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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생활방역’으로의 전환?:
생명보다 기업 이윤 지키려는 위험한 시도

정부가 결국 개학을 다시 연기했다. 수능도 12월로 미뤘다. 환영하기에는 너무 당연한 일이다.

입시에 이토록 신경쓰는 나라에서 정부가 개학과 입시를 연기해야 했던 이유는 명백하다. 지금 개학하면 코로나19 감염의 3~4차 확산이 일어날 게 명백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부 내에서는 지금 수준의 방역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는 듯하다. 경제를 이대로 내버려 둘 수 없다는 위기감 때문에 ‘전환’을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4월 중에 순차적으로 대면 수업을 시작하는 한편, 4월 5일까지로 예정된 고강도 방역을 계속 이어갈지 여부를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생활방역’이라는 이른바 족보에도 없는 단어를 꺼내놨다.

정부는 생활방역이 “일상에서 손쉽게 우리가 일종의 생활습관처럼 지킬 수 있는 방역”이라고 밝혔다. 쉽게 말해, 물리적 거리 두기 등을 지금처럼 강제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는 위험천만한 도박에 가깝다.

무엇보다 전 세계적으로 확산세가 결코 진정되지 않고 있다. 그러기는커녕 미국 등지에서는 확진자 증가 추세가 거의 수직으로 치솟고 있다. 유럽에 이어 브라질 등 라틴아메리카와 인도, 필리핀 등 아시아 나라들에서도 증가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미국 정부는 자신의 역량을 총동원해도 사망자가 10만~20만 명에 이를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4월 12일 부활절 전에 경제를 ‘정상화’ 하겠다는 계획도 포기했다.

해외에서 환자가 급증하자 입국을 차단해야 한다는 주장이 다시 나오고 있지만 봉쇄는 효과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 정부도 2주간 자가격리 조처를 도입해 사실상 외국인의 출입을 제한했지만 한국 경제의 수출의존도나 제국주의 국가들과의 특별한 관계를 고려하면 전면 봉쇄를 거론할 처지가 못 된다.

해외 입국자를 대상으로 한 인천공항 선별진료소 ⓒ조승진

국내에서 감염자 수가 좀처럼 줄지 않는 것도 전혀 안심할 상황이 아님을 보여 준다. 의정부성모병원이 폐쇄됐고, 서울아산병원에서도 아동 확진자가 나왔다. 구로 콜센터 집단 감염의 여파도 계속되고 있다. 지금도 대구와 서울·경기에서 가장 많은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다. 수도권의 확진자 수는 1000명이 넘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도 지금 수준의 물리적 거리 두기가 “느슨해질 경우 재확산의 우려가 높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는 트럼프 등 다른 정부 지도자들이 가려 한 길을 검토하고 있다. 코로나19와 경제 위기가 동시에 터진 현 상황이 이들에게 감염병 확산 저지냐 이윤 보호냐 사이에서 동요를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감염병 확산으로 인한 대중의 반발도 걱정해야 하지만 자본주의 정부의 지도자로서 더 중요한 우선순위, 즉 기업 이윤과 경쟁력의 손실을 참아 넘길 수 없다.

코로나19가 좀처럼 진정되지 않아 스스로 위험을 경고하면서도 이윤과 대중의 보건 안전을 놓고 저울질하는 이유다. 각국 지배자들이 하나같이 이런 태도를 숨기지 못하다 보니 대중의 눈에 이 체제와 정부의 계급적 민낯이 드러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물리적 거리 두기로 사람들의 피로도가 높아졌다고 둘러대지만 오히려 제대로 된 거리 두기를 하지 않아서 피로도가 높아진 측면이 크다. 우선순위를 확실히 바꾸면 보건 안전도 지키고 피로도도 크게 낮출 수 있다.

방역 완화가 아니라 강화가 필요하다

노동자들이 밀집해서 일하는 곳은 콜센터만이 아니다. 최소한 2미터 이상의 거리를 두라는 정부의 방역 지침을 적용하기 어려운 작업장은 부지기수다.

재난 대응과 사회 유지에 필수적인 부분을 제외하고는 당분간 휴업을 명령해야 한다. 휴업에 들어간 노동자들의 임금을 보장하고, 영세 자영업자의 소득 감소분도 벌충해야 한다.

필수적인 부분에서는 방역 기준을 지키도록 보호용품을 지급하고, 설비를 확대하고, 인력을 늘려 사람들이 안전하게 일하도록 해야 한다.

특히 병원 같은 필수적인 업무에는 인력과 자원을 집중시켜야 한다. 그러려면 민간병원들도 통제해야 한다. 어처구니없게도 최근 대구 동산병원은 비용 부담을 이유로 직원 50명에게 계약해지를 통보했는데, 이런 곳은 신속히 국유화해야 한다. 요양 병원 등 민간 복지 시설을 점검하고, 정부가 직접 방역 조처를 취해야 한다.

불필요한 행정 업무를 중단하고 공무원과 지자체 노동자들이 사회 취약계층을 실질적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개학이 미뤄지고 복지 시설들이 폐쇄되면서 저소득층 아동과 노인, 이주민, 장애인 등 취약계층이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할 위험에 방치되고 있다. 이를 내버려 둬선 안 된다.

행동에 나서야 한다

백화점 등 비필수 상업 시설은 폐쇄하고 해당 부문의 자원을 필수재 유통에 투입해야 한다.

자동차 공장에서도 재난 대처에 불필요한 생산은 중단해 감염 가능성을 차단해야 한다. 미국과 유럽의 자동차 공장들은 인공호흡기를 생산하고, 전자·화학 공장은 마스크·약품을 생산하게끔 전환하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처럼 감염자가 급증하고 나서 전환하는 것은 너무 늦다.

해고를 막고 필요하다면 정부가 해당 기업을 국유화해 노동자들의 일자리와 삶을 보호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해 온 바를 보면 문재인 정부가 그렇게 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앞서 제시한 모든 조처들은 시장 논리에 역행하는 것으로 정부가 그동안 해 온 것과 정반대이거나, 정부가 ‘말로만’ 해 온 것을 과감하게 실행해야 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정부는 기업주들이 방역 지침을 따르고 있는지 제대로 점검조차 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노동자들은 그저 기다릴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안전와 삶을 지키기 위한 행동에 나서야 한다.

민주노총은 정부에 요구할 뿐 아니라 즉시 자신의 조합원들에게 지침을 내려 실질적인 조처를 사용자에게 강제하도록 저항하라고 해야 한다.

해고와 무급휴직이 이뤄지고 있는 곳도 많고 앞으로 급격히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이런 노동자들이 5월에 준다는 정부의 쥐꼬리만 한 재난 ‘긴급’ 지원금만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다. 정부에 실질적 지원을 요구하는 동시에 당장 현장에서 해고를 막고 제대로 된 월급을 받기 위해 싸우도록 고무하고 조직해야 한다.

1만 명 넘게 일하는 기아차 공장의 현주소 (위)최근 들어 공장 식당에 간이 칸막이가 설치됐다, (아래)칸막이가 무색하게도, 바로 옆에선 40분 내에 식사를 마쳐야 하는 노동자들이 촘촘이 붙어 줄을 섰다. ⓒ제공 기아차 노동자

노동자들이 고통을 ‘분담’해야 하나?

최근 문재인 정부는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연대와 협력”을 강조하고 있다. 노동자들이 기업주들과 협력해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자들은 이미 해고, 무급휴직, 개학 연기로 인한 양육과 돌봄 등 고통을 짊어지고 있다.

그런데 정부는 이런 고통을 완화하기는커녕 더한층의 고통 전가를 예고하고 있다. 당장 공무원 임금 동결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고위층의 임금 반납 쇼는 이를 위한 것이었다. 곧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 양보도 압박할 듯하다.

이런 조처는 기업주들을 위한 것이다. 기업주들도 경제 위기에 비명을 지르고 있지만,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이윤이 줄고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반면 노동자들의 고통은 삶 자체가 위협받는 것이다.

여러 차례의 경제 위기를 통해 확인된 것은 이런 고통 전가를 통해 기업주들은 새로운 성장의 기회를 붙잡는 반면, 노동자들은 경제가 회복돼도 밑바닥에 버려진다는 냉혹한 사실이다.

경제 위기 때마다 정부는 기업주들에게 어마어마한 물적 자원을 지원한 반면 노동자들에게는 고통과 환멸만 남겼다. 기업주들이 바라는 것은 이를 되풀이해 체제를 ‘원상복구’ 하는 것이다. 그들은 말과 달리 ‘우리 모두’를 구하려 하지 않는다.

지금 같은 경제 위기 하에서 기업주들과 노동자들이 모두 이익을 보는 방법은 없다. 노동자들이 저항하지 않는다면 지배자들은 노동자들에게 고통을 떠넘기는 방식으로 위기에서 벗어나 이익을 볼 것이고, 위기를 부르는 이 체제를 수호하려 들 것이다.

코로나바이러스는 계급 분단의 골을 더욱 깊게 만들고 있다. 노동자들은 체제 구출에 협조할 것이 아니라 진정한 변화를 위해 투쟁해야 한다.

집회 금지 등 정치적 억압 강화에 반대한다

코로나바이러스 확산 초기에 전광훈 목사 등 꼴불견 우파들이 안하무인으로 집회를 강행하자 이에 대한 대중의 불안과 불만도 커진 듯하다. 정부는 이런 분위기를 이용해 집회를 제한하고 있다. 감염병 예방법 등을 근거로 ‘대중의 안전’을 위해 집회를 제한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집회 제한으로 안전을 지키지는 못한다. 지금까지 확진자가 1만 명 가까이 되도록 옥외에서 감염이 전파된 것으로 확인된 사례는 아직 없다.

물리적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 실외에서는 바람 등으로 비말이 흩어져 감염에 충분한 바이러스 양을 유지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필요하다면 충분한 간격을 두고 마스크와 장갑 등을 이용하면 감염 확률을 더 낮출 수 있다.

따라서 이처럼 미미한 가능성만으로 노동계급의 핵심적인 정치적 권리를 제약하는 것을 용인해서는 안 된다.

정부와 기업주들이 공장과 사무실, 대중교통 등으로 노동자들을 한데 모으고 있으면서도, 집회 제한 같은 억압을 강화하는 것은 경제 위기 고통을 전가하기 위한 사전 포석이다. 이에 반대하고 저항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