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월세 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지난 8월 전셋값 상승률은 1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정부가 금리를 낮추자 집주인들은 앞다퉈 전세를 월세로 바꿨고, 전셋집 공급이 급격히 줄어들어 전셋값이 폭등했다.

연이자율 12퍼센트가 넘는 월세 때문에 15평 이상 주택 월세는 40만∼60만 원이나 된다.

서울 시민이 집을 마련하는 데 걸리는 기간은 평균 7.9년이다. 이조차 소득을 전부 저축한다고 가정할 경우에 그렇다.

수도권 거주 노동자의 한 달 소득에서 주거비가 차지하는 비율은 지난 1997년 22.6퍼센트에서 작년 말에는 31퍼센트로 높아졌다. 월세의 경우 그 비율은 38.75퍼센트에 이른다. 월급의 3분의 1이상을 집세로 내야 하는 상황이다.

시장이 낳은 대란

최근의 전월세 값 폭등은 김대중이 주택 공급을 철저하게 시장에 내맡긴 결과다.

김대중은 IMF 위기로 침체된 건설 경기를 부양해야 한다며 소형 평형 의무제를 폐지했다. 그러자 건설업자들은 분양가가 비싸 수익성이 좋은 중대형 아파트 건설에 몰려들었다. 소형 평형 의무제가 폐지된 후, 1997년 7만 9천2백89가구가 공급됐던 18평 이하 소형 평형은 1998∼1999년 2년 사이 5만 가구로 줄었다. 서울 지역에서 29평 이하 소형 아파트 공급은 1997년의 4분의 1로 줄었다. 반면 32평 이상 중대형 아파트는 공급 초과로 분양이 안 돼 텅텅 비어 있다.

또 김대중은 아파트 분양가를 자율화하고 분양가 전매를 허용했다. 분양가 자율화 이후 서울 지역 아파트의 평당 분양가는 1997년 5백만 원대에서 2000년 8백만 원대로 치솟았다. 분양가 전매 허용은 투기규제책을 해제한 대표적인 사례로 인기 아파트 지역에는 투기꾼들이 몰려 아파트 청약 경쟁률이 수백 대 1로 치솟아 아파트 가격 인상을 부추겼다.

최근 전월세 값 폭등으로 대중적 불만이 팽배하자 김대중은 8·15 경축사에서 2003년까지 국민임대주택을 애초 약속한 10만 호의 2배인 20만 호를 짓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김대중이 집권 3년 동안 지은 국민임대주택은 고작 3만 2천7백36가구다. 더구나 전월세 난이 심각한 수도권의 공공주택 공급 실적은 5천4백43가구에 지나지 않는다.

또 대부분 정부 재정에 의존했던 영구임대주택은 1992년 이후 건설되지 않았고 김대중 정부 들어 짓기 시작한 국민임대주택에 대한 정부 재정 지원은 30퍼센트 수준이다.

공공주택 건설 비용을 지원하는 국민주택기금은 애초 무주택 서민들의 집 장만을 돕기 위해 설립됐다. 그러나 국민주택기금에서 저소득층 주거 안정 프로그램 지원 비율은 고작 20.7퍼센트에 지나지 않았다. 반면 1996년부터 1999년까지 중산층과 주택사업자를 주 대상으로 운용되는 프로그램에 지원한 돈은 전체 지원금의 74.6퍼센트나 된다.

국민기초생활보호법은 생활보호대상자 기준을 강화해 대상자 숫자를 대폭 줄였다. 실제 소득이 없더라도 소득이 있을 법한 자녀가 있다면 생활보호대상자가 될 수 없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집에서 쫓겨나고 있다. 작년 12월 서울시는 전체 영구임대아파트 거주자 가운데 44퍼센트인 2만1천여 가구에게 더 이상 생활보호대상자가 아니니 방을 빼라고 통지했다.

낡고 비좁고 더러운

집값과 전월세 값 폭등은 가난한 사람들을 더욱 비참한 주거 환경에 빠뜨렸다. 가난한 사람들은 치솟는 전셋값 때문에 더 비좁고 낡고 더러운 집을 구할 수밖에 없게 됐다. 좀더 싼 셋집을 구하기 위해 직장에서 거리가 한참 먼 변두리 지역으로 밀려나기도 한다.

IMF 이전 서민 가구의 자가점유율은 20.8퍼센트였다. 그러나 IMF 이후 2년 동안 집을 옮긴 하위소득 30퍼센트의 서민 가구 가운데 자기 집을 사서 이사한 가구는 단 한 가구도 없다.('IMF 이후 이주 가구의 거주 주택 유형 변화', 〈서민주거 안정과 주거 기준 달성 방안 연구 최종 보고서〉, 1999. 12, 건설교통부/대한주택공사)

자기 집이 있던 사람은 전세로, 전세 살던 사람은 보증부 월세로, 보증부 월세로 살던 사람은 '쪽방'이나 여관 같은 사글세로 옮겨야 했다. 심지어 비닐하우스에서 사는 사람들도 수천 가구나 된다.

우리 나라의 주거 기준 미달 가구는 전체 가구의 34.4퍼센트에 이른다. 지난 해 대한주택공사가 실시한 전국 110개 빈민지역 주거 빈곤 실태 조사 결과 주거 기준에 못 미치는 가구 수는 69.8퍼센트나 되었다.

전체 가구 수의 절반 이상(52.5퍼센트)이 18평 이하의 주택에 살고 있으며 하위 소득층 30퍼센트의 경우 83.7퍼센트가 18평 이하에 살고 있다. 지난 5월에는 10평 미만에서 사는 4인 가족 가구가 450만 가구나 된다는 통계가 발표되기도 했다. 이런 좁은 집에서 부부와 아이들이 뒤엉켜 살고 있는 것이다.

창문도 없어 감옥 같은 '쪽방'에 사는 사람이 수만 명에 이른다.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을 것 같은 이런 비참한 골목에서 아이들이 뛰어 놀고 있다. 이런 지역은 집들이 워낙 다닥다닥 붙어 있어 불이 나도 소방차가 들어올 길조차 없어 커다란 위험에 노출돼 있다. 비가 조금만 많이 와도 집이 물에 잠기는 지역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살고 있다. 이런 장소조차 없어 길거리에 쓰러져 자는 노숙자가 공식 통계만으로도 5천 명이 넘는다.

반면, 부자들은 쾌적하고 호화로운 주택에서 호의호식하며 산다. TV와 신문 광고를 보라. 베란다에서는 한강이 보이고 바닥재를 이태리산 대리석으로 깔고 부엌 씽크는 수입 오크로 만들었으며 완벽한 방음 시설과 공기 정화 시설까지 잘 갖춰진 60평이 넘는 고급 아파트는 부자들 몫이다. 또, 부자들은 콘도 회원증을 갖고 있고 가까운 교외에 그림에서나 볼 수 있는 으리으리한 별장들을 지어놓고 산다. 그들에게 집값 폭등은 저금리 시대에 재산을 쉽게 불릴 수 있는 좋은 기회일 뿐이다.

자본주의와 주택 문제

자본주의는 그 동안 엄청난 재화를 생산하고 건축 기술도 놀랍게 발전시켰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이런 혜택에서 한참 배제돼 있다. 자본주의는 그 시작부터 지금까지 주거난을 항상 달고 다녔다.

산업혁명으로 인구가 도시로 몰려 들고 도시의 규모가 커지면서 주택 문제가 심화됐다. 도시로 들어오는 인구 수는 갈수록 늘어났지만, 적절한 시설과 주택의 공급이 안 돼 도시는 과밀화되고 슬럼화하기 시작했다. 자본주의 초기부터 모든 대도시는 하나 이상의 슬럼가가 형성되고 거기에 노동자들이 모여 살았다. 빈민은 부자들의 궁전 근처에 숨겨진 뒷골목에서 살았다. 넓고 화려한 옥스퍼드가, 리젠트 거리, 트라팔가 광장으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끔찍한 빈민굴이 몰려 있었다.

빈민 지역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최악의 상태였다. 역사상 유래가 없었던 지하 주거가 성행했고 최소한의 시설도 갖추지 않은 간이숙소들이 난립했다. 농촌에서 쫓겨나 도시로 몰려든 유랑민들은 살 집이 없자 농기구나 곡식을 보관하던 지하 공간까지 세를 얻어 살기 시작했다. 런던에서 노동자 가구의 4분의 3이 단칸방에서 살았다. 단칸방에 아홉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돼지까지 키우며 살았다. 유리창은 거의 보이지 않고 침구도 없이 지푸라기 위에서 잠을 청해야 했으며 부서져 가는 벽을 몸으로 지탱하며 살아갔다. 상하수도 시설이 없어 심각한 물 부족을 겪어야 했으며 늘 썩은 하수가 집 앞 웅덩이에 고여 있었다. 골목마다 쓰레기와 똥 더미가 쌓여 있는 끔찍한 환경에서 사망률이 급증했다.

노동자들의 비참한 주거 환경은 현대 자본주의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미국의 뉴욕이나 LA 같은 대도시의 할렘가, 브라질 최대도시 상파울루에 즐비한 남미 최대의 판자촌은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더구나 세계 지배자들의 신자유주의 정책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주택 복지를 더욱 후퇴시켰다. 마가렛 새처는 집권하자마자 공영주택을 민영화시켜 거주자 가운데 집을 살 돈이 없는 사람을 공영주택에서 쫓아냈다. 레이건도 1987년 공공임대주택의 신축을 중단시켰으며 민영화했다.

중국은 1998년 주택 분배제도를 폐지하고 "주택의 화폐화"를 선언했다. 중국은 그동안 취직한 후 일정 기간이 지나거나 결혼을 할 노동자들에게 공영 주택을 공급해 왔다. 그러나 이제 중국 정부는 "능력껏 돈을 주고 사고 팔라"며 주택 사유화 정책을 펴고 있다. 이 때문에 한 평에 3위안이 채 안 되는 임대료를 내던 노동자들은 이제 몇 만 위안이나 되는 집값을 마련하지 않으면 집에서 쫓겨날 판이다. 투기가 급증하고 있어 베이징의 부동산 시장은 얼마 안 가 "화산처럼 폭발할 것"이라는 관측이 공공연하게 나돌고 있다.

대안은?

전월세난을 어느 정도 완화하려면 값싼 공공주택 공급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 우리 나라 공공임대주택 비율은 전체 주택 재고 중 5.8퍼센트에 불과해 일본(7퍼센트)은 물론, 네덜란드(36퍼센트), 영국(24퍼센트), 오스트리아(23퍼센트), 프랑스(17퍼센트) 등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낮다.

집 지을 땅이 부족한 것이 문제라면 국가가 대도시에 있는 낡은 민간 주택을 사들여 수리해 공공주택으로 할 수 있다.

문제는 재원이 어디서 나오느냐다. 이것은 당연히 부자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와야 한다. 김대중 정부가 1998년에 주택 부문에 지출한 재정은 고작 85억 원이다. 이는 정부 전체 예산의 0.01퍼센트밖에 안 된다. 반면 군비에는 해마다 20조 원 이상을 쏟아 붓는다. 살상 무기가 아니라 인간의 최소한의 권리인 주거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돈을 쓰는 것이 마땅하다.

1915년 영국 글래스고 노동자들이 임대료 거부 운동을 격렬하게 벌였으며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정부는 일정 기간의 임대료 동결과 집주인이 세입자의 퇴거를 요구할 수 있는 경우를 제한하는 임대차법(Rent Act)을 제정할 수밖에 없었다. 2차 대전 직후에도 유럽 노동자들은 대규모 투쟁을 통해 주거 환경 개선을 쟁취할 수 있었다. 영국과 이탈리아에서는 공공주택을 대량으로 지었다. 1968년 계급 투쟁의 폭발적 고양 때문에 영국과 이탈리아 정부는 임대료 인상을 통제했다. 공공주택 거주자는 임대료를 보조받았고 민영 주택 거주자는 주택 수당을 얻어냈다.

이러한 경험은 노동자 대중의 투쟁을 통해서만 주택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김대중 정부는 얼마 전 주택 보급률이 94퍼센트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서울의 경우 인구 1천 명당 주택 수가 2백 가구다. 이는 세계 평균 2백80가구에 한참 못 미치는 수치다. 특히 하위 소득층 30퍼센트의 주택 보급률은 51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서민 주거 현황 및 문제점', 〈서민 주거 안정과 주거 기준 달성 방안 연구 최종 보고서〉, 1999.12, 건설교통부/대한주택공사). 노동자들이 살 집은 턱없이 부족한 반면 부자들은 집을 몇 채씩 갖고 있기 때문이다. 부자들이 몇 채씩 갖고 있는 화려한 주택과 건물을 몰수해 집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주택 문제의 근본적 해결은 자본주의의 근본 변혁과 떼려야 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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