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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이 직면한 난제와 시험대에 오른 개혁주의

총선 압승 후 기세등등하게 두 달을 보낸 문재인 정부 앞에, 외면하고 싶은 각종 난제가 떠오르고 있다.

당장은 남북 관계 문제가 있다. 6월 24일 북한 〈로동신문〉에 따르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3일 열린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예비회의에서 북한군 총참모부가 제출한 대남 군사행동계획안을 보류시켰다. 당장 파국으로 치닫는 것은 늦춰진 셈이다. 군 총참모부에게 대남 행동의 행사권을 넘긴다고 밝힌 것은 최근 대남 규탄에 앞장서 온 노동당 제1부부장 김여정이었다.

16일 북한 개성공단 내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공개 폭파된 것은 남북관계 파탄을 보여 주는 상징적 장면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이 사무소를 2018년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의 성과라고 말해 왔다. 폭파 이후 조사된 2개의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지지율(대통령 국정수행 긍정평가율)은 일주일 전보다 5퍼센트 하락했다(한국갤럽 5퍼센트, 리얼미터 4.8퍼센트).

경제·안보 위기가 급속히 고조되면서 지배계급도 다시 우경화하고 있다. 문재인 스스로 우향우하는 이유다. 그러나 진보진영을 향한 감언이설을 멈추진 않을 것이다. ⓒ출처 청와대

문재인 정부는 2018년 상반기 이후 남북(미) 정상회담을 통한 남북 간 적대 중지와 화해 기조 유지를 최대 치적으로 삼아 왔다. 이는 우파에게 반감을 가진 중도층·진보층 다수의 지지를 유지하는 데에 도움이 됐다. 북한에 대한 태도와 별개로 화해 국면이라는 ‘결과’에 지지를 나타냈던 것이다.

그런데 상황이 바뀌고 있다. 북한 정권 수뇌부는 문재인이 남북 간 협력에 관한 약속은 하나도 지키지 않고 한미동맹(미국 주도의 대북 제재 동참, 연합 군사훈련, 군비 증강, 선비핵화 요구 등)을 우선하며 시간만 보냈다고 비판했다. 가뜩이나 서방의 제재로 경제가 안 좋은데 코로나19로 중국과의 교역마저 중단돼 경제적 고통이 가중됐을 북한에게 시간은 매우 중요한 문제였을 것이다.

실제로 문재인은 자신이 먼저 말을 꺼냈던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도 추진하지 않았다. 그래서 지난해 이미 북한은 “남북간 경제 공동체” 운운한 문재인의 광복절 경축사에 대해 “삶은 소대가리도 웃을 노릇”이라고 혹평했다. 문재인은 타미플루 같은 인도적 지원도 말만 하고 포기했다. 미국과 조율되지 않았다는 게 이유였다.

냉전 해체 후 미국이 ‘북한 위협’ 과장하기를 동아시아 패권 전략에 이용해 온 것, 최근 미·중 갈등이 급격히 고조된 것, 한국 지배자들이 한미동맹에 충실해 국제적 위상과 경쟁력을 키워 온 것을 생각하면, 지금의 긴장 국면이 쉽게 해소되지는 않을 듯하다.

폭파될 시점에서 이미 남북공동연락사무소는 빈 건물이었다. 한 게 없어서 막상 중단될 협력 사업 같은 것도 없는 현실을 빈 건물 폭파가 상징적으로 보여 준 게 아닐까.

부동산 투기 카르텔 정부

문재인의 지지율은 5월 중순부터 완만한 하락 추세다. 그에 비례해 부정평가는 상승세이다. 6월 들어서는 지지율이 10퍼센트가량 하락했다. 총선 직후 워낙 지지율이 높아서 한국갤럽 조사에선 7주 사이에 16퍼센트나 지지율이 떨어졌는데도 아직 50퍼센트가 넘는다.

이는 첫째, 총선 직전 얻었던 반사이익(해외 선진국들의 방역 실패, 미래통합당의 코로나19 긴급 소득 지원 반대 등) 효과가 사라지고 있음을 보여 준다. 둘째, 그럼에도 여전히 공식정치 내 여야 관계에서 세력 우위를 점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첫째 요인에 관해 말하자면, 코로나19 위기, 경제 침체 등의 문제가 크다. 정부는 전문가들의 경고도 무시하고 5월 등교 개학을 강행하는 등 방역을 완화해 코로나19 확진자가 다시 늘었다. 코로나·경제 위기 국면에서 일자리와 소득의 감소가 심각해졌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의 대책은 미흡하거나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

최근 21번째라고 내놓은 부동산 투기 대책이 대표 사례다. 이 대책은 이른바 “갭 투자”(전세가 있는 집을 구매해 전세금과 주택가의 차익만 지불해 집을 사는 것, 보통 돈이 부족한 서민층이 집을 살 때 이 방법을 쓴다)가 부동산 과열을 부추긴다며 대출 회수 등 불이익을 주겠다는 것이다.

이는 뒤집어 말하면, 현금 부자들의 투기는 괜찮고, 당장 살지는 못해도 집을 사놓기라도 하자는 서민층의 재테크는 억제하겠다는 뜻이다. 역풍이 안 불 수 없다.

문재인 정부 취임 이후 대체로 협력 기조를 유지해 온 정의당의 심상정 대표조차 정부를 강도높게 비판했다. “정부 또한 부동산 투기 카르텔의 일원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22일)

21번의 투기 대책을 내놨지만, 정부는 집값을 잡지 못했고, 부자들의 부동산 불로소득을 환수하지도 않았으며, 서민들에게 양질의 저렴한 주택을 제공하지도 않았다. 경제정의실천연합은 서울 아파트 중위 가격이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간 26퍼센트 상승했는데, 문재인 정부 하에서는 3년 만에 52퍼센트 올랐다고 발표했다.

경제가 22년 만에 마이너스 성장을 할 것으로 예측되는 상황에서 사용자들은 노동개악을 정부에 촉구하고 있다. 당연히 노동자들의 불만이 물밑에서 급속히 자라고 있다.

경제 위기의 고통을 누가 짊어질 것인가 하는 점을 두고 정치적 양극화 압력이 커진 것이다.

그럼에도 둘째 요인 때문에 문재인 정부가 급속한 정치적 위기로 빠져들진 않고 있다. 남북관계 파탄의 징후들이 위기감을 고조시켰지만, 통합당이 무능하고 꼴통스런 이미지 때문에 반사이익을 얻지 못한다. 개혁 보수로 혁신을 한다지만, 이미 우파 중심으로 공천해 선거를 치른 마당에 뭐가 달라지겠는가.

이런 배경 속에서 문재인은 6월 21일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제3차 추경예산 통과를 국회에 촉구했다. 문재인은 이번 추경예산이 중소기업 금융 지원과 저소득층 지원 예산이므로 더 늦어지면 안 된다고 압박했다. 원 구성 합의가 늦어진 탓인데, 문재인이 미약한 추경안으로 생색 내며 우파 야당에 책임을 미룬 것이다.

공수처

새 국회의 원 구성 협상에서 민주당이 법제사법위원장 자리를 양보하지 않은 것은 그 자리를 이용해 윤석열 검찰을 견제하고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를 자신들 입맛에 맞게 신설할 목적에서다. 이를 통해 임기 후반 권력 누수를 막고 정권 재창출을 하겠다는 셈일 것이다. 개별 의원들이 윤석열 자진 사퇴를 공개 촉구한 것은 이런 포석에서다.

물론 여권 수뇌부는 좀 더 조심스럽게 행동한다. 문재인은 22일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이 잘 협력해서 검찰 개혁을 진행하라고 주문했다. 같은 날 당대표 이해찬도 소속 의원들에게 “윤석열 이름도 꺼내지 마라”고 함구령을 내렸다.

그러나 민주당 중진 의원 김두관의 23일 발언이 본심일 것이다. “대통령께서 아무런 질책 없이 원론적인 말씀만 하신 것은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 최선이기 때문 … 압박한다고 나갈 사람도 아니고 압박해서 사퇴하는 모양새도 결코 좋지 않다.”

윤석열이 정권의 부패 의혹을 수사하고 있으므로 모양새를 신경써야 한다는 뜻이다. 사실 문재인의 검찰 개혁이 정권 겨냥 수사를 방해하고 검찰 길들이기 하는 것에 불과했음을 떠올린다면, 검찰 개혁 주문의 의미는 분명해진다. 최근 검찰은 라임펀드 환매사태 수사에서 민주당의 현역 의원이 불법 로비에 응한 사실을 확인했다. 법원에서 기각되기는 했지만, 검찰이 삼성그룹 이재용의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도 여권에겐 불편한 일이다.


개혁주의의 모순

남북 화해 국면이 깨질 듯하자 진보진영에서도 문재인 정부 비판이 늘었다. 트럼프 방한에 반대하는 것조차 꺼리던 때와 조금 달라진 풍경이다. ⓒ조승진

문재인 정부는 포퓰리스트 세력답게 미·중 갈등과 남북간 긴장 고조 같은 안보 위기, 코로나19 대응, 경제 침체 등의 난제를 푸는 데서 진보진영과 노동계 지도자들의 도움을 받으려 한다. 이미 문재인 정부는 남북관계와 코로나19 대응 문제 등에서 그런 도움을 받았었다. 그러나 가능하면 대가는 적게 치르고 싶어 한다.

경제뿐 아니라 안보에서도 위기감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한국 지배계급 전반이 다시 우경화하고 있다. 우파 야당에 밀리지 않는 세력관계인데도 문재인이 우파의 요구에 응하는 이유다. 상황이 나빠질수록 문재인 정부는 우파적으로 행동해 지배계급을 안심시키려 할 것이다.

그런데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의 유용성을 지배계급에게 입증하는 관건은, 진보진영 지도자들을 붙잡아 두고 위기가 체제의 총체적 불안정으로 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문재인은 말로는 남북관계에서 “달나라 타령”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노동계를 향한 감언이설도 계속할 것이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국가적·국민적 위기 극복에 힘을 모으자며 노·사·정 대화에 참여하고 선양보 제안도 내놓았다. 하지만 상대방의 반향이 없다. 기업주들이 양보 의사가 없기도 하지만, 위기의 규모가 크고 심각하기 때문에 노동조합의 선양보 수준에 기업주들이 만족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와 기업주에게 20이라도 양보(개혁)를 얻어 내려면, 대중 투쟁으로 그들이 50, 100을 잃을 수도 있다고 위협하는 수밖에는 없다. 사회적 대화로는 이런 일이 절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정의당 지도부가 노조 지도자들의 선양보 제안을 환영한 것은 완전히 부적절하다.

남북사무소 폭파 후 민중당과 민주노총은 미국과 한국 정부의 책임이라고 옳게 비판하며 한미워킹그룹 해체 등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제라도’ 문재인 정부가 반성하고 잘 해야 한다고 주문하는 것은 여전히 큰 문제다. 정의당도 문재인 책임론을 제기하고 외교·안보 라인의 교체를 요구했지만, 대체로 남북 양비론 정도에 그쳐 남한 정부를 압박하기에는 크게 부족하다.

위기가 빠르게 심화하면서 여권과 진보계 지도자들의 관계가 지난해까지처럼 그럭저럭 순탄하지만은 못하게 됐다. 그러나 아직 진보계 지도자들이 문재인 정부와 맞설 태세가 돼 있어 보이진 않는다. 그렇게 한다 해도 관성이 작용할 것이다. 근본적으로, 체제의 위기가 체제의 진보와 점진적 개혁을 추구하는 개혁주의 세력의 입지를 좁히고 있다. 개혁주의적 지도력은 시험대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