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일주일 뒤인 지금, 정의당의 선거 성적 평가, 당의 진로 등을 둘러싼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정의당은 이번 선거에서 6석을 얻어 현상 유지를 했다. 지역구에서 1명(심상정 의원), 비례대표로 5명이 당선됐다. 정당 득표에서는 창당 후 최대인 267만 표를 얻었다. 이전 2016년 총선에서도 6명이 당선됐는데, 지역구 2명(심상정·노회찬 의원), 비례대표 4명이었다.

정의당은 개정 선거법 통과 직후,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의 최대 수혜자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최종 결과는 기대에 못 미쳤다. 주로는 민주당이 정의당의 뒤통수를 치고 위성정당을 만들어, 정의당으로 갈 몫을 가로챘기 때문이다. 그 몫이 7석 정도다. 민주당은 절대 믿어서는 안 되는 정치 세력임을 보여 줬다.

그럼에도 미래통합당이 개정 선거법에 반발해 위성정당을 만들겠다고 공공연히 밝히고 그에 따라 민주당도 주판알을 튕기는데도 정의당 지도부가 민주당의 사기 행각 가능성을 정치적으로 폭로하며 대비하지 않고, ‘설마’ 하며 시간만 보낸 것은 과오였다. 또한 코로나 19 사태 초기에 정부의 집회 금지 대책, 신천지교회로 책임 떠넘기기 등에 협조하고, 전 국민 재난기본소득 지원에 반대한 것도 잘못이었다.

정의당의 선거 결과에 아쉬움을 느끼게 하는 또 다른 대목은 정의당 비례 당선인들이 대체로 온건한 데다, 대부분 노동자 투쟁의 투사 출신이 아니라는 점이다. 노동자 운동 투사 출신은 (지역구에서 당선한 심상정 의원을 제외하면) 없다. 그리고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사회적 기반이라 할 수 있는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정작 정의당에서는 그 몫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듯하다.

비례 당선인들의 다수는 투쟁의 경험보다는 고통과 차별의 경험을 표현하고자 하는 듯하다. 물론 고통과 차별은 평범한 사람들이 일상으로 겪는 경험이고, 공감대 형성의 잠재적 토대이다. 그러나 훨씬 중요한 것은 집단적 운동을 일으켜 그런 고통과 차별에 도전한 경험이다. 그람시는 단순한 피착취·피차별의 고통과 경험은 사람들을 자동으로 급진화시키거나 저항으로 내몰지 않는 반면, 저항과 투쟁의 경험은 사람들을 급진화시키고 조직케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의당 비례 당선인들의 이런 특징들은 2004년 민주노동당 (비례) 의원들과 비교된다. 당시 민주노동당 비례 의원들은 압도적으로 노동운동(노동조합 운동과 좌파 정치 운동)의 리더 출신이었다. 그들이 해당 영역에서 실천한 리더십에 단순히 무비판적일 수 없지만, 당시 선진 노동자들은 그들이 진보 정당의 의원(원내 지도자)이 될 자격이 있다고 인정했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은 무려 277만 4061표(득표율 13.0퍼센트)를 득표했고, 10명이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지배자들이 대규모 좌파 정당(민주노동당)의 정치 활동을 견제하던 상황에 균열이 생겼다. 노동자들은 대중적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최초 원내 진출 경험에 환호했다. 물론 그 뒤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노무현 정부와 제휴해 개혁 입법을 추진하려다 2006년 이후 지지율 동반 추락의 운명을 맞이했다.

민주노동당이 최초 원내 진출을 한 2004년 이래 16년이 지났다. 정의당도 어제오늘 갑자기 무대에 등장한 신생 정당이 아니다. 벌써 8년차 정당이다. 게다가 온건한 주류 사회민주주의 노선을 따른다. 그동안 진보 정당을 보는 노동자들의 정치적 판단력도 날카로워졌다.

정의당의 득표수가 2004년 민주노동당 득표수에 근접했는데도(비록 지난 16년 동안 선거인 수가 800만 명 이상 증가했음을 고려하지 않은 단순 비교일 뿐이지만), 그 결과에 많은 선진 노동자들이 아쉬움을 느끼는 이유다. 

더 넓은 노동자·피차별자 운동

정의당의 선거 성적을 제대로 평가하려면 좀 더 근본적인 요인들을 먼저 살펴봐야 한다. 계급 간 힘의 관계, 민주당에 대한 대중의 모순된 의식, 사회의 이데올로기를 왼쪽으로 급진화시킬 만큼 충분히 강력한 수준으로 발전하지 못한 노동자 투쟁과 자신감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박근혜 정부를 쫓아낸 촛불 운동(2016년 10월 하순에 발발해 이듬해 2월까지 진행됨)에서 조직 노동계급이 그 운동의 방아쇠 구실을 했다. 비록 정치적 헤게모니는 결국 민주당으로 넘어갔지만, 운동에서 한 촉발자 구실 덕분에 민주노총의 위상이 높아지고 조합원 수도 증가했다.

그런데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문재인 정부를 통해서 개혁을 얻고자 했다. 노동조합 지도자들뿐 아니라 일반 노동자들도 그랬다. 2018년 가을 이후 문재인 정부가 노골적으로 개혁을 배신하고 이에 맞서 일부 노동자들이 싸우기 시작하는데도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반격을 조직하기보다 정부와의 “사회적 대화”를 원했다.

지난해 한·일 갈등 국면에서는 문재인 정부를 응원하고, 조국 장관 임면 국면에서는 스스로 진영 논리의 포로가 돼 문재인 정부를 지지했다. 이런 정치적 조건 하에서 공공부문 비정규직 등 일부 노동자들이 투쟁했지만, 효과적인 대중 파업 투쟁으로 발전하지는 못했다. 그 결과 계급 세력 저울이 노동자들에게 유리해지지 못했다. 

개혁 배신으로 인기가 꾸준히 떨어지던 문재인 정부가 코로나19 방역 대응 과정에서 미래통합당의 반동 및 무능력과 선진 자본주의 나라들의 형편없는 방역 덕분에 어쩌다가 지지율 반전의 기회를 잡기 시작했다. 이 무렵 민주노총 지도부는 정부의 집회 금지 조처 등에 협조했다. 옥외 집회 금지는 단순한 방역 조처가 아니라 대중 불만과 행동을 단속하기 위한 양수겸장 조처이기도 했다.

이런 세력균형이 선거에서 민주당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반면, 진보정당(정의당과 민중당)의 운신의 폭을 제약했다.

정의당 자체의 요인

그러나 정의당의 주체적 대응이 자신의 위상을 악화시킨 측면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정의당의 의석수가 너무 적어 어쩔 수 없었다고 넘겨버릴 수 없는 중요한 정치적 문제들이 있었다. 

조국 임면 국면에서 정의당 지도부가 취한 무원칙한 조국 변호론은 잘 알려져(정의당 자체적으로도) 있다. 조국의 위선과 특권을 묵과한 이면에는 민주당과 공조해 선거법을 개정하려 했던 선거중심주의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그 계산 이면에는 애초 이번 총선을 반우파 총선으로 치르고 총선 후에는 더 커진 영향력으로 민주당과의 공조를 좀 더 개혁적으로 견인해 보겠다는 계산이 있었다. 그러나 위성정당 문제로 계산이 어그러지고, 선거 운동 기간에 정의당 청년 후보들이 조국 임면 당시 당의 입장을 공개 사과했듯이 민주당과 차별화하지 못한 문제가 계속 발목을 잡았다.(방역 문제 등은 앞에서 언급했다.) 

또한 정의당 지도부는 초지일관 “사회적 대화”를 옹호해 왔다. 코로나19 방역 과정에서 정의당은 ‘모두에게 재난지원금을 지급할 것’을 요구로 채택했지만, 그와 동시에 정부의 위기 대응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취했다.(여기에는 정부의 집회 금지 조처를 지지하는 것도 포함됐다.)

정의당이 막판에 민주당의 위성 정당에 참여하지 않고, 선거 운동 기간에 정부·여당과의 차별성을 다소라도 드러낸 것은 다행이었다.(그런 점에서 정의당 안에서 나오는 ‘독자 정당 노선’이 아닌 ‘민주연합 노선’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퇴행적이다.) 

최근 몇 년간 정의당의 정치와 활동을 종합해 보건대, 이런 정치적 독립성은 불충분했다. 당이 선거중심주의와 문재인 정부와의 협력 기조를 취해 왔기 때문이다. 정의당 지도부가 대중 투쟁보다 선거와 의회 활동을 가장 중시하는 주류 사회민주주의 노선을 따른 결과이다. 

민주당-통합당의 이분법적 대결 구도에 욱여넣어지기를 거부하고 노동자 정당에 투표한 사람들이 300만 명이 된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들 중 의미있는 부분들이 투표로 나타낸 정치적 의사를 정의당은 행동으로도 표현하려고 애써야 할 것이다.

이런 수치는 정의당에게 미래의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정의당이 정부·여당과도 싸우려 하지 않고, 또는 타협하고 얼버무리고 발뺌하려 한다면 그 가능성은 억제당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