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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아지는 기업살인법 제정 요구:
산재 사망 계속되는데 정부는 친기업 규제완화 중

38명이 사망하고 10명이 다친 끔찍한 이천 물류창고 화재 참사가 벌어진 지 한 달이 지났다. 현대중공업에서는 올해 들어서만 5명이 산재로 사망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또 다른 노동자들의 죽음 소식이 들려온다.

그래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일명 기업살인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민주노총은 6월 10일 국회 앞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요구하는 집회를 벌일 예정이다. 앞서 5월 27일에는 민주노총을 비롯한 133개 단체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를 만들었다. 6월 새 국회가 열리자 법안 제정을 압박하겠다는 것이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논의는 산재나 대형참사로 노동자들이 죽어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는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비롯했다. 대표적으로 2000년 40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천 냉동창고 화재에서 사업주가 낸 벌금은 고작 2000만 원에 불과했다. 노동자 한 명의 목숨 값이 50만 원밖에 안 됐던 것이다. 대기업에서는 산재 사고가 나도 하급 관리자나 노동자에게 책임을 뒤집어 씌우고 꼬리를 자르기 일쑤다.

5월 29일 청와대 앞에서 열린 ‘이천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중대재해(이천 화재) 책임자 처벌 촉구 및 규탄 기자회견’ ⓒ이미진

그래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해 기업과 사용자, 관리·감독을 소홀히 한 정부 책임자를 모두 처벌하고, 처벌 수위도 대폭 올려야 한다는 제기가 계속됐다. 이를 통해 기업들이 안전에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도록 만들자는 것이다.

언행불일치

문재인 정부는 산재 사망을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공약했다. 그러나 집권 3년 동안 사망자가 줄긴커녕 오히려 늘었다. 고용노동부 통계를 보면, 박근혜 정부 4년 동안 매년 평균 약 1841명이 사망했는데, 문재인 정부 들어 매년 평균 약 2039명이 사망했다.

정부는 말과 달리 산재를 줄이기 위한 실질적인 노력을 하지 않았다. 정부는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고 김용균 씨의 죽음을 계기로 통과시킨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개정안을 ‘김용균법’이라며 생색냈다.

그러나 산안법 개정안은 이름만 ‘김용균법’일 뿐, 제2의 김용균을 막을 수 없는 부실한 법이었다. 발전소 등 대부분의 업무를 외주화 금지 대상에서 제외했고, 산재 사망에 대한 처벌의 하한선도 도입하지 않아 솜방망이 처벌이 계속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산안법이 개정된 후 법원은 삼성중공업 하청 노동자 6명이 죽고 25명이 다친 산재 사고에 대해 사측에게 벌금 300만 원만 물린 1심 판결을 유지했다.

정부는 기업에 대한 관리·감독도 소홀히 했다. 최근에도 현대중공업에서 산재 사고가 잇달아 일어나자 노동부가 특별감독을 진행했지만, 감독이 끝나자마자 한 하청 노동자가 또다시 산재로 목숨을 잃었다.

이처럼 문재인 정부 하에서 기업주를 봐주고 책임자 처벌이 흐지부지된 일은 무수히 반복됐다. 5월 29일 이천 화재 참사 유가족들이 청와대 앞 기자회견에서 “사고 때마다 반복되는 수많은 약속들이 이번에는 꼭 약속으로 끝나지 말[기를 바란다]”고 말한 이유다.

5월 28일 현대중공업 파업 집회에서 산재를 당한 동료들의 이름이 적힌 팻말을 들고 행진하는 노동자들 ⓒ출처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이뿐 아니라 최근 코로나19와 경제 위기 속에서 정부는 기업 규제를 완화하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 충남 롯데케미칼 폭발 사고 등 화학물질 사고가 끊이지 않는데도, 정부는 4월 8일 화학물질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산업단지에 대한 재해 영향 평가를 간소화하겠다고 한다. 이 모든 게 노동자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일이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의 눈치를 보며 산재 문제 해결에 나서겠다고 말만 했지, 실제로는 기업의 이윤 보장을 위한 조처들을 취해 왔던 것이다. 노동자들의 생명은 뒷전이었다.

따라서 대형참사와 산재 사고를 줄이려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하고 기업의 이윤 추구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민주당이 총선에서 압승했기 때문에 법안을 통과시키려면 민주당과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일부 민주당 국회의원들은 법안 발의에 동참할 수 있다.

그러나 민주당은 근본적으로 자본가 계급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정당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민주당이 매우 부족한 산안법 개정안조차 미래통합당(당시 자유한국당) 핑계를 대며 후퇴를 거듭해 누더기로 만들어 통과시켰음을 기억해야 한다.

2017년 정의당 고 노회찬 의원이 대표 발의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발의자 중에는 박주민 의원 등 일부 민주당 국회의원들이 포함됐지만, 국회에서 단 한 번의 심의도 거치지 못한 채 폐기됐다. 민주당이 철저히 외면했던 것이다.

이윤에 타격을 가할 힘이 있는 노동자들이 기업과 정부에 맞서 독립적으로 투쟁해야 한다. 그런 투쟁이 강화돼야 법 제정을 강제하고 기업 규제와 안전을 실질적으로 강화해 나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