 최대 8시간의 특별연장근로를 합의해 달라고 노조에 제안했다(현대차지부 소식지). 현재 노동자들이 주당 최대 48시간(평일 40시간 + 토요일 특근 8시간) 근무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매주 12시간을 더 일해야 할 수 있다.

그러나 여전한 코로나19 감염 위험에서 노동자들과 그의 가족·이웃의 안전을 지키려면 생산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당분간 조업을 중단해야 한다. 임금을 온전히 보전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기업의 이윤을 우선시하는 냉혈한 자본주의 시장 논리가 이를 가로막고 있다. 현대차 사측은 이 와중에 되레 장시간 노동을 부활해 노동자들을 혹사시키려 한다. 어떻게든 2월 생산 부진을 만회하고, 재고를 쌓아 세계 시장 점유율을 높이려는 심산이다.

현대차가 노동시간을 연장하면, 현대차에 납품하는 협력사 노동자들도 특별연장근로에 협조하라는 요구를 받게 될 것이다. 자동차산업을 비롯해 제조업 전반에 악영향이 미칠 수 있다.

국내 자동차 기업들로 구성된 자동차산업협회도 지난 3월 10일 특별연장근로 대폭 허용, 유연근로 확대, 파견·대체근로 허용, 비정규직 활성화 등을 정부에 요구했다.

3월 12일에는 민주당이 집권한 울산시가 ‘자동차 업계의 주 52시간 근무시간제 한시적 유예’를 발의했다. 전국 17개 시도지사 공동 명의로 대정부 정책 건의를 추진했는데,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반대로 일단 무산됐다(비슷한 시도가 있을 수 있다). 물론 이재명도 기존 특별연장근로 제도를 활용하자며 노동시간 연장을 부정하지 않았다.

주 52시간제 무력화에 앞장서고 있는 민주당 3월 20일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 이동권 북구청장(오른쪽, 민주당)이 이상수 노조 지부장에게 자동차 부품 협력사 대표들이 서명한 '특별연장근로 촉구 탄원서'를 전달하고 있다 ⓒ출처 울산시 북구

문재인 정부는 기업주들의 노동시간 단축 무력화를 기꺼이 지원하고 적극 권장해 온 장본인이다. 정부는 올해 초 특별연장근로 인가 기준을 대폭 완화했다. 그 지침에 따라 기업주들은 “경영상 필요”하면 연장근로를 신청할 수 있었다.

그 결과, 2017년 한 해 동안 15건에 불과했던 특별연장근로 인정 사례는 올해 1월 1일부터 두 달 반 만에 무려 500건이 넘었다. 특히 정부는 지난달 말 자동차 업계의 특별연장근로를 신속 인가하겠다고 약속하며 제도 활용을 적극 촉구하고 있다.

생산량 증대 협조가 부를 양보 압박의 악순환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들은 단호하게 노동시간 연장을 거부하고 투쟁함으로써 조건을 방어할 수 있다. 현행법상 기업이 특별연장근로를 신청하거나, 기존의 단체협약 이상으로 노동시간을 연장하려면 노조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조직노동자들은 이를 활용해 저항하기가 좀더 수월할 수 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현대차지부 집행부는 생산량 만회에 협조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 왔다. 지난해 말 당선한 이상수 우파 집행부는 “생산량 만회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며 사측과의 협력을 강조했다. 회사가 잘 나가야 “공정한 성과 배분”도 요구할 수 있고, 부품·협력사 노동자들도 살릴 수 있다는 논리를 댔다.

그러나 적잖은 노동자들은 어렵사리 정착시켜 온 노동시간 단축을 되돌리려는 데 불만이 있다. 또다시 야간 잔업이나 일요일 특근까지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일부 노동자들은 임금 조건을 지키려면 불가피하게 생산량을 늘리는 데 협력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지금처럼 경제가 악화하는 상황에서는 사측이 생산 저조를 이유로 노동자들의 조건을 압박하려 들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시적으로 노동조건 후퇴를 감내해 잔업·특근 수당을 좀더 받을 수 있더라도, 이것이 지속될 수 있을까? 오히려 노동자들이 양보하는 것을 보면서 사측은 더한층의 조건 후퇴나 임금 삭감 등의 공격을 하려고 달려들 수 있다. 이것은 지난 몇 년간 한국GM에서, 중소 부품사들에서, 조선업에서 노동자들이 겪어 온 일이다. “도대체 우리가 언제까지 얼마나 더 빼앗겨야 하는가!”

더구나 노동자들이 회사의 생산량·수익성 상황에 임금과 노동조건을 종속시키면 조건을 방어하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다. 세계경제 위기로 향후에 자동차 산업 전반의 수익성이 더 악화할 공산이 크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측의 공세는 더 맹렬해질 것이다. 

무엇보다 회사를 위해 사측에 협력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또 다른 핵심적인 문제가 있다.

현대차 노동자들이 노동시간 연장을 받아들여 생산량을 늘리면, 그것이 잘 팔린다는 가정하에서 사측은 수익이 늘어날 수 있다.(물론, 일부 애널리스트가 지적하듯 현대차의 재고 쌓기가 오히려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면 공장을 일시 폐쇄한 폭스바겐, 포드, 도요타 등에 대해 현대차가 경쟁력을 갖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제 현대차의 경쟁업체들은 자국의 폭발적 확진자 증가세가 다소 잦아드는 기미가 보이면 다시 생산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할 것이다. 자기 노동자들에게 ‘우리도 현대차의 선례를 따르자’고 압박하면서 노동시간을 연장하고 노동강도를 높일 수 있다. 그러면 다시 현대차 사측이 우리도 뒤질 수 없다며 현대차 노동자들에게 말할 것이다. ‘한 번 더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겠다.’

이런 바닥을 향한 경쟁은 2008년 세계경제 공황 이후 자동차 산업에서 거듭 벌어져 왔다. 그 속에서 노동자들은 양보에 양보를 거듭 강요 받는 악순환에 처했다.

부품사 노동자에게도 해로운

노동자들이 조금의 희생을 수용하면 회사도 살고 노동자도 사는 길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노사가 협력해 서로 윈윈 하자는 것은 공상이다. 특히 지금 같은 경제 위기 상황에서는 바닥을 향한 경쟁이 거듭되면서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만 강화될 것이다.

사실 기업의 경쟁력을 향상하기 위해 협력하자는 것은 한때 좌파였던 현대차 민투위가 배출한 하부영 전임 집행부가 추구해 온 방향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측이 노조에 협조를 얻으려는 목적은 이윤 증대에 있고, 그것은 노동자들에게 조건 하락을 양보 받는 것을 뜻한다.

하부영 집행부가 신차를 적기에 뽑을 수 있도록 협력하겠다며 합의한 ‘창립 50주년 특별합의’가 대표적이다. 그것은 기층 대의원과 노동자들의 현장 통제력을 약화시켜 노동강도 강화나 외주화 확대 등의 위협에 맞서기가 더 어려워졌다.

이상수 지부장은 이 합의를 칭찬하면서 더한층 발전시키겠다고 한다. 그리고 “회사만 품질과 생산성을 주장해야 한다는 것은 아주 낡은 사고”라고 말했다.

그러나 사측의 경영 고민을 함께 나눠지려는 출발점 자체가 노동조건 지키기와는 거리가 멀어지는 지름길이다. 사용자와 협력하며 다른 회사 노동자들과 경쟁하는 것은 양보 압박을 스스로 불러들인다.

이상수 집행부는 2·3차 부품사들의 어려움을 이해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훈수를 두면서, 현대차가 생산량을 늘려야 부품사 노동자들도 고용과 임금을 지킬 수 있다고 한다. 그것이 “사회 연대”를 실현하는 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생산량 증대 협조가 부품사 노동자들을 위한 것이라는 얘기는 결코 참이 아니다. 오히려 현대차 같은 대기업 조직노동자들이 조건 악화를 받아들이면, 부품사·하청 노동자들도 희생을 강요 받기가 쉽다. 부품사 사장들은 자기 노동자들에게 ‘현대차 노동자도 양보하는 마당에 조건을 지키려 하다니 같이 망하자는 것이냐’ 하고 달려들 것이다.

이 노동자들이 구조조정 압박에 잘 맞설 수 있으려면, 경제 위기 하에서도 싸워서 조건을 방어할 수 있고 그런 투쟁이 원청사 노동자들의 연대를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이 필요하다. 그 점에서 현대차 노동자들이 사측에 협력하는 게 아니라 단호하게 맞서 조건을 방어하면, 부품사 노동자들에게도 싸울 자신감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연대에 나선다면 더 큰 힘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좌파 활동가들이 이런 투쟁의 연대를 조직하려고 힘껏 애써야 한다.

좌파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3월 25일 현대차지부 확대운영위원회는 사측의 노동시간 연장 실무협의 제안에 대한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일부 사업부 대표들이 반대하면서 2시간 가까이 논란이 인 것으로 알려졌다.

활동가들에 따르면, 결국 대의원들의 의견 청취도 해 보지 않고 결정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힘을 받아 사측의 안을 보고하는 자리를 갖기로 했다고 한다.

현대차의 노동시간 연장 추진이 전 산업에 미칠 나쁜 영향을 생각해 보면, 사측의 조건 악화 시도를 단호하게 저지하려는 활동가들의 노력이 경주돼야 한다.

그런데 일부 사람들은 사측이 제안한 주당 60시간 근무에는 반대하면서도 불가피하게 부분적 특근 협조는 필요할 수 있다고 보는 듯하다. “현장 정서”를 이유로 대며 노동시간 연장을 마냥 거부만 하기 어렵다는 얘기도 나온다.

그러나 부분적일지라도 사측에 협력하는 것이 불가피한 것은 결코 아니다. 그동안 야금야금 추진돼 온 외주화, 아르바이트생과 비정규직 투입, 노동강도 강화, 현장 통제력 약화 등이 노조의 불가피하지 않은 타협으로 확대돼 왔음을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 구멍이 하나 둘씩 뚫리기 시작하면 댐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가 더 어려워진다.

“현장 정서”를 이유로 그저 사태를 추수해서도 안 된다. 일찍이 혁명가 트로츠키가 말했듯이, 대체로 세 부류의 노동자들이 있다. 생산량 만회를 위해 협력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노동자와 이를 거부하는 노동자가 있을 것이고, 그 가운데서 동요하는 노동자들이 제일 많을 수 있다.

이럴 때 좌파의 구실이 핵심적으로 중요하다. 좌파가 단호하게 협력파의 주장을 반박하고 노동시간 연장 반대를 설득하면서 기층 노동자들 사이에서 운동을 조직해야 할 과제가 있다.

이런 운동을 효과적으로 해 나가려면, 노동계급의 이익을 일관되게 옹호하며 단결을 추구할 혁명적 조직을 현장에서 건설하려는 노력이 결합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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