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일일 확진자 수가 40~50명대로 줄어들자, 방역에 대한 안도감이 확산되고 있는 듯하다. 

물론 확진자가 급증하지 않는 것은 다행이다. 이대로라면 사망자 증가세도 둔화하고 환자·격리자의 수도 더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것이 불확실하다. 

현재 각국 정부의 코로나19 관련 예측은 코로나19가 확산되던 초기와 많이 달라졌다. 

최근 세계보건기구(WHO)와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기존 입장을 바꿔 마스크 착용을 권고한 것도 이와 관련 있다. 처음에는 무증상 감염자의 존재를 고려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코로나바이러스의 전파력 평가도 크게 수정됐다.

지금 확진자가 가장 많은 나라들(미국, 스페인, 이탈리아 등)에서는 치명률이 급증하고 있다. 보건의료체계의 붕괴 때문에 사망자가 더 빠르게 늘고 있는 것이다. 

확진자 대비 사망자 수치는 현재 이탈리아(12.6퍼센트), 영국(11.1퍼센트), 스페인(9.9퍼센트), 프랑스(9.5퍼센트) 등지에서 사스의 치명률(약 11퍼센트)에 가까워지고 있다. 1차 방어에 어느 정도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는 한국과 독일에서도 어느새 치명률이 1.9퍼센트를 넘었고, 세계 전체로도 계속 높아져 6퍼센트에 근접하고 있다. 이 수치는 앞으로도 크게 달라질 수 있는데, 그동안 제시된 예측이 잘 들어맞지 않는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그림에서 보듯, 정부의 고강도 거리 두기가 한 달 가까이 지났지만 서울과 수도권의 확진자 증가 추세는 전혀 꺾이지 않고 있다. 그래서 일부 전문가들은 수도권을 중심으로 감염이 ‘폭발’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대구에서 벌어진 일이 인구가 10배쯤 많은 수도권에서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부터 병상과 인공호흡기 등을 마련해 두라고 조언하는 전문가들이 있다. 

구로 콜센터 노동자의 가족이 최근 사망한 것에서 보듯 위험은 여전하다. 병원 등에서의 집단 감염 사례도 현재진행형이다. 수도권에서만 여전히 1만 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 자가격리 상태에 있고, 강남의 유흥업소 등에서도 확진자가 나타나는 등 불안 요소는 너무나 많다. 이는 너무나 당연한 현상이다. 인구의 대부분이 면역력이 없는 상태인데도 그중 대부분이 생계를 위해 일터에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자료 출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과학위원회
한국의 수도권에서 미국과 같은 폭발적 증가가 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자료 출처 코로나19(COVID-19) 실시간 상황판

그러나 정부는 방역을 완화하는 시기와 방안만 찾고 있다. 코로나19와 함께 심각해지는 경제 위기 때문에 문재인 정부는 이윤이라는 자본주의 사회의 우선순위를 지키기 위해 애쓰는 것이다. 정부의 재정 지원도 대중의 생계보다는 기업 경영 지원에 치중된 까닭이다. 

예를 들면, 4월 8일 열린 4차 비상경제회의에서는 이번 달부터 음식·숙박업, 관광업, 공연 관련업, 여객운송업 등에서의 신용·체크카드 사용액 공제율을 80퍼센트로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이 회의는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했고, 홍남기 부총리는 “소비 등 경제활동이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면서 이런 조처를 발표했다. 대구에서 환자가 급증하기 전 상황과 매우 흡사하다.

그러니 정부와 언론들이 야외 나들이와 외출을 비난하는 것은 적반하장인 데다 별 효과도 보지 못할 것이다. 아침저녁으로 미어터지는 대중교통 수단을 타고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주말 공원 나들이를 걱정해야 할까?

지금 필요한 것은 거리 두기 완화 시기와 방식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비필수 업무들에 대한 휴업 명령 등 제대로 된 방역 지침을 내리는 것이다. 의심 환자도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자가격리를 최소화하고 병원 등에 입원해 경과를 관찰하도록 해야 한다.

대중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긴다면 마땅히 이뤄져야 할 조처를 문재인 정부가 끝내 회피하는 것은 그들의 우선순위가 다른 곳에 있음을 보여 준다. 

특히, 확진자 수가 줄어드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 때문에 총선이 지나면 이윤을 보호하는 데 나서야 한다는 유혹은 더욱 커질 것이다. 이는 앞으로 노동자들에게는 코로나19 감염병만큼이나 치명적인 조처들 – 해고, 무급 휴직 등 – 이 더 늘어난다는 것을 뜻한다. 노동자들도 이에 맞선 투쟁을 할 수 있고, 해야 한다.(이번호 기사 ‘현대차 2차 하청 노동자들, 임금 삭감 반대해 파업’, ‘광양항 화물 노동자: 항만 봉쇄 파업으로 통쾌하게 승리하다’를 보시오.)

방역 완화 기회만 살피는 문재인 정부는 애먼 사람들을 비난하고 이제는 별 의미도 없는 입국 통제나 전자팔찌 등 권위주의적 통제 방식을 도입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모양새를 보이려 하고 있다.

전자팔찌 등 권위주의적 통제에 의존하는 정부

자가격리 중인 사람들의 외출 사례가 거듭 보고되자 정부는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아이 때문에 몇 분 동안 놀이터에 다녀온 여성을 경찰에 고발하고, 집 밖에 나갔다는 이유로 외국인을 강제 추방하는 등 지나치게 강경한 조처들이 이어지고 있다. 구속수사 얘기까지 나온다.

강경 대응을 하겠다고 협박해 효과를 보려는 속셈인데, 효과는 없고 애먼 피해자들만 생길 가능성이 크다. 정작 막아야 할 큰 구멍 – 일터와 대중교통 등 – 은 열어 둔 채 작은 구멍들만 틀어막으려는 식이기 때문이다. 

자가격리자들에게 전자팔찌를 채우려는 시도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 피해자를 모조리 범죄자 취급하는 조처다. 그동안에도 문재인 정부는 특정 종파 마녀사냥이나 (불필요한) 확진자 동선 공개 등 권위주의적 통제 방식을 사용해 왔다. 이러고서 ‘민주주의적’으로 감염병을 통제했다고 자화자찬하는 모습이 꼴불견이다.

자가격리자들의 외출을 줄이고 감염 확산을 통제하려면 권위주의적 통제가 아니라 실질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적절한 지원이 없다면 장기간 집 안에 머물도록 하는 것이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커다란 고통을 안겨 준다. 2주간 아이를 데리고 집 안에만 있으라고? 영국 등지에서는 외출금지령이 계속되면서 가정 폭력이 늘어나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그 기간의 생계 비용도 문제다. 

따라서 정부가 격리자들에 대한 실질적 지원을 강화하고 필요한 사람들을 병원이나 각종 시설 등에서 지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기업주들에게는 100조 원 넘게 퍼 줄 정도로 후한 문재인 정부가 그 절반만이라도 평범한 서민층 가정에 제공한다면 격리 조처를 어길 사람은 크게 줄 것이다.[기사가 나간 후인 4월8일, 정부가 56조 원 추가하기로 해 총 기업 지원 규모는 160조 원으로 늘었다]

재난기본소득 – 경제가 아니라 생존 위해 필요하다

뒤늦게 그것도 국민의 70퍼센트에게만 재난 지원금을 지급하겠다는 정부 방침에 불만이 커지자, 여야가 한목소리로 재난 지원금을 모든 국민에게 지급하라고 제안하고 있다. 총선을 염두에 둔 것일 테다. 그러나 선거가 끝난 뒤 국회에서 정하자니 선거에서 패배한 쪽이 약속을 지킬지도 미지수다.

지급 대상뿐 아니라 액수와 기간도 문제다. 몇 달 동안 소득이 없는 이들에게 고작 한 차례 30만~40만 원을 지급하는 것으로는 제대로 된 대책이 될 수 없다. 그야말로 재난 상황에서 ‘기본’적인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소득, 재난기본소득이 필요한 이유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재난기본소득 지급을 못마땅해하는 목소리도 있다. 부자들에게 지급하면 가난한 이에게 돌아올 액수가 준다는 우려 때문인 듯하다. 그런데 이는 위기의 수준을 간과한 물음이다. 밑바닥 서민층 말고도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생계와 생존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재정적자를 감수하면서 국가가 노동자·서민을 구제하는 일에 나서라고 요구하지 않으면 되레 온건 개혁파의 문제의식(경제 회복 효과 없이 재정적자만 커진다는 우려)과 연결된다.

좌파적인 재난기본소득 요구는 훨씬 더 높은 액수를 요구하며, 그것을 위해 정부 재정을 추가로 대폭 투입하라고 주장한다(재정 적자 감수). 경제 살리기가 아니라 긴급한 생계상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니 이런 요구는 정당하다. 이런 접근법에서는 기본소득 지급 요구가 무급휴직이나 해고 등으로 절박한 생계 위협에 놓인 노동자·서민에 대한 지원 요구와 대립될 이유가 없다.

생계가 위협받지 않는 사람들도 그런 돈을 받는 게 못마땅할 수는 있지만 그 때문에 당장 필요한 현금 지급을 삼가는 것도 이상하다. 충분한 액수가 보편적으로 주어짐으로써 노동자·서민들은 권리로서 재난수당을 지급받고 또 요구할 수 있게 된다. 마치 무상급식처럼 말이다. 

선별 지급은 기준 마련에 시간이 걸리고 혼선을 자아내며, 실제로 지원이 필요한 사람들까지 걸러내는 부작용이 있다. 게다가 국가가 수급자들을 낙오자 취급하며 통제하는 효과를 낸다.

현재의 위기는 체제 안정화를 우선순위에 놓는 것이 사람을 살리는 일에 방해가 된다는 점을 보여 준다. 노동계급의 삶을 지키려면 긴급한 필요에 대한 요구를 제시함과 동시에, 사회 운영의 우선순위에 대한 근본적 의문을 던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