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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차별 반대 투쟁이 미국을 뒤흔들고 있다

6월 7일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열린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시위에 수만 명이 모였다 ⓒ출처 crissyfish

미니애폴리스 경찰의 흑인 살해를 규탄하며 시작된 항쟁이 미국과 다른 많은 나라들을 뒤흔들고 있다.

시위가 2주째로 접어들면서 운동의 규모는 더 커졌다. 6월 첫째 주말에만 미국 전역에서 100만 명 넘게 거리에 나왔다. 로스앤젤레스, 뉴욕, 휴스턴 등 대도시에서는 수만 명이 운집했다.

지금까지 미국 내 50개 주(州) 800곳 넘는 도시들에서 시위가 벌어졌다. 1968년 마틴 루서 킹 목사 암살 후 벌어진 ‘성주간 소요’ 이후 최대 규모의 흑인 차별 반대 운동이다.

〈워싱턴 포스트〉는 특집 기사에서 이 시위의 특징을 이렇게 지적했다. “흑인 청년이 이끄는 대열에서 백인·라틴계 청년들이 함께 행진하는 다인종 시위다. 형태와 규모 면에서 유례가 드물다.

“미국에는 대규모 시위도, 오래 이어진 운동도 적잖았지만, 규모가 크면서도 오래 이어진 운동은 거의 없었다.”

시위대는 대규모로 거리를 행진하며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우리 목에서 내려와라” 하고 외쳤다. 뉴욕 트럼프 타워 앞을 행진한 시위대는 “트럼프 엿 먹어라”를 연호했다. 5월 30일에 시위대가 비밀경호국과 전투를 벌였던 워싱턴 DC 백악관 앞에도 1만 명이 운집했다. 트럼프는 백악관 주변에 철조망을 둘러치고 냉담하게 대응했다.

노동자들도 점점 더 많이 시위에 참가했다. 오하이오주에서는 경찰에 식사를 제공하는 업체의 노동자들이 파업하고 경찰 폭력 규탄 시위에 동참했다. 파업 노동자 한 명은 이렇게 말했다. “경찰의 잔혹 행위를 보면서 그들의 음식을 만들 수가 없었습니다.”

뉴욕에서는 코로나19 긴급 대응 의료진을 비롯한 병원 노동자들이 대열을 지어 참가했다. 의료용 보호복을 입고 시위에 나온 노동자 한 명은 이렇게 말했다. “지난 몇 달 동안 저는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된 흑인과 갈색 인종 사람들을 돌봤습니다. 그런데 제가 돌보던 바로 그 사람들이 [경찰 폭력으로] 죽어가고 있더군요.

“미국의 병원 체계는 둘로 나뉘어 있습니다. 한편에는 부유하고 보험 있는 사람들이, 다른 한 편에는 보험 없는 유색인종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체제의 부속품 노릇에 진력이 나요.”

다른 병원 노동자는 이렇게 말했다. “시위 진압 경찰 한 명을 무장시킬 돈이면 보건 노동자 55명에게 온전한 개인 보호 장비를 지급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경찰에는 돈을 아낌없이 쓰지만 저희는 마스크도 모자라고 비닐로 옷[보호복]을 만들어 입어요. 이게 말이 됩니까?”

“경찰 해체”

운동에 밀려 부분적 양보안이 조금씩 나오기도 했다. 미니애폴리스 검찰 당국은 조지 플로이드를 살해한 데릭 쇼빈을 3급 살인(과실치사)이 아니라 2급 살인(우발적 살해)으로 기소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미니애폴리스 시의회 의장은 “경찰 해체” 결의안을 발의하겠다고 했다.(실제 개혁안이 아니라 결의안인데도 내용과 범위에 이견이 많아 아직 아무것도 통과되지 않았다.) 뉴욕·샌프란시스코·필라델피아·볼티모어 등 몇몇 대도시에서 경찰 예산 삭감 등을 골자로 개혁안을 내겠다는 말도 나왔다.

시위대는 미국 곳곳에서 남북전쟁 당시 남부군 장군들의 동상 십여 개를 파괴했다. 2017년에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에서 인종차별 반대 운동가들이 로버트 E 리(남북전쟁 당시 남부군 장군) 동상을 철거하려 했을 때는 극우가 몬 차량이 시위대를 향해 돌진했지만(관련 기사 본지 218호 ‘트럼프가 부른 유혈사태’), 이번에는 감히 이를 제지하지 못했다. 버지니아주 주지사 랠프 노덤은 시위대에 밀려 동상 철거를 결정해야 했다.

하지만 이런 조처만으로는 이번 운동의 근저에 있는 인종차별, 경제 위기, 코로나19가 증폭시킨 노동자 고통이 전혀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한편, 미국 지배계급 내에서는 분열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트럼프는 폭동금지법을 발동해 연방군으로 시위대를 진압하겠다고 했지만, 국방장관을 비롯해 정권 핵심부에서 이견이 불거졌다.(관련해 이번 호 알렉스 캘리니코스 논평을 보시오.)

미국 민주당은 그나마 시원찮은 개혁안을 내면서도 꾀죄죄하게 굴고 있다. 6월 8일 민주당은 목 조르기 금지, 경찰복에 카메라 장착 의무화 등을 골자로 하는 경찰 개혁안을 발표했다. 트럼프가 이를 두고 경찰 예산을 삭감하려는 것이라며 “법질서를 위태롭게 한다”고 비난하자, 민주당은 재빨리 “경찰 예산은 의회 권한이 아니”(하원의장 낸시 펠로시)라고 발뺌했다.

공식정치의 난맥상 때문에도 많은 사람들이 거리 운동을 이어가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시위에 참가한 한 흑인 청년은 이렇게 말했다. “미국 독립선언문은 생명, 자유, 행복 추구를 [양도할 수 없는 권리로] 꼽습니다. 하지만 그중 첫째인 생명도 지키지 못해 이러고 있습니다. 자유와 행복까지 가려면 계속 행진해야 해요.”

이번 인종차별 반대 운동은 미국에서 민주당 밖 정치적 공간을 크게 열고 있으며(관련해 이번 호에 실린 미국·영국 활동가들의 토론을 보시오), 대규모 국제 운동도 낳았다. 이 공간에서 혁명적 좌파가 할 일이 많을 것이다.

국제적으로도 운동이 분출하다

미국의 운동에 연대하며 국제적인 인종차별 반대 운동이 분출했다. 6월 첫째 주에만 영국, 프랑스,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노르웨이, 오스트레일리아, 브라질, 멕시코, 인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수많은 나라에서 시위가 벌어졌다. 한국에서도 6월 5일(금) 오전 11시에 주한 미국대사관 앞에서 인종차별에 반대하고 트럼프 정부를 규탄하는 긴급 기자회견이 열렸다.

6월 7일 영국 브리스틀 시위대는 17세기 무역상 에드워드 콜스턴의 동상을 강에 던져 버렸다 ⓒ출처 Harry135

영국에서는 전국 150여 개 도시에서 인종차별 반대 시위가 벌어졌다. 런던에서만 약 5만 명이 행진했다. 1998년 경찰에 살해당한 흑인 청년 크리스토퍼 앨더의 유가족을 비롯해 그간 경찰의 인종차별적 폭력에 희생된 수많은 사람들의 가족·친지도 함께 행진했다.

브리스틀 시위대 1만 명은 미국 운동에 영감을 받아 17세기 노예 무역상 에드워드 콜스턴의 동상을 끌어내려 강에 버렸다. 6월 9일 플로이드의 고향에서 열린 장례식에 참가한 유가족들은 “백인 노예 소유주들의 머나먼 후손들이 영국에서 노예 소유주들의 동상을 강바닥에 던져 버렸다”며 기뻐했다.

독일에서도 10만 명 가까이 행진했다. 베를린 행진에 참가한 디링케(좌파당) 국회의원 크리스티네 부흐홀츠는 이렇게 말했다. “독일에도 흑인, 무슬림, 로마인[집시]에 대한 인종차별이 심각합니다. 미국 운동에 연대하는 것은 삶과 체제에 토대를 둔 인종차별에 맞서 싸운다는 것입니다.”

프랑스에서도 수만 명이 곳곳에서 인종차별 반대 행진을 벌였다. 파리에서 약 4만 명이 플로이드의 죽음과 프랑스 경찰이 살해한 흑인 청년 아다마 트라오레의 죽음을 함께 기렸다.

멕시코에서 행진한 사람들은 경찰이 살해한 멕시코 건설 노동자 히오바니 로페스의 죽음을 함께 기렸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시위대는 남아공 경찰이 이동 제한령 위반을 빌미로 살해한 콜린스 코사의 죽음을 함께 기렸다.

6월 7일 브라질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경찰 폭력을 규탄하며 행진했다. 브라질 경찰은 올해에만 수백 명을 살해했는데, 리우데자네이루 한 곳에서 4월에만 177명이 경찰에 살해당했다. 기록이 시작된 이래 가장 많다. 시위 조직자 중 한 명인 미셸 시우바는 이번 시위가 브라질에 만연한 “흑인에 대한 제노사이드, 전염병 대유행에도 멈추지 않는 경찰 폭력”을 규탄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 나라들 모두에서 인종차별과 경찰 폭력 문제가 심각한 것은, 둘 모두가 세계 체제인 자본주의 자체의 속성과 긴밀히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관련 기사 본지 133호 ‘자본주의와 인종차별’)

미국에서 시작된 항쟁이 국제적 운동으로 전진하고 있다. 한국에 사는 우리도 이 흐름을 흠뻑 지지하고 연대해야 한다.

이 기사를 읽은 후에 “경찰은 왜 이렇게 인종차별적일까? 고쳐 쓸 수 있을까?”를 읽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