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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좌파 활동가가 말한다:
고용-임금 맞바꾸기 합의는 계속되는 양보 압박만 낳는다

독일 금속노조 등의 임금 양보 합의는 일자리를 지키는 대안으로 국내에서 자주 소개된다. 지난 3월에도 독일 금속노조 지도부는 사용자 측과 고용-임금을 맞바꾸는 합의를 체결해 국내 노동운동 일각의 관심을 끌었다. 
독일 좌파 잡지 《마르크스21》은 임금 양보 정책이 어떤 문제를 낳는지 들춰낸다. 이 글은 2010년에 쓰여졌지만 현재에도 여전히 유용성이 있다. 다만 현 시점을 고려해, 그리스 등의 당시 노동자 투쟁을 언급한 부분은 제하고 싣는다.

독일에서는 노동자들이 최근 몇 년 동안 혹독한 실질임금 손실을 감내해야만 했다.(그래프 참조) [독일노총(DGB)의 싱크탱크] 한스 뵈클러 재단의 경제 사회과학 연구소(WSI)에 따르면 이러한 임금 추세는 독일 국내 경기가 마비된 주요 원인이다. 독일의 수출 산업 경쟁력은 크게 향상되었지만 내수경제가 받은 부정적 영향이 그 이점을 상쇄했다고 한다.

WSI 연구진은 수요를 증가시키려면 물가 인상률과 생산성 증가율에 따라 분배를 개선하는 임금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단체교섭을 앞둔 노조 지도자들도 이러한 주장을 되풀이한다.

유럽연합 국가들의 실질임금 인상률(2000-2008년)(단위%) 1998년 독일의 노·사·정은 '실업률 감소를 위해 임금 억제, 노동시간 유연화 등'을 합의했다('일자리를 위한 동맹' 협약). 2000년대 독일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이 하락한 배경이다

그런데 독일 노조원들의 전투성은 눈에 띄게 약해졌다.

독일 노동자 1000명당 연간 파업 일수는 5.2일(2008년)로 국제적으로 꼴찌 수준이다. 이것이 바로 실질임금이 감소한 중요한 이유다. 싸우지 않으면 자본가로부터 아무것도 얻어 내지 못한다. 동시에 경제가 성장했던 최근 몇 년 동안 산별단체협약이 체계적으로 악화됐다. 노조는 기업별협약과 개방조항[산별단체협약에서 벗어나는 조항]에 동의하고 “덤핑 임금”[지나치게 싼 임금]을 주는 저렴한 업체에게 일자리를 외주화하는 것에 저항하지 않음으로써 이러한 과정에 동참했다. 이 모든 것은 기업 또는 국가 경쟁력 확보라는 명목 하에 이루어졌다.

올해[2010년] 단체협약에서 독일 금속노조(IG-Metall) 지도부는 “고용 보장”을 위한다며 모든 임금 인상 요구와 노동자 동원을 포기했다. 그러나 단기노동을 통한 고용 보장의 비용은 기업이 아니라 납세자가 치르며 납세자의 다수는 노동자이다. 게다가 기업은 주주들에게 배당을 지급하려고 임금과 일자리를 계속 삭감할 것이 분명하다.

독일 공공서비스노조(ver.di)는 임금을 인상하고 “은행이 아니라 사람을 보호”해 내수를 진작하라고 요구했지만, 노동자 약 130만 명에게 적용될 단체협상에서는 26개월간 임금을 점진적으로 2.3퍼센트 인상하는 것에 합의하는 선에서 협상을 마무리하려 한다. 1.2퍼센트로 예상되는 물가상승률과 다가올 복지 삭감을 고려하면 실질임금이 삭감되는 셈이다. 정부와 기업이 공격을 준비하는 동안 노동조합은 다시금 사회적 대화로의 복귀를 추구하고 있다.

양보 정책이 낳는 폐해

임금 양보 정책은 여러 면에서 노조를 막다른 길로 이끈다. 경쟁력을 위해 투쟁 없이 임금을 양보함으로써 노조 대표자들은 임금 삭감과 사회 복지비 삭감의 악순환이 가속화하는 것을 받아들인다. 한 회사가 임금을 삭감하면, 경쟁 회사의 노동자들도 임금 삭감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압박을 받기 때문이다.

국가 경제에서도 마찬가지다. 독일의 실질임금 감소는 다른 경쟁 국가에도 임금 삭감과 복지 삭감 압력을 준다. 이는 독일이 자국 제품을 더 많이 수출하려 하는 그 나라들의 구매력을 약화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노동조합의 가치는 임금 노동자들 사이의 경쟁을 함께 없애고 자본에 대항해 사회적 이익을 위해 함께 연대해 싸우는 데에 있다. 사회적 대타협의 정치로는 노동자들이 중장기적으로 손해를 보게 될 것이다.

타협과 양보 정치로는 노동자들의 이익을 지킬 수 없다 ⓒ출처 Uwe Aranas

더 나아가 임금 양보 정책은 노동자의 투쟁 조직인 노동조합을 약화시킬 것이다. 노동조합들은 단지 대량 실업 때문만이 아니라 최근 몇 년 간의 양보 정책 때문에 조합원 수가 줄었다. 이러한 정치는 “임금 양보가 일자리를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노동조합의 오랜] 구호에 대한 불신을 자아내고, 조합원들로 하여금 자신의 이익이 거의 관철되지 않는데도 왜 파업기금을 내야 하는지 자문하게 한다. 게다가 위기 때는 많은 노동자들이 주눅들고 일자리를 걱정하기 때문에 투쟁 방침을 시행하기가 더 까다롭다.

노동조합은 동질적이지 않다. 그들의 지도부는 여전히 정치적으로나 인적으로나 독일 사회민주당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독일의 지난 두 정부[1998년 독일 사회민주당과 녹색당 간의 연정, 2005년 기독민주·기독사회당 연합과 사회민주당 간의 대연정]에서 독일 사회민주당은 복지를 축소하고 실질 임금을 삭감해 독일 경제의 국제 경쟁력을 강화하려 했다. 독일 사회민주당은 노동조합 최상층에 있는 그들의 대표자들에게서 지지를 받았고, 노조 지도부는 정부가 시위나 심지어 파업으로 지나치게 압력을 받지 않게 하려고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이러한 양보 정책에 대해 많은 항의가 있었고 이는 마침내 독일 좌파당(디링케)이 설립되는 계기가 됐다. 독일 사회민주당 왼쪽의 가장 강력한 세력으로서 좌파당은 사회민주당 세력이 내세우는 경쟁력 논리가 노동조합에 스며드는 것을 저지할 가능성이 있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조합의 투쟁에 실질적으로 연대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형편없는 수준의 임금을 받아들인 것을 공개적으로 비판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좌파당이 이러한 방향에서 한 실천은 너무 적었다. 정치와 경제의 분리(의회·정당과 노동조합의 분리)를 극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