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플로이드 피살을 계기로 일어난 인종차별 반대 투쟁이 3주째 미국을 뒤흔들고 있다.

조지아주 주도(州都) 애틀랜타시(市)의 시위대는 지난 3주간 외치던 조지 플로이드의 이름에 라샤드 브룩스의 이름을 추가했다.

6월 12일 브룩스는 딸의 생일을 축하하러 외식을 나왔다가 패스트푸드 체인 ‘웬디스’의 드라이브스루(자동차에 탄 채로 음식을 받을 수 있는 구간)에서 졸았다는 이유로 신고돼 경찰에 사살됐다. 경찰은 차에서 내려 도망치는 브룩스의 등에 총을 쐈다.

분노한 대중은 그날 즉시 규탄 시위를 벌여 브룩스가 사망한 도로를 봉쇄했고, 브룩스를 신고한 매장을 불태웠다. 바로 다음 날 브룩스를 살해한 경찰 개럿 롤프가 살인 혐의로 면직됐고(현장에 있던 순찰 파트너 데빈 브론선은 유급휴직 처분을 받았다), 애틀랜타 경찰서장은 사임했다.

그러나 애틀랜타 시민들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도로 봉쇄를 이어 갔다. 경찰은 최루탄과 섬광탄을 쏴 도로 봉쇄를 진압했다. 그러나 시위 참가자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6월 19일 노예해방기념일 출근을 거부하고 시위를 벌이자고 호소했다.

브룩스의 아내 토미카 밀러는 이렇게 말했다. “제 남편이 경찰을 쏴 죽였다면 감옥에 갇혔을 거예요. 종신형을 받았겠죠. [살해 현장에 있던 경찰] 둘 다 감옥에 가둬야 해요.”

시위 참가자 마케이비언 오돔은 CNN에 이렇게 말했다. “이런 일이 끊이지 않아요.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 때문에 매일같이 시위했는데도 말이에요.

“우리 뜻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저들은 아직 우리 목소리가 들리지 않나 봅니다.”

인종차별적 극우의 범죄도 다시 불거졌다.(트럼프가 이런 자들을 고무하고 있다. —  관련 기사: 본지 325호 ‘인종차별을 부추겨 정권을 유지하려는 트럼프’) 캘리포니아주 소도시 빅토리아빌과 팜데일(1시간 거리다)에서 흑인 청년 두 명이 나무에 목매달려 죽은 채 발견됐다. 

쿠클럭스클랜 KKK단의 나무 교수형을 연상시키는 이 참혹한 범죄를 규탄하며 연일 시위가 벌어졌지만, 당국은 수사를 자살로 종결해 버렸다. 팜데일시 당국자는 뻔뻔하게도 항의 시위대 앞에서 “‘자살 의심’이라고 할 걸 그랬다”며 “[인종차별적 살해라는 함의가 있는] 린치라는 말을 안 쓰면 안 되겠냐”고 투덜거려 시위대의 거센 분노를 샀다. 결국 시위에 밀려 팜데일시 당국은 사건을 재수사하겠다고 발표해야 했다.

6월 14일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는 2만 5000명이 시위를 벌여 5월 말 경찰에 살해된 흑인 트랜스남성 토니 맥데이드를 함께 기렸다. 이 시위를 조직한 ‘흑인 성소수자 자문위원회’는 이렇게 밝혔다. “오늘 시위는 소수 인종이 겪는 불의, 체계적 인종차별뿐 아니라 모든 형태의 차별에 직접 맞서는 것입니다.” 뉴욕, 보스턴, 매사추세츠 등 40여 도시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시위에 나서 “흑인 트랜스젠더의 목숨도 소중하다”고 외쳤다. 

“흑인 트랜스젠더 목숨도 소중하다” 6월 13일 미국 밀워키 지역 교사들의 행진 ⓒ출처 밀워키교원협의회

흑인 트랜스젠더는 미국에서 이중의 차별과 심각한 범죄 위협에 노출돼 있다. 6월 9일(한국 시각) 하루 새 미국에서 흑인 트랜스여성 두 명이 잔인하게 살해됐다. 2019년 미국에서 벌어진 트랜스젠더 살인 중 91퍼센트가 흑인 여성이었다.(81퍼센트가 30세 미만이었다.)

설상가상으로 트럼프는 6월 12일 의사가 자의로 트랜스젠더의 치료·검사를 거부할 수 있도록 ‘환자보호 및 부담적정보험법’(‘오바마케어’)을 개악했다. 지지 기반을 결집시키려 트랜스젠더 혐오를 부추기는 것이다.(관련 기사: 본지 264호 ‘트랜스젠더를 법에서 삭제하려는 트럼프의 역겨운 시도’)

시위대 수천 명이 6월 14일 워싱턴 DC에서 백악관 앞을 행진하며 “건강보험 개악 반대”, “트럼프·펜스 즉각 퇴진”을 외쳤다.

전투 태세

트럼프는 이번 항쟁의 불길을 잡으려 이제까지 미군 약 1만 7000여 명에게 전투 태세를 갖추게 했다. 이라크·시리아·아프가니스탄에서 복무 중인 미군을 모두 더한 것과 비슷한 숫자다. 그러나 투쟁이 계속되면서 트럼프의 강경책은 정권 안팎에서 만만찮은 반발에 직면했다.(이와 관련해 본지 326호 알렉스 캘리니코스 논평과 이번 호에 실린 존 뉴싱어의 기사를 보시오.) 

이 때문에 미국 권력층은 민주당 후보 조 바이든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듯하다. 그러나 민주당 실세들은 아직까지 이 투쟁의 열기를 자기 표밭으로 온전히 포섭하지 못해 부심하고 있다.

경찰 예산 삭감이 투쟁의 주요 요구의 하나로 제출된 와중에 바이든은 경찰 예산을 3억 달러 증액해야 한다고 주장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어이없게도 버니 샌더스는 바이든의 경찰 예산 증액 요구를 거들고 나섰다. 샌더스는 민주당 상원의원 원내대표 척 슈머에게 공개 서한을 보내어, “[민주당이] 경찰 지원을 확충해 우수한 경찰관들에 매력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6월 9일 〈뉴요커〉와의 인터뷰에서는 “경찰의 구실을 재확립하며 그에 필요한 지원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샌더스는 트럼프 같은 자가 절대 재선돼선 안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나머지, 생동하는 운동의 요구보다 집권 가능성 있는 민주당 권력층 쪽으로 기우는 듯하다. 그러나 샌더스의 이런 행보로는 인종차별적 경찰을 이용해 체제를 수호하는 데서는 공화당과 본질적으로 전혀 다를 바 없는 민주당에 ‘분칠’을 하는 효과 외에는 거둘 것이 없을 것이다.

한편, 민주당 시장이 운영하는 로스앤젤레스, 뉴욕, 포틀랜드 등의 도시들에서는 경찰 예산을 삭감하겠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삭감 예산의 세부 용처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예컨대 로스앤젤레스 시는 경찰 예산을 최대 1억 달러(약 1200억 원) 삭감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는 LA 경찰 2019년 예산 31억 4000만 달러의 4퍼센트도 안 된다. 애초에 경찰 예산은 대중교통 예산(1억 8600만 달러), 빈곤층 의료 지원(5500만 달러), 청년실업 지원(2800만 달러)에 견줘 터무니없이 비대했다.(관련 기사: 본지 326호 ‘경찰은 왜 이렇게 인종차별적일까? 고쳐 쓸 수 있을까?’)

그럼에도 미국에서 불가침 영역으로 취급되던 “경찰 신화라는 갑옷에 금이 가”고, 기성 정치권조차 예산 삭감을 공언한 것 자체는 괜찮은 성과다. 미국 곳곳에서 몇 개월, 심지어 몇 년 전에 벌어진 경찰의 흑인 살해 사건이 속속 재수사에 들어가고 있기도 하다.

수많은 대중이 거리로 나와 “우리 목소리를 들어라” 하고 외치고서야 정의가 실현될 가능성이 약간이나마 생겨난 것이다. “과거 법집행 기관이 [경찰의 흑인 살해에 대해] 신속히 수사에 나서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시 당국은 경찰을 비호하며 시민들에게 자제를 촉구하기 일쑤였다.”(〈뉴욕 타임스〉)

운동은 이제 막 담대한 첫걸음을 뗐다. 갈 길은 한참 남았다. 정치권의 꾀죄죄한 양보에 일희일비하기보다 거리 시위를 더 키울 때다. 노동계급의 투쟁이 중요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관련해 이번 호에 실린 미국 사회주의자가 전하는 노동운동 소식을 보시오.)

그리고 인종차별을 철폐하려면 본질적으로 인종차별과 불가분인 자본주의 체제 자체에 맞서야 한다. 혁명적 흑인 투사 앤젤러 데이비스의 말처럼, “흑인 해방으로 가는 유일한 길은 미국에서 자본가 계급 전체를 타도하고, 자본가들의 착취를 보장하고 흑인을 예속시키는 수많은 전통적 기관들을 모조리 파괴하는 것뿐이다.”

이번 투쟁은 그런 급진적 방향으로 나아갈 잠재력을 보여 주고 있다. 물론 이 운동에 참가한 수많은 사람들에게 가장 효과적인 길을 제안할 혁명적 좌파가 절실하다.(관련해 이번 호에 실린 미국 활동가 야니스 델라토라스의 발표를 보시오.)

인종주의는 가장 치명적인 바이러스다 6월 9일 시애틀에서 벌어진 시위 ⓒ출처 Backbone Campaign(플리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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