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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경제 위기 하에서 노동자의 이익을 지키려면

“전국민 고용 보장 요구 - 해고 및 구조조정 전면 금지하라”

“파산기업은 국유화해서 모든 노동자 일자리 보장하라”

“재난소득 1인당 100만 원씩 지급하라”

혹자는 이런 요구를 다 들어줬다가는 경제가 파탄날 것이라고 말한다. 우파는 말할 것도 없고, 진보진영의 일부도 이런 견해를 받아들이는 것 같다. 아마 그들은 위기 앞에서 기업주도 양보하고, 노동자도 양보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어떤 수준으로 할지, 협상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위기의 부담을 기업과 노동자가 함께 나누지 않고, 노동자가 일방적으로 떠안는 경우가 부지기수이긴 하다.

최근에 월트 디즈니는 노동자 10만 명의 월급을 지급 중단하면서도 임원 보조금과 15억 달러의 배당금은 예정대로 지급한다고 했다. 2009년 금융 위기 당시에도 미국의 보험회사 AIG는 파산 직전, 정부로부터 수혈받은 수백조 원의 돈으로 임원들에게 거액의 보너스를 지급하기도 했다. 그리고 적지 않은 노동자들을 구조조정했다.

자본주의 기업의 의사결정은 사장 개인 혹은 소수의 임원들에 의해 일방적으로 행해지기 때문에 협상이라도 해 보자는 노동자들의 심정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기업의 회계장부는 투명하지 않고, 분식도 빈번하다. 만약 공장 사장과 노동자가 이윤과 임금을 반씩 줄이기로 약속했다고 치자. 그런데 공장을 돌리고 얻은 부가가치를 실제로 그렇게 나누고 있는지 노동자들은 확인할 방법이 없다.

기업은 합의한 약속을 지키지도 않는다. 쌍용차를 인수한 마힌드라는 최근 2300억 원의 투자 약속을 철회했다. 노동자들의 구조조정과 맞바꾼 투자 약속이었지만, 그들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정부와의 협상은 다를까? 정부도 약속 안 지킨다.

2015년 정부는 공무원 연금을 개악하는 대신, 국민연금을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주류 양당과 정부는 위원회를 설치하는 쇼만하다가, 결국 국민연금은 아무런 개선도 하지 않았고 공무원들에게만 손해를 안겼다.

또 건강보험 얘기도 할 수 있는데, 건강보험은 다양한 경제 주체가 기금을 부담하는 구조다. 정부는 유리지갑인 노동자들의 월급에서는 꼬박꼬박 건강보험료를 징수해 갔다. 근데 2019년 당시 폭로된 자료에 따르면, 정부는 자신들의 부담금 중 무려 21조 원이나 되는 돈을 내지 않고 있었다. 통장을 관리하는 계주가 약속한 곗돈을 넣지 않고 있는 셈이었다.

그동안 노동자들은 기업, 정부와 여러차례 협상을 해 왔으나, 거의 항상 노동자가 위기의 비용을 더 많이 치러왔음을 똑똑히 봐야 한다.

노동자들이 양보를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이후 위기가 오면 그들은 또 양보해야 한다. 위기가 심해지면 또 양보하고…. 경제 사정이 나아질 때까지 양보는 계속된다. 결국 최종 국면에서 노동자들의 일부 혹은 다수가 정리해고를 감수하는 데까지 합의를 하기도 하는데, 그때에도 기업주가 해고를 당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체제가 ‘자본’주의인 이상 자본에게 유리하고, 노동자에게 불리한 합의가 이뤄지기 마련이다.

어떤 때에는 협상을 통한 상호 양보로 노동자의 이익을 지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경우는 어떤 상황일까?

바로 시장에서 벌어지는 경쟁에서 그 기업(또는 국가)이 승리했다는 뜻이다. 아마 그 기업의 노동자들은 양보해야 한다는 압박에서 좀 자유로울 수 있다. 그러나 이 때에도 결국 경쟁에서 패배한 기업에 속한 노동자들에게는 위기가 지속되고, 그들의 희생이 동반된다. 마르크스는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하고 말했는데, 이런 방식은 노동자를 분열시키는 방안인 것이다. 게다가 경쟁의 압박은 일시적으로 완화될 뿐이고, 그 압력은 사라지지 않는다. 아마 경쟁에서 승리한 기업의 노동자들은 다시 또 언젠가 양보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릴 것이다. 자본주의에서 위기는 상수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내에서 노동자도 살고, 회사도 살리고, 국가경제도 살리는 방안은 없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방향은 자본주의 안에서 (가능하지도 않은) 적대적 계급 사이의 대화와 협력을 통한 ‘윈윈’이라는 ‘현실적’인 방안을 찾으려 애쓰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노동자들의 이익이 올곧이 실현될 수 있는 다른 사회체제를 목표로, 투쟁을 성장시키기 위해 애쓰는 전략을 추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