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0일 ‘코로나 위기 극복’을 내세운 노·사·정 사회적 대화 첫 회의가 열렸다. 코로나19와 경제 위기 속에서 문재인 정부는 사회적 대화를 추진했다. 민주노총을 비롯해 양대노총 지도부도 위기 극복에 협조하겠다며 적극 나섰다.
이런 가운데, 독일 노·사·정의 사회적 대타협이 한국이 따라야 할 모델로 노동운동 안팎에서 자주 거론된다. 고용을 보장받는 대신 임금을 양보하거나, 그 방안의 하나로 단축근로지원금제도를 활용하는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독일 좌파 잡지 《마르크스21》은 독일의 ‘사회적 대타협’이 결코 노동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 역설한다.  


코로나 참사는 경제를 전에 없던 급격한 위기로 밀어 넣었다. 경제학자들은 경제가 “인위적 혼수상태”에 빠졌다고 말한다. 독일 경제연구소(IFO)는 경제가 3개월 동안 부분적으로 멈추면 독일 경제가 10~20퍼센트 마이너스 성장을 할 것으로 예상한다. 지금까지 독일에서 이런 속도로 경제가 추락했던 적은 1923년과 1931년밖에 없었다.

자본주의가 위기에 빠지지 않으려면 경제의 쳇바퀴가 계속 굴러가야 한다. 지금 코로나19 대유행은 자본주의의 축적 과정을 이중으로 좌절시킨다. 공급 측면에서는 재화와 서비스의 공급이 불가능해지거나 불허됐다. 수요 측면에서는 소비자들이 돈을 쓰지 않고 있고 소득이 대거 사라졌다. 자본주의는 산출량이 급격히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코로나 위기는 이미 지난해부터 경기가 악화되고, 주식·신용 거품이 존재하던 상황에서 벌어졌다. 그래서 코로나19 대유행 전부터 노동조합들과 사민당, 녹색당, 많은 경제학자들은 헌법상의 균형 재정 준칙을 완화하고 공공투자를 확장하는 것에 관해 논의했다. 

구제금융

경제 붕괴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독일 연방정부와 주정부들은 시장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고 계속해서 구제금융책을 내놓고 있다. 줄도산을 막는 데에는 아낌 없이 비용이 들어가고 있다. 이는 무엇보다도 기업들과 기업주들을 구제하기 위한 것이며, 다수의 대중은 대체로 스스로 살아남아야 하는 처지다. 그러나 위기가 한창인 와중에 독일 대기업 주주들은 440억 유로[약 56조 5000억 원]어치의 배당금을 받았다. 

독일 정부는 1560억 유로[약 212조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을 승인했는데, 그중 500억 유로는 소기업, 자영업, 공공시설을, 550억 유로는  보건시스템과 방역을, 330억 유로 이상은 기업주 세금 감면을 위한 것이다. 독일연방 정부가 마련한 6000억 유로 규모의 경제안정화기금(WSF)은 지분 매입, 구제금융, 신용 보증의 형태로 기업들을 지원하는 데에 쓰일 것이다. 이것은 돈을 빌려주는 것이지만 이런 신용의 상당 부분은 아마 상환되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 더해 수십억 유로가 감염보호법에 따른 제한 조처와 단축근로지원금* 등에 쓰일 것이다.

또, 그 뒤에도 독일 정부는 10~250인 규모의 기업들을 위한 500억 유로 규모의 긴급 대출 프로그램을 추가적으로 발표(4월 6일)했다. 원래 독일 정부는 기업들이 주 거래 은행을 통해 독일재건은행의 소규모 구제 금융을 받게 하고 그 은행들이 신용 리스크의 10퍼센트만을 부담하게 하려 했는데, 정작 그럴 준비조차 돼 있지 않은 은행들이 많아서 추가적으로 이런 정책을 발표한 것이다. 4월 6일자 〈쥬트도이체 차이퉁〉에 따르면 독일의 구제금융 규모는 이미 총 1조 1730억 유로[약 1578조 원]에 이른다. 독일 GDP의 3분의 1 수준이다. 

가난의 덫 단축근로지원금

정부는 대중의 소득과 일자리를 지키는 데에는 인색하다. 기업들이 받는 지원이나 현재 드러나고 있는 침체와 빈곤의 규모에 비춰보면, 위기 동안에 세입자들을 내쫓지 못하게 하거나 기초보장을 확대하는 조처는 보잘것없어 보인다. 

노동부장관 후베르투스 하일이 사회적 대타협의 본보기로 교묘하게 제시하는 단축근로지원금도 대중을 위한 조처라고 하기는 어렵다. 단축근로지원금은 결국 기업이 치러야 할 임금 비용과 사회보장비를 100퍼센트 국가가 대신 치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규모는 상당하다. 3월에 47만 개 기업이 단축근로를 시행했고, 국가는 3월부터 지금까지 약 235만 명의 임금을 메꿨다. 

게다가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독일의 단축근로지원금은 너무 낮아서, 노동자들은 임금이 40퍼센트나 삭감됐다(자녀가 있는 경우 35퍼센트). 저임금 노동자, 단체협약을 적용받지 못하는 부문에 있거나 시간제로 일하는 노동자들은 오랫동안 이런 임금 손실을 버티기 힘들다

이는 임금 통계에서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2018년 전일제 노동자 중에서 저임금 기준인 2200유로[290만 원] 이하를 받는 노동자는 거의 5명 중 1명 꼴이었다. 2019년 1월 기준으로 1000만 명에 가까운 시간제 노동자들은 주당 약 26시간 일하고 월급으로 [저임금보다 약간 높은] 평균 2515유로를 받았다. 비숙련직 시간제 노동자의 월 평균 임금은 [저임금에 훨씬 못 미치는] 1400~1700유로[190만~230만 원]에 불과했다. 부문 간 임금 격차도 크다. 청소, 요식업, 우편 배달 같은 부문의 노동자들은 평균보다 25~40퍼센트 더 적게 받았다.  

300만 명에 이르는 기간제 노동자들은 생활고에 시달릴 뿐 아니라 평균 25퍼센트 적은 임금을 받는다. 미니잡[월급이 400유로 이하로 정해진 시간제 일자리] 노동자 약 800만 명도 계약직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지금까지 어떠한 지원도 받지 못했다. 새로운 일자리를 얻을 전망이 없는 상황에서 수개월 동안 소득이 줄면, 수많은 사람들이 파산하거나 빚더미에 앉게 될 것이다. 

기업들은 마음껏 유동성[현금]을 신청할 수 있지만, 대다수 노동자들은 유동성이 없다. 사회의 가장 부유한 10퍼센트는 전체 부의 6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지만, 소득 하위 50퍼센트는 0.5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심지어 소득 하위 10퍼센트는 전체 부의 1.3퍼센트에 달하는 빚을 지고 있다. 그래서 노동계급 다수는 커다란 재정적 손실을 감당할 수 없는 상태다. 

‘사회적 연대’인가 계급정치인가

앞으로 경제 위기가 얼마나 길고 깊게 지속될지는 알기 어렵지만, 수출 지향적인 독일 경제가 오랜 기간 침체에 빠질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세계경제가 침체한 상황에서 누가 1조 3300억 유로(2019년 1월 기준)에 달하는 독일의 수출품을 사겠는가? 좌파와 노동운동은 오래 지속될 위기를 대비해야 한다. 이 위기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고 기업들이 줄도산할 수 있다. 

이런 시기에 좌파는 위기에 처한 노동자들의 불안과 고통을 포착하고 위기의 대가를 노동계급에 전가하려는 시도에 맞서 저항을 조직해야 한다. 

그러나 [독일의 좌파 개혁주의 정당] 좌파당(디링케)의 일부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가려 한다. 3월 19일 좌파당 의원 디트마어 바르치는 위기에 “단호히 대처”했다며 메르켈 총리를 칭송했고, 좌파진영이 “정부 정책을 지지하고, 연대를 촉진하며, 국가·대중·경제에 해를 끼치지 않게끔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들은 경제안정화기금(WSF)에도 동의했다. 이것은 좌파당이 정부와 함께 위기를 공동 관리하는 방향으로 개혁 요구를 한정하려 한다는 불길한 인상을 준다. 

3월 13일 독일노총(DGB) 위원장 호프만도 독일 경영자단체연합(BDA), 독일 정부와 공동 성명을 발표하여 이와 비슷한 행보를 취했다. 이 성명에서 그들은 외관상 성공적으로 보이는 2008~2009년 위기 때의 ‘사회적 대타협’을 긍정적으로 언급하면서 노·사·정이 또다시 “코로나 위기에 대응해 차이를 넘어 공동의 책임”을 질 것이라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노동자들의 희생도 요구했다. 예컨대 휴가를 내거나 시간외 근무를 줄여서 아이들을 돌보라고 말이다.

그러나 노동조합 지도부의 이러한 양보는 막대한 임금 삭감을 초래할 뿐이다.

좌파당과 노동조합은 경영자들, 정치 권력자들과 손을 잡을 게 아니라 구제 정책의 계급적 내용을 쟁점화시키고, 기업주들만이 아니라 무엇보다 대중을 구제해야 한다고 주장해야 한다. 그들의 위기를 12년 만에 또다시 노동자들이 책임지게 할 수는 없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대중의 이익을 지키려는 단호하고 광범한 운동이 벌어지고 있지 않다. 현재까지 독일노총 소속 노동조합들은 단축근로지원금에 더해 임금의 80~90퍼센트를 보전하라고 사측에게 요구하고 있지만, 전반적인 정부 정책을 요구하고 있지는 않다.

아래로부터의 저항

슈투트가르트 병원에서 H&M 체인점에 이르기까지 여러 곳에서 저항이 벌어지고 있다. 코로나19 때문에 휴업한 기업의 노동자들은 현재 임금 손실을 받아들이거나 기껏해야 방어적 투쟁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필수’ 사업장으로 간주되는 곳에서는 노동자들의 자신감과 계급 의식이 상당히 높아지고 있다. 이 노동자들은 보호 장비 지급을 요구하고 무리한 근무 시간에 반대하며 일시적인 추가 수당도 요구하고 있다.

건강으로 이윤몰이 말라! 인력 확충과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는 슈투트가르트 병원 의료진 ⓒ출처 marx21.de

이 노동자들은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라거나 사회 전체를 짊어지고 있다는 얘기를 사방에서 듣는다. 좌파 활동가들은 이처럼 부상하는 계급의식, 요구, 행동을 기회로 삼고 지지할 수 있다.

좌파에게는 이러한 요구와 투쟁을 일반화하고 정치화할 과제가 있다. 임금의 90퍼센트를 보전하도록 단축근로지원금을 인상하라고 요구하는 캠페인은 좋은 출발점이다. 좌파당 원내교섭단체가 발의한 법안에도 좋은 요구들이 전단지 한 장을 가득 채울 만큼 있다.

  1. 독일의 제2차세계대전 전후 배상 때 그랬던 것처럼 백만장자와 억만장자에게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막대한 재산세를 물릴 것
  2. 필수 작업장 노동자들의 안전을 위해 마스크, 일회용 장갑, 검사 키트 등을 보장하는 의무 규정을 도입할 것
  3. 필수 작업장 노동자들에게 위험 수당 500유로를 2020년 3월부터 소급적용하여 매월 지급할 것
  4. 국가가 지원하는 사업장에서의 해고 금지
  5. 유치원 휴원이나 학교 휴교 때문에 출근하지 못하고 아이를 돌봐야 하는 부모들의 임금을 보장할 것
  6. 노인과 소득 감소자 등에 대한 복지 수당과 기초 보장을 강화하여 매월 200유로[27만 원]를 3월부터 소급적용하여 매월 지급할 것
  7. 강제 철거, 단전, 단수, 가스 공급 중단을 금지할 것
  8. 최소 6개월 동안 세입자를 내쫓거나 해고하는 것을 금지할 것
  9. 이 기간에 밀린 집세에서 이자와 원금의 절반을 탕감할 것

이러한 요구가 실현된다면 수많은 사람들에게 굉장한 변화일 것이다. 이제 당장 필요한 구제 조처와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전 사회적이고 광범한 운동을 건설해야 한다. 근본적인 사회적 격변과 변화는 특히 위기 시기에 발생한다. 이런 시기에는 고통과 모순이 참을 수 없을 지경이 되고 순간적인 급진화가 정치적 상황을 압도할 수 있다. 이런 시기에 기회를 잡기 위해 좌파가 스스로 무장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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