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노동계 정당 중 하나인 정의당이 270만 표를 얻고도 6석 확보에 그치다. ⓒ출처 정의당

정의당·민중당 등 민주노총 지지 노동자 정당들은 모두 합쳐 300만 표를 조금 넘는 득표를 했다.

그중 정의당이 269만 7956표를 얻었다(득표율 9.67퍼센트). 그리고 6석을 획득했다. 지역구(경기 고양시 갑)에서는 심상정 의원만이 당선했다. 심 의원은 민주당-미래통합당-정의당 3자 대결 구도에서 승리해, 진보 정치인 중 유일하게 4선 의원이 됐다. 정의당은 비례대표로 5석을 확보했다. 다섯 명 중 네 명이 (비교적 온건한) 노동운동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민중당은 29만 5612표(득표율 1.05퍼센트)를 얻었다. 아쉽게도 김종훈 의원이 33.7퍼센트로 2위에 그쳐 낙선했다.

두 정당은 중요한 노동계 정당이다. 두 정당이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로부터 온전히 독립적이지 못하고 동요할 때도 많았지만, 당의 사회적 구성이나 재정·투표 기반은 명백히 노동계급적이다. 이데올로기나 정책만 갖고 정당의 성격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두 정당 사이에 득표 격차는 커져 왔다. 2011년 통합진보당 분당 이후 치러진 몇 차례 선거들에서 정의당이 민중당을 앞서는 추세가 지속적으로 확대돼 왔다. ‘될 만한 데 밀어 주자’는 유권자들의 투표 심리, 문재인 정부 하에서도 본질적으로 개선되지 않는 한반도 정세 등이 선거에서 민중당에 불리하게 작용하는 듯하다.

정의당은 10퍼센트가량 득표했는데, 의석수는 전체 의석의 2퍼센트(6석)에 그쳤다. 이 때문에 많은 언론들과 정치 평론가들은 정의당의 존재감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여권이 180석을 얻었기 때문에 정의당이 캐스팅 보트(국회 투표 결정권)를 쥘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정의당이 공식 정치에서 실질적 무게를 가지기를 바랐던 사람들은 아쉬움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대에 못 미쳐 아쉽다고 평가하는 것과 처참하거나 초라하다고 평가하는 것은 다른 말이다. B학점을 목표로 삼은 시험에서 보통인 C학점을 받은 것을 두고 F학점 낙제를 했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사실 지난 몇 년 동안 정의당의 전국 선거 득표수는 완만하지만 점진적으로 증가해 왔다. 2016년 총선에서는 171만 9891표(7.23퍼센트), 2017년 대선(심상정 후보)에서는 201만 7458표(6.17퍼센트), 2018년 지방선거에서 226만 7690표(8.97퍼센트)를 얻었다. 이번 총선에서는 270만 표가량 얻었다.

특히, 정의당은 수도권 지역(서울·경기·인천)과 울산에서 전국 평균 득표 이상을 했다. 수도권 지지 확대는 진보 정당의 오랜 꿈이다. 수도권에서 보루를 쌓지 않고서는 수권 정당으로 발돋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국적으로 지역구 후보 지지율도 지난 총선에 비해 대부분 늘어났다.

다만, 정의당의 득표수와 의석수 사이에 괴리가 있다. 그래서 정의당의 선거 성적이 노동자 투쟁을 고무할 만큼 충분히 위력적으로 느껴지지 못하는 듯하다. 2004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의 돌풍이 노동자들의 사기에 미친 영향과 비교된다.

민주당과 미래통합당(통합당)이 제도적 허점을 파고들어 비례 위성 정당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지 않았다면 정의당의 의석수는 지금의 곱절 이상이 됐을 것이다. 정의당은 자본가 계급 양당, 특히 민주당에게 의석을 도둑맞은 것이다.

정치적 독립성

이를 두고 서로 다른 방향에서 정의당이 잘못했다는 비판이 가해진다.

누구는 비례 위성 정당의 출현을 두고 주류 양당뿐 아니라 정의당에게도 제도 설계의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물론 정의당이 민주당에 의존해 선거법을 개정한 것은, 정의당에 불리한 국회 내 세력 관계를 이해한다 해도, 정치적으로 옳지 않았다. 그럼에도 도둑맞은 집주인한테 ‘너 왜 도둑한테 당했어? 책임 물을 거야’ 하고 말하는 건 곤란하다. 다만, 집주인은 법률적 책임은 없을지라도 방범 설비를 등한시한 결과로부터 올바른 교훈을 끌어내야 할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정의당 일부에서는 ‘그러니까 민주당 비례 위성 정당에 참여했어야 했다’는 주장들이 나온다. 정의당이 독자 출마를 한 것이 잘못이었다는 것이다.

선거에 출마하는 정당이 의석수를 늘리려 하는 것은 당연한 목표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유일하거나 최우선의 목표가 되면, 비례 정당 문제에서는 무원칙하기 이를 데 없는 기회주의가 될 것이다.

민주당은 자본가 계급의 정당이다. 그 당의 의원과 출마자 상당수는 우리 사회 상층에 속한다. 선거자금 등 정치자금도 거기서 나온다. 민주당의 정책도 기업인들과 국가 관료의 이익을 옹호한다. 민주당 정부들 하에서도 부익부 빈익빈(사회적 양극화)가 완화는커녕 심화돼 왔다.

이런 계급적 성격 때문에 민주당도 통합당 못지않게 진보 정당의 의석 확대를 극히 싫어한다. 이 점에서 두 정당의 이해관계는 일치한다. 민주당은 진보의 사이좋은 친구가 아니(었)다! 두 정당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통합당이 노골적으로 선거법 개정에 반대했다면, 민주당은 뒤통수를 쳤다는 점이다.

역사적으로도, 좌파 또는 노동계급 정치 세력의 원내 진입을 심각하게 규제하는 선거법을 통합당과 민주당의 전신 정당들이 의기투합해 만들었다. 현행 선거법의 기원인 1958년 제정 선거법은 그 목적이 진보당의 원내 진출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1956년 대통령 선거에서 진보당의 조봉암 후보가 30퍼센트를 득표했다. 그러자 자유당의 이기붕, 민주당의 조병옥, 무소속 장택상이 만나 다음 총선에서 진보당을 막기 위한 선거법 개악에 합의했다.

그 결과 만들어진 선거법은 억압적인 규제 조항들을 통해 기성 정치 체제를 유지하는 한편, 좌파 정당의 선거적 성장 같은 새로운 위험 요소를 배제하는 데 이용돼 왔다.  

따라서 정의당이 민주당에 의존해 선거법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개정하려 했던 것은 마른 흙 몇 삽으로 늪을 메우려는 것처럼 가망이 없거나, 정치적 독립성을 훼손하는 위험한 행위였다.

노동계급의 정치적 독립성은 정부·여당에 대한 비판과 독자적 행동을 삼가지 않는다는 뜻이다. 예컨대, 민주당 비례 위성 정당인 더불어시민당에 참여한 정당 중 기본소득당은 범민주당 계열이 아닌데도 선별적 재난지원금을 고수하는 정부 방침에 침묵했다.

이렇듯, 정치적 독립성이 훼손되면 정부·여당의 공격에 맞서 싸우는 것을 고무하기보다 입안 가득 물을 머금은 듯 침묵하거나 심지어 정당화하게 된다.

정의당은 민주당 비례 위성 정당 참여를 거부함으로써 막판에 독립성을 지켰다. 그리고 조국 사태 때 취한 입장을 스스로 비판하는 등 차별성을 드러냈다. 진작에 그랬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지난해 한·일 갈등과, 진영 논리가 격렬하게 전개되던 조국 임면 정국에서 정의당이 정부·여당으로부터 독립적인 입장을 취했다면, 첨예한 정치 상황에 의미 있는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세력으로 주목받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노동계급의 정치 의식에 정의당의 존재가 좀 더 강하게 각인됐을 것이다.

물론 정의당이 더 좌파적이지 못해 이번 선거에서 더 많이 득표하지 못했다고 필자가 평가하는 것은 아니다. 좀 더 근본적 요인들, 가령 계급 간 힘의 관계, 민주당에 대한 대중의 모순된 의식, 사회의 이데올로기를 왼쪽으로 급진화시킬 만큼 충분히 강력한 수준으로 발전하지 못한 노동자 투쟁과 자신감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봐야 한다.(김문성 기자의 ‘코로나19 총선 여당 압승: 우파의 미온적 대책이 거부당하다 —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곧 배신할 것이다’를 보시오.)

그럼에도 정의당이 독립성을 강화하고 정부·여당의 배신과 공격에 맞서 노동자 투쟁을 고무하는 것이 노동계급과 자신의 본질적인 이익에 도움이 될 것이다. 민주당과 통합당이라는 두 자본가 정당이 번갈아 가며 정치 권력을 잡아 기업인들의 이익을 보호해 주는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대중적 노동자 투쟁의 실마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궁극으로 정의당의 선거 도전에도 이로울 것이다.

선거 이후 정부·여당은 조만간 노동계급을 공격해 기업의 이윤과 권력을 지키는 일에 본격적으로 나설 것이다. 정의당이 해야 할 일은 이를 단호하게 반대하고 노동계급의 삶과 조건을 지키는 데 힘을 싣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