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말로는 전 국민 고용보험제도를 도입하겠다면서, 실제로는 상당수 특수고용 노동자를 고용보험에서 제외하려 한다.

정부는 전 국민 고용보험제를 단계적으로 추진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현 상황의 심각성을 볼 때 매우 한가한 소리다. 지난해와 비교해 올해 4월 주로 특수고용 노동자인 ‘기타 종사자’가 8만 7000명(7.5퍼센트)이나 줄었다. 올해 3~4월 소득이 지난해에 비해 25퍼센트 이상 감소한 특수고용 노동자, 프리랜서 등에게 1인당 150만원을 지급하는 ‘긴급 고용안정지원금’ 신청자가 접수 시작 2주일 만에 61만 명을 넘어섰다.

서울고용복지플러스센터를 찾은 시민들이 23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코로나19 긴급고용안정지원금' 현장 접수를 하고 있다 ⓒ조승진

정부의 “단계적 추진”은 단지 적용에 약간의 시차를 두겠다는 말이 아니다. 정부는 까다로운 “단계”를 둬서 고용보험 확대 대상 자체를 협소화시키고 있다. 당장 일자리를 잃고 심각한 생활고에 처한 노동자들을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에서도 배제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특수고용 노동자 중 전속성이 높다는 9개 직종(산재보험 적용 대상)만 우선 고용보험 가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실제 산재보험 가입 자격이 있는 9개 직종 특고 노동자는 2018년 기준 약 47만 명이다(노동부 발표). 220만 명으로 추정되는 특고 노동자의 21퍼센트밖에 안 된다. 특수고용 노동자 다섯 명 중 네 명은 제외되는 것이다.

‘전속성’은 노동자가 하나의 업체에 소속돼 그 업체의 일을 주로 하는지 여부를 의미한다. 그런데 특고 노동자들은 여러 업체들의 업무를 하는 경우가 많다. 전속성 잣대는 상당수 특고 노동자에게 고용보험을 적용하지 않겠다는 말과 같다.

이미 산재보험 적용에서도 전속성 잣대가 많은 노동자들을 법적 보호에서 배제시키는 구실을 했다. 단적인 예로, 산재보험 특례 적용 대상인 대리운전 기사 20만 명 중 2018년 노동부 산재보험 적용 대상으로 등록된 대리운전 기사는 고작 12명뿐이었다.

4월 13일 코로나19 특수고용 지원대책 발표 이후 현장실태 증언 기자회견. 코로나19로 수많은 특고 노동자들이 해고된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는 특고 노동자 고용보험 적용을 "단계적" "속도조절"하며 협소하게 적용하려 한다. ⓒ출처 <노동과세계>

고용보험 대상자 대폭 축소시키는 한정애 의원안

정부가 이렇게 나오자, 여당도 이에 발맞추고 있다. 6월 17일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전 국민 고용보험은 장기 추진 과제”라며 “속도 조절”을 운운했다.

민주당 한정애 의원은 얼마 전 고용보험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개정안은 정부가 제시한 방향을 반영해 적용 대상을 대폭 줄였다. 민주노총 특수고용노동자대책회의는 “대다수를 고용보험 적용에서 배제하는 법안”이라고 비판했다.

한정애 의원은 지난 20대 국회에서 특수고용 노동자에게 고용보험을 확대 적용하는 고용보험법 개정안(이하 2018년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이는 2018년 고용보험위원회에서 노사정이 의결한 내용을 반영한 것이었다.

당시 고용보험위원회는 특고 노동자에게 단계적으로 고용보험을 확대 적용하기로 했지만, 적용제외를 최소화 하는 방침을 정했다. 일정 기간 내에 모든 특수고용 노동자에게 적용한다는 논의도 있었다고 한다. 또, 별도의 특례 규정을 두지 않았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일정한 기대도 받았다.

그런데 정부와 여당은 2년 동안 이에 대해 논의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지난 5월 20대 국회 끝물에 한정애 의원은 스스로 2018년 개정안을 폐기했다. 그러고는 특고 노동자는 제외한 채, 예술인만 특례로 적용하는 법안을 졸속으로 통과시켰다. 정부 자신이 사회적 합의의 결과를 내팽개친 것이다. 

비판이 일자, 정부와 한정애 의원은 차기 국회에서 고용보험을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막상 내놓은 법안은 2018년 개정안보다도 훨씬 후퇴한 것이다. 문재인이 ‘전 국민 고용보험’을 말한 뒤 며칠 만에 “단계적 확대” 수준으로 신속 후퇴했던 것과 같은 이유에서일 것이다. 즉, 사용자들이 재정 부담, 개혁 기대감 확대 우려 등으로 부정적 반응을 보이자 기존 안조차 내다버린 것이다.

이번에 한정애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의 가장 심각한 문제점은 고용보험 적용 대상을 특수고용 노동자 중 “해당 사업주 또는 노무수령자로부터 대가를 얻는 계약(노무제공 계약)을 체결한 사람”으로 한정했다는 데 있다. 2018년 개정안은 ‘노무 제공자’를 대상으로 했었는데, 그중에서도 서면 계약서를 체결한 경우로 대폭 후퇴시킨 것이다.

이는 대다수 특고 노동자를 배제하는 높은 문턱이다. 특고 노동자들은 사용자와 계약서 조차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2018년 한국노동연구원 조사(박찬임)에 따르면 특고 노동자인 골프 경기보조원, 퀵서비스 기사, 대리운전 기사의 경우 계약 절차가 없거나 구두계약 비율이 높았다. 골프 경기보조원의 경우 ‘계약 없었음’ 혹은 ‘구두 계약’ 비율이 무려 75.2퍼센트나 됐다(‘계약 없었음’ 비중은 63.4퍼센트). 방송 제작 스태프의 경우에도 서면 계약을 체결한 비율이 23.8퍼센트밖에 되지 않았다(2017년 방송제작스태프 계약실태조사).

특히 플랫폼 노동자의 경우 별다른 계약 없이 프로그램이나 앱 설치를 통해 일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아서 고용보험에서 대거 배제될 수 있다. “그냥 앞으로 일할 거라고 하면 사장님이 핸드폰에 앱을 깔아 주신다. 계약서는 없으며 다른 사람들도 계약서 쓰고 그런 것은 본 적이 없다.”(2015년 한국노동연구원 조사에서 배달 노동자)

계약서를 체결한 경우에도 배제되는 노동자들이 생길 수 있다. 이번 개정안은 “해당 사업주 또는 노무 수령자”와의 계약서 체결을 전제한다. 그런데 실제 노동자들은 일을 시키는 사업주가 아니라, 일감을 중개하는 중개 업체, 플랫폼 기업과 계약하는 경우가 많다.

이미 노무계약서 체결 비율이 낮은 상황에서 사용자들은 고용보험 적용을 회피하기 위해 더욱 계약서 체결을 거부할 수도 있다.

“예외적” 적용

이번 개정안이 특수고용 노동자를 ‘특례’로서 법 적용 대상에 포함시켰다는 점에서도 문제가 심각하다. (지난 5월 20대 국회에서 통과된 예술인의 고용보험 적용도 같은 방식이었다.) 이 점도 2018년 개정안에서 후퇴한 핵심 쟁점이다.

특례는 보통 특수한 상황을 전제로 한정된 기간이나 한정된 대상에 예외적으로 적용하기 위해 이용된다. 즉, 본칙을 건드리지 않은 채 일부 예외를 인정하고자 할 때 쓰는 방식이다. 고용보험에서 배제됐던 노동자들을 폭넓게 포함한다는 전 국민 고용보험의 취지를 무색하게 만드는 시도다.

이런 특례 방식은 이미 특고 노동자 산재보험 적용에서 문제를 드러냈다. 예외적 대상으로 취급하다 보니 특고 노동자들은 당연가입이 아닌 임의가입(선택적 가입) 대상이다. 또한 사용자가 전액 보험료를 부담하는 일반 노동자와 달리 노사가 절반씩 부담하는 차별도 있다. 그러다 보니 사용자들이 보험료 부담을 지지 않으려고 특고 노동자에게 산재보험 적용 제외 신청을 압박하는 일이 빈번하다. 실제 9개 직종 특고 노동자의 산재보험 가입률은 13퍼센트 밖에 되지 않는다. 

고용보험 특례 적용은 이런 문제점을 되풀이 하겠다는 것이다.

한정애 의원이 2018년 개정안을 폐기하고 특례 적용을 고집하는 이유는 “예외적”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자 함일 것이다.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다른 노동자들과 다르다는 얘기인데, 문재인 정부가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자성 인정 요구를 외면하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이번 개정안은 구체적인 고용보험 적용 대상을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전제를 달아, 특수고용 노동자들 일부만 선별적으로 대상에 포함시킬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은 문제도 있다. 문재인 정부가 제시한 ‘전속성 기준 9개 직종’ 선별도 가능해지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전 국민 고용보험 에드벌룬을 띄우더니, 결국 특수고용 노동자를 상당수 배제하는 꾀죄죄한 방안을 들이밀고 있다. 한정애 등 민주당 의원들도 정부와 발 맞춰 나아가고 있다.

정부·여당을 정면 비판하면서 고용보험 전면 적용을 위해 투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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