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시민단체 리더들은 이용수 할머니의 비판과 그로 인한 논란이 시민운동을 약화시킬 수 있다며 윤미향·정의기억연대(정의연) 변호론을 편다. [정의연은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1990~2016년)의 후신으로, 정의연과 정대협은 사실상 같은 단체다. 이하에서는 독자들이 읽기 쉽도록 시기상 정대협인 경우도 정의연으로 통일했다.] 일본·한국 정부와 국회가 져야 할 일본군 ‘위안부’ 문제 미해결 책임을 시민단체에 떠넘기지 말라는 것이다.

5월 14일 시민단체 330여 곳을 대표하는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이렇게 말했다. “정의기억연대를 둘러싸고 제기되고 있는 의혹과 논란은 크게 왜곡된 것이어서 시민단체와 활동가에게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의] 책임을 전가하려는 악의에 봉사하고 있다.”

최근에는 인권 운동의 리더로 널리 알려진 박래군 씨가 이런 주장에 앞장서고 있다. 그는 이용수 할머니를 직접 겨냥했다. “이용수 씨는 정의연을 정면으로 부정하면서 ‘할머니를 팔았다, 이용당했다’는 기자회견을 두 차례나 했다. 극우세력들이 ‘위안부’ 운동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칠 리가 없다. 그렇게 이 여성인권 평화운동은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고 있다.”

박래군 씨는 이용수 할머니의 비판이 무책임하다고 주장한다. “이용수 씨도 자신이 인권 활동가임을 자각한다면 그에 따른 책임의 문제도 함께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정의연 운동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라면 방법과 형식이 달라야 했다.”(〈한겨레〉 6월 1일)

왼쪽에도 있다

박래군 씨는 특히 이용수 할머니가 “정대협에 이용만 당했다”고 한 말이 우파에게 빌미가 됐다고 보는 듯하다. 우파들은 정의연이 “피해자 비즈니스”를 해 왔다고 비난한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는데도 돈벌이가 끊길까 봐 막았다는 것이다. 위안부 지우기에 열심이었던 우파가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은 역겨운 위선인 데다 악의적인 해석이다. 

그러나 회계 관리 부실뿐 아니라 재정의 출처와 용처가 모두 의혹의 대상이 됐고, 윤미향 씨의 해명이 부실하고 심지어 오만하기까지 해 위안부 운동 지지자들을 납득시키는 데에 실패한 상황에서 우파의 비난만을 문제 삼는 것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만에 하나 우파의 악의적인 ‘피해자 비즈니스’론이 사람들에게서 반향을 얻는다면, 그것은 윤미향 씨 등 정의연 리더들이 반성을 회피하고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윤미향 씨와 정의연을 변호하는 사람들이 ‘나눔의 집’(조계종 산하 위안부 쉼터)은 ‘그럴 줄 알았다,’ ‘터질 것이 터졌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내로남불’이다. 문제를 알면서도 덮어 주는 것은 운동의 신뢰성을 떨어뜨려 지지자들의 환멸을 부르는 한편, 우파의 비난에 날개를 달아 줄 뿐이다. 

윤미향·정의연을 비판하면 다 한통속이라고 보는 것은 비약이다. 시민단체 지도자들은 앞으로 우파가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면 정부가 악법을 통과시켜도 정부 비판을 삼갈 것인가? 어느 방향에서, 무슨 목적으로, 어떤 결과를 기대하느냐에 따라 비판의 내용은 본질적으로 달라진다. 이용수 할머니의 비판은 자신을 포함한 피해자들이 하나라도 더 살아 있을 때 위안부 문제의 원칙적 해결(일본 국가 자체의 사죄와 배상)을 이루자는 것이다.

“새 대통령(문재인)은 사드도 막고 위안부 문제도 해결해야 합니다” 2017년 5월 3일 성주 소성리 사드 반대 집회에서 연설한 이용수 할머니 ⓒ출처 사드원천무효 공동상황실

특히, 정의연을 비판하는 목소리는 왼쪽으로부터도 나왔다. 초기부터 문제를 지적해 온 본지가 그런 비판자다. 본지의 비판의 기본적 관점은 철저하고 일관된 반(反)제국주의다. 친일 세력의 공세 운운하는 쟁점 돌리기가 통할 여지가 없다. 이런 사실을 박래군 씨 등 시민단체 지도자들이 모르진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진영논리는 그저 좌파의 비판은 존재하지 않는 양 눙치고 넘어가는 것이기도 하다.

시민운동의 모순

무엇보다 박래군 씨 변호의 핵심 난점은 이용수 할머니에게 윤미향·정의연 부정 의혹 확산의 책임을 돌리면서, 엔지오 운동 일반에 구조적으로 내재돼 온 모순을 가린다는 것이다.

정의연의 위기는 이용수 할머니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니다. 이용수 할머니는 정의연 내부에서 곪아 있던 문제를 바깥으로 드러냈을 뿐이다. 더욱이 핵심 의혹 대상인 회계 부정 의혹은 이용수 할머니가 “생각지도 못한 것들”이었다.

정의연은 위안부 피해자를 지지하고 대변한다는 이유로 국민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2015년 박근혜 정부가 정의연을 여러 차례 접촉해 한일 위안부 합의 과정을 (온전하게는 아닐지라도) 사전에 공유하고 피해자들을 설득하려 한 사실은 정대협의 위상을 가늠케 한다.

이 과정에서 단체 대표자의 명망도 올라갔다. 윤미향 씨의 국회 입성은 그 덕분이었다. 그리고 정의연은 정부나 기업한테서 수십억 원의 지원을 받는 대형 엔지오로 성장했다.

그러나 한일 위안부 합의 재협상을 공약하며 등장한 문재인 정부가 약속을 외면할 때 정의연은 비판을 삼갔다. 심지어 윤미향 씨는 위안부 운동 단체의 대표라는 걸 내세워 민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됐다. 

그리고 정의연의 높아진 위상과 거액의 후원금은 한일 위안부 합의 폐기를 촉구하며 투쟁하는 데 쓰이지 않았다. 고령의 피해자들이 살아생전 일본 국가의 책임 인정·배상을 받고 명예를 회복하려면 시간이 많지 않은데도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돈이 피해자들이 모자람 없는 여생을 보내는 데 쓰이지도 않았다. 정의연의 재정은 주로 모금 홍보 활동과 “기억” 활동(기림비 세우기, 김복동 센터 짓기 등) 그리고 직원들의 급여로 쓰였다. 

이런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은 채 쌓여가면서 대표자 및 상근 활동가와 위안부 피해 당사자 사이에 견해 차이가 커진 듯하다. 특히, 일본 제국주의의 과거와 현재를 상대하는 것은 물론 한국 정부와도 싸워야 할 단체가 점점 더 민주당과 밀착하고 심지어 기업에 후원을 요구하는 등 주류화되는 과정이 동반됐다. 현 사태를 낳은 근본적인 문제는 여기에 있다.

엔지오 운동의 목표는 정부 바깥에서 여론을 형성하고 그 힘으로 국가 개혁을 견인하는 것이다. 그래서 언론의 주목을 끌고 정치인과 국가 관료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명망 있는 대표자가 중요해지고 단체의 위상도 그에 따라 좌우된다. 또한 엔지오는 연구·교육 등 전문가적 업무를 중시하기 때문에 상근자 집단이 평회원·지지자들에 대해 대행(대리)주의적이 되기 쉽고 후자를 수동적인 채로 놔두기 쉽다.

시민단체 지도자 출신으로 부통령급이라는 서울시장을 9년째 하고 있는 박원순은 정치인이 되기 전에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시민 없는 시민운동. 이 말만큼 귀에 따갑게 자주 들어본 말은 없다”(《한국의 시민운동-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2002).

엔지오 운동의 이런 대리주의 문제는 보편적이다. 대리주의는 지지자들에게 책임지지 않는 것으로 이어지기 쉽다. 능동적 행위주체는 대표자와 활동가뿐이고, 평회원 등 보통의 지지자들은 수동적 존재로 방치되기 때문이다.

한국의 엔지오도 ‘비정치적’ 개혁 운동을 표방했지만 결국 자신의 정책 제안에 호의적인 정당(주로 민주당)과 긴밀한 협력 관계를 맺어 왔다. 게다가 많은 임원들이 민주당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대통령 문재인은 민변 출신이고 조국은 참여연대 출신이다. 윤미향 변호에 앞장선 남인순 민주당 최고위원과 김상희 국회부의장(이번에 여성 최초 국회부의장이 됐다)은 각각 한국의 대표적 여성단체들인 한국여성단체연합과 여성민우회 대표 출신이다. 

‘시민’ 사회는 결코 정치로부터 중립적인 지대가 아닌 것이다. 이번 윤미향·정의연 논란에서도 시민단체 대표자들 다수가 여당 편에 서서 장단을 맞추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보수성과 엘리트주의

박래군 씨도 뜨거운 정치 현안에서 문재인 정부가 배신적인 입장을 취할 때 정면으로 비판하기를 삼갔다. 416연대 공동대표였던 지난해, 24만 명이 참여한 “세월호 특별수사” 청와대 청원을 문재인 정부가 단칼에 거부하자 416연대 평회원들 사이에서 정부와 416연대 지도부를 향한 비판이 ‘사발통문’ 캠페인이라는 방식으로 제기됐다. 그러나 당시 박래군 대표는 “혼란을 조성”한다며 “416연대를 궁지로 모는 행위를 중단”하라는 보수적이면서도 실상 정부를 감싸는 입장을 내 논란을 일으켰다.

박래군 씨는 이번 윤미향·정의연 사태에서도 이용수 할머니가 정의연을 비판한 것에 대해 “스스로를 부정하는 것”이라며 불쾌감을 드러냈는데, 운동의 자기정화를 위한 비판을 인정하지 않는 보수적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정부와 기업에 대한 견제를 표방하면서도 정부와 기업의 돈줄로부터 독립하지 못하는 것은 적나라한 모순이다. 박래군 씨가 소장으로 있는 인권재단 ‘사람’도 한 사례다. 이 단체는 구글 노동자들이 직장 내 성차별, 인종차별 등에 항의하며 파업을 벌였던 바로 그 해에 구글한테서 후원금을 받았다. 구글의 후원금은 이미지 세탁용(핑크머니)인 게 뻔했는데도 말이다.

요컨대, 지금의 위기는 개혁주의적 엔지오 리더들이 회전문처럼 민주당 정부에 들어갔다 퇴임 후 다시 엔지오로 돌아오기와 그에 따른 문제 해결의 정체, 피해 당사자 및 지지자들의 정당한 이의 제기를 외면하는 그 리더들의 엘리트주의와 보수주의로 인한 위기다. 

따라서 표준회계 기준을 만들고 시민단체의 회계 정리를 지원하는 방안(어쩌면 정부의 지원을 더 받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다)을 마련하자는 박래군 씨의 대안도 피상적이다. 회계 미숙은 기껏해야 매우 부차적인 쟁점이다. 회계 관리의 부실과 무책임성도 엘리트주의와 보수주의 문제에서 파생되는 것이기 때문에, 회계 기준을 마련하는 것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못 된다.

박래군 씨는 “아무 관련도 없는 시민사회단체까지 유탄을 맞”을까 봐 우려한다. 이번 사태로 후원금이 줄고 정부(국세청)의 감독 권한이 강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걱정을 하는 엔지오 중에는 실제로 투명하게 회계 관리를 하는 엔지오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진영논리와 이중잣대로 부정 의혹을 감싸는 언행은 운동의 신용을 추락시켜 오히려 국가의 간섭을 정당화한다.

그런 태도는 진보적인 대중에게는 환멸을 주고, 우파들에게는 비난의 빌미를, 한일 위안부 합의 재협상 약속을 나 몰라라 하는 정부·여당에게는 면죄부를 줄 뿐이다.

돈은 정치다. 엔지오들이 보통 시민들의 권익을 대변하는 정치를 하려면 이들로부터 받은 돈에만 의존하고, 정부와 기업과는 일절 단절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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