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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경제 위기와 국제 정치경제:
미국의 세계 패권은 계속될 것인가?

경제 위기와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이라는 이중의 위기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 분투하고 있다. 그러나 주요 정부들은 경제 사정이 악화되는 것에 안절부절하며 경제 활동을 재개하려고 한다. 이로 인해 팬데믹이 더 악화될 위험이 있는데도 말이다.

주요국 정부들의 대외정책도 코로나19 위기를 해결하는 데 어려움을 주는 한 요인이다. 예컨대, 제재 문제가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 제재로 ‘불량국가들’이 코로나19 대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4월 이란 정부는 한국산 코로나19 진단키트를 수입하려다 미국의 제재로 좌절됐다. 앞서 3월 베네수엘라 마두로 정부는 코로나19에 대비해 의료 체계를 강화하려고 국제통화기금(IMF)에 50억 달러 자금 지원을 요청했지만, IMF는 이를 거절했다. 미국을 비롯한 소위 ‘국제사회’가 마두로 정부를 인정하지 않고 베네수엘라에 제재를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 북한에 코로나19 대비에 필요한 의약품과 관련 기기를 보내려면 늘 유엔의 개별 승인을 받아야만 한다. 트럼프 정부는 코로나19 위험에도 대북 제재를 풀지 않겠다고 했다. 김정은 건강이상설이 제기되는 와중에(결국 김정은은 건재한 모습으로 다시 나타났지만), 미국과 한국은 2년 만에 공군연합훈련을 했고 정찰기들을 북한 주변에 계속 보냈다. (북한이 미사일 시험 발사를 지속하고, 5월 3일 휴전선 남측 초소에 느닷없이 총알이 날아온 일은 이런 맥락 속에서 봐야 한다.)

4월 28일 비영리기구인 국제구호위원회(IRC)가 아프가니스탄·시리아·예멘 등 전쟁을 겪는 나라, 아프리카와 중남미의 빈국들 등 코로나19 위협에 특히 취약한 34개국에서 향후 코로나19 확진자가 5억~10억 명, 사망자는 170만~320만 명에 이를 수 있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매우 “보수적”으로 잡은 수치라고 덧붙였다.

이런 곳 중 상당수는 강대국, 특히 미국의 간섭과 전쟁으로 사회기반시설이 붕괴하고 난민이 대거 발생한 곳이다. 그런데도 강대국 지배자들은 이 문제에 책임감을 느끼지 못하는 듯하다. 얼마 전 트럼프 정부는 세계보건기구(WHO)에 대한 자금 지원을 끊어버렸다.

WHO

자본주의 세계 체제의 위기는 자본주의 국가들 간의 질서에 영향을 미친다. 이 과정에서 기존의 모순이 더 증폭되기도 하는데, 유럽연합(EU) 내부의 균열이 더 커진 것이 한 예다. 유럽연합은 이미 브렉시트로 한 차례 타격을 입었는데, 이번 코로나19와 경제의 이중 위기에 직면해 유럽연합 가입 국가들은 유럽 차원에서 공동 대응하기보다 국민국가별로 각자 대처하며 분열상만 더 드러냈다. 유럽 국가들끼리 방역 물품을 서로 가로채거나, 유럽연합이 회원국에 제공하기로 한 경제회생기금 운영 방식 등 경제 위기 해결 방안을 놓고 가입국들의 견해차가 충돌해 합의를 이루지 못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런 모습을 보면 ‘유럽연합이 국민국가보다 더 진보적’이라는 생각은 커다란 착각임이 다시 확인된다.

코로나19 위기로 중국 경제가 일시 마비되자, 자동차 산업을 비롯한 주요 산업의 세계 생산이 심대한 타격을 입었다. 이번 위기로 국경을 가로질러 형성된 세계적 생산 네트워크의 일부가 멈췄을 때 전 세계가 어떤 영향을 받는지가 드러난 것이다. 이 때문에 주요 국가들에서 “탈세계화” 주장이 더 거세질 듯하다. 강대국이 생산 네트워크(의 일부)를 자국으로 되돌리려 하거나, 특정 강대국을 중심으로 지역 블록을 구축하려 할 수 있다. 물론 다국적 생산 네트워크가 주는 이점 때문에 세계화는 살아남을 테지만, 국가와 기업들이 “탈세계화”를 시도하면서 국가들 간의 국제 질서에 새로운 모순과 갈등을 부를 수 있다.

경제 위기는 중대한 지정학적 변화를 수반할 수 있다. 선진국 경제들의 성장이 둔화하거나 심지어 마이너스가 되면, 줄어든 파이를 놓고 세계 자본들의 경쟁은 더 치열해질 것이다. 이런 상황은 정부들 간의 협력적인 위기 대처를 어렵게 한다.

게다가 국가들의 경제력 비중이 바뀌는 상황이 벌어진다. 그래서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세계 자본주의에서 미국 경제가 차지한 지위가 상대적으로 하락하는 가운데 “나머지들의 부상”이 일어났다. 즉, 미국의 다른 경쟁국들이 성장해 미국과의 격차를 줄여 온 것이다. 가장 두드러진 국가가 바로 중국이다(그림1). 즉, 중장기적으로 미국의 패권을 가장 위협할 존재로 중국이 등장한 것이다. 중국의 부상은 미국이 주도해 온 기존 제국주의 질서에 상당한 변화를 낳고 있다.

코로나19 책임 공방

현재의 코로나19·경제 위기가 미·중 패권 경쟁과 갈등에 어떤 영향을 줄까? 코로나 사태 초기에 중국에서 확진자와 사망자가 급증하자 서구 언론들은 중국판 ‘체르노빌 모먼트’가 시작됐다고 했다. 1986년 소련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 이후 5년도 안 돼 소련이 붕괴한 것과 비슷한 운명을 중국이 밟을 것이라는 얘기였다.

그러나 중국에서 코로나19 확산세가 진정되는 듯하자 중국은 다른 나라들에 코로나19 관련 지원을 시작했다. 프랑스와 독일 등 유럽 강대국들이 자국 내 방역에 급급한 사이에 중국은 이탈리아와 세르비아 등지로 방역 물품을 보냈다. 반면 미국을 비롯한 서구는 코로나19가 급격히 퍼지면서 심각한 피해를 입고 있다.

무엇보다, 미국은 세계적 위기에 직면해 전혀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자 이제 새로운 물음이 고개를 들고 있다. ‘코로나19가 미국에서 중국으로 세계 패권이 넘어가는 계기가 되는 것은 아닐까?’

중국이 코로나19 위기의 틈을 노려 운신의 폭을 넓히는 듯하자, 트럼프 정부는 이에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며 여러 수단을 동원해 중국을 견제하려 한다. 단지 트럼프만이 아니라 민주당 대선 후보인 조 바이든도 트럼프와 비슷하게 중국에 대한 강경론을 펴고 있다.

미국 정부는 코로나19 확산의 책임이 중국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를 둘러싼 공방이 점입가경이다. 트럼프 정부는 틈만 나면 코로나바이러스를 “중국 바이러스,” “우한 바이러스”라고 부른다. 그리고 트럼프와 국무장관 폼페이오가 앞장서 코로나바이러스가 중국 우한 연구소에서 유래했다는 증거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 증거가 무엇인지는 지금까지 밝히지 않았지만 말이다.

특히, 트럼프 정부는 중국에 코로나19 책임을 묻겠다며 보복 조처들을 검토하고 있다. 그중에는 “중국산 상품에 관세를 부과해 1조 달러를 거둬들이는 것”이 포함돼 있다고 트럼프 스스로 밝혔다.

중국에 막대한 손해배상을 요구하려고도 한다. 4월 27일 트럼프는 한 기자회견에서 제1차세계대전 당시 독일이 물었던 배상금보다 더 많은 돈을 중국이 내게 하겠다고 을러댔다. 이런 분위기 속에 미국 미주리 주정부는 지방법원에 중국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걸었다.

중국 정부는 강하게 반발하며 전방위 대응에 나섰다. 언사도 갈수록 격해지고 있다. 그래서 중국 정부도 코로나바이러스가 미군에서 유래해 중국에 퍼졌다는 주장을 한다.

이런 일은 코로나19·경제 위기로 위기감이 커진 미국 지배자들이 중국에 더 강경해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그리고 “이중의 위기”에 처해 미·중 갈등 등 강대국 간 경쟁이 더 악화되는 양상이다.

그런데 이번 위기로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새로운 패권국으로 등장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쉽지 않다.

중국이 매우 빠른 속도로 군사력을 강화하고 있지만, 미국과의 격차가 상당하고 한동안 계속 그럴 것이다(그림3).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가 지난 4월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미국의 군비 지출은 여전히 2위에서 10위 국가들의 군비 지출을 합한 것보다 더 많다.

단지 군사비의 차이로만 미국과 중국의 격차를 설명할 수는 없다. 미국은 유라시아 일대에 광범한 군사기지망과 동맹국 체제를 수십 년 동안 유지해 왔다. 미국은 중국의 부상에 경계와 적개심을 품은 중국 주변 국가들을 자기 편으로 포섭할 수 있다. 반면 중국의 해외 군사 진출은 이제 막 시작되는 단계이고, 동맹국 확보라는 면에서도 미국보다 분명히 열세다.

그리고 미국은 여전히 국제 금융 시스템의 중심이다. 미국의 거대 은행들은 국제 금융시장을 지배하며, 현재 국제 무역 결제의 약 90퍼센트, 세계 외환보유액의 약 60퍼센트가 달러로 표시된다.(그림2)

지금 중국 경제는 제 코가 석자인 처지다. 그래서 2008~09년 위기 때처럼 세계경제 회복의 견인차 구실을 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당시 중국 정부는 적극적으로 돈을 풀어 위기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그 결과로 중국의 국가와 민간 부문이 모두 막대한 부채를 안고 있다.

충돌하는 이해관계

그러나 중국의 도전에도 미국의 패권이 한동안 지속될 것이라고 해서, 미국이 안고 있는 딜레마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현 위기가 악화될수록 미국 지배자들의 고민은 더 깊어질 수 있다.

미국은 유일 패권국이므로 세계 곳곳에서 동시에 제기되는 도전들에 모두 응해야 한다. 한정된 역량으로 말이다. 그리고 미국 경제가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상대적 비중이 줄어들면서, 경제 위기에 처한 자유시장 국제 질서를 홀로 지탱하는 것은 미국에 큰 부담으로 다가오고 있다. 미국이 현 위기 속에서 국제적 지도력을 발휘하지 않는 것이 단지 트럼프의 정치 성향에서 전적으로 비롯한 문제는 아닌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도 (일시적으로 유화 국면이 올 수는 있지만) 강대국 간 갈등으로 불안정은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미국과 중국의 격차가 여전히 큼에도 미국과 중국 사이에 이해관계 충돌이 점차 첨예해지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최근의 1차 합의로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잠시 소강 국면인 듯하나, 이는 조만간 재점화될 공산이 크다. 1차 합의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대중국 관세는 여전히 거의 그대로다. 무엇보다 지금 미국은 중국 기업들이 첨단 산업에서 기술력을 키워 미국 기업들의 경쟁력을 잠식하지 못하도록 하는 데 관심이 크다. 그래서 안보 관련 생산 분야에서 중국의 수출입 제한, 중국의 대미 투자 조사, 중국의 지적재산권 절도 혐의 조사와 제재 등 온갖 수단을 동원하려 한다. 이번 코로나19 책임 공방도 무역전쟁이 재점화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그 밖에 대만 문제, 남중국해 갈등 등 기존의 지정학적 갈등이 더 악화될 여지도 충분하다.

예컨대, 중국은 미국 해군 함정들에 코로나19가 확산되는 틈에 남중국해에 대한 장악력을 키우려 애쓰고 있다. 앞서 태평양에 배치된 미군 항공모함 4척이 코로나19 환자 발생 때문에 항구에 발이 묶이자, 그 틈에 중국군은 항공모함인 랴오닝함을 대만해협을 거쳐 남중국해로 보냈다. 그러자 미군도 (사실상 경항공모함인) 강습상륙함을 남중국해로 파견했다. 4월 29일 중국군은 남중국해 시사군도 주변에 접근한 미군 구축함을 쫓아냈다면서, 자국 방역에나 집중하라고 미국을 힐난하기도 했다.

경제 위기가 세수 감소와 지출 증대로 정부 재정에 부담을 주는데도 당장 미국과 중국은 군비 지출을 줄일 것 같지 않다. 오히려 최근의 추세는 그 반대로 나타나고 있다. 중국 경제성장률은 수년 동안 계속 떨어져 왔지만, 중국 정부의 국방예산 증가율은 경제성장률의 하락 추세를 따라가지 않으며 항상 경제성장률보다 높다.

미국 트럼프 정부도 군비 지출을 늘리는 데 열심이다. 미국의 국방예산은 2015년 5860억 달러에서 지난해(2019년) 7320억 달러로 늘었다. 지난해 미국 국방예산 증가율은 5.3퍼센트였는데, 증액분만으로도 독일 1년 국방예산과 맞먹는 수준이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는 최근 미국의 군비 지출 증가가 미국이 강대국 간 경쟁을 크게 의식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지배자들은 경제 위기로 인한 손실과 자국의 지위 하락을 만회하고자 비시장적 방식, 특히 군사력 증대에 기대고자 할 수 있다. 특히, 지금처럼 강력한 경쟁자가 등장해 자국의 권력과 지위를 노리고 있다고 여긴다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지금 위기가 1930년대 대불황 때처럼 강대국 간 전면전으로 나아갈 것일지는 확신할 수 없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 등이 우리에게 확실히 알려 주는 것은 2020년대가 지난 10년보다 훨씬 무시무시한 시대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위기의 시대에는 반자본주의적인 대안이 성장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우리는 노동계급 혁명이라는 가능성을 실현하려 애써야 한다. 그러려면 그런 과제를 수행할 수 있는 혁명적 정치 조직이 필요하다.

이 기사는 5월 4일 노동자연대 온라인 토론회 ‘코로나19·경제 위기와 국제 정치경제: 미국의 세계 패권은 계속되는가?’의 발제문이다. 영상에서 청중 토론과 정리발언을 더 볼 수 있다. (영상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