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 캘리니코스는 런던대학교 킹스칼리지 유럽학 교수이자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의 중앙위원장이다.


코로나바이러스 위기는 정치 지도자들이 실속 없고 무능한 자들임을 드러내고 있다. 영국 보리스 존슨 정부의 체계적 실패는 보리스 존슨 자신, 보건부 장관, 수석 보건 보좌관 모두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는 사실로 한눈에 드러났다.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의 무식함과 속죄양 만들기. 이를 능가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브라질 판 트럼프인 자이르 보우소나루의 냉혹한 무능뿐일 테다.

그러나 이런 근래 우파 정치의 어릿광대 왕들을 보느라, 더 주류인 신자유주의 기구들의 지독한 행태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트럼프가 백악관에 입성했을 때 유럽연합은 자신들이 공백을 메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헛된 희망을 품었다. 유럽연합을 주도하는 정치인이자 독일 총리인 앙겔라 메르켈은 “자유 세계의 진정한 지도자”로 묘사됐다. 그러나 코로나19 대유행은 유럽연합의 민낯을 다시 한 번 드러냈다.

유럽연합은 미합중국에 비견되는 유럽 연방 국가를 목표로 삼아 “어느 때보다도 긴밀한 연합”을 추구한다고 표방한다.

유럽연합에 초국가적 기관들(대표적으로는 유럽중앙은행과 유럽연합집행위원회)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유럽연합은 자본주의 국민국가들의 카르텔이다. 이 카르텔을 주도하는 것은 더 강력한 국가들, 특히 독일과 프랑스이다.

이 때문에 유럽연합은 2008~2009년 세계 금융 위기 때 그랬던 것처럼 코로나19 대유행에도 어설프게 대응했다.

첫째, [유럽연합이 아니라] 국민국가 정부들이 즉각 긴급 대응에 나섰다. 이들은 유럽연합 기구들보다 더 많은 자원과 정통성을 지니고 있다.

입국 제한을 결정한 것도 국민국가들이었다. 그 결과 유럽연합 회원국들의 대응은 각개약진이었고 불균등했다. 스웨덴과 네덜란드는 외출 제한과 입국 제한을 피하면서, 많은 원성을 자아낸 존슨 정부의 “집단 면역” 전략을 나름대로 추구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모든 유럽 국가들은 제각기 살 길을 찾고 있다. [현재 유럽에서 팬데믹 피해가 가장 큰] 이탈리아는 3월 초에 국제 사회에 도움을 요청했다. 유럽연합 회원국들은 응하지 않았다. 중국만이 의료 물자와 전문 인력을 보냈을 뿐이다. 확인되지 않은 소문에 따르면 서방으로 향하던 구호물자 일부를 체코가 탈취했다고 한다. 유럽연합이 뽐내기 좋아하는 “유럽의 연대”가 무색할 일이다.

불확실성

둘째, 경제 정책 상의 대응도 있다. 현재 경제학자들은 세계경제가 2008~2009년 대불황보다 훨씬 심각한 경기 수축을 앞두고 있다는 데에 공감하는 듯하다. 세계 금융 공황을 예측한 몇 안 되는 경제학자 중 한 명인 누리엘 루비니는 1930년대보다 훨씬 심각한 “대(大)대공황”을 경고하고 있다. 가장 불확실한 측면은 이 재앙이 얼마나 오래 갈 것인지다.

그래서 각국 정부들은 자국 경제에 자금을 가능한 한 많이 투여하고 있다. 영국 보수당 정부 재무장관 리시 수낙이 현재까지 네 차례나 잇달아 긴급 지원책을 내놓았다. 이 때문에 다음 회계년도에만 2000억 파운드[약 300조 원]에 달하는 재정 적자가 발생할 수 있다.(일부는 분명 빌려서 메꿔야 할 것이다.) 2018~2019 회계년도의 적자 규모는 255억 파운드[약 38조 원]였다.

독일 연립정부는 3560억 유로[약 477조 원] 규모의 추경예산을 편성했는데, 이는 국민소득의 10퍼센트 정도 되는 규모다. 독일 정부는 경제적 미신에 기반을 둔 적자재정 금지 원칙(이른바 “검은 0” 규칙)을 세우고는 유로존에 이를 강요해 왔는데, 이제는 자기가 그 원칙을 어기고 있다.

독일 총리 앙겔라 메르켈. "연대"는커녕 모든 유럽 국가들은 제각기 살 길을 찾고 있다 ⓒ출처 GovernmentZA(플리커)

한편, 이탈리아 같이 상대적으로 약한 회원국들은  2012년 유럽 재정협약 같은 제도들 때문에 손발이 묶여 있다. 이 협약에 따르면 유럽연합집행위원회는 회원국의 예산을 단속하고 국가 부채를 제한할 수 있다. 이 협약은 지난 유로존 위기의 추악한 유산으로, 이 협약 때문에 당시 그리스·아일랜드·스페인·포르투갈에서 긴축이 강요됐다.

지난주 유럽연합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유럽의회에서도 비슷한 형국이 펼쳐졌다. 주로 남유럽 국가들이 한 편을 이루어 “코로나 채권”을 발행해서 유럽연합 회원국 정부들이 공동으로 돈을 빌릴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런 시도는 메르켈이 지지하는, 부유한 북유럽 국가들의 소위 “한자 동맹”에 의해 좌초됐다. 이로써 경제가 비상사태인 와중에 신자유주의적 건전화폐 숭배가 다시 한 번 승리했다.

좌파 성향의 전 그리스 재무장관 야니스 바루파키스가 이렇게 반응한 것이 놀랍지 않다. “유럽연합은 우리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 외에는 다른 능력이 없습니다. 저는 브렉시트에 반대했지만 지금은 영국이 그 이유야 틀렸을 망정 옳은 일을 했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