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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업 위기와 구조조정:
노동자에게 위기의 책임 떠넘기지 말라

중국 조선업체가 최근 액화천연가스(LNG) 선박을 잇따라 수주하면서 한국 조선업에 비상이 걸렸다. 카타르에 이어 러시아에서 발주된 LNG선의 절반(5척)을 중국 중둥중화조선소가 따냈다. 세계 LNG선 시장에서 80~90퍼센트를 점유하던 한국 조선업의 독점적 지위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올 들어 4월까지 전 세계 수주 점유율 1위를 기록해 한국을 앞질렀다.

물론, 업계에서는 한국 조선업체들의 기술력이 아직은 중국을 월등히 앞선다면서 나머지 LNG선 발주 물량은 가져올 수 있다고 기대한다.

설사 그렇게 되더라도 수주 부진을 면하기는 어렵다. LNG선을 포함해 전 세계 신조선 발주량 자체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영국의 조선·해운 시황 분석기관인 클락슨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세계 선박 발주량은 전년 동기 대비 71.3퍼센트나 감소했다. 같은 기간 발주액도 77퍼센트가 떨어졌다. 이는 ‘수주 절벽’의 시기로 불리는 2016년보다 34퍼센트나 적은 수준이다.

LNG선의 연내 발주 규모도 연초 예상보다 크게 줄어들 수 있다. 카타르의 대규모 LNG 프로젝트가 지난달 시작됐지만, 유가 급락으로 자금 사정이 나빠져 발주가 언제 이뤄질지 미지수다. 코로나19와 경제 위기를 감안할 때 하반기 전망도 매우 불투명한 상태이다.

긴축 경영 속에 흔들리는 임금·고용

이로 인해 한국의 조선업도 2016년 이래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1분기 수주량은 전년 동기 대비 81.3퍼센트, 수주액은 77.2퍼센트나 줄었다. 수주 잔량도 다시 급감하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적어도 내년 상반기까지 조선업 불황이 지속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수주에서 건조까지 1년 이상 걸리는 조선업의 특성을 감안하면, 앞으로 적어도 2~3년은 보릿고개일 수 있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사용자들은 구조조정 공격에 나서고 있다. 임금 삭감, 복지 축소, 전환배치와 외주화 확대 등의 얘기가 곳곳에서 나온다.

가령, 현대중공업은 지난 4월 코로나19 위기와 수주 감소에 대응해 “고강도 비상경영”에 착수했다. 경상비를 최대 70퍼센트까지 줄이는 등 긴축에 나선 것이다. 사측은 〈인사저널〉을 통해 타 기업들의 희망퇴직, 순환휴직, 임금 삭감 등을 들먹이며 현대중공업 노동자들도 희생할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긴축 경영, 구조조정 압박은 최근 잇따라 발생한 산재 사망사고, 중대재해와도 결코 무관하지 않다. 긴축 경영 방침 때문에 안전 투자는 뒷전으로 밀렸고, 하청화, 인력 감축, 무리한 작업 속도 등으로 그나마 있는 안전 규칙조차 휴지 조각이 돼 버렸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산업재해나 해고 위협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고 있다. 수주가 줄고 수익성이 악화하자, 곳곳에서 비정규직 해고, 업체 폐업이 잇따르기 시작했다. 삼성중공업에서는 하반기에 해양플랜트 부문을 중심으로 대규모 비정규직 해고가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노동자가 무슨 죄냐!” 5월 26일 경남도청 앞에서 열린 STX조선 무급휴직 연장 반대 기자회견 ⓒ출처 금속노조 경남지부

잇따른 매각 추진 ... 일자리 위협하는 문재인 정부

문재인 정부는 조선업 구조조정 방향을 제시하고 이끌어 왔다. 정부의 조선업 정책은 2018년 이래 변함이 없다. 대형 조선소들은 구조조정을 통한 자구 노력을 하되 그중 대우조선은 현대중공업에 매각하고, 중형 조선소들은 인수합병을 추진하는 것이다.

특히 수십만 노동자·가족의 일자리와 삶을 위협할 대우조선 매각도 현재 진행 중이다. 코로나19 위기 속에 EU 등의 해외 기업결합심사가 또 연기됐지만, 정부와 현대중공업 사측의 추진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한층 가속화된 세계 경제와 조선업의 위기, 중국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인수합병을 성공시켜야 한다는 논리가 작동하기도 쉽다.

정부는 최근 잇따라 중형 조선소 매각에도 팔을 걷어 붙였다.

2008년 세계경제 위기 이후 중형 조선소 25곳이 부도·파산해 현재 남아 있는 업체는 5곳에 불과하다. 그나마 남아 있는 5곳에서도 인력의 60퍼센트 가까이가 줄어들 정도로 혹독한 구조조정을 겪었다.

이번에도 노동자들에게 위기의 고통이 온전히 떠넘겨지고 있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지난달 말 각각 한진중공업과 대선조선을 연내에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이로 인해 1000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고용 불안에 직면했다.

성동조선은 최근 매각이 완료됐는데, 인수자인 HSG 컨소시엄이 고용 승계를 약속했다. 그러나 올해 수주가 한 척도 없는 상황이어서, 노동자들은 올해 말까지로 예정돼 있는 무급휴직이 끝나더라도 공장에 다시 복귀할 수 있을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무급휴직을 실시한 STX조선의 경험을 보면, 이런 불안감은 실질적이다. STX조선은 2018년에 정부 주도로 노·사·정이 2년간 순환 무급휴직을 합의했는데, 오는 6월 1일로 예정된 무급휴직 종료가 사측에 의해 가로막혔다.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이 위기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면서 복직을 완강히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일자리 책임져라

문재인은 “한 개의 일자리라도 지키겠다”고 했지만, 이는 뻔뻔한 사기일 뿐이다. 정부는 조선업에서도 노동자들을 구조조정의 한파에 몰아넣고, 사실상 정부 소유의 기업들(대우조선, 중형 조선소들)의 매각을 추진하면서 고용을 위협하고 있다.

몇 곳 남지도 않은 중형 조선소까지 팔아넘기려는 정부를 보며, 노동자들이 “과연 중형 조선소를 살릴 의지나 있는 것이냐” 하고 묻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그렇다고 노동조합이 산업 정책에 개입하거나, 이를 위한 사회적 대화를 추진하는 것은 효과적인 대응이 못 된다. 지난 4월 금속노조와 조선업종 노조 지도자들은 “조선산업의 경쟁력 유지와 노동 보호”를 위한 조선산업 노사정 협의체 구성을 정부에 촉구했다.

그러나 지금처럼 경제 불황기에 산업 경쟁력을 유지·강화해야 한다는 논리에 발목이 잡혀서는 노동자들의 일자리와 노동조건을 지키기 어렵다. 한국 자본주의, 조선업을 살리려면 노동자들도 희생과 양보를 감내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기가 쉬울 것이기 때문이다.

가령, 최근 금속노조와 조선업종노조연대 주최로 열린 한 토론회에서 발표자로 나선 박종식 창원대 연구원은 중형 조선소 경쟁력을 위해 업체 통합(특수목적법인 설립)을 추진하자고 제시했다. 일본 이마바리 조선소가 중형 조선소를 인수합병해, 원가를 절감하고 가격·기술 경쟁력을 높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마바리 조선의 인수합병은 결코 노동자들을 위한 대안이 되지 못했다. 한국자산관리공사의 한 연구보고서는 이마바리 조선이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의 하나로 적극적인 외주 인력 활용, 저렴한 인건비와 재료비 등을 꼽았다. 타사보다 외주 하청인력 비율이 50퍼센트가량 높고, 인건비가 20퍼센트 낮다는 것이다.

물론 토론회 발표자는 한국 조선업의 현 인력·설비 규모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기업의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산업 정책의 관점에서 서면, 노동자들도 어느 정도 희생해야 한다는 논리에 무장해제 되기 쉬울 수 있다.

사회적 대화도 결코 대안이 되기 어렵다. 2018년 성동·STX조선에서 추진된 사회적 합의는 그 위험성을 잘 보여 준다. 당시 문재인 정부의 인사들은 그 합의를 두고, 노조가 임금과 복지를 양보하고 기업은 해고 대신 무급휴직이나 전환배치를 추진한 “친고용 구조조정 모델”이라고 극찬했다.

그러나 수년간의 무급휴직은 노동자들의 삶을 파괴하고, 고용률을 추락시키고, 지역 경제를 황폐화시켰다. 문재인 정부는 지금도 “인위적 해고” 대신 무급휴직, 순환휴직, 전환배치, 임금 삭감 등을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노동운동은 문재인 정부와 협력할 게 아니라 오히려 항의를 확대해야 한다. 그리고 정부에게 일자리 보장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부도·파산 기업의 경우 정부가 그 기업을 매각하지 말고, 영구적으로 인수·운영해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보장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이를 위한 노동자 저항이 구축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