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 캘리니코스는 런던대학교 킹스칼리지 유럽학 교수이자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의 중앙위원장이다.


영국 정부를 논란에 휩싸이게 한 최근의 폭로는 코로나19 대응 정책이 “과학”과 “증거”에 기반해 있다는 정부의 주장에 타격을 줬다. 4월 24일 〈가디언〉은 비상사태 과학자문그룹(SAGE)에 총리 보리스 존슨의 수석 보좌관 도미닉 커밍스가 참여했음을 폭로했다.

신뢰가 추락할 일이다. 무엇보다도 커밍스는 괴짜 과학 애호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흥미로운 점은 보수당이 그들의 정치적 선택을 물신화된 “과학”으로 포장하려 했다는 것이다.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급속도로 퍼지는 현 상황을 고려하면, 다양한 분야의 과학 전문가에게 전문 지식을 구하는 것은 합당한 일이다. 그런데 “과학”의 권위에 호소하는 것에는 두 가지 정치적 이점이 있다.

흔히 과학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진리이기에 과학을 근거로 한 결정은 논박할 여지가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또, 과학은 중립적이고 정당이나 계급적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운 것으로 여겨진다.

정부는 자신의 정치적 선택을 “과학”으로 포장하려 한다 ⓒ출처 Number10(플리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아이작 뉴턴, 찰스 다윈,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같은 위대한 과학자들은 얼마든지 반증을 시도할 수 있는 이론을 세웠다. 그들의 이론은 개정되기도 했고 때로는 후속 이론으로 대체되기도 했다. 과학의 역사는 논쟁, 비판, 자기 비판, 수정으로 점철돼 있다.

이 점은 지금처럼 뭔가 낯선 것에 대처할 때 특히 중요하다. 《사이언스》에 실린 한 기사에 나온 말처럼 “매주 1000건이 넘는 논문이 학술지들에 실리지만 정확하게 밝혀진 것은 없다. 이번 바이러스는 지금까지 인류가 경험한 어떤 병원체와도 똑같이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영국 정부와 그 보좌진이 처음에 “집단 면역” 전략을 택한 이유 중 하나는 코로나바이러스를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일종으로 취급했기 때문이다. 별난 수학자인 나심 니콜라스 탈러브가 트위터에 쓴 말에는 어느 정도 진실이 담겨 있다. “가장 안전한 정책은 그 결과에 대해 아는 바가 아예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구성

그래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전문가의 제언도 통계 모형 구성에 기반한 것이다. 그런 통계 모형들은 코로나바이러스가 전 세계 인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방대하게 축적되고 있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런 통계적 데이터가 증거이긴 하다. 그러나 통계적 데이터는 그 의미를 스스로 드러내지 않는다. 그것은 해석돼야 한다.

코로나19 대유행에 관한 여러 연구를 둘러싼 논쟁은 많은 경우 상이한 모형들이 토대로 삼는 가정들에 초점을 둔다. 이런 가정들은 데이터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가정들에 따라 데이터를 조직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가정을 세우는 데에서 길잡이가 되는 이론들은 전혀 중립적이지 않다. 이번에 논란이 된 과학자 자문위원회에는 두 명의 “행동 과학” 전문가가 포함돼 있다.

그러나 “행동 과학”은 사이비 과학의 한 형태로서, 깊게 뿌리내린 자본주의, 제국주의, 계급이 인간의 행동을 규정하는 데서 하는 구실은 무시한 채 미심쩍은 심리학을 근거로 사람들의 사회적인 행동을 설명하려 한다.

이와 대조적인 접근법을 의학 전문지 《랜싯》의 편집자인 리처드 호튼이 제시한다. 호튼은 존슨 정부의 대유행 대응책을 “한 세대 이래 최악의 과학 정책 실패”라고 비판했다.

호튼은 〈파이낸셜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역사가이자 철학자인 미셸 푸코의 저서를 읽고 있다고 답했다. 푸코는 “지식-권력”이라는 개념을 고안해, 특정한 형태의 지배라는 맥락 속에서 과학이 어떻게 발전하고 그 지배를 뒷받침하는지 연구했다.

호튼이 인용한 《생명정치의 탄생》[국역: 《생명관리정치의 탄생》(난장)]에서 푸코는 18세기에 “통치성”(푸코가 만들어 낸 개념으로 전체 인구를 관리하기 위한 국가의 전략을 말한다)이 출현하는 과정의 일환으로서 자유주의 정치경제학이 형성됐음을 보여 준다.

영국의 코로나19 대유행은 여러 면에서 신자유주의의 ‘통치성’을 속속들이 보여 주는 사례라 할 만하다. 코로나19는 많은 죽음을 초래했고, 특히 요양원에서 지내는 노인과 취약자들이 많이 사망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요양원에서 1만 1000명의 초과 사망[역사적 평균치와 비교하여 늘어난 사망자 수]이 있었다고 추정한다. 호튼은 반갑게도 과학과 정치의 관계에 관해 완전히 다른 주장을 개진한다.

“19세기 위생 개혁과 영국 국립보건서비스(NHS)의 탄생 같은 몇몇 위대한 진전들은 기술적 업적이 아니라 정치 투쟁[의 결과]였다. 의학과 보건에서 정치를 분리할 수 있다는 발상은 역사에 대한 무지의 소치다. 의학 기관들은 보건 격차나 사람들이 의료 서비스를 누리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서 정치를 멀리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정치적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