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9일(한국 시각)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예비경선에 도전한 버니 샌더스가 선거운동 중단을 발표하고 바이든을 지지한 데 이어, 4월 14일 바이든 지지를 공식 선언했다. 때를 같이해 미국민주사회주의당(DSA) 회원인 하원의원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등 진보적 인사들이 바이든을 지지하면서 ‘민주적 사회주의’의 도전에 기대를 보낸 많은 사람들에게 우려와 실망을 안겼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사회주의자가 그 의미를 다룬다.


샌더스의 사임과 바이든 지지 선언은 변화 염원 대중에게 커다란 실망감을 자아냈다 ⓒ출처 Joe Biden

버니 샌더스의 2020년 대권 도전이 끝났다. 그의 선거 도전은 미국 주류 정치권에서 제한적인 형태로나마 반자본주의 정치가 재부상하는 데에서 핵심적 일부였다. 민주당 전국위원회(DNC)의 방해 공작이 크게 작용해 샌더스가 사임하는 바람에 미국인들은 갑갑한 처지가 됐다. 천박한 억만장자 우익 포퓰리스트이자 이따금씩 파시스트들을 대놓고 찬양하는 대통령 트럼프의 재선이 싫으면 바이든을 찍어야 하니 말이다. 바이든은 기업과 기업 이해관계의 충직한 옹호자이자, 1994년 폭력범죄통제지원법의 발의자[이 법은 가난한 유색인종을 인종차별적으로 공격하는 데에 이용됐다]이고, 이라크 전쟁과 애국자법의 지지자이자, 성추행 혐의자인데도 말이다.

샌더스는 자기 공약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지지를 받던 시점에 사임했다. 미국 민주당 주류에 친화적인 〈뉴욕 타임스〉조차 승자로서 관용을 뽐내며 샌더스를 칭찬하는 기고문을 실어 줬다. 코로나바이러스 대유행에 직면해 전국민 단일건강보험(‘메디케어 포 올’)이 절실해지고 있다. 건강보험을 고용 여부와 연동하는 정신 나간 시스템 때문에 수많은 미국인이 [대유행 상황에서 일자리를 잃는 동시에] 건강보험을 잃었다. 샌더스의 또 다른 대표 공약인 ‘그린 뉴딜’은 수많은 미국인의 일자리를 마련하는 동시에 기후 비상사태에 대처할 절실한 조처를 진전시켰을지도 모른다. 1930년대 대공황 이래 최악의 경제 위기 가능성에 직면한 지금, 노동조합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국가를 이용해 건강보험을 규제하며 그 밖의 공약을 실현하는 샌더스 정권이 들어섰다면 노동계급의 상황은 더 나아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번 대선은 쇠락하는 신자유주의를 완고하고 비타협적으로 방어하는 바이든과 트럼프의 대결이 되고야 말았다.

투쟁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민주당 예비경선 투표자 대다수가 전국민 단일건강보험 같은 정책에 동의하면서도 샌더스가 이를 실현하리라고 기대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텍사스주(州) 예비경선 유권자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유권자 다수는 “자본주의”보다 “사회주의”를 선호했다. 그럼에도 다수는 시시한 바이든에게 투표했다. 이는 선거판에 국한된 사회주의 운동의 한계를 보여 준다. 의회와 국가기구의 저항을 뚫고 샌더스의 공약을 관철하려 해도 노동자 투쟁이 필요할 뿐 아니라, 사회민주주의 후보[샌더스]의 선거 승리에 필요한 노동계급의 자신감을 구축하려 해도 대중운동과 노동계급 투쟁의 결정적 승리가 필요하다.

계급의식과 계급투쟁의 발전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기를 떨어뜨린 1990년대 초의 패배를 딛고 미국 좌파가 모든 필수적 단계를 거치지 않은 채 지금 절실히 필요한 수준으로 단번에 계급투쟁을 발전시키기를 바란다면 이는 순전한 관념론이다.

계급의식의 발전은 불균등하다. 때로는 급격하고 때로는 지지부진하다. 2018~2019년, 특히 공화당이 주정부를 잡은 곳에서 벌어진 (몇 년 전만 해도 불가능해 보였던) 교사 파업은 투쟁이 어떻게 빠르게 번질 수도 있는지를 보여 줬다. 이와 같은 계급투쟁의 발전은 노동계급이 이 세계에 절실하게 필요한 변화가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떨쳐 내고, 변화가 가능하며 자신에게 그럴 힘이 있음을 깨닫는 데에 도움이 된다.

1999년 시애틀 WTO 반대 시위, 이라크 전쟁 반대 운동, 2008년 금융 위기의 충격, ‘점거하라’ 운동, 도널드 트럼프 집권, 미국민주사회주의당(DSA)의 성장을 배경으로 부상한 반자본주의 운동의 성과 위에서 샌더스의 선거 도전은 그런 각성 과정의 핵심 고리가 됐다. 샌더스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더 나은 변화가 가능하다는 각성의 계기를 제공했고, 그런 열망에 “사회주의”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 기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이 과정은 샌더스에서 시작된 것도 아니고 샌더스를 넘어서야 할 것이다.

그 모든 기여에도 샌더스의 선거 운동에는 중대한 문제점이 있었다. 샌더스가 사임한 지금 모든 좌파는 이를 정직하게 평가해야 한다. 샌더스 선거 운동은 선거판 바깥에서는 운동을 건설하지 않았다. 사회주의가 선거를 통해 위로부터 건설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간과한 것이다. 자본주의 국가는 사회주의 실현을 저지하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고 파시즘까지 동원하려 할 것이다. 사회민주주의 후보의 당선조차도 아래로부터의, 즉 노동계급의 행동과 압력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샌더스가 사임 전부터 민주당 후보가 누가 되든 지지하겠다고 합의한 것은 실망스럽다. 민주당을 벗어나지 않겠다는 결정 덕에 샌더스는 주류에게 인정을 받았을지도 모르지만, 그러면서 1960년대 이래 “사회 운동의 무덤”이었던 자본주의 정당[민주당]에 대한 노동계급의 독립성을 희생했다.

제국주의 문제

미국의 군사 정책과 대외 정책에 대한 샌더스의 발언은 다른 후보들보다 나았지만 사회주의적 국제주의와는 거리가 멀었다. 국내에 초점을 둔 전국민 단일건강보험과 그린 뉴딜 공약이 “미국 우선주의의 좌파적 버전”에 가깝다는 미국 마르크스주의자 마이크 데이비스의 지적은 일리가 있다.

마찬가지로 미국 제국주의에 관한 샌더스의 언행은 뒤죽박죽이다. 샌더스는 이스라엘 베냐민 네타냐후 정부에는 비교적 비판적이지만, 이스라엘 국가의 존재를 인정하고 BDS 운동(이스라엘에 대한 보이콧·투자회수·제재를 요구하는 운동)을 지지하지 않는다.

샌더스는 미국이 칠레 군부 쿠데타, 엘살바도르 정부군의 민간인 학살, 2019년 볼리비아 쿠데타를 지원하며 라틴아메리카에 개입한 것을 옳게 비판한다.

샌더스는 2003년 이라크 전쟁에 반대표를 던진 것을 반제국주의의 징표로 내세우지만, 그후 몇 년 동안 이라크 전쟁 예산에 계속 찬성표를 던져 사실상 전쟁에 “찬성”했다. 샌더스는 미국이 코소보·리비아·아프가니스탄·시리아 등 세계 곳곳에 개입하는 데에 찬성표를 던졌다. 샌더스는 그 개입을 “더 인간적”으로 포장하려 했을지는 몰라도 미국 제국주의를 근본에서 바꾸려 하지는 않았다. 1999년 코소보 폭격에 샌더스가 찬성표를 던진 것에 항의해 시위대가 버몬트주 벌링턴에 있는 그의 사무실을 점거하자, 샌더스가 경찰을 불러 이들을 체포하게 한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미국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작은 시위에도 이렇게 대응한 것에 비춰 보면, 대통령이 된 샌더스는 자본주의에 도전하고 체제를 근본에서 바꿀 잠재력이 있는 노동계급의 다른 저항과 행동도 적극적으로 제약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샌더스 사임은 수많은 미국인들에게 커다란 실망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절망할 때가 아니다. 사회주의를 향한 투쟁을 이어나갈 때다. 샌더스의 선거운동은 인상적인 기층 운동을 조직했다. 그 에너지와 열정을 샌더스의 대권 도전 중단으로 끝내서는 안 된다. 이것을 선거판 밖 운동과 연결할 수 있고 그래야만 한다. 코로나바이러스 위기와 이것이 동반한 경제 위기는 이 사회의 심장부에 있는 모순을 더한층 드러냈다. 수많은 사람들의 건강과 안전을 지키려면 샌더스의 선거운동이 고무한 사회주의 의식을 물질적으로 구현해야 할 것이다. 이 투쟁을 위해서는 1년에 한 번 투표소에 가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작업장 투쟁을 확산시키고, 사회 운동을 건설하고, 거리로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