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의 코로나19 사망률이 백인보다 4배 높다는 공식 통계는 인종 논쟁이 다시 불붙는 데에 일조했다.

인류가 뚜렷이 구분되는 집단으로 나뉘어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은 코로나바이러스가 상이한 집단에 미치는 상이한 피해를 보고 자기 주장이 입증됐다고 여긴다. 이것은 인류가 생물학적으로 나뉘어 있고 인종이 과학적으로 실재한다는 증거라고 그들은 말한다.

심지어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사람들조차 인종이라는 개념에 솔깃해 한다. 자신의 경험을 설명해 주는 듯하기 때문이다.

편견은 아주 뿌리 깊고 단단해서 인간 사회의 본질적 특징이나 타고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세계를 경험하는 상이한 방식들은 우리의 생물학적 특성과 연관된 것 아닐까? 더 나아가 그것은 우리의 문화와 연관된 것 아닐까? 그래서 인종이라는 개념이 계속 살아남는 것은 아닐까?

사회주의자들은 근본에서부터 이런 주장에 반대한다. 사회주의자들이 보기에 인종은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달리 말하면 인종이란 만들어진 범주이고, 인종을 만들어낸 자들은 인종 순위표를 만들고 자신들을 최상위로 놓고 싶어 했던 자들이다.

먼저 알아 둬야 할 점은 인종이라는 개념이 비교적 최근에 생겼다는 것이다.

고대 아프리카·인도·중국·그리스·로마의 사회에는 온갖 편견이 만연했지만 사람을 피부색으로 분류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탄생, 자본주의가 의존한 노예무역의 성장이 모든 것을 뒤바꿨다.

식민지

17세기 유럽 강대국들은 아메리카와 인근 섬에 식민지를 건설하고 대농장을 지었다.

그들은 본국에서 노동인력을 데려와 작물을 경작하게 해 막대한 이윤을 남겼다. 이렇게 얻은 이윤은 공장과 공장을 돌리기 위한 기반시설을 짓는 데 필요한 자본으로 쓰였다.

시장이 커지고 자본주의 생산 체계가 확산되면서, 농장 규모도 훨씬 커졌고 따라서 노동력 수요도 끝없이 증가했다.

애타게 노동인력을 찾는 농장주들의 수요가 추악한 아프리카 노예무역을 추동했다.

약 1200만 명이 아프리카 서부해안에서 수송됐고 그 과정에서 150만 명이 죽었다.

이 역겨운 무역을 정당화하려고 자본가 계급은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그들의 신조가 노예들에게 적용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해야 했다. 그들의 답은? 아프리카인들의 검은 피부는 그들이 유럽인들과 다르고 인간보다 못한 종(種)이라는 증거라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바로 인종차별이 시작됐다.

대서양을 오가던 노예무역선. ‘인종’은 이를 정당화 하려고 발명된 개념일 뿐이다

이러한 초기의 인종 개념은 이후 300년에 걸쳐 과학과 정치로 변형되고 체계화돼 왔다.

자본주의가 성장하고 제국들이 세계 곳곳으로 세력을 넓히면서, 임의적으로 규정된 온갖 신체적 차이들이 특정 지역 주민들과 결부돼 “인종적 특성”으로 간주됐다.

코의 크기, 눈의 모양, 머릿결 등이 고분고분함, 게으름, 공격성과 같은 다른 자질과 결부됐다.

런던의 골상학자들은 인종을 구분하는 작업의 일환으로 세계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의 두개골 크기를 재고 튀어나온 부분의 개수를 셌다.

아프리카인과 아시아인은 뇌가 작아서 뇌가 들어갈 머리도 작은 것이 틀림없다고 이들은 주장했다. 19세기 후반에는 우생학자들이 찰스 다윈의 진화론을 악용하려 했다.

그들은 어떻게 인종이 형성됐고, 어떻게 지능이 우월한 유럽인들이 자연선택”을 통해 승리했는지에 대한 설명을 꾸며내야 했다.

이처럼 “인종 과학”은 제국의 필요 때문에 모든 단계에서 더한층 왜곡됐다.

그러나 서구 지배자들은 아프리카인을 “흑인”, 아메리카 원주민을 “인디언”으로 규정한 것과 마찬가지로 “백인”이라는 개념을 발명해야 했다.

시어도어 알렌은 《백인종의 발명》에서 이렇게 지적한다. “1619년 처음 아프리카인들이 버지니아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 ‘백인’은 없었다. 식민지 기록에 따르면 그후로도 60년간 ‘백인’은 없었다.”

백인종 정체성을 발전시키면서 지배자들은 빚을 갚으려고 고용계약을 맺고 농장에서 일하는 가난한 유럽인들과 흑인·아메리카 원주민 노예들을 분열시킬 수 있었다.

1676년 가난한 흑인과 백인이 힘을 합쳐 일으킨 베이컨 반란 이후 농장주 계급은 노예와 노예 아닌 사람들이 어울려 지내고 단결해 반란을 일으킬까 봐 줄곧 두려움에 떨었다.

“인종”의 발명은 이들을 농장주에 맞서 단결하지 못하도록 이간질하려는 시도였다.

흑인과 백인 단결해 농장주에 맞서 싸운 1676년 베이컨 반란

인종은 사람들을 갈라 놓을 뿐 아니라 한데 묶기도 했다.

백인 노동자는 아무리 지위가 비천하다 해도 그들 위에 군림한 지배자들과 공유하는 바가 있으며 똑같이 하얀 피부색이 그 핵심이라는 말을 들었다.

이러한 사회 통제 방식에는 급진적 흑인 사상가 윌리엄 듀보이스가 말한 심리적 임금”이라는 보상이 따랐다.

배제

가난한 백인에게는 어느 흑인도 누리지 못하는 몇몇 권리가 허용됐다. 그들을 더 우월한 집단의 일원이라는 착각에 빠뜨리기 위해서였다.

사실 그렇게 얻은 이득은 부자들이 노동자들을 분열시켜 얻은 거대한 이득에 비하면 보잘것없었다.

새로운 인종차별적 규범이 대농장에서 전 세계로 퍼지면서 모순이 갈수록 명백해졌다.

라틴아메리카 식민지에서는 유색인도 공식 “백인” 인증서를 구입하면 “백인”이 될 수 있었다.

시어도어 알렌은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1890년 영국령 기아나에 정착한 한 포르투갈 이민자는 자신이 ‘백인’이 아님을 알게 됐다. 그러나 그해 미국으로 건너간 그의 형제는 바다를 건넜더니 자신이 ‘백인’이 됐음을 알게 됐다.”

수십 년 후 남아프리카공화국 아파르트헤이트[인종 분리 체제] 하에서 일본인들은 “명예 백인”이었고 백인과 유사한 법적 지위를 부여받았다. 그러나 중국인들은 보통 “유색인”으로 분류됐다.

노예제와 인종 분리의 시대를 특징지은 조잡한 인종 개념은 오늘날 뒤떨어진 것이 됐다.

그러나 유전적 특성으로 인간을 분류한다는 기본 원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앤절라 세이니는 《우월성: 인종 과학의 재림》에서 오늘날의 의학이 여전히 인종차별적 가정에 기초해 있다는 점을 보여 준다.

세이니는 고혈압 문제를 다룬다. 아프리카계 미국인들 사이에서 고혈압은 미국의 다른 집단에 비해 2배 가까이 흔하다.

제약회사와 의료 제도는 이것이 “인종” 때문이라는 선입견에 기초해 있다고 세이니는 지적한다.

영국의 국민보건서비스(NHS)마저 아프리카계나 카리브계 조상을 둔 것을 고혈압의 위험 인자로 꼽는다.

그러나 지역별 주민들을 조사했더니 “아프리카 특히 아프리카 농촌 주민들이 세계에서 고혈압이 가장 적다는 것이 드러났다”고 세이니는 쓴다.

스트레스

고혈압의 진정한 위험 인자는 인종이 아니라 식습관, 스트레스, 생활 방식이다.

그리고 이런 요인들은 모두 인종차별과 그에 따른 가난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유전이 건강에 아무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의사들이 괜히 암 가족력을 물어보는 것이 아니다.

예컨대, 낫적혈구는 서아프리카계 조상을 둔 사람들 사이에서 더 흔하다. 낫적혈구는 유전적 결함에서 비롯하는데, 이 결함은 동시에 말라리아에 대한 어느 정도의 내성을 제공하기도 한다.

이는 유전자와 인종 간의 연결 고리를 입증하는 증거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낫적혈구는 사우디아라비아나 인도 사람들 사이에서도 발견된다.

결국 연결 고리는 인종이 아니라, 그 지역의 말라리아 유행 여부에 있다.

“흑인 유전자”를 찾는 연구는 설사 선의에서 비롯한 것일지라도 건강 불평등의 진짜 원인에서 시선을 돌리는 구실을 할 뿐이다.

영국 흑인들의 코로나바이러스 피해에 관한 논의에서도 같은 문제를 확인할 수 있다.

“기저 질환”이라는 말은 환자 개인의 생활 방식이 문제라는 뜻으로 쓰이는 표현이 돼버렸다.

사회를 인종 프리즘으로 바라보는 것은 인종차별에 맞서 싸우는 데에 도움이 안 된다.

그런 시각은 사람들이 세상을 경험하는 다양한 방식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방해가 된다.

인종차별은 현실이다. 그러나 인종은 허구다.


유리 프라사드는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 당원이며 국내에 아직 소개되지는 않았지만 《삐딱이들을 위한 마틴 루서 킹 가이드》, 《마르크스주의와 인종차별에 맞선 투쟁》 등 인종차별 문제에 관한 많은 글과 책을 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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