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소련이 붕괴한 지 30년 가까이 지났지만, 옛 소련 사회의 성격이 무엇인지는 좌파에게 여전히 중요한 주제다.

중국, 북한이 지금도 건재하고 사회주의를 표방한다. 대다수 좌파는 옛 소련, 그리고 북한처럼 소련 모델이 거의 그대로 복제된 곳을 사회주의 사회라고 여긴다. 이른바 “현실 사회주의”라면서 말이다. 심지어 이미 시장 친화적 ‘개혁’을 한 중국을 사회주의 사회라고 보기도 한다. 여전히 공산당이 국가 권력을 쥐고 있고, 경제의 주요 부문을 사기업이 아니라 국유기업들이 차지하고 있다면서 말이다.

따라서 옛 소련 사회의 성격 문제는 오늘날 자본주의 위기 시대의 근본 대안을 모색하는 사람이라면 비켜갈 수 없는 쟁점이다.

러시아 혁명 

1917년 러시아 혁명은 전 세계의 노동자와 서민들을 고무한 노동자 혁명이었다.

당시 러시아에서 낡은 차르 왕정 국가는 혁명으로 분쇄됐다. 대토지를 소유한 귀족, 군장성 같은 옛 지배계급은 권력을 모두 잃었다.

옛 전제정 대신에 노동자 국가가 그 자리에 들어섰다. 노동자 국가는 노동자 평의회(소비에트)로 조직됐고, 진정으로 민주적이었다. 노동자들은 노동자 평의회를 통해 노동계급에 이익이 되도록 사회를 운영했다.

그러나 서구 열강과 러시아 국내 반혁명 세력이 혁명 정부를 분쇄하려 협공을 펴, 처참한 내전이 일어났다.

혁명 정부는 긴 내전에서 가까스로 승리했다. 그러나 혁명으로 권력을 쟁취했던 노동계급은 내전 과정에서 거의 와해되다시피 했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전쟁과 기아 등으로 사망했다. 노동자 없는 노동자 권력은 껍데기에 불과했고, 국가기구와 공산당은 급속히 관료화됐다.

설상가상으로 1923년 독일 혁명 패배, 1926년 영국 총파업 패배, 1927년 중국 혁명 패배라는 불행한 상황이 전개됐다. 국제 혁명의 잇단 패배는 심각한 일이었다. 레닌과 트로츠키 같은 볼셰비키 지도자들은 혁명이 주요 선진국들로 확산되지 않는다면 노동자 국가는 세계 자본주의의 압력 때문에 오래 유지되지 못할 뿐 아니라 자본주의가 부활하는 반혁명을 피할 수 없다고 봤다.

그러나 국가기구를 손에 쥔 관료들은 점차 다른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보기에, 국제 혁명에 헌신하는 것은 자신들의 특권과 지위가 달린 국가기구를 자칫 위험에 빠뜨릴 도박이었다. 레닌이 사망한 후, 1924년 스탈린은 소련 한 나라에서 사회주의가 완성될 수 있다는 ‘일국사회주의’를 주창했다. 신흥 관료층은 스탈린의 주장에 찬동했다.

소련 사회에서 결정적인 전환점은 경제적·지정학적 위기를 맞아 1928~1929년에 일어났다. 특히 서방의 군사 위협에 직면해, 관료들은 러시아 혁명과 완전히 단절하고 급속한 공업화의 길로 치달았다. 농민은 강제로 토지를 빼앗기고 집단농장에 들어가야 했다. 저항하면 고문을 당하거나 심지어 피살됐다.

관료들이 자본축적을 위해 급속한 공업화를 수행하는 것과 노동자들의 민주적 통제는 공존할 수 없었다. 노동자는 생산에 대한 통제력을 몽땅 빼앗겼다. 단체행동권 같은 노동기본권도 모두 빼앗겼다.

스탈린주의 체제와 진정한 볼셰비키 전통 사이에는 러시아 혁명가 트로츠키의 표현대로 “피의 강물”이 흘렀다. 1930년대 스탈린 체제의 공포정치로 혁명기 지도자들은 거의 다 제거됐다. 한 연구를 보면, 1930~1932년 ‘반혁명 및 특별위험 범죄’로 사형 선고를 받은 사람이 매해 2만 명 수준으로 급증했다. 1937~1938년에는 그 규모가 무려 매해 30만 명을 넘었다(The Soviet century, Moshe Lewin, Verso, 2005). 이런 대규모 처형 사태는 러시아 혁명을 뒤집는 근본적인 변화가 소련에서 일어났음을 시사한다.

이 모든 일들은 반혁명이었다.

1956년 헝가리 혁명 당시 노동자들에 의해 파괴된 스탈린 동상. 동구권에서 벌어진 노동계급의 이런 저항은 스탈린주의 체제의 계급적 성격을 보여 준다

관료적 국가자본주의

이런 반혁명을 거쳐 형성된 옛 소련 사회는 진정한 사회주의와는 조금도 관련 없는 관료적 국가자본주의 사회였다.

물론 관료적 국가자본주의는 미국과 서유럽의 시장 자본주의와 그 형태가 달랐다. 경제는 중앙 국가기구가 ‘계획’했고, 사기업이 거의 없었으며, 국내 시장 경쟁도 없었다. 

그러나 옛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이 세계경제와 어떻게 연관을 맺고 있었는지를 보면 얘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사실, 옛 소련은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서 고립된 섬이 아니었다. 세계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경쟁의 압력을 받고 이에 대응해야 했다.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인 토니 클리프(1917~2000)는 한 노동자 국가가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압력을 계속 받게 된다면 어떻게 변질되는지를 이렇게 비유했다.

“미친 개가 사람을 물려고 하면 사람도 맞대응해야 한다. 개가 폭력적이면 사람도 폭력으로 맞서야 한다. ... 그러나 어느 쪽도 상대방을 죽일 만큼 강력하지 못해서 몇 달 동안 같은 방에서 서로 대치하면 어떻게 될까? 그렇게 되면 결국 사람과 개가 똑같은 몰골을 하게 될 것이다.”(《새로운 세대를 위한 마르크스 정치학 가이드》, 책갈피, 2012)

특히, 옛 소련 지배 관료들은 서방과의 군사적 경쟁에 직면해 있었다. 군사적 경쟁 압력이 지배 관료의 ‘계획’을 결정짓는 주요 요인이 됐다.

자본주의 국가의 지배자들은 군사적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경쟁국보다 노동생산성이 뒤처지지 않게 애써야 한다. 경쟁국들이 착취율을 높여 더 많은 잉여를 투자한다면, 자신들도 마찬가지로 착취율을 높여야 한다. 경쟁국들이 항상 신규 기계설비류와 기술혁신에 투자하므로 자신들도 그렇게 해야만 한다.

자본주의에서 군사적 경쟁은 생산성 향상을 위해 각국 내부의 노동과정을 재편해야 한다는 끊임없는 압력을 형성한다. 자본들의 경제적 경쟁이 각 기업 내부의 혁신을 추동하는 것처럼 말이다. 세계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수십 년 동안 군사적 압력을 받으면서 서방 강대국과 경쟁해 온 소련은 그 내부의 노동과정과 생산관계를 변화시킬 수밖에 없었다.

축적(기계 등 불변자본에 대한 투자)이 외부의 압력으로 강제되면서, 노동자들의 필요는 공업화 압력에 종속됐다. 소비가 축적에 종속됐고, 노동자들은 축적 과정의 희생자가 됐다.

이처럼 외부의 강제적이고 경쟁적인 축적 압력 때문에 노동생산성을 끊임없이 향상해야 한다는 것은 사회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핵심 특징이다.

옛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 국가자본주의는 1930~1970년대에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흐름에서 유별난 게 아니었다. 이때 국가와 자본의 융합, 즉 국가자본주의 경향은 1930년대 대불황에 의해 가속됐고, 1970년대 중반까지 세계 자본주의의 유력한 경향이었다. 옛 소련 등은 서방의 국가자본주의 경향에 견줘 극단화(전면화)된 형태였을 뿐이다. 그리고 제2차세계대전 종전 후 소련 모델은 동유럽, 중국, 북한 등지로 확산됐다.

같은 착취적 생산관계 하에서도 서로 다른 소유관계가 얼마든지 공존할 수 있다. 오늘날 중국에서 국유기업과 사기업, 다국적기업들이 큰 모순 없이 공존하는 것을 보라. 오히려 이들은 산업적 연관 관계를 긴밀하게 맺으며 이해관계를 공유한다. 즉, 중국 국유기업과 서방 다국적기업들은 서로 경쟁하지만, 동시에 노동자 착취 면에서는 이해관계가 같은 “싸우는 형제”다. 

옛 소련은 결국 붕괴했고, 중국도 지난 40년 동안 시장 친화적 개혁·개방을 진행해 왔다. 오늘날 자본의 세계화라는 맥락 속에서 이들은 모두 경제의 일국적 편제를 포기했다.

이후 진행된 민영화와 시장경제로의 이동을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퇴보한 것이라고 말하려면, 그 사회의 지배층이 다른 세력으로 교체되는 상당한 변화가 수반됐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옛 소련에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지배 관료 대부분이 특권과 지위를 계속 유지했다. 악명 높은 옛 소련 정보기관인 KGB 요원이었던 푸틴이 지금 러시아 대통령을 하는 것을 보라. 중국도 마찬가지다. 마오쩌둥 하에서 국가자본주의적 발전에 열렬히 충성했던 바로 그 관료들이 1970년대 후반부터 시장 친화적 ‘개혁’에 스스로 앞장섰고, 그의 자식들은 유력 기업의 경영자가 됐다. 

이런 점도 옛 소련이든 개혁·개방 이전의 중국이든 모두 시장 자본주의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은 자본주의의 한 변형태임을 보여 주는 증거다.

진정한 사회주의를 옹호하며

옛 소련·중국·북한 같은 사회의 성격에 대해 명료하지 않으면,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의 사상과 활동은 엉망진창이 된다. 특히, 국유·국영 경제가 곧 사회주의라는 생각, 노동계급의 자체 행동 없이도 소련군 탱크가 사회주의를 갖다 줄 수 있다는 생각(북한), 또는 도시 중간계급 지식인이 이끈 농민 게릴라가 노동계급에 해방을 선사할 수 있다는 생각(중국) 따위는 사회주의는 “노동계급의 자력 해방”(마르크스)이라는 사회주의의 원칙 자체를 전복시키는 것이다.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 등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생각한 사회주의는 노동자들이 스스로 정치적 지배력을 획득하는 것이다. 이는 당연히 소비에트 같은 노동자들의 민주적 권력 기구들을 통해 이뤄진다. 마르크스가 1871년 파리코뮌에서 노동자들이 생산수단 국유화 같은 일을 하지 않았는데도 노동자 국가의 모습을 봤다고 좋아한 까닭이다.

우리는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자들과 혁명 러시아의 노동계급이 품었던 이상과 전망을 회복해야 한다. 진정한 사회주의 전통을 확립하고, 이를 구현할 혁명적 정치 조직을 건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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