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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보다 입시를 우선한 등교 개학일 뿐이다

5월 27일 등교 개학이 시작된 초등학교. 학생, 교사, 부모 모두 불안하다 ⓒ조승진

이태원 클럽과 연관된 코로나 확산에 이어 쿠팡 물류센터와 학원가를 연결고리로 지역사회 감염이 확산되고 있다. 그런데도 교육부는 6월 3일 ‘3차 등교 개학’(고1·중2·초3~4)을 강행했다.

문재인 정부는 등교 개학이 “생활 방역 성공 여부를 가늠하는 시금석”이라고 했다. 그러나 교육부가 최근 발표한 ‘등교수업일 조정 현황’ 자료만 봐도 감염 위험으로 등교가 연기된 학교가 전국 830곳에 달한다(수도권 627곳). 5월 27일 등교 대상 학생 중 9.6퍼센트(25만 7093명)가 등교하지 못했다. 이 중 5만 4190명은 코로나19 감염 우려로 ‘가정학습’을 신청해 등교를 거부했다.

이태원 클럽과 연관돼 확진된 학원강사에게 옮은 인천 초·중·고등학생 확진자가 20명에 육박하는 상황이다. 경기 부천 쿠팡 물류센터와 관련해 신도림중학교 1학년 학생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학원을 매개로 한 감염 전파도 늘고 있다.

이런 상황이 되자 교육부는 5월 29일 ‘수도권 지역 강화된 학교 밀집도 최소화 조치’를 발표했다. 수도권 지역에 한해 한 번에 등교할 수 있는 인원을 고등학교는 전체의 3분의 2 이하, 나머지는 전체의 3분의 1 이하로 제한했다. 그러나 고3 학생들은 대입 준비로 매일 등교해야 하는 처지이다.

등교에 대한 불안감과 불만이 커지고 있다. 등교 재개를 반대하는 중·고등학생 400여명이 참여하는 오픈채팅방에서는 “사람이 먼저, 나라다운 나라를 만든다고 하지 않았느냐”, “정치적으로 고3을 이용하는 것 같다”며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다. ‘등교 개학 시기를 미루어 주시기 바랍니다’ 국민청원은 25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다.

한편, 등교 이후 학교는 전쟁터 같은 긴장감 속에 있다. 등교 전 건강자가진단 시작, 교문 들어서는 학생들 발열 체크, 수업 시간마다 교실 환기, 화장실 밀집하지 않기 지도, 급식 전 발열 체크와 급식실 지도 등. 1명이라도 체온이 37.5℃가 넘으면 학교 전체가 비상이다.

이런 상황 때문에 학생, 교사, 학부모가 모두 등교 개학으로 인한 불안감과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고3 등교 후인 5월 21일 한 보건교사가 올린 ‘등교 개학은 누굴 위한 것입니까?’라는 글에는 15만 명이 넘게 동의했다.

그러나 정부는 “보건교사도 있지만 다른 교사 인력들을 방역책임관 또는 부책임관으로 지정하라”며 모든 책임을 학교와 교사에게 떠맡기고 있을 뿐이다. 코로나 재확산 위험을 키우는 등교 개학은 즉시 중단돼야 한다.

학급당 학생수 감축

코로나19 상황으로 안전한 교육의 필요성이 전면 제기됐다. 학급당 학생 수 감축은 그동안 질 높은 교육을 위해 진보진영이 꾸준하게 제기한 것인데, 이제는 안전 문제까지 결합돼 더 중요해졌다.

학령인구 감소를 맞아 학급당 학생 수 감축과 교원 증원으로 교육여건을 개선해야 했다. 그러나 교원은 오히려 감축됐고 그 공백은 정원외 기간제 교사로 메꿔졌다.

‘OECD 교육지표 2019’를 보면 학급당 학생 수가 2017년 기준 한국 초등 23.1명, 중학교 27.4명이다(OECD 평균 21.2명, 22.9명). 그러나 이 통계로도 대도시 과밀학급 문제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과밀학급이 아니더라도 학생 수가 1000 명이 넘는 학교에서는 2미터 거리두기가 아예 불가능하다.

그동안 진보 진영에서는 대도시 과밀학급 해소를 위해 ‘학급당 학생 수 25명 상한제’ 신설을 요구해 왔는데, 요즘 같은 비상 상황에서는 안전한 거리두기를 위해 15명으로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교육부가 이런 목소리는 외면한 채 등교개학을 강행하는 것은 아이들을 더 큰 위험에 노출시키는 것이다.

5월 27일 오전 서울 성북구 월곡초등학교에서 엄마가 학생을 학교에 보내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조승진

입시 일정 연기, 대학 입학자격고사제·대학평준화가 필요하다

현재 코로나19 비상 상황에서도 교육부는 10퍼센트 수업일수 감축(유치원은 온라인 개학도 못한 상황이라 더 많은 수업일수 감축 필요)외엔 기존 교육과정, 평가 시스템을 여전히 고수한다. 여전히 입시가 최우선으로 고려되고 있기 때문이다.

온라인 수업을 정상적인 정규 교육과정으로 대체해서 교육 불평등과 학습 격차는 점점 커지고 있다. 진보교육연구소가 내놓은 온라인 수업 관련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초등학생 51퍼센트가 부모님의 도움을 받았다”고 응답했다. 비영리 민간단체 ‘교육을 바꾸는 사람들’과 교육협동조합 ‘마인’이 실시한 온라인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원격수업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59.1퍼센트가 사교육(학원, 인터넷 강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학생들은 등교 개학을 한 후 수행평가, 지필평가, 생활기록부를 위한 비교과 활동으로 정신이 하나도 없다. 교사들은 감염 재확산으로 등교가 어려울 수 있다는 불안감에 등교 때 모든 평가와 비교과 활동을 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고 있다.

지역감염 확산으로 등교를 연기하는 학교가 속출하면서 입시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고 하반기 코로나19 2차 대유행을 전문가들이 예고하는 상황이지만, 수능과 입시 일정은 그대로 강행되고 있다.

그러나 영국은 무기한 휴교하면서 대입시험과 중등자격검정시험 시행을 취소했다. 프랑스는 대학 입학 자격시험인 바칼로레아에서 지필평가를 없애고 내신평가와 구술시험만으로 평가한다고 한다.

지난 3년간 문재인 정부가 걸어온 길을 보면 입시 일정 강행은 예견된 일이다. 문재인은 대선에서 ‘중장기적으로 대학 네트워크 구축을 통한 대학서열화 완화’를 약속했지만, ‘공정성’ 운운하며 수능 절대평가 공약에서 후퇴하고 정시 비율을 40퍼센트 이상 확대했다. 그러나 정시 비율을 늘린다고 공정성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그만큼 사교육의 영향이 커지기 때문이다. 외고·국제고·자사고를 일반고로 전환하겠다는 공약은 자신의 임기 후인 2025년으로 미뤘다.

문재인 정부는 온라인수업의 성공을 자화자찬하면서 이후 고교학점제의 안착화를 위한 발판으로 삼고자 한다. 김진경 국가교육회의 의장은 “고교학점제가 전면 도입되면 학생들이 원하는 다양한 과목을 개설해야 한다. 원격수업이 안착되면 학교와 교육청·지방자치 단체가 연계해 온라인으로 다양한 과목을 개설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정부는 더 나아가 ‘한국판 뉴딜’에 에듀테크를 포함시킨다고 발표했다. 언택트(비대면) 맞춤형 교육 콘텐츠를 제공하는 인공지능(AI) 기반 원격교육지원 플래폼 구축, 미래형 디지털 교육환경 구축이 뉴딜 프로젝트에 포함됐다.

그러나 전교조가 5월 27일에 발표한 설문조사를 보면 “온라인 수업에 집중이 되지 않는다”는 답변이 57.7퍼센트나 됐고, 고3 온라인 학습 만족도는 23.9퍼센트에 그쳤다.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 간의 대면접촉을 통한 상호작용이 있어야 학습효과가 높다. 입시와 기업들을 위해 온라인 수업을 확대하려는 시도를 중단하고, 온라인 학습을 학습 지원을 위한 보조적 수단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전교조를 비롯한 진보진영은 그동안 대학입학자격고사제, 대학평준화를 주장해 왔다. 코로나19 국면에서 교육의 모순이 수면으로 올라온 상황에서 이 과제를 중장기로드맵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당장 이를 실현하라고 문재인 정부에 촉구해야 한다.

(관련 기사 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