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연대

전체 기사
노동자연대 단체
노동자연대TV

쌍용차 위기 속에 아른거리는 2009년의 고통:
고용 보장의 유일한 해법은 국유화

“쌍용자동차의 기업 존속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삼정회계법인이 5월 17일 쌍용차 1분기 보고서에 대해 ‘감사의견 거절’을 내며 하며 한 말이다. ‘의견 거절’은 기업 실적보고서의 자료·수치를 신뢰하기 어렵다는 뜻으로 회계 감사에서 가장 부정적 평가에 해당한다. 삼정회계법인은 쌍용차의 유동성 위기가 심각하고(유동 부채가 현금성 자산보다 많고) 영업손실도 지속되고 있다는 이유를 댔다.

이를 두고 업계에선 쌍용차가 대규모 구조조정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고, 워크아웃(보통 노동자 공격이 수반되는 기업 회생 절차) 신청이나 상장 폐지 가능성도 크다고 보고 있다.

쌍용차의 올해 1분기 영업손실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배 이상 껑충 뛰었다. 순손실액은 1929억 원에 이른다. 부채비율(755.6퍼센트)과 자본 잠식률(71.9퍼센트)도 지난해 대비 각각 3배, 16.7배 가량 늘었다.

대주주인 마힌드라그룹은 약속한 2300억 원 자금 지원 계획을 취소하고 고작 400억 원 긴급 운영자금만 대기로 했다. 마힌드라는 지난달 인도 시장에서 차량을 한 대도 팔지 못했다. 그룹 차원의 재무 상황 악화로 쌍용차에 대한 추가 지원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에 따라 쌍용차는 당장 오는 7월 산업은행에 상환해야 할 대출금 900억 원도 갚기 어려운 실정이다. 정부는 아직까지 자금 지원을 결정하지 않았다. 정부가 쌍용차 지원에 나서더라도, 고강도 구조조정을 전제로 할 공산이 크다.

문재인 정부는 코로나19 이전에 부실이 발생한 기업에 대해서는 “기업 구조조정을 통한 정상화” 방침을 밝힌 바도 있다. 기업의 자구안 마련, 노동자 고통 분담 등 구조조정 노력을 강조했다. 이미 지난해부터 본격 위기에 직면한 쌍용차가 이에 해당한다.

2009년 6월 쌍용차 공장 안 ⓒ이윤선

부분 매각, 순환 휴직

이 같은 상황에서 쌍용차 사측은 최근 생산 공장을 제외한 나머지 자산들을 매각 처리해 자금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이미 부산 물류센터를 팔아 치웠고, 200여 명이 고용된 구로 정비사업소 매각 등을 추진하고 있다. 또다시 고용불안에 처한 구로 정비사업소 노동자들은 매각에 반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측은 생산 공장에서도 인건비 지출을 줄이려고 라인별 순환 휴직을 하고 있다. 사측과 무상급 노조 집행부는 지난해 9월 복지 중단·축소, 12월 임금 삭감과 상여금 반납 등을 합의 추진한 바 있다. 이어 지난 4월에는 올해 임금을 동결하고 성과금과 격려금을 지급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고용 불안과 임금 삭감에 처한 노동자들은 2009년 법정관리 돌입과 대량해고 직전과 유사한 상황이 재현되고 있다고 말한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복지는 다 끊겼고, 임금과 연월차 수당도 삭감됐습니다. 요즘은 일하는 날이 일주일에 3일 정도밖에 안됩니다. 사무직은 100명 정도씩 6개월 단위로 순환휴직을 하고 있고요. 앞으로 임금이 50퍼센트 정도밖에 안 나올 수 있다는 걱정도 있어요.”

“마지막 해고자들이 이제 막 들어와 교육을 받고 있는데, 2009년과 상황이 똑같이 돌아가니 답답합니다.”

“마힌드라는 필요한 기술을 다 가져간 상황이라 언제든 떠날 수 있어요. 앞으로 워크아웃으로 갈 수도 있습니다.”

고통 분담?

무상급 노조인 쌍용자동차노조 집행부는 고용을 지키려면 사측의 ‘자구 노력’에 적극 협력해야 한다고 본다. 각종 양보안에 합의하고 노동자들에게 자구안의 불가피성을 설득하고 있다. 그러나 2009년 쌍용차 정리해고 사태는 사측에 협력하는 것이 결코 고용을 지킬 수 없음을 보여 줬다.

얄궂게도 현 쌍용자동차노조 정일권 위원장은 경제 위기가 본격화하고 상하이차의 ‘먹튀’ 준비가 시작되던 2008년에도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이었다. 당시 사측은 회사가 어렵다며 대대적인 전환배치와 비정규직 해고 등 공격을 시작했다. 노사 협조 노선을 추구하던 정일권 집행부는 이에 맞서기보다 사측의 요구를 수용하는 합의를 체결해서 노동자들의 불만을 산 바 있다.

하지만 이런 양보는 고용을 지키지 못했다. 노조의 ‘협조’는 노동자들의 고통만 낳았고, 이듬해 정부와 사측은 대량해고의 칼까지 빼 들었다. 투쟁적 한상균 집행부는 무급·순환 휴직 등 자구안을 제출했다가 정부의 강경한 태도를 보면서 이를 스스로 폐기하기도 했다.

정부에 책임 묻기

지금 마힌드라는 쌍용차에 지속 투자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 쌍용차 노동자들이 지난 11년의 고통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쌍용차 노동자들과 연관 협력업체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지키려면, 정부가 고용을 책임지는 것이 유일한 대안이다. 정부가 쌍용차를 직접 소유·운영해 일자리를 보호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쌍용차가 민간기업이고 산업은행이 주주가 아니라 돈을 빌려 준 채권단일 뿐이어서 노동자들의 고용 보장에서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식이다.

그러나 정부는 쌍용차를 상하이차에 팔아 넘기고, 다시 마힌드라에 팔아 넘긴 책임 당사자이다. 무엇보다 정부는 지금의 일자리 위기에서 노동자들을 구할 자금력과 의무가 있다. 오랫동안 해고의 고통 속에 있다가 복직한 한 쌍용차 노동자는 말했다.

“쌍용차 노동자들은 지금껏 몇 차례나 반복해서 해외 매각의 피해를 입어 왔습니다. 또다시 법정관리, 매각으로 노동자들이 피해를 봐서는 안 됩니다.

“이제 더는 마힌드라에 기댈 게 없습니다. 2009년에 쌍용차를 공기업화하자고 했을 때 ‘현실적으로 가능하냐’는 얘기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정부도 일자리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정부가 쌍용차를) 국유화하라고 얘기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