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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하비 비판:
자본주의를 개혁해 사용하는 게 가능한가?

데이비드 하비 ⓒ출처 RSA

데이비드 하비는 저명한 마르크스주의 학자로 세계적으로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관심을 고양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국내에도 《자본의 한계》, 《데이비드 하비의 맑스 자본 강의》 등 책이 여러 권 번역돼 있다. 하비는 또한 2017년 서울대학교가 대학 상업화에 맞서 싸우는 학생들을 징계하려 할 때 그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런 하비가 최근 “자본주의를 혁명으로 타도할 수 있다는 생각은 19세기에나 가능했고 오늘날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은 공산주의 몽상을 좇는 것”이라고 주장했다는 것이 알려져 파장을 낳고 있다.

발단은 그가 지난해 연말에 한 연설이다. 당시 그는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핵심 모순’을 고찰하겠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자본주의는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는 데 마르크스 시절과 달리 오늘날에는 더 이상 그런 성장이 불가능한 지점에 도달했다. 그런데 이렇게나 비대해진 자본이 망하면 생산이 멈추고 그러면 음식과 같은 필수재 생산도 멈춰 문제가 된다. 마르크스 시대와는 달라진 것이다. 그런 만큼 이제 혁명가들은 자본을 잘 관리해서 그것의 파괴성을 약화시키고 이윤에 의존하지 않는 방향으로 바꾸는 전략을 택해야 한다.’

30여 분짜리 이 연설이 지난해 말에 처음 업로드됐을 때에는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한 듯하다. 그러다 며칠 전 외국의 한 블로거가 하비 연설 중 혁명에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대목을 편집해 SNS에 올리면서 영어권 활동가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편집본이 아닌 전체 연설 영상을 봐도, 문제의 발언은 단지 지나가는 말이 아니라 하비 자신의 중요 결론이다.

이 연설로 하비는 자신의 이름에 심각한 오점을 남겼다.

우선, 자본이 사라지면 많은 사람들이 생필품을 구하지 못할 것이라는 주장은 마르크스 경제학의 기본 개념을 혼동한 것이다. 마르크스 경제학에서는 가치와 사용가치를 구별하고, 가치증식과정과 노동과정을 구별한다. 가치증식과정과 노동과정은 생산을 각각 가치와 사용가치 관점에서 바라본 것이다. 가치증식과정은 생산과 그 생산물을 판매한 결과로 투입물(노동력, 원자재, 기계)보다 더 큰 가치가 생겨나는 과정이다. 노동과정은 원자재, 기계 각각의 사용가치가 노동력에 의해 변형돼 새로운 사용가치가 만들어지는 과정이다.

분명 자본주의에서 두 과정은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분리되지 않는다. 그러나 자본주의를 타도한다는 것은 더는 가치증식과정을 중심으로 생산을 조직하지 않는다는 것이지 노동과정까지 모두 사라진다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노동자들이 삼성전자 공장을 장악하고 이윤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생산하면 가치증식과정은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같은 공장에서 노동력, 원자재, 기계를 결합해 제품을 생산하는 노동과정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요컨대, 하비는 생산수단이 가치증식 수단(자본)이 되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만의 특징이라는 점을 망각하는 기초적인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계급의 잠재력 코로나19 위기가 드러내듯이 자본주의 체제는 노동자들의 노동에 의존해 있다. 이런 객관적 조건 때문에 노동자 계급에는 자본주의를 멈춰 세우고 새로운 사회를 운영할 잠재력이 있다 ⓒ이윤선

마르크스 시대에는 자본주의를 타도해도 사람들이 스스로 식량 등을 자급할 수 있었으니까 혁명을 꿈꿀 수 있었다는 주장은 역사적 사실과도 맞지 않는다. 몇 세대에 걸쳐 런던으로 밀려 들어온 당시 영국 노동계급이 과연 하비 말대로 사회적 생산이 아니라 자급자족으로 식량을 조달할 수 있었을까?

‘자본이 더는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없는 단계에 도달했다’는 그의 발견은 ‘뒷북’이기도 하다. 이미 레닌과 부하린이 100여 년 전에 자본주의가 그런 지점에 도달했고 그런 질적 변화 탓에 전례 없는 규모로 전쟁이 벌어진다고 설명한 바 있다.(이와 관련해 본지에 실린 《제국주의론》, 《제국주의와 세계경제》에 관한 서평 기사를 참고하시오.) 하지만 레닌은 하비와는 정반대의 주장, 즉 혁명으로 자본주의를 타도하는 게 더 시급해졌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 그 책을 썼다.

하비와 같은 인물이 이런 초보적인 실수를 하면서 잘못된 결론에 빠진 이유는 뭘까?

아마도 하비가 오래전부터 노동계급의 잠재력을 부정해 왔기 때문인 듯하다. 이 연설에서도 하비는 오늘날 반란은 작업장이 아닌 문제를 중심으로 벌어진다며 같은 취지로 주장하고 있다.

이 연설에서 하비는 자본이 하루아침에 타도되면 생산을 누가 조직하냐고 묻고는 그럴 방법이 없으니까 자본을 타도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런데 마르크스가 노동계급을 중요시한 것은 바로 노동계급만이 작업장을 통제해서 사회 전체 수준으로 생산을 조직할 잠재력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하비가 오랫동안 부정해 온 그 사실이 바로 지금 하비가 찾는 답인 것이다.

〈노동자 연대〉는 그동안 하비 책 서평들(《반란의 도시: 도시에 대한 권리에서 점령운동까지》, 《자본주의와 경제적 이성의 광기》)이나 그의 방한 취재기를 통해 하비의 기여를 인정하면서도 그가 이 “결정적 문제에서 엇나갔다”고 거듭 지적해 왔다.

하비의 말처럼 사회 구성원들의 생필품을 모두 책임지려면 대단한 조직력이 필요하다. 하비는 자본주의를 타도하면 생산을 책임질 세력이 없다고 우려하지만, 여러 역사적 경험들은 혁명 시기에 노동자들이 자본과 국가기구에 맞서는 대중적 조직(예를 들어 러시아혁명 시기에 소비에트)을 건설하며, 그 대중적 조직들이 또한 생산과 분배를 조직하는 데까지 나아가곤 했다는 점을 보여 준다.

오히려 관건은 생산과 분배를 조직하는 대중적 조직이 등장하더라도 자본주의를 파괴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역사에는 그런 대중적 조직이 자본가와 기존 국가기구의 함정에 빠지고 그들의 역습에 결국 패배한 혁명의 사례가 많다. 반면, 대중적 조직이 반동을 꺾고 혁명에 성공한 사례는 1917년 러시아혁명뿐이다.

러시아혁명이 성공한 비결은 준비된 혁명적 정당(볼셰비키)이 대중의 신뢰를 얻었다는 것이다. 1917년 2월 혁명 후 등장한 소비에트에서 여러 실천과 실험이 벌어진 끝에 대중의 다수가 볼셰비키의 지도력을 인정하게 됐고, 그 덕분에 노동자 혁명이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런 혁명적 정당은 소비에트 같은 조직이 등장하기 전에도 필요하다. 이 영상의 다른 부분에서 하비는 영상을 찍었을 당시 한창이던 각지의 반란을 거론하며 ‘대규모 시위는 그동안 많았지만 언제나 문제는 운동이 파편적이고 조직력을 갖추지 못한 것이었다’고 옳게 지적한다. 그러나 문제를 포착은 했지만 답을 제시하지는 못한 채 넘어간다. 혁명적 정당은 그가 우려하는 운동의 파편화를 극복하고 대중적 조직력을 갖추도록 기여할 수 있다.

예컨대, 이 영상에서 하비는 당시 칠레에서 피녜라 정부가 반 년 후 개헌 국민투표를 실시하자고 양보하자 많은 좌파들이 대안적 헌법 초안 작성을 위해 “단결”했다고 기대감을 드러낸다. 그러나 당시 국민투표 실시는 투쟁의 김을 빼려는 정부의 꼼수였다. 이를 폭로하며 계속 거리에서 투쟁할 것을 주장하는 것이 더 옳았다.

이처럼 대규모 운동은 필연적으로 정치적 기로에 서게 되고 어떤 선택을 해야할지 결정해야 한다. 옳은 결정과 그에 걸맞는 집단적 실천은 운동에 참여하는 대중이 스스로 전술과 전략을 검증할 기회를 제공하고 그럼으로써 더 높은 수준의 조직화로 나아가도록 이끈다. 바로 이 과정에서 혁명적 정당이 올바른 방향을 제시함으로써 기여할 수 있는 것이다.(더 자세하게 설명한 글로는 크리스 하먼의 ‘자발성, 전략, 정치’를 권한다.)

하비가 나아가지 못한 곳에서 우리는 더 나아갈 수 있도록 하비의 연설과 정치적 약점을 반면 교사로 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