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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민주화의 진정한 동력

후진타오 정부 집권 초기 만하더라도 공산당 ‘개혁파’에 대한 기대가 존재했지만, 지금은 많이 사라졌다.

그러자 최근에 많은 학자와 언론인은 중국의 산업화와 함께 당으로부터 독립된 민주주의를 바라는 기업가들이 형성됐고, 이들이 민주화를 가져온다는 신판 근대화 이론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자들의 기대와 달리, 당에 속하지 않은 사적 기업가들을 상대로 한 각종 조사를 보면 이들이 일반 당 관료들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공산당 정권 아래에서의 ‘안정’을 바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모리스 마이스너가 《마오 이후의 중국》에서 지적했듯이 중국 사회 민주화 동력은 착취받고 억압당하는 노동자와 농민 들로부터 올 수밖에 없다.

그러나 중국의 신세대 마오주의자들이나 일부 해외 좌파들이 암시하는 것과는 달리 노동자와 농민의 투쟁이 동등한 사회적 비중을 가지지는 않을 것이다.

13억 인구 중 거의 9억 명이 ‘농민’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농촌 거주자일 뿐 실제로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의 수는 아니다.

이 중 약 1억 4천 만∼2억 명은 도시 이주노동자들이다. 8천만 명은 자기 땅이 없는 농업노동자다. 실제 농민의 수는 인구의 압도 다수는 아닌 셈이다.

더 중요한 것은 대부분의 사회적 부가 어디에서 생산되고 있느냐다. 2003년 기준으로 농업의 비중은 GDP 중 약 15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 나머지는 도시 노동자들이 생산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중국 노동자 투쟁에 대한 논의를 보면, 심지어 좌파들조차 노동자들이 중심적 역할을 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이들은 모두 투쟁이 고용 노동자보다는 실업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한계가 있으며, 개방 이후 크게 성장한 노동력, 특히 민공은 반영구적으로 노동력 과잉공급 상태에 있고, 반(半)농 반(半)노동자라 의식이 매우 낮기 때문에 자신감 없는 산발적 투쟁 이상 나아가지 못할 것이라 지적한다.

이런 주장들은 현실의 한 측면을 지적하고 있지만, 일면적이다.

예를 들어, ‘휴먼 라이트 워치’는 2002년 랴오닝과 다칭의 실업 노동자 투쟁을 평가하면서 “생산에 기반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중국 정부는 이들 투쟁을 쉽게 고립시킬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것은 사실이지만 동시에 방어적 투쟁일지라도 다른 부문의 노동자들을 고무할 가능성을 과소평가한 것이다.

실제로 다칭의 실업 석유 노동자들이 대규모 시위를 벌인 소식은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충칭을 포함한 곳곳의 석유 노동자들이 행동에 나서도록 고무했다.

둘째, 많은 민공 노동력이 과잉 공급 상태인 것은 사실이지만, 이들의 열악한 사정이 전적으로 이 때문만은 아니다. 국가가 저임금 이주노동력을 유지하거나 통제하기 위해 호구제도[거주지등록제도]라는 차별 정책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중요한 산업지대인 주강 삼각지에서 선호하는 노동력은 민공 전체가 아니라 17∼25세 사이 고등학교 학력을 보유한 여성이다.

이 지역 업체들은 민공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고, 이런 부족 현상은 주강(江) 삼각주를 넘어 또 다른 중요 수출산업단지인 양쯔강 삼각지뿐 아니라 충칭 같은 일부 내륙 지역으로까지 확산됐다. 이것은 수출 호황과 맞물려 일부 민공 노동자들에게 자신감을 주고 있다.

또, 원래 1980년대에서 1990년대 초반에 이주한 민공들은 많은 경우 농업 수입을 보충하기 위해 도시를 찾은 임시 노동자들이었다. 그러나 최근 중국 언론에서 “신세대 노동자”라고 부르는 젊은 민공들은 도시에 영구적으로 거주하고 싶어한다.

이것은 민공 중 상당수가 더는 반(半)노동자 반(半)농민인 ‘준노동자’가 아니라 도시 노동계급의 일부가 됐음을 뜻한다.

그들은 농촌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에 부당한 처우를 당했을 때 더는 참지 않으려 하며, 일부는 매우 전투적인 행동을 보여 주었다.

예를 들어, 올 4월 일본 전자업체 유니덴에서 독립노조를 결성하기 위해 파업을 벌여 주목받았던 노동자들은 민공이었다.

따라서 근거 없이 중국 노동자들이 효과적으로 투쟁할 능력이 없다고 결론내리는 것은 옳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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