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3일(한국 시각), 세계의 사회주의자들이 코로나19 팬데믹과 세계적 저항을 주제로 공개 (온라인) 토론회를 열었다.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의 소피아 비치가 의장역을 밭았고, 미국·독일·나이지리아·영국의 사회주의자들이 발제를 했다. 다음은 발제자들의 발제와 질의·응답을 녹취·번역한 것이다.

[ ] 안의 내용은 〈노동자 연대〉 편집부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삽입한 내용이다. 영문 녹취를 해 준 이예송·천경록·한가은 동지에게 감사드린다.


미국 마르크스주의 단체 ‘마르크스21’ 활동가 야니스 델라톨라스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분위기입니다”

야니스 델라톨라스

최근 시위에 참가한 간호사의 사진이 인터넷에 널리 퍼졌습니다. 그 간호사는 “코로나19에 맞서 싸웠다. 이제 경찰에 맞서 싸울 것이다” 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있었죠. 지금 미국 상황을 잘 포착한 구호입니다.

인종과 계급은 지금 벌어지는 인종차별 반대 투쟁의 핵심입니다. 미국의 모든 대도시에서, 심지어 시위가 일어난 적이 역사상 한 번도 없었던 소도시에서도 시위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텍사스주(州)·앨러배마주·테네시주 등에 있는 미국 남부 도시도 마찬가지입니다. 통금령이 떨어졌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아랑곳 않고 거리로 나왔습니다.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분위기입니다. 이전까지만 해도 급진 좌파가 제출하던 요구들이 하루아침에 주류가 됐습니다. 경찰 개혁, 심지어 경찰 해체 같은 요구들이 그런 사례죠.

정치인들, 특히 민주당 정치인들은 개혁을 약속하며 허둥지둥 운동을 쫓아가고 있습니다. 뉴욕시 시장은 뉴욕시 경찰 예산을 삭감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저는 몇몇 동지들과 1990년대 초에 뉴욕에서 벌어진 어떤 운동에 참가했는데, 당시 요구 중 하나도 바로 경찰 예산 삭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저항은 시작된 지 두어 주밖에 되지 않았죠. 이번 저항이 얼마나 강력한지 보여 줍니다.

미니애폴리스 시의회는 경찰을 개혁할 수 없으니 해산하자는 안을 표결에 부쳤습니다. 아시다시피 이런 얘기는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이 국가의 본질에 관해 말할 때 하는 말이죠.

물론 지배계급이 경찰을 없애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것도 지금처럼 항쟁이 분출하는 시기에 말이죠. 하지만 다시 말씀드리지만, 당국에게서 이런 양보를 이토록 빨리 끌어냈다는 것은 이 운동이 그만큼 강력하다는 증거입니다

코로나19와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은 이 체제의 부당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6월 3일 워싱턴 시위에 참가한 의료인들 ⓒ출처 Joe Flood(플리커)

지난주에 텍사스주 엘파소의 이민세관단속국(ICE) 수용 시설에 갇힌 이주민들이 단식투쟁에 돌입했습니다. 감옥과 다름없는 곳에서 추방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말입니다. 이는 조지 플로이드에 대한 연대의 표현이었습니다. 대단한 연대의식과 국제주의의 표현입니다. 또, 단식투쟁은 지금 벌어지는 항쟁이 이주민 권리 보장 운동, 이민세관단속국 폐지 운동과 연결돼 심화될 수도 있음을 보여 줍니다.

연대

지금 벌어지는 항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오바마 정부 시절 분출한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을 살펴봐야 합니다. 그리고 더 길게 보면 미국에서 흑인 해방을 위한 투쟁은 흑인 평등권 운동 시기의 시위와 마틴 루서 킹, 맬컴 엑스 등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더 전투적으로 발전한 닷지혁명적노동조합운동(DRUM)·흑표범당 같은 혁명적 조직도 있었죠. 지금 여기서 그 역사를 다루지는 않겠지만, 미국에서 흑인 해방을 위한 투쟁에 풍부한 급진적 전통이 있음은 특기할 만합니다.

오바마 정부 시절인 2013년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이 분출한 것은, 오바마 정부가 경찰의 인종차별적 살해 문제에 대처하기를 꺼렸기 때문이었습니다. 

2013년 흑인 청소년 트레이번 마틴을 살해한 범인이 무혐의로 풀려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흑인 청년 에릭 가너와 마이클 브라운이 인종차별적 경찰에 살해됐죠. 이 두 사건의 범인들도 구속되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이 분출했습니다. 미국 곳곳에서 대규모 시위들이 벌어졌죠. 당시 뉴욕에서는 약 5만 명 규모 시위가 벌어졌고, 유럽에서도 연대 시위가 있었죠.

지금 벌어지는 인종차별 반대 운동은 당시 시위들보다 정치적으로 더 급진적이 됐습니다. 그리고 더 반항적이고 전투적입니다. 경찰서들이 불탔습니다.  현재 시애틀의 캐피톨 힐 지역 관할 경찰서는 시위대가 장악하고 있습니다. 경찰들은 경찰서를 비우고 떠나야 했습니다.

이 지역은 현재 ‘캐피톨 힐 자치구’로 불립니다. 사회주의자 시의원 크샤먀 사완트가 여기서 행진을 이끌었고 이곳을 계속 자치구로 남겨 두자는 법안을 발의했습니다.

노동자들도 운동에 참가하고 있습니다. 먼저 간호사노동조합, 우편노동자노동조합, 항공승무원노동조합 등의 노조 조직들이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최근에는 국제도장공산업연맹노동조합(IUPAT) 노동자들이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시위에 연대해 미국 노총 AFL-CIO 본부 건물 앞에서 팻말 시위를 했습니다. 이 시위는 AFL-CIO가 산하 경찰노조를 제명하기를 거부한 데에 항의하는 시위였습니다.

미국 지배계급은 운동의 성장에 대한 우려가 큽니다. 

트럼프는 이 운동을 분열시키기 위해 ‘안티파’를 테러 단체로 지목했습니다. 사실 이는 괴이한 일이었는데, ‘안티파’는 조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안티파’는 반(反)파시즘 활동가들의 느슨한 네트워크이며 이들의 정치는 극우를 타격하는 데에 최상의 정치라고 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트럼프의 이런 행동은 자신의 지지 기반인 극우와 인종차별주의자들에 신호를 보내는 것입니다. 좌파와 운동을 공격하라는 거죠.

지배자들의 분열

그러나 분열은 지배계급 내에서 나타났습니다. 군 장성들과 최고 군 관계자들은 연방군을 투입해 항쟁을 진압하자는 트럼프의 제안을 거부했습니다. 군대의 기층에서도 분열이 있습니다. 시위 진압 목적으로 투입되기를 거부하는 주방위군 병사들이 있었죠.

그러나 아시다시피 군 장성들은 그들이 무슨 말을 하든 결코 선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트럼프도 여전히 위험 인물입니다. 극우와 파시스트를 부추기기 때문이죠. 극우 성향 트럼프 지지자들은 시위대로 차를 돌진해 사람들을 다치게 하고, 심지어 디트로이트 등지에서는 사람을 죽이기도 했습니다.

코로나19 전염병 대유행 와중에 이 항쟁이 벌어졌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의 무대응 때문에 코로나19가 추적이 불가능할 만큼 걷잡을 수 없이 퍼졌습니다. 대유행이 절정일 때도 뉴욕시에서는 검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간호사들은 보호 장비도 없이 일했습니다. 아주 최근까지도 대대적인 검사는 시행되지 않았죠.

뉴욕시에서도 코로나19 피해가 가장 컸던 곳은 퀸즈나 브롱크스 같은 노동계급 지구입니다. 이유는 자명합니다. 주민들은 대부분 가난한 노동계급 사람들, 라틴계 사람들이죠. 많은 사람이 미등록 이주민이라 정부가 지급하는 1200달러 재난지원금을 자격 미달로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누구도 [일하지 않고] 집에 있을 처지가 못 됐습니다. 그리고 위기 시기에 도시를 계속 가동했던 필수부문 노동자들도 있죠.

뉴욕주 주지사 앤드루 쿠오모를 봅시다. 많은 사람들이 쿠오모를 무슨 영웅처럼  취급하는데요. 쿠오모의 코로나19 대처도 너무 늦었습니다. 학교 휴교는 교사 노동조합이 주지사와 시장을 압박한 결과입니다. 분노스럽게도 쿠오모는 심지어 전염병 대유행이 심각하던 5월에 [‘메디케이드’에 대한 주정부 지원금 삭감 등을 골자로 하는] 긴축 패키지를 통과시켰습니다. ‘메디케이드’(저소득층·장애인 대상 의료보험)는 건강 문제가 심각한 사람들, 즉 코로나19의 타격을 가장 크게 받은 사람들이 의존하는 의료보험인데도 말입니다.

코로나19 대응 부족, 1930년대 대불황을 방불케 하는 대량 실업 등 이 모든 것이 이번 항쟁을 타오르게 했습니다.

매우 중요한 정치적 요인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버니 샌더스의 선거 도전이 패배한 것입니다. 샌더스에게서 해결책을 기대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이에 분노했습니다. 

물론 샌더스 선거 도전은 사회민주주의적 운동이었고, 매우 실질적인 한계와 모순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정치적 중요성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제가 보기에는 샌더스 선거 도전이 패배했기 때문에 전에 샌더스를 지지했던 사람들이 시위에 나온 것입니다. 

노동조합 조직들과 노동자들의 합류는 이 항쟁의 지속성을 키우고 다른 운동들을 심화시킬 수 있습니다. 미니애폴리스 집배원 노동자들은 투쟁 초기부터 “우체국 노동자들은 조지 플로이드를 위한 정의를 요구한다”라는 현수막을 들고 대열을 지어 행진에 참가했습니다. 뉴욕과 미니애폴리스의 버스 운전 노동자들은 연행된 시위대의 운송을 거부했습니다. 캘리포니아주 항운 노동자들은 항쟁에 연대하는 뜻에서 서부 해안 항구 29곳을 폐쇄하기로 표결했습니다. 미국 곳곳의 교사 노동조합은 학교 현장에서 경찰을 쫓아냈습니다.

사회주의자들이 이 운동에서 할 아주 중요한 구실이 있습니다. 이 운동이 인종차별을 토대부터 뒤흔들 훨씬 더 급진적인 운동의 출발점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또, 인종차별에 도전하고, 자본주의에도 도전하고, 이주민을 비롯해 천대받는 모두를 위한 사회 정의를 실제로 구현할 수 있는 운동을 건설해야 합니다. 그리고 노동자들의 기여가 여기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엄청난 가능성과 흥미진진한 사태 전개를 목도하고 있습니다.


독일 디링케(좌파당) 소속 국회의원 크리스티네 부흐홀츠
“고통 전가에 맞선 강력한 운동이 매우 중요합니다”

크리스티네 부흐홀츠

코로나 사태는 자본주의 사회의 부당한 현실을 전보다도 더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고, 독일도 예외가 아닙니다. 정부의 코로나 대책은 빈곤층과 저소득층, 하위 중산층에게 주로 영향을 줬습니다. 병원과 마트 등지에서 노동자들이 사회를 지탱하는 한편, 전부터 문제를 일으켜 온 의료 민영화가 더 많은 문제를 일으키는 것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습니다. 이미 지난 10년 동안 노조들이 간호사 15만 명이 더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으니, 이곳 현실이 어떤지 대충 짐작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유럽연합(EU)의 상황은 훨씬 심각합니다. 독일 정부가 강요한 긴축 재정정책으로 보건 체계가 무너진 이탈리아 같은 나라들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난민 유입을 배척하는] ‘유럽 요새’의 외곽에 있는 난민촌의 끔찍한 현실도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EU와 독일 정부는 수십억 유로를 쓰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돈은 주로 자본가들을 위한 것입니다. 자본가들이 겁에 질려 있기 때문입니다. 단적으로 독일 경제는 올해 6.6퍼센트 마이너스 성장을 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4월에는 수출이 31퍼센트나 줄었습니다.

코로나19는 자연재해가 아닙니다. 그리고 경제 위기는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벌어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이러스는 방아쇠 구실을 했을 뿐입니다. 지금 경제는 회복 없는 장기 침체를 겪고 있고, 낮은 이윤 전망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계 각국 정부들, 그리고 이제는 EU 집행위원회도 자본주의를 구하려고 앞다퉈 빚을 내고 있습니다. 그 일환으로 최근에는 7500억 유로[약 1027조 원]짜리 유럽 회복 기금을 마련하기로 했죠. 3월에 독일 정부는 긴급 자금 수혈과 대출 담보 제공, 감세 정책을 실시했는데, 이는 주로 기업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바로 이틀 전에는 1300억 유로[약 178조 원]짜리 추가 경기부양책도 발표했습니다.

기업 퍼주기

정부가 기업들에게 이처럼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부으면서도 그 기업들에게 구조조정 금지, 배당금 지급 금지, 온실가스 감축 목표 준수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을 봐야 합니다. 그래서 대기업들이 개개의 투자자들에게서는 결코 받을 수 없었을 투자를 정부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컨대 독일 항공사 루프트한자는 90억 유로짜리 구제금융을 받았는데, 이는 주식시장 시가 총액의 갑절에 달하는 금액입니다. 이는 독일 정부의 위기 대응책의 계급적 성격을 특별히 뚜렷하게 보여 주는 사례인데, 독일 정부는 그 돈으로 루프트한자를 국유화하기는커녕 어떻게든 경영진과 주주들이 회사를 계속 운영하게 하려고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좌파당 디링케는 기업 구제에 사회적·생태적 의무를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정부는 정반대로 하고 있죠. 그래서 루프트한자는 [철도로 충분히 대체 가능한] 국내선을 없애지 않고 있고, 이틀 전에는 2만 명 이상을 감원하겠다고도 발표했습니다. 기업 살리기 정책의 이런 성격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노동계급이 일부 수혜를 입는다는 점을 감안한다 해도 이런 정책들로는 근저에 있는 자본주의의 위기를 결코 해결하지 못한다는 점을 봐야 합니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마이클 로버츠가 지적했듯이 수익성과 이윤율은 계속 낮게 유지될 테지만, 부채는 갈수록 커질 것인데, 대대적인 차입이 부채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경기 침체가 계속될 것이고 나중에는 인플레이션이 일어나, 경기 침체의 새로운 국면이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자본에게는 구제금융뿐 아니라, 착취율을 높여 이윤율을 높이는 것이 사활적입니다.

이미 독일에서 그 양상을 볼 수 있습니다. 기업주들이 펴는 공격은 정부의 경기부양책과 마찬가지로 자본이 겪을 충격을 완화하고 국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것입니다. 지난주에 금속산업사용자연합은 자신들이 보기에 필요한 조처가 무엇인지를 정리해서 발표했는데, 그것은 사실상 우리에 대한 사회적·정치적 선전포고였습니다. 그들은 사용자가 노동자들의 건강보험료 절반을 부담하는 정책을 폐지하고, 연금 제도를 개악하고, 노동시간을 무제한으로 유연화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당연히 부유세나 상속세 등 기업들이 사회적 책임을 분담해야 한다는 내용은 없습니다. 독일 자본가들은 국가가 주는 돈은 반기면서 국가가 이윤을 조금이라도 제약하는 것은 용납하지 않으려 합니다. 아직 그들이 원하는 대로 되고 있지는 않지만 그들이 무슨 말을 하고 어떤 계획을 세우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편 메르켈 정부는 현재로서는 아주 높은 지지율을 누리고 있습니다. 단축근로지원금과 중소사업체 보조금 덕분에 큰 지지를 받고 있죠. 예컨대, 지금 독일에서는 정부의 결정으로 730만 명이 단축근로지원금을 받고 있습니다. 당장은 수혜자인 셈이죠. 그러나 이 노동자들의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합니다. 머지않아 실업자가 빠르게 늘어나 300만 명에 달할 수 있습니다. 이는 이전에 비하면 상당히 늘어나는 것입니다.

장기적으로는 저들이 위기의 대가를 노동계급이 치르도록 하려 한다는 것이 분명한 만큼 다가올 위기에서 투쟁을 건설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좌파와 좌파당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먼저, 좌파당과 노조 집행부의 다수는 새로운 상황에서 태도를 분명히 하는 데에 시간이 꽤 걸렸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휴전의 정치’라는 문제가, 특히 노조 지도자들 사이에 남아 있습니다. 이들은 반사회적이고 부당한 조처에 맞서 투쟁하기보다는 정부와의 협상으로 무언가를 얻으려 합니다.

반격이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위기의 책임을 노동계급에 떠넘기려는 시도에 반격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물리적 거리두기 때문에 제약이 많지만 간호사들이 임금 인상과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고, 남부의 자동차 부품업체 노동자들이 폐업에 맞서 파업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도축 산업의 끔찍한 노동조건에 항의하는 시위도 있었습니다. 이 부문에서는 동유럽에서 건너온 이주노동자들이 매우 열악한 조건에서 일하고 있죠. 어떤 도축 시설은 코로나바이러스의 온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부분적인 투쟁들을 전체적인 투쟁으로 확대하려 합니다. 이윤보다 생명을 우선하라는 요구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소수자를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시도에 반대해야 한다. 3월 7일 난민 입국을 허용하라고 요구하는 독일의 시위대 ⓒ출처 Leonhard Lenz

고통 전가에 맞서 노동계급의 연대를 건설하려는 투쟁은 모두 우익과 네오파시스트들에 맞선 투쟁이어야 하고, 그들이 이 위기를 틈타 인종차별을 퍼뜨리고 소수집단들에 책임 전가를 하는 것을 저지해야 합니다. 독일에는 코로나19 위기에도 반영된 특별한 상황이 있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인종차별을 내세운 여러 운동이 부상했고, 그중 특히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부상하여 파시스트 정당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고무된 우익 테러리스트들이 살인을 저지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파시스트와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광범한 운동도 형성됐습니다. 극우의 온상인 AfD는 대규모 인종차별 반대, 파시스트 반대 시위들이 일어난 2018년 이후 수세적 태세로 전환해야 했습니다. AfD는 코로나 국면에서 처음에는 난민들이 바이러스를 퍼뜨린다고 비난하며 늘 그랬듯이 국경 폐쇄를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조처가 소용없고 그런 요구가 지지를 얻지 못한다는 것이 드러나자 정부의 접촉 금지령에 반대하며 사람들을 동원하려 했습니다. 이 또한 성과를 내지 못했죠.

지금 AfD 안에서는 노골적인 파시스트 분파와 우익 민족주의 분파가 주도권을 놓고 쟁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일부는 ‘국가사회주의[나치] 운동 정당’을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다른 일부는 보수 정당인 기민당(CDU)과 연정을 꾸려 정치적 목적을 달성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우익이 얼마나 강해질 것인지는 향후 몇 주, 몇 달 동안의 투쟁과 동원에 달려 있습니다. 따라서 이번 위기의 고통을 전가하려는 시도에 맞서는 강력한 운동을 건설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지난주 독일에서는 10만~20만 명이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시위에 참가했는데 이는 좌파적 운동의 잠재력이 상당하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전에도 독일에서는 기후 운동, 인종차별과 파시즘에 반대하는 운동이 그런 잠재력을 보인 바 있습니다. 우리도 이 운동의 일부입니다. 코로나 위기 속에서 인종차별에 반대해 국제주의적 대응을 요구하고, 인간과 자연보다 이윤을 우선하는 자본주의적 논리에서 벗어납시다.


나이지리아 혁명적 반자본주의 신문 〈소셜리스트 워커〉 편집자 바바 아이
“이윤보다 인간이 우선인 다른 세계를 쟁취해야 합니다”

바바 아이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가 했던 말로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문명이 존재했다는 가장 오래된 증거가 무엇이냐고 한 학생이 물었습니다. 그 학생은 냄비나 그릇 같은 유물을 기대했죠. 그러나 미드는 유적지에서 발견된 1만 5000년 전 인간의 대퇴골을 언급했습니다. 그 뼈는 부러졌다가 치료받고 회복된 흔적이 있는 것이었죠.

그런 점에서 한 사회가 얼마나 문명화한 사회인지를 알려면,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이 어떻게 돌봄을 받는지뿐 아니라, 돌봄을 제공하는 사람이 어떤 대우를 받는지를 봐야 합니다. 그리고 보건 노동자와 사회복지 노동자들이 특히 지난 몇십 년 동안 받은 처우를 보면 자본주의가, 특히 신자유주의적 형태가 얼마나 야만적인지 알 수 있습니다.

2007~2009년 대침체 이래 거의 모든 나라에서 보건 재원이 급격히 삭감됐습니다. 인력이 감축됐고 임금이 동결됐습니다.(보건 노동자들에게 이것은 사실상 임금 삭감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보건 노동자들의 건강이 등한시됐습니다.

이제 각국 정부들은 보건 노동자들을 응원하는 사람들 사이에 껴서 함께 박수를 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보건 노동자들이 적절한 보호장비 없이 일하는 것이 정부의 예산 삭감과 우선순위 때문임은 말하지 않습니다. 정부가 국제 기구에 관해 자주 하는 말을 들어 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정부가 어디에 돈을 대고 실제로 무엇을 지원하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이를 잘 보여 주는 사례가 있습니다. 최근 미국과 세계의 시위 진압 경찰을 보십시오. 경찰관 한 명을 무장시키는 비용이면 보건 노동자 31명이 쓸 보호장비 일체와 호흡 보호구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우선순위

그러나 현실은 어떻습니까? 여러 차례 발표된 개인 보호장비 지침은 하향조정돼 있습니다. 우리는 보건 노동자들이 호흡 보호구를 쓰지 않아도 되고, 일부 사람들만 쓰면 된다는 얘기도 들었죠. 그리고 그런 지침을 보면 언제나 “가용” 물자 부족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노동자들은 여기에 반대해 왔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최근 내놓은 지침에서도 코로나19 환자를 돌보는 모든 보건 노동자가 호흡 보호구를 쓸 필요는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노동자들이 이의 제기했는데도 말이죠. 주되게는 “가용성”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가용” 물자의 부족이 아닙니다. 이미 필요한 것보다 많은 돈이 있습니다. 문제는 기업주들이 이윤 획득에만 골몰해 있고, 정부가 기업주들의 이익에 이바지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환자들을 돌보는 사람들의 이익은 뒷전입니다. 우리 모두의 이익도 마찬가지로 뒷전입니다.

저들은 돈이 열리는 마법 나무는 어디에도 없다는 말만 되풀이합니다. 그러나 세금 도피처에는 36조 달러에 이르는 돈이 쌓여 있습니다. 그리고 코로나19 대유행 와중에 소수 억만장자들은 재산이 530억 달러나 늘어났습니다. 재원이 부족한 것이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문제는 그 재원이 생명을 살리고 삶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72년 전 WHO가 결성됐을 때 최상의 의료 서비스를 누릴 권리는 인간의 기본권으로 간주됐습니다. 그 이후 [유엔 등에서] 유명한 선언들과 계획들이 줄줄이 나왔습니다. 1990년까지 모두에게 깨끗한 물을 공급하겠다는 계획이 나왔고, 2000년에는 “모두에게 건강을” 계획, “새천년 개발목표,” “지속가능 발전목표” 계획 등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아룬다티 로이가 분명하게 말했듯이 이런 것들은 진정한 의도를 은폐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당장 체제를 바꾸라고 요구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 말이죠. 점진적으로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환상을 줄 뿐인 것입니다. 물론 그들은 진정으로 그런 변화를 원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허튼소리일 뿐입니다. 코로나19 대유행은 이 점도 적나라하게 드러냈습니다.

아프리카 상황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아프리카야말로 [코로나19] 피해가 가장 적은 곳 아니냐는 말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프리카에서 코로나19 확산에 대한 두려움이 큰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수십 년 동안 지속된 신자유주의 세계화, 민영화, 규제완화, 상업화 등의 결과로 아프리카의 공중보건 체계는 다른 어느 곳보다 처참하게 파괴됐습니다.

신자유주의라고 하면 보통 영국의 대처 정권이나 미국의 레이건 정권에서 시작됐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국제 금융기관들이 신자유주의를 추진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아프리카에서] 그 시작은 세계은행의 1981년 보고서[버그 보고서]였습니다. 이 보고서는 보건 서비스에 이용자 부담 제도를 도입하라고 가장 먼저, 노골적으로 요구했습니다. 아프리카 대륙의 빈곤 실상을 뻔히 알면서도 말입니다. 가뜩이나 심각했던 빈곤은 더 악화됐고, 이제는 최악에서 “최최악” — 그런 말이 있다면 — 에 이르고 있습니다.

위기

위기는 이제 막 시작됐을 뿐입니다. 이것은 단지 공중보건 위기가 아닙니다. 사회·경제적 위기이고, 세계적으로 상이한 차원·지역들에서 진행되는 위기입니다.

예컨대 아프리카 지역에서의 경제 활동 중단 조처에 관해 말씀드리자면, 아프리카에서도 남아시아처럼 노동인구의 상당 부분이 ‘비공식 부문’에 속해 있습니다. 비공식 부문 노동자들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날마다 분투하죠. 그들은 여러 면에서 비참한 처지에 놓였습니다. 정말 처참하죠. 이는 단지 경제 활동 중단 조처 때문만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더 근본적인 원인이 있습니다.

어떤 근본적인 원인이 있는 것일까요? 여기에 답하기 전에 공식 부문에 있는 사람들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예를 들어 나이지리아 상공회의소의 발표에 따르면, 85퍼센트의 기업이 인력과 임금을 대폭 삭감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문제는 그저 사람들이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산다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의 전반적 빈곤 수준에도 불구하고 부가 충분히 있으며, 그 부가 극소수에게 집중돼 있다는 것입니다. 그 부를 분배하면 비공식 부문 종사자들에게까지 사회적 보호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아프리카의 가장 부유한 5명이 전체 아프리카인들의 절반이 가진 부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은 결코 용납할 수 없습니다. 정부 대책은 대체로 이런 기업주들과 다국적기업들의 이윤 추구를 돕는 쪽으로 치우쳐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업의 부보다 사람들의 건강을, 이윤보다 인간이 우선인 다른 세계를 위해 주장하고 행동하고 조직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런 세계를 쟁취하려면 대중 투쟁을 벌여야 합니다. 시위가 일어나고 파업이 벌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벌어지는 파업의 대부분이 비공인 파업이라는 점도 중요합니다. 이런 파업들은 노동조합 공식 관료기구에 불복하여 벌어지는 것입니다. 더 많은 반격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런 반격에서 우리는 분명히 주장해야 합니다. 그저 어떤 개혁이나 허울뿐인 변화가 아니라 근본적인 체제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러려면 노동계급의 혁명적인 자녀들과 청년들이 다가오는 투쟁에 나서야 합니다.


영국 마르크스주의 계간지 《인터내셔널 소셜리즘》 편집자 조셉 추나라
“자본주의를 반대하는 정치가 필요합니다”

조셉 추나라

야니스가 제시한 물음으로 시작해 보겠습니다. 어째서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이 국제적 항쟁을 촉발한 것일까요?

지금까지 67개국에서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영국 브리스틀 시(市)에서는 시위대가 노예무역상의 동상을 끌어내렸고, 런던에서도 그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전 세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왔습니다.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은 실로 끔찍했습니다. 누군가의 숨통이 경찰관의 무릎에 9분 동안 짓눌려 있는 영상은 정말 참혹합니다. 그러나 이런 잔혹상은 전부터 계속 벌어져 왔습니다. 지난해 미국에서 경찰에게 죽은 사람은 1098명에 이릅니다. 흑인이 경찰에게 죽을 가능성은 백인의 세 배였습니다.

미국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영국에서도 경찰과 마주쳤다가 죽는 사람이 매주 나옵니다. 역시나 흑인과 소수인종의 비율이 높습니다. 영국에서는 이 문제로 기소된 경찰관이 1969년 이래로 한 명도 없습니다. 반 세기가 넘도록 이런 상황이니 이쯤 되면 흔한 말로 몇몇 썩은 사과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다들 알게 됩니다. 통 전체가 썩어서 악취를 풍기고 있는 것이죠. 국가기구는 속속들이 인종차별로 물들어 있습니다. 특히, 고위 공직자들의, 위로부터의 인종차별로 물들어 있죠.

이런 점에서, 정의를 요구하며 거리로 나온 사람들 일부가 앤절러 데이비스나 맬컴 엑스의 길을 따르려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두 인물은 체제 전체가 문제라고 봤고 혁명적 변화를 촉구하는 데까지 나아갔죠. 앤절러 데이비스는 “자본가 계급을 모두 완전히 타도”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런 운동이 세계적 수준으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두말할 나위 없이 이 분노는 코로나19의 충격으로 더 깊어지고 있습니다.

여러 달 동안 우리가 말했듯, 코로나19는 자본주의 체제의 모든 적대와 모순을 더 첨예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지긋지긋한 인종차별적 체제가 인간보다 기업의 이윤을 우선하고 거기에 방해 되는 모든 사람을 짓밟는다고 말합니다.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은 국제적 저항을 촉발했다. 6월 12일 런던에서 열린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시위 ⓒ가이스몰만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시위대가 외친 “숨을 못 쉬겠어요”라는 구호는 코로나19 희생자에게도 딱 들어맞는 구호입니다. 영국에서 줄줄이 목숨을 잃는 간호사, 버스 운전사, 마트 노동자들도 압도 다수가 가난한 사람들이거나 흑인들입니다.

오늘[6월 13일] 영국에서 들려온 한 가지 소식을 전해드리자면, 영국의사협회는 정부에게 서한을 보내어, 흑인과 사회적 약자들의 죽음을 다룬 부분이 공식 코로나19 보고서에서 왜 삭제됐는지 해명하라고 요구했다고 합니다. 수치를 보면 정부가 왜 그랬는지 짐작이 갑니다. 영국에서 흑인들은 코로나19로 사망할 가능성이 백인의 네 배였습니다. 저와 같은 서남아시아인의 사망 가능성은 백인의 두 배입니다.

이런 차이가 유전적 요인에서 비롯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이론은 전혀 쓸모 없습니다. 흑인은 일선에서 일하거나 비좁고 위생이 나쁜 집에 사는 경우가 다른 인종보다 훨씬 많고, 인종차별과 빈곤에서 비롯하는 온갖 스트레스와 긴장에 시달리며 살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니 흑인 중에 사망자가 많은 것입니다. 인종과 계급은 나이 다음으로 산 자와 죽은 자를 가르는 핵심 결정 요인입니다.

야니스가 말했듯이 적대는 깊어질 것입니다. 트럼프는 4000만 명이 실업자가 된 마당에 경제 상황을 내세워 올 가을에 재선하기는 글렀다고 봤습니다. 그래서 트럼프는 2016년에 그랬던 것처럼 긴장을 고조시켜 인종차별과 국수주의로 지지 기반을 결집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이 역시 미국만의 현상이 아닙니다. 브라질의 보우소나루 정권이나 인도의 모디 정권도 위기에 대응해 인종주의와 국수주의를 동원하는 패턴을 보입니다. 위기가 깊어질수록 이런 패턴이 세계 곳곳에서 나타날 것입니다.

사람들은 현재의 투쟁에서 다른 것을 배우기도 합니다. 며칠 간의 대규모 시위가 수십 년에 걸친 점잖은 교섭이나 선거 운동보다 더 많은 것을 성취한다는 것을 말이죠. 많은 사람이 거리에 나선 덕분에 조지 플로이드를 살해한 데릭 쇼빈과 그의 공모자들이 기소된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거리로 나오고 미니애폴리스에서 시위를 벌였기 때문에 경찰 “해체”가 거론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여기저기에서 경찰 예산 삭감 요구가 나옵니다. 이런 움직임이 인종차별적인 사법 체계의 폐지를 요구하는 운동으로 발전하기를 바랍니다. 이런 요구는 좌파가 오랜 세월 요구해 오던 바이기도 합니다.

이런 과정을 부채질하는, 코로나19 대유행이 나타난 배경을 살펴보겠습니다.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은 사회 외부에서 자연이 침투해 생긴 결과가 아닙니다. 코로나19 대유행은 자연재난이 아닙니다. 코로나바이러스 같은 병원체가 동물 개체군에서 인간 사회로 건너오는 까닭은 자본이 자연으로 침투하고, 자본이 이윤을 얻으려고 자연을 상품으로 전환시키기 때문입니다. 이런 변화는 농업 대기업을 통해 나타나기도 하고, 자본주의가 일으키는 더 광범한 생태계 파괴를 통해 나타나기도 합니다.

한편, 새로운 바이러스가 사회에 유입된 후 정부가 내놓는 대응은 체제의 우선순위를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상황이 특별히 나빴던 곳은 영국이나 미국처럼 신자유주의에 의해 자본주의적 논리가 심화된 곳이었습니다.

예컨대 영국에서는 코로나19 사망자의 절반이 요양원에서 나왔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적절한 감염자 검사·추적 체계가 부재한 상황에서 많은 감염자를 병원에서 요양원으로 돌려보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요양원들은 수십 년 동안 비용 절감 논리에 따라 운영돼 왔고, 그래서 그에 따른 코로나19 확산으로부터 환자들을 전혀 보호할 수 없었습니다.

요양원 사례는 피해가 가장 심했던 축에 속하지만, 자본주의의 논리는 다른 모든 곳에서도 확인됩니다. 현재 세계 도처에서 업무 현장을 재가동해야 한다는 압력이 커지고 있습니다. 이윤의 흐름을 회복시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죠. 이미 유럽도 상황이 나쁘지만, 브라질이나 인도 같은 나라들에서도 사망자가 여전히 어마어마하게 늘어나고 있는 와중에 대대적인 조업 정상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미국 정부는 바이러스 잡기를 아예 포기한 것처럼 보입니다. 브라질·인도·미국 등지에서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을 것입니다.

영국이나 독일 등지에서는 지금 상황을 모면한다 해도 2차 유행이 시작될 것입니다.

투쟁

이에 대해서도 우리는 싸울 수 있다고 주장해야 합니다. 영국의 주요 교사 노조인 전국교육노조(NEU)는 이 문제에 단호하게 대처한 몇 안 되는 노조 중 하나였습니다. 정부는 초등학교를 개학해서 부모들이 직장으로 복귀할 수 있게 하려고 했습니다. 전국교육노조는 안전 기준을 제시하고 정부가 이것을 충족할 때만 학교를 개학하겠다고 선포했습니다. 전국교육노조는 온라인에서 노조 활동가 모임을 소집했는데 이 모임에 2만 명이 참가했습니다. 아마도 영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노동조합원 모임이었을 겁니다.

개인보호장비를 요구하며 투쟁하는 영국 보건노동자들

정부는 6월 1일 초등학교 개학을 시도했지만, 기쁘게도 학생의 4분의 1만이 등교했습니다. 아래로부터의, 교사와 학부모들의 저항이 정부의 계획을 망친 것입니다. 이런 일이 더 많이 벌어져야 합니다.

제가 보기에 이런 투쟁은 작업 현장에서의 결정권을 둘러싼 투쟁의 일부입니다. 조업 재개를 할 만큼 안전한지를 누가 결정할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어떻게 작업 현장을 우리의 필요에 따라 운영할 것인지를 둘러싼 투쟁인 것이죠.

야니스는 노동운동이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다문화적 직장에서 그 운동의 기풍을 이어가야 합니다. 우리에게 모멸감을 주는 인종차별주의자들의 동상을 끌어내릴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을 우습게 여기고 나락에 빠뜨리는 사장들과 지배자들과도 맞서 싸울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 투쟁도 그런 투쟁의 일부입니다. 단지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싸움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앞으로 벌어질 투쟁에 대비해 운동의 힘을 키우기 위한 싸움이기도 합니다.

한편, 코로나19는 현재 우리가 살면서 겪어 본 가장 심각한 경제 위기를 촉발했습니다.

2008~2009년 이래로 이 체제는 저금리, 양적완화, 구제금융으로 버텨 왔습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목숨을 부지하던 좀비 기업들이 다시 쓰러지기 시작했습니다. 경제가 무너지려 하자 전쟁 때 말고는 유례가 없었던 수준으로 국가가 경제에 대대적으로 개입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기업주에게는 사회주의가, 노동자에게는 자본주의가 적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대기업이 도산하면 그 기업에 돈을 퍼주거나 정부 지원 대출(공적자금)을 제공하는 식으로 안전망이 제공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비용은 누가 치르게 될까요? 10년 전 지배자들이 은행 체제를 구제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머지 않아 반드시 투쟁이 벌어질 것입니다.

어떤 정치인가

마지막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점은 어떤 정치가 필요한가입니다. 아래로부터의 투쟁이 성장할수록 주류 좌파의 한계도 더 뚜렷해지기 때문입니다.

영국에는 노동당 신임 대표 키어 스타머 경이 있습니다. 브리스틀에서 시위대가 노예무역상인 에드워드 콜스턴의 동상을 끌어내려 강물에 처박아 버리자, 스타머는 시위대가 전적으로 잘못된 행동을 했다고 비난했습니다. 아마도 스타머는 동상을 강물에서 끄집어 내어 제자리에 놓고 위원회를 꾸려 그 동상을 10년이나 20년 동안 존치할지를 점잖게 논의하여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스타머 대표는 정부가 개학 계획을 그르쳤다고 비판했습니다. 최선의 방법으로 노동계급을 지키려 하는 사람들과 정면 충돌하는 발언입니다.

미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조 바이든이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됐는데, 민주당 주류는 버니 샌더스를 이용하고 있죠. 바이든은 경찰들이 머리가 아니라 다리를 쏘도록 훈련받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더 나아가, 자신을 찍지 않으면 흑인이 아니라는 말까지 말했습니다. 이런 것들은 정치적으로 지각 있는 사람들의 마음에 들 수 없습니다.

스페인 정부 내에는 좌파 정당인 포데모스가 연정에 참여하고 있고, 경제 활동을 재개시키는 데에 관여하고 있습니다.

물론 저는 사람들이 왜 이런 단체들에 기대를 거는지를 이해합니다. 저는 종파주의자가 아닙니다. 그래서 이런 조직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인종차별과 코로나19를 둘러싼 투쟁에 뛰어든다면 기꺼이 그들과 함께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 자본이 허용하는 한계를 받아들이지 않는 정치가 절실합니다.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정치가 필요합니다. 자본주의가 우리를 삼중의 위기로 내몰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는 세계적 유행병, 장기 침체, 그보다 심각하고 장기적인 생태 위기로 우리를 위협합니다. 코로나19가 창궐하기 전 올해 초가 어땠는지도 명심하셔야 합니다. 호주에서 큰 산불이 났고, 브라질 원시림이 불탔으며, 인도네시아에서 홍수가 났고, 아프리카에서는 메뚜기 떼가 마을을 덮쳤습니다. 이런 와중에 코로나19와 경제 위기가 온 것입니다. 마치 세계의 종말이 다가오는 듯한 분위기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과정이 자본주의 체제, 즉 경쟁적 이윤 체제와 연결돼 있고 그 체제에서 비롯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 운동의 요구는 자본주의가 용인하는 한계 내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참된 의미에서 민주적으로 운영되고, 인간의 필요를 위해 생산하는 체제를 주장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회주의적 해결책은 오직 아래로부터의 혁명적인 변화로만 실현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국제사회주의경향의 정치입니다. 이런 정치를 공유하고 이런 정치에 공감하신다면 우리와 함께합시다. 감사합니다.


질의 응답

소피아 비치

소피아 비치(의장): 발제 중에 청중들이 보낸 질문을 소개하겠습니다.

첫 번째 질문은 가나에서 기예키 타노가 보낸 것입니다. 연사들은 파업과 거리에서 분출한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시위에 대해 말씀해 주셨는데요, 혁명적 사회주의자이자 선출된 국회의원이라면 이런 투쟁과 선거 정치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 평범한 사람들은 무엇을 우선시해야 하는지 궁금하다는 질문입니다. 우리에게 득이 되는 변화를 꾀하려면 의회나 노동조합에서 더 나은 대표자를 선출하는 데에 집중해야 하나요?

두 번째 질문은 캐나다에서 펠린이 보낸 것입니다. 미국의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시위에 연대해 독일에서 대규모 행진이 열렸는데요, 이 시위는 미국 바깥에서 일어난 가장 큰 시위였다고 하죠. 펠린은 크리스티네에게 그런 시위가 어떻게 가능했는지 물었습니다.

세 번째 질문은 영국에서 토니가 보낸 것입니다. “런던 경찰은 오후 5시 이후 통행금지령을 내렸습니다. 코로나19 특별법을 이용해 런던 도심에서 반(反)파시즘 시위를 사실상 금지한 것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한 제한 조치 하에서 사회주의자들은 어떻게 시위를 벌일 수 있을까요?” 런던 경찰의 통행금지령은 기가 막히는 소식이네요. 질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연사들의 답변을 듣겠습니다.

크리스티네 부흐홀츠: 투표를 제대로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냐는 질문에 먼저 답하겠습니다. 제가 절대적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은 국회나 국가기관이 아니라 자기 권익을 위해 싸우는 노동계급 운동과 사회운동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벌어지는 시위는 이 점을 생생하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국회의원으로서 제 임무는 정부 정책에 이의제기를 하고, 파시스트 의원들의 인종차별적 주장과 발언에 맞서고, 사람들이 자기 권익을 위해 투쟁하도록 고무하는 것입니다. 또, 독일 상황이 어떻게 다른 나라 상황과 연결돼 있는지를 보여 줘야 합니다. 예컨대 바바 동지가 말한 나이지리아 노동계급의 열악한 처지는 서구 국가들이 제국주의 경쟁과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추진한 결과인데요, 독일은 서구의 중요한 경제적·군사적 일원입니다.

이처럼 혁명적 사회주의자는 [국회의원으로서] 일정한 구실을 할 수 있죠. 그러나 혁명적 사회주의자의 핵심적 과제는 사람들이 조직적으로 뭉쳐서 자신의 권익을 위해 투쟁하도록 고무하는 것입니다.

독일에서 어떻게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시위가 그렇게 거대할 수 있었냐는 둘째 질문에 답하겠습니다. 아주 분명한 이유가 있는데, 독일에서도 인종차별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입니다. 2월 19일 프랑크푸르트 인근 소도시인 하나우에서는 총기 테러로 이주민 9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인종차별주의자이자 파시스트인 범인은 국내의 인종차별 선동 연설과 [지난해 3월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모스크 총기 난사 사건에서 자극받아, [무슬림이 많은] 물담배 바에서 사람들을 사살했습니다. 이 사건 직후 이주민 공동체뿐 아니라 광범한 사람들이 인종차별과 나치에 반대하는 행동을 크게 벌였습니다.

좌파 야당

독일에서는 흑인과 무슬림을 겨냥한 인종차별이 흔합니다. 독일에서는 모스크가 일주일에 두 번 꼴로 공격을 당합니다. 사실 그런 공격은 날마다 벌어지지만 경찰에 신고해 봤자 달라지는 게 없었던 경험 때문에 신고를 안 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더 많은 것입니다. 이런 경험이 독일의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시위의 배경이었던 것이죠.

저는 지난주 토요일 베를린 시위에 참가했는데 정말이지 장관이었습니다. 중앙 광장으로 사람들이 도처에서 밀려들어 왔습니다. 청년들이 많았고 한 눈에 봐도 미조직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독일 내 인종차별이 심각한 만큼 우리는 이런 사람들과 함께 인종차별과 파시스트에 맞서는 투쟁을 전진시키고, 미국뿐 아니라 독일 내 인종차별 반대 투쟁에 연대하려 합니다.

6월 7일 독일의 인종차별 반대 시위 ⓒ출처 Aufstehen gegen Rassismus

이 대목에서 팬데믹 상황에서 시위를 조직하는 문제에 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도 처음에 많이 토론했습니다. 예컨대 5월 1일 메이데이 때 노조들이 온라인 시위만 하고 오프라인에서는 아무 일정도 잡지 않길래 저희는 좌파당의 이름으로 작은 행동을 벌였습니다. 광장에 적은 수가 모여서 2미터 간격을 유지한 채 연설하고 현수막을 들었습니다. 이 행동으로 메르켈 정부의 코로나19 대응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려 했습니다. 특히, 우익 야당들이 이미 있는 만큼 좌파 야당들의 목소리도 있다는 것을 알리려 했습니다.

이런 경험이 조금씩 쌓이면서 운동이 발전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내일 많은 도시들에서 정부의 코로나19 대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연대하는 시위가 벌어질 것이고, 인종차별 반대 시위도 예정돼 있습니다. 시위대는 2미터 간격을 유지한 채로 모여서 다른 도시까지 연결되는 인간띠를 만들기도 하고 연설도 합니다. 우리는 새로운 시위 방식을 개발하려 합니다.

노동자들이 직장에서 투쟁하도록 고무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우리는 직장[에서 조직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직장에서 일어나는 투쟁들을 지지해야 합니다. 그런 투쟁들은 이미 벌어지고 있고, 우리는 그런 투쟁들이 승리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바바 아이: 첫 번째 질문은 우리 사회주의자들이 선거 정치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를 묻는 것 같습니다.

우선, 크리스티네가 옳게 지적했듯이 변화는 의회에서 오지 않습니다. 심대한 구조적 변화는 언제나 사람들이 들고일어났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선순위가 거리에 있으니 언제나 선거를 거부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선거주의 정치는 거부해야 합니다. 하지만 가능하다면 선거에 개입해야 합니다. 사실 선거 정치에 직접 개입하느냐는 원칙 문제가 아니라 전술 문제입니다. 보통은 “어떻게”가 핵심이죠.

구체적인 쟁점으로는 차악론을 들 수 있겠습니다. 미국에서 차악론, 즉 민주당을 찍어야 한다는 주장은 교활한 궤변입니다.

인종차별 반대 운동과 관련지어 생각해 봅시다. 민주당은 흑인들을 범죄자로 낙인찍고 교도소에 가두는 데에 핵심적 구실을 했습니다. 30년이 채 안 되는 기간 미국에서 재소자 수는 35만 명에서 200만 명 이상으로 늘었습니다. 미국 대통령을 지낸 민주당원 빌 클린턴은 여기서 중요한 구실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빌 클린턴이, 2016년 민주당 대선후보 힐러리 클린턴의 선거 유세에서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활동가들이 그 문제를 제기했을 때 뭐라고 했습니까? 오만방자하게도 ‘흑인들이 똑같은 흑인들에게 마약을 팔고 똑같은 흑인들을 죽이니까 교도소에 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클린턴은 구조적 문제에 침묵했습니다. 흑인이 전체 인구의 6.5퍼센트밖에 안 되는데도 남성 재소자의 40퍼센트가 흑인이라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에 침묵했습니다. 클린턴은 대대손손 물려 내려온 빈곤을 애써 외면했고, 노예무역 이래 매 시기마다, 심지어 흑인 평등권 이후에도 흑인들, 특히 미국의 흑인 노동계급이 당해야 했던 인종차별을 무시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힘을 보여 줘야 합니다. 투표소에서도 보여 줘야겠지만 투표소 바깥에서 그러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연대

시위의 국제적 확산에 관해 말씀드리자면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사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니애폴리스에서 불붙은 이번 항쟁에서 두 가지 쟁점이 부상했죠. 바로 인종차별과 경찰 폭력입니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시위를 보면, 이 시위들은 단지 항쟁을 촉발한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을 규탄하고 미국의 인종차별 반대 운동에 연대하는 데에 그치지 않습니다. 시위 참가자들은 여러 지역의 인종차별적 유산과 오늘날 벌어지는 인종차별을 들춰내고 반대하고 있습니다.

호주에서는 원주민 권리가 중요한 쟁점이었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시드니, 멜버른, 빅토리아에서 이들의 권리를 옹호했습니다.

영국에서는 시위대가 노예무역 상인들의 동상을 끌어내리고 있습니다. 어떤 점에서 이는 영국의 전 총리 고든 브라운이 몇 년 전에 했던 망언에 대한 신랄한 대답이기도 합니다. 고든 브라운은 “영국이 식민주의를 사과해야 할 시기는 끝난 지 오래”라고 했죠. 말도 안 되는 헛소리입니다. 식민주의의 유산이 온존하고 있고, 인종차별은 식민주의 시기보다 더 이전의 대서양 노예무역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식민주의에 관해 말씀드리면, 신자유주의가 맹공을 퍼붓기 전까지 아프리카가 이 정도밖에 진보하지 못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제2차세계대전 직후 북아메리카와 유럽에는 복지 국가가 들어섰죠. 그러나 그때 아프리카는 여전히 식민지였고 수탈을 당했습니다. 어떤 점에서 아프리카에서 빠져나간 부가 당시 영국의 국민보건서비스(NHS)를 건설하는 데 쓰였다고도 할 수 있겠죠. 이런 사실들은 고든 브라운의 말이 왜 망언인지를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한편, 케냐·나이지리아·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아프리카에서 벌어진 연대 시위에서는 경찰 폭력 문제가 더 중요했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시위대는 아파르트헤이트[1994년 ANC 집권 전의 인종 분리 정책]의 공식적인 해체에도 불구하고 흑인, 특히 흑인 노동계급이 — 경제적으로뿐 아니라 종종 경찰에게 살해당하는 — 불리한 처지에 있다는 점을 폭로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단편적 사실들을 연결해서 구조적 문제를 드러내고 더 철저하고 근본적인, 체제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런 변화를 이루려면 노동계급이 새 세계를 위해 거리와 직장에서 대규모 투쟁을 벌여야 합니다.

“다른 세계가 가능하다”는 말이 있죠. 그러나 그런 세계가 가능하려면 싸워야 합니다.

야니스 델라톨라스: 정치인들에게 투표해서 인종차별적 폭력과 경찰 문제를 해결하고 경찰을 개혁할 수 있을지에 관해 짧게 답변하겠습니다. 

제가 발제에서 지적했듯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은 버락 오바마 정부 시절에 등장했습니다. 인종차별이 미국에서 했던 구실을 감안하면 오바마의 대선 승리는 분명 역사적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바마가 인종차별적 살해 문제를 해결하라는 운동의 요구를 외면한 것에 많은 사람들이 경악했습니다. 오바마에 환상이 전혀 없던 우리 같은 사람들도 경악할 정도였죠.

결국 오바마는 커다란 압력 때문에 어떤 조처를 취하긴 했지만 운동의 기대에는 한참 못 미쳤습니다. 오바마가 문제 해결에 그토록 무능했던 것 때문에,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이 생명력을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 면에서 이는 경찰 개혁이 가능하냐는 물음에 답하는 가장 분명한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이 물음은 국가의 구실과 개혁 가능성이라는 더 큰 문제와 맞닿아 있습니다.

최근 버니 샌더스는 경찰 예산 삭감 요구에 반대했습니다. 샌더스는 경찰이 상당한 예산을 받고 우수한 장비를 갖추는 것을 옹호했습니다. 진보 또는 사회민주주의 정치인이 현재 운동[의 요구에서] 한 발 물러서는 또 다른 사례인 것이죠.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오바마는 인종차별 반대 운동의 요구를 외면했고 환멸을 샀다 ⓒ출처 NASA HQ PHOTO

설령 경찰 개혁이 가능하다고 가정해 봅시다. 하지만 경찰을 구성하는 사람들을 실제로 살펴보면, 일선 경찰들 속에도 인종차별주의자, 심지어 네오나치·극우 지지자들이 많습니다. 그만큼 경찰 개혁은 어렵습니다. 인종차별이 고질병처럼 퍼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나 다른 모든 나라에서도 일선 경찰들 사이에 파시스트, 극우 지지자나 인종차별적 편견에 찌든 사람들이 많습니다. 미국의 경우 인종차별은 명백히 고질병이죠. 인종차별은 경찰이 되면 받는 훈련의 일부입니다. 

그래서 저는 경찰 개혁이 사실은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백 번 양보해, 경찰을 개혁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파업이 벌어지면 무슨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지배계급은 경찰을 보내어 파업을 분쇄할 것입니다. 이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찰이 하는 구실입니다.

조셉 추나라: 시간이 없으므로 두 가지 요점에 집중하겠습니다.

첫째, 코로나19가 유행하는 와중에 시위를 하는 문제입니다. 취약한 사람들의 안전을 지키고, 물리적 거리를 유지하는 새로운 시위 방식을 개척하는 문제를 두고 운동 참가자들이 전술적 토론을 벌이는 것은 지극히 합당한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투쟁에 나선 사람들이 어떤 환경에서, 어떤 전술로 투쟁을 하든 그들에게 연대를 나타낸다는 관점을 견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시위를 조직해서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린다고 우리를 비난하는 지배계급과 그 대변자들의 위선을 거부해야 합니다. 그들은 1500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을 100명 이상이 모이는 일터로 돌려보내려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그들이 일터로 사람들을 불러모으는 것이 좌파들이 집회를 벌이는 것보다 훨씬 더 사람들의 생명을 위협한다는 것입니다.

오늘[6월 13일] 런던에 떨어진 통행금지령에 관해 특별히 말씀드리면, 이것은 런던에 모인 극우파 시위보다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시위를 더 겨냥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이 확인시켜 주는 바는, 국가로 하여금 극우파 시위를 금지하게 하는 것으로는 극우를 약화시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시위 조직자들은 토요일[6월 13일] 시위 일정을 금요일로 옮기기로 한 듯합니다. 같은 날 시위를 벌이는 파시스트들이 시위대를 공격할 것이고 정부가 이 사실을 이용해 흑인들을 체포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인 듯합니다. 그런 우려는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그런데 현 시점에서 우리가 개진해야 하는 주장이 있습니다. 파시스트들의 위협에 반격하려면 결국 거리, 직장, 지역사회에서 대중을 동원해 파시스트들의 집회·행진을 막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국에서 이런 전통은 1970년대 반나치동맹(ANL)에서 ‘파시즘에 맞서 단결하라’(UAF), ‘인종차별에 맞서자’(Stand Up to Racism) 같은 조직으로 이어져 왔습니다. 인종차별 반대 활동가, 노동조합 활동가를 비롯한 기층 활동가들이 대중 동원으로 파시스트들의 집회와 시위를 막는 전통이었죠. 이러한 투쟁 방식은 이제 그리스·독일·오스트리아 등지로 퍼졌습니다. 제 생각에 이는 효과가 있는 투쟁 방식입니다.

이런 주장을 최근 급진화하는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개진하기 시작해야 한다고 봅니다.

팬데믹이 끝나지 않았는데도 정부와 기업주들은 노동자들을 일터에 몰아넣고 있다. 집단감염의 위험 속에서 일하는 콜센터 노동자들 ⓒ출처 수원시

의회와 투쟁

마지막으로 의회와 투쟁의 관계, 즉 사람들을 당선시키는 문제와 거리·직장·지역사회에서 벌이는 싸움의 관계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사회주의자들이 선거에 참여하는 것을 지지합니다. 예를 들어, 크리스티네가 독일 연방의회 의원인 것은 매우 신나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크리스티네는 천대받는 사람들의 호민관이기 때문입니다. 크리스티네는 차별받고 착취당하는 사람들을 지켜주고 이를 위해 의회라는 연단을 활용합니다.

그러나 레닌이 의회에 관해서 한 말도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레닌은 의회가 거대한 똥더미라고 했습니다. 그 위에 올라서면 더 멀리까지 목소리가 들리게 할 수 있지만 그것이 똥더미라는 데에는 환상을 품어서는 안 된다고 했죠.

근본적으로 변화는 의회라는 기구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우리는 의회를 우리 운동의 확성기로 활용하려 하고, 같은 목적으로 선거를 활용하려 합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변화는 많은 사람들의 행동, 궁극적으로는 훨씬 많은 사람들의, 아래로부터의 민주적 투쟁으로 성취되는 것입니다.

일부 좌파가 의회와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동등하게 놓는 것은 이 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봅니다.

그런 주장을 하는 전통, 특히 그리스의 좌파 정당 시리자를 봅시다. 시리자는 5년 전 그리스에서 정권을 잡았죠. 많은 시리자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급진좌파연합이다. 우리는 의회에서도 싸우고 거리와 작업장에서도 싸운다. 모두 똑같이 중요한 투쟁이다.”

그러나 집권 후 시리자는 거리와 직장에서의 투쟁을 의회와 선거주의의 필요에 종속시켰고, 근본적으로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관리하려 했습니다. 당시 그리스 대중은 긴축 강요에 맞서 싸우라고 급진좌파 정당 시리자에 투표했습니다. 하지만 시리자는 자본과 유럽연합에 굴복해 되레 그리스 대중에게 긴축을 강요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시리자는 다음 선거에서 패했습니다. 이는 우리에게도 어려움을 줍니다.

따라서 우리가 해야 하는 주장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우리도 선거를 활용할 수 있습니다. 가능한 경우 의회와 선거 운동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이런 뜻에서 바바 아이는 “전술 문제”라고 했죠.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대중이 가장 많이 모이는 거리·직장·지역사회에서 대중이 행사하는 힘에 기반을 둔, 의회 바깥의 운동이 중요합니다. 이런 운동이 있어야만 우리의 집단적 민주주의를 사회에 관철시키고, 사회를 더 급진적이고 폭넓게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소피아 비치(의장): 이제 마지막으로 청중들의 질문을 소개하겠습니다. 답변하면서 정리 발언도 해 주시기 바랍니다.

첫 번째 질문은 한 익명의 한국인 청중이 보낸 질문입니다. 미국에서는 어떤 단체가 시위를 조직하고 있습니까? 미국 사회주의자들은 연대를 구축하기 위해 어떻게 시위에 참가하고 있나요?

두 번째 질문은 바바에게 온 질문입니다. 불평등이 극심한 나이지리아 상황에서 어떻게 운동을 건설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세 번째 질문은 영국의 샐리가 보낸 질문입니다. “중국은 어떻게 봐야 하나요? 중국 정부의 탄압에 반대하는 홍콩 시위가 여전한 것으로 압니다. 이 저항이 중국 본토로 번질 수 있을까요?” 흥미로운 질문입니다.

마지막 질문은 스웨덴에서 잉마가 보낸 질문입니다. 이번 토론 내용을 종합하는 훌륭한 질문인 것 같습니다. “코로나19 위기로 신자유주의 정치가 끝날까요?”

이번에는 역순으로 답변을 듣겠습니다.

조셉 추나라: 우선 중국에 대한 질문에 답변하겠습니다. 현 위기의 한 가지 특징은 미국의 국제적 지도력이 완전히 무너진 것처럼 보이고 미국 제국주의의 위기가 더한층 깊어졌다는 것입니다.

중국이 단기간에 미국을 젖히고 세계 패권국이 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중국은 분명 세계 곳곳으로 힘을 뻗치고 있습니다. 미·중 간 긴장도 분명 엄청나게 높아졌죠. 현 상황과 관련해 알아야 하는 중요한 맥락입니다.

한편, 영국에서는 중국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늘어났습니다. 저는 대학에서 일하는데 영국에는 중국인 학생이 참 많습니다. 그리고 많은 중국인 학생들이 거리에서 인종차별적 공격을 당하죠. 우리는 영국에서 중국인 학생들을 상대로 한 모든 인종차별이나 국수주의에 분명하게 반대합니다.

각국의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연대 시위는 국내의 인종차별에도 반대하는 시위로 발전했다. 6월 20일 런던의 인종차별 반대 시위 ⓒ출처 STEVE EASON

현재 벌어지는 투쟁에 관해 말씀드리면, 현재 홍콩에서 벌어지는 항쟁은 중국 정부의 탄압에 맞서 일종의 민주주의를 지키는 광범한 투쟁입니다. 따라서 저는 홍콩에서 벌어지는 항쟁을 지지합니다.

물론 항쟁 내에는 상이한 조류가 있고, 그중 소수는 미국·영국 제국주의를 항쟁과 같은 편으로 여깁니다. 저는 그런 입장에 반대합니다. 그러나 탄압에 맞서 싸우는 광범한 대중의 운동에 우리는 연대를 나타내야 합니다.

가장 큰 희망사항은 탄압에 맞선 홍콩 대중의 격렬한 투쟁이 중국 본토의 투쟁과 어떤 식으로든 만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중국 본토에서 일어난 투쟁은 대체로 임금 체불 같은 경제적 문제를 둘러싼 투쟁이거나 직장에서 벌어진 전투적인 투쟁이었습니다.

오늘날 중국에는 최근에 형성된 매우 강력한 노동계급이 있습니다. 이는 마르크스가 1848년에 했던 말을 떠올리게 합니다. 자본주의는 성장하고 발전하는 모든 곳에서 자신의 무덤을 파는 사람들을 만들어 낸다고 마르크스는 썼죠. 그리고 중국 노동계급은 자본주의를 파묻을 매우 강력한 매장인들입니다. 우리는 현재 홍콩 등지에서 벌어지는 전투적인 정치투쟁과, 아까 말씀드렸듯이 최근 몇 년 동안 꽤 전투적으로 싸웠던 중국 노동계급의 막강한 힘이 서로 만나기를 바라야 합니다.

사회주의냐 야만이냐

둘째, “신자유주의는 끝났는가?” 라는 물음에 답하겠습니다. 2008~2009년 세계적 금융 위기가 터졌을 때에도 좌파 진영의 많은 사람들이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이제 국가가 대대적으로 경제에 개입하고 있으니 신자유주의는 끝났고 새로운 국면이 도래할 것이라고, 아마도 케인스주의식[온건한 국가자본주의를 가리킴] 개입이 시작될 것 같다고 했죠. 그런 예측은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2008~2009년 위기 이후 긴축재정 정책들이 노동계급에 강요되면서 신자유주의는 오히려 더 과격해졌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도 비슷한 일이 되풀이될지도 모른다는 큰 우려가 일고 있습니다.

정부는 긴축재정을 강요하는 것이 딱히 내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영국에는 총리 보리스 존슨과 매우 지독한 우파 정권이 있지만, 보리스 존슨조차 대대적 긴축재정을 또 시행하면 선거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고 본능적으로 느낄 것입니다.

그럼에도 정부는 체제의 논리 때문에 노동계급을 공격할 수 있습니다. 이미 유럽에서는 유럽 부채 위기의 새 국면이 거론되고 있고, 체제를 구제하는 데에 들어간 비용을 만회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확신하건대 이는 향후 몇 년 간의 정치 상황에서 두드러질 특징입니다.

따라서 앞으로 어떤 사회를 만들어야 하느냐를 둘러싸고 실로 대규모 투쟁이 벌어질 것입니다. 그러한 투쟁 없이 어떤 사회가 신자유주의와 근본적으로 단절하거나 더 진보적인 사회로 변화될지 모른다고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이에 관해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아래로부터의 전투적인 투쟁이 절실합니다.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은 제가 정치 활동을 시작한 이래 목격한 가장 희망적인 징후입니다. 1967년과 1968년의 위대한 반란들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반란들이 거대한 투쟁 물결을 촉발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1974년 포르투갈 혁명, 1972년과 그밖의 영국 역사의 여러 시점에서 일어난 전투적인 계급투쟁, 혁명적인 물음을 제기하기 시작했던 1968년 프랑스 총파업이 그 물결 속에 있었죠.

오늘날 세계를 둘러보면, 100년 전 제1차세계대전 중에 폴란드 출신 독일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가 던진 “사회주의냐 야만이냐”라는 물음이 지금처럼 첨예했던 적이 없습니다. 자본주의는 인류를 야만으로 이끌고 있습니다. 자본주의는 그 논리와 작동 방식 자체가 환경을 파괴하고, 생명을 파괴하며, 인종차별과 온갖 다른 차별을 조장합니다.

우리는 이 체제의 모든 폐단에 맞서 싸워야 합니다. 이 토론을 듣고 있고 우리 주장에 동의한다면, 여러분이 사는 나라에서 국제사회주의경향 단체의 활동을 찾아보고, 그 단체에 가입해 이 잔인하고 폭력적인 체제에 맞서 함께 싸우길 바랍니다.

바바 아이: 나이지리아 상황에 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나이지리아에서는 파업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전국적 파업은 아니었지만, 여러 도시에서 간호사들이 파업을 벌였죠. 전국레지던트의사협회는 개인 보호 장비 지급과 수련의 교육 예산 확충을 요구하며, 요구를 수용하지 않으면 파업하겠다는 최후통첩문을 발표했습니다.

한편, 나이지리아에는 ‘혁명연합’ 같은 급진적 대중 단체들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코로나19와 그 이후의 생존을 위한 연합’이라는 단체도 생겼죠.

이런 단체들은 지금 미국에서 벌어지는 저항을 지지하고, 나이지리아의 경찰 폭력을 규탄하는 일련의 시위에 참가했습니다. 지난 1월 경찰은 제가 몸담은 사회주의노동자연맹(SWL)의 회원인 알렉스 오부를 살해했습니다. 2주 전에는 17세 여학생 티나 에제퀘가 경찰에게 목숨을 잃었습니다. 최근 시위는 이런 사건들을 규탄했죠. 또, 점점 빈번해지고 있는 성폭행도 규탄했습니다. 젠더 기반 폭력, 특히 성폭행이 코로나19를 배경으로 점증하는 사회적 병폐 중 하나임을 강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거리에서 여러 시위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 상황의 파장 때문인지는 몰라도 우리는 이미 2019년이 대규모 투쟁으로 막을 내렸다는 사실을 종종 잊습니다. 나이지리아에서도 지난해 8월 시위가 있었죠.

코로나19 팬데믹은 그런 투쟁을 중단시킨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그런 열기는 근저에 있고, 이제 그 열기가 부글부글 끓어올라 막 터져나오려 하고 있습니다.

상황을 요약하자면, 먼저 로자 룩셈부르크가 “사회주의냐 야만이냐”라는 선택지를 제시한 것은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금의 선택지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미 우리는 야만적인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 야만적인 시대는 이제 우리를 낭떠러지 끝으로 몰고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전환점

그러나 현 상황과 과제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위기는 역사적 전환점이기도 합니다. 2008~2009년 대침체와 1930년대 대불황을 비교해 보시길 바랍니다. 어째서 1930년대 대불황 때 지배계급은 뉴딜 정책으로, 그것도 제2차세계대전 개전 전부터 대응했을까요? 당시 자본가들은 노동계급과 일종의 타협을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2008~2009년 대침체 이후에는 신자유주의가 오히려 더 과격해졌습니다.

제 생각에 그렇게 된 주된 이유는 단지 아래로부터의 저항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1930년대 대불황 당시에는 — 부정확한 형태로라도 — 자본주의 이후 사회라는 전망을 추구하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사회주의가 가능한 선택지로 분명히 의제에 올라 있었죠. 그래서 영국의 한 국회의원은 이런 말을 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대중에게 개혁을 제공하지 않으면 그들은 우리에게 혁명을 제공할 것이다.”

그러나 2008~2009년 대침체 때는, 특히 노동조합 관료[고위 상근간부층]이 기꺼이 개혁을 추구했습니다. 그런데 애초부터 출발점이 개혁이면 설령 뭔가를 얻어 낸다 해도 기껏해야 엉터리 약속이나 얻을 뿐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얼마나 전진할 수 있느냐는 단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동원하느냐뿐 아니라, 대안을 얼마나 분명하게 제시하느냐에도 달려 있습니다.

게다가 오늘날에는 기후 위기도 있습니다. 기후 위기는 생존을 위협하는 문제이고 우리는 이와 관련된 요구를 제출해야 합니다.

현 상황에 직면해 지배자들은 그동안 이례적인 조처를 취해야 했습니다. 스페인 정부는 병원을 징발했고, 이탈리아에서는 자동차 공장을 개인 보호 장비와 호흡 보호구 등을 제작하는 용도로 재편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변화를 되돌리는 것을 막고, 이런 과정을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것으로 나아가기 위해 싸워야 합니다.

우리는 단편적 사실들을 연결해야 합니다. 상이한 투쟁들을 연결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번 항쟁이 중요한 것입니다. 인종차별에 반대해서뿐 아니라,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인 시점에 벌어졌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지배자들은 우리가 코로나19로 주춤할 것이라 생각했겠지만 우리는 반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줬습니다.

우리는 미지의 영역을 항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역사와 이론이라는 나침반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오직 인간만이 세계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 사회주의자들은 단지 바리케이드에서뿐 아니라 현 상황을 해석하는 데에서도 최전방에 있어야 합니다. 철학자들은 세계를 해석하기만 했지만 중요한 것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죠. 그러나 현 상황의 대안과 과제에 대한 가장 근원적 해석을 제시하는 것도 세상을 변화시키는 과업의 일부입니다.

크리스티네 부흐홀츠: 세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신자유주의가 끝날까요? 국가가 대대적으로 돈을 쏟아붓는 정책들을 발표하고 있지만 신자유주의의 논리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예컨대, 보건 체계가 점점 ‘민영화’되고 있습니다. 또, 불안정 노동 문제도 심각합니다. 단체교섭이 적용되는 노동자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죠. 그래서 저는 신자유주의가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본은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면 어떤 수단이든 동원하겠지만 위기의 대가를 치르는 것은 세계 곳곳의 노동자들일 것입니다.

두 번째로 말씀드릴 것은 우리의 목표, 승리를 위한 정치 전략에 관한 것입니다. 다른 나라 범좌파 정당들과 독일 [좌파당]에서도 정부에 참여하는 문제가 논쟁되고 있습니다. 저는 정부에 참여한다는 관점이 정치에도 영향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5월 30일 시애틀 시위를 진압하는 경찰 ⓒ출처 Kelly Kline(플리커)

예컨대, 며칠 전 사민당 지도자가 ‘독일 경찰 내부에 구조적 인종차별 문제가 있다’고 말하자 좌파당 원내대변인은 ‘인종차별 문제가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경찰 전체를 의심해서는 안 된다’고 응수했습니다. 이는 좌파당 내 우리 동지들은 물론, 독일 경찰에도 구조적 인종차별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아는 이주민과 정주민 모두에게서 큰 분노를 자아냈습니다.

또 다른 사례는 좌파당이 참여하고 있는 베를린 시 정부입니다. 최근 베를린 시 정부는 지하철(“S반”) 운영을 공개 입찰에 부쳤는데 이는 지하철 ‘민영화’로 이어질 위험이 있습니다. 많은 현장 조합원들이 반대를 조직하고 있고, 아주 큰 논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국가 기구를 차지하는 것으로는 사회를 변화시키지 못하며,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고무하고 조직하고 동원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이 점을 이해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이런 관점을 분명히 하지 않으면 결국 국가 기구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되레 국가 기구에 스스로 적응하게 될 것입니다.

정치 조직

마지막으로, 정치 조직으로 뭉치는 것의 중요성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지금처럼 운동들이 부상하는 시기에는 경험을 공유해서 어떤 운동이 성공적이었고, 어떤 전략과 전술이 옳았고 틀렸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컨대 지금 독일에서는 유색인 등 인종차별을 겪는 당사자들이 조직화하고 그들이 거리에 나오도록 고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례로, 독일의 많은 좌파 단체들은 주로 백인들로 이뤄져 있고 무슬림의 참여는 그에 비해 아주 적습니다. 그런 만큼 그들의 동참을 고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 사회를 변화시키려면 흑인과 백인, 무슬림과 무슬림 아닌 사람들이 단결해야 하고, 착취와 차별이 없는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려면 노동계급이 나서야 한다는 우리의 전망 쪽으로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합니다.

노동자들의 합류는 항쟁을 더 심화시킬 수 있다. 6월 19일 오클랜드 항구를 멈춘 서부항운노조(ILWU) 노동자들의 인종차별 반대 시위 ⓒ출처 Peg Hunter(플리커)

그리고 이런 경험을 조직 안에서 공유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도 정치 단체에 몸담고 있는 것입니다. 한 나라 운동의 경험은 물론이고 세계 곳곳의 사회주의 운동과 급진적 운동의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경청해 주셔서, 그리고 많은 질문과 기여에 감사합니다. 계속 함께 투쟁합시다.

야니스 델라톨라스: 남한 동지의 질문에 답변하겠습니다. 많은 시위를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연대체가 조직했습니다. 여기 뉴욕에서는 경찰 병력을 지하철에 배치하는 데에 반대하는 시위를 한 연합단체가 성공적으로 조직했죠. 경찰은 지하철에서 음식 등을 파는 흑인들과 이주민들을 단속하려 했습니다. 연합체의 이름은 적절하게도 ‘경찰은 꺼져라’였습니다. 그 방식은 다소 거칠었지만 굉장히 성공적인 시위를 조직했죠.

요즘 시위의 양상에 관해 말씀드리면, 예컨대 뉴욕시에서는 도시 여러 곳에서 온 시위대가 합류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처음에 삼삼오오로 시작했다가 2~3만, 4만 명으로 늘어나는 식이죠. 워낙 정서가 광범하고 운동의 활력이 넘치다 보니 마치 자발적인 것처럼 보입니다. 사람들이 평소 시위가 열리는 광장에 나오면 저절로 시위대가 형성되는 것처럼 말이죠. 그러나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연대체가 운동의 중심에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현재 미국 상황을 말씀 드리자면, 지배계급은 정치적 위기에 빠져 있습니다. 지배계급은 [2016년]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을 원치 않았습니다. 트럼프가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민주당이 신자유주의 후보[힐러리 클린턴]를 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민주당은 조 바이든을 후보로 내놓음으로써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민주당이 좋은 결과를 낼 것 같지 않습니다.

기회와 도전

지금 상황은 모순돼 있습니다. 트럼프는 미국에서 극우, 파시스트, 온갖 인종차별주의 쓰레기들을 부추깁니다. 이는 실질적 위험입니다. 뉴욕에서는 ‘인종차별과 파시즘에 맞서 단결하자’ 연대체가 여기에 맞서 싸워 왔죠. 제가 속한 ‘마르크스21’은 로스앤젤레스, 포틀랜드 등 다른 도시에서도 비슷한 연대체 건설에 주도적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극우가 이처럼 부상하고 있긴 하지만, 미국 사회는 현재 그 어느 때보다 다양성이 큽니다. 진보적 정서가 압도적이고, 인종차별·트랜스젠더 차별·성소수자 차별·이주민 차별에 반대하는 정서도 압도적입니다.

그러나 이 위기가 지배계급이 결코 대처할 수 없는 위기인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이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지금은 사회주의자들에게 매우 좋은 기회입니다. 또한 우리의 책임이 막중한 시기입니다. 전에 이런 운동을 조직하던 전통적 좌파들이 더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미국 민주사회당(이하 DSA)은 매우 큰 조직이지만 좌파적 정당 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DSA는 한동안 집회에서 현수막을 들지도, 신문을 발행하지도, 운동에 개입하려 하지도, 공동전선을 건설하려 만만찮게 노력하지도 않았습니다.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DSA 산하의 사안별 위원회에 들어오라는 식이었죠. 다행히 최근에는 DSA도 늦게나마 시위에 사람들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마르크스21’은 이 운동에서 외향적 관점을 갖고 바깥 세상에서 조직을 건설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특히, 공동전선의 방법을 적용하려 애쓰고 있습니다. ‘마르크스21’은 신생 단체이지만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상황이 좋습니다. 미국에서 이 영상을 보는 분이 있다면 저희에 연락해 주시고, 저희 단체에 가입해 주십시오.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 살고 그 나라에 있는 국제사회주의경향 단체가 있다면, 거기에 꼭 가입해 주십시오. 

다른 연사들이 모두 말했듯 지금은 매우 심각한 시기입니다. 기회의 문이 열리고 있지만 심각한 도전과 위협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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