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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서민의 삶을 보호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긴급재난지원금

3월 30일 문재인 정부는 3차 비상경제회의를 열어 전국 1400만 가구(소득 하위 70퍼센트 이하 가구)에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가구 규모별로 차등을 둬, 1인 가구 40만 원부터 4인 이상 가구에는 100만 원을 지급한다고 한다.

정부가 뒤늦게나마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한 것은 코로나19 확산과 경제 위기 심화로 고통받고 있는 노동자·서민을 외면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또, 민주노총과 정의당·민중당 등은 선별 지급이 아닌 ‘재난기본소득’ 100만 원씩을 지급하라고 요구해 왔고, 여당 정치인 일부도 총선을 의식해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하자고 제안했다.

서울시의 재난 긴급생활비 홍보 배너 정부와 서울시 모두 선별지원에 액수도 적다 ⓒ조승진

그러나 문재인 스스로 ‘비상 국면’, ‘특단의 대책’ 등을 강조하고 “기업을 반드시 지키겠다”며 기업에 대한 긴급자금 100조 원 지원을 신속하게 결정한 것에 견주면, 이번 지원금은 뒤늦고 미미하기 짝이 없다. 정의당도 “찔끔 대책”이라며 정부를 비판했다.

우선, 정부가 지급 대상을 소득 하위 70퍼센트 이하 가구로 정하자 온갖 혼란이 발생했다. 4인 가구 기준으로 소득 하위 70퍼센트의 기준은 대략 월 소득 700만 원 정도일 것으로 추산되는데, 어지간한 맞벌이 가구도 지원받지 못하는 것이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매출이 크게 줄어든 자영업 가구도 지원받지 못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자신이 수혜 대상인지 확인하려는 사람들이 폭주해 정부 사이트가 불통이 되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는 재난지원금 재원 중 20~30퍼센트를 지자체에 부담시키겠다고도 밝혔다. 이 때문에 이미 재난지원금 지급을 추진하고 있던 지자체들이 정부의 재난지원금으로 대체하거나 자체 지원금을 축소하고 있다.

이처럼 지원 대상과 금액이 모두 줄어들어서 정부가 부담하는 재원은 고작 7조 1000억 원에 그친다. 모두에게 100만 원씩 52조 원을 지급해 소득 감소와 해고 위험으로부터 노동자·서민의 삶을 지켜야 한다는 노동운동의 요구에 턱없이 모자란 것이다. 이는 문재인 정부가 여전히 균형재정론에 얽매여 복지 지출 확대에 반대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한국은 국가부채 비율이 OECD 평균보다도 훨씬 낮아서 정부의 재정 여력이 훨씬 큰데 말이다.

꾀죄죄한 복지 확대도 ‘돈 퍼주기’라며 반대해 온 미래통합당과 보수 언론들은 이번 재난지원금이 선거를 겨냥한 ‘금품 살포’, ‘매표 행위’라며 반발하고 있다. 기업 지원이 대다수인 1차 추경이나 기업에 대한 긴급자금 100조 원 지원 등에 대해서는 별 군소리 없었던 통합당이나 보수 언론이 재난지원금에 대해 반발하고 나선 것을 보면 이들의 우선순위가 어디에 있는지 잘 나타난다. 이러니 통합당이나 보수 언론들이 ‘줄 거면 다 주는 게 낫다’고도 반발하는 게 ‘전 국민에게 지급하라’는 얘기가 아니라 ‘지급하지 말라’라는 주장으로 들리는 게 당연하다.

한편, 모두에게 지급하는 게 아니라 하위 70퍼센트 이하 가구에만 지급하기로 결정하다 보니, 지급 대상 기준을 정하고 선별하는 데 시간이 걸리게 됐다. 문재인은 “긴급재난지원금은 신속한 지급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지만, 재난지원금 마련을 위한 추경안을 4월 총선 후에 국회에 상정하고 5월 중순에 지급한다고 한다. 경제 상황이 더욱 악화하고 통합당 등의 반발로 국회 논의가 지지부진해지면 지급이 더욱 늦춰질 수도 있다.

전대미문의 위기

그런데 보편적 재난소득에 반대하거나 소극적인 일부 좌파들이 있다. ‘해고 금지’나 보험료 감면 등으로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거나 기존의 복지 제도를 활용하면 생존 위기에 몰린 취약계층에게 더 많은 지원을 신속하게 할 수 있다며 말이다.

이들은 이런 요구가 하층 노동계급을 보호하는 ‘노동계급적 요구’라고 보는 듯하다. 또, 기본소득을 주장해 온 일부 개혁주의자들과 자율주의자들이 ‘기본소득’이라는 명분으로 단지 기존의 복지를 대체하려 하거나 고용 불안정은 피할 수 없다고 보는 것에 대해 반대하려는 의도도 있는 듯하다.

물론 기존 기본소득 논의에는 비판적으로 볼 점들이 꽤 있다. 그러나 현 위기는 지배자들도 인정하듯이 코로나19 확산과 경제 위기가 결합된 전대미문의 위기이다. 이런 긴급한 위기 상황에서 고용 보장이나 기존 복지 확대를 보편적 재난소득 지급과 대립시키는 것은 부적절하다. 해고 위협으로 고용 불안이 커진 노동자들뿐 아니라 이번 위기로 일자리를 얻지 못하고 있는 실업자들, 임금 삭감 압박을 받는 다양한 노동자들, 노동계급의 이웃이거나 친구인 영세 자영업자들을 보호하려면 보편적 재난소득 요구가 필요한 상황이다.

기존 복지의 폭을 넓힌다고 하더라도 자본주의 국가의 복지 제도가 근본적으로 선별적이고 까다로운 관료적 제도라는 점에서도 보편적 소득 지원보다 못하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이번 긴급지원금 지급 결정은 문재인 정부가 노동자·서민의 삶보다 ‘건전 재정’과 기업 지원으로 자본주의 체제를 수호하는 데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보여 줬다. 위기가 심화되는 만큼 정부와 기업주들은 사활적으로 노동자들에게 고통 전가를 추진할 것이다.

노동자들도 이윤에 타격을 입힐 수 있는 자신의 힘을 행사해 노동자·서민의 삶을 지킬 태세를 갖춰야 한다. 민주노총은 이를 위한 투쟁에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