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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새 좌파의 진로

2003년 루이스 이냐시오 룰라 다 실바는 브라질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노동자 출신인 룰라는 수많은 가난한 유권자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그러나 브라질의 급진좌파 정당 ‘사회주의해방당’(이하 P-Sol)의 지도자 페드루 푸엔테스(Pedro Fuentes)는 지금 룰라 정부가 위기에 빠져 있다고 지적한다. 지난 2년 동안 룰라 정부가 신자유주의 정책들을 추진하고 계속 부패 스캔들에 휘말리면서 좌파에게 새로운 공간이 열리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신명을 다 바쳤던 노동자당(이하 PT)은 이제 죽었다. PT의 존재 이유는 사라졌다.” 브라질 상원의원이자 P-Sol의 지도자 엘로이자 엘레나의 말이다.

부패 스캔들이 집권당 PT와 룰라 정부의 핵심까지 파고들면서 브라질은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다. 고소·고발이 끊이지 않고 있다.

국회의원들에게 상납된 미신고 정치자금과 뇌물의 정확한 액수는 아무도 모르지만, 아마도 수백억 원에 이를 것이라고 다들 생각한다.

게다가 PT 지도자들의 공무원 연금 유용(流用) 비리도 터져나왔다. 이미 공개된 액수들만으로도 대중은 분노하고 있다.

그런 스캔들은 극소수의 부패한 자들과 수많은 대중 사이의 엄청난 격차를 분명히 보여 준다. 여러 정당과 대기업들, 그리고 그들이 나라를 지배하는 데 이용하는 각종 기구들 사이의 유착 관계가 폭로되고 있다.

PT의 정치적 파산은 국내 산업과 시장을 발전시켜 경제 체질을 강화하려던 브라질 자본가들의 계획에 대한 파산 선고이기도 하다. 지금의 위기는 한때 PT가 지지한 그 자본가들이 그런 국가적 계획을 지도하는 데 완전히 실패했음을 보여 준다.

PT 지도부는 결국 금융자본의 도구로 전락했다. 금융자본은 PT를 굴복시키고 PT를 단지 도구로만 이용하고 있다.

이런 위기 때문에 브라질은 다른 라틴아메리카 나라들과 비슷해지고 있다. 라틴아메리카 대륙의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브라질도 이제 분명히 민주주의와 정치적 대의제의 위기를 겪고 있다.

베네수엘라를 제외하면 라틴아메리카의 모든 나라 정부들이 신자유주의 정책들을 추진해 왔고, 그 때문에 각국 정당들은 선거용 상품으로 전락한 채 국제통화기금(IMF)과 다국적기업들이 지시하는 제국주의적 계획들에 봉사해 왔다.

한때 PT는 라틴아메리카 전역에서 대중의 신뢰와 노동자들의 지지를 받은 가장 중요한 정당이었다. 그 정당이 이제 다른 비슷한 정당들보다 훨씬 더 우경화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런 상황 때문에 브라질 국내뿐 아니라 대륙 전체에서도 심각한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 지금 브라질은 라틴아메리카의 자본주의를 안정시키는 데서 중요한 구실을 하는 나라이다. 그것은 브라질 군대가 아이티 침략에 가담하고 PT 정부가 최근의 볼리비아 민중항쟁에 반대한 데서 드러난다.

또, 브라질은 다른 라틴아메리카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구조적 위기도 겪고 있다. 브라질의 경제와 지배계급은 상대적으로 강력하지만, 사회적 불평등은 훨씬 더 뚜렷하다. 사회적 위기는 아주 심각하며 더 악화하고 있다. 그래서 언제든 폭발할 가능성이 크다.

제국주의 지배의 현재 양상을 받아들이는 한, 경제 발전 전망도 없고 상당한 소득 재분배 가능성도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PT를 소생시켜 전처럼 활기넘치는 정당으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위기는 계속될 것이다. 브라질이 라틴아메리카화한다는 말의 의미가 바로 이것이다.

브라질의 계급 세력 관계는 볼리비아·베네수엘라·아르헨티나의 계급 세력 관계와 똑같지 않다. 브라질의 대중 운동은 다른 나라들처럼 강력하게 정치 무대로 진출하지 않았다. 브라질 대중 운동은 위기를 발전시키는 데서 아직 핵심 구실을 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이미 중요한 동원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브라질 노총(CUT)과 전국 학생 연합이 수도 브라질리아에서 룰라를 지지하기 위한 시위를 벌였다. PT 당 기구가 조직하고 재정을 지원한 그 시위에 참가한 사람들은 경찰 추산으로 8천 명이었다.

그러나 “부패 정치인들을 모두 추방하자”는 구호 아래 독립적 좌파 노조들과 P-Sol, 사회주의노동자단결당(PSTU) 같은 좌파 정당들이 조직한 시위에 참가한 사람들이 경찰 추산으로도 갑절이나 많았다. P-Sol은 시위 참가자 수를 2만 5천 명으로 추산한다.

PT에 대한 희망이 산산조각난 것 때문에 많은 좌파들이 환멸을 느끼거나 속았다고 느끼고 있지만, 위기는 긍정적 전망도 보여 주고 있다. 사실, PT는 정직한 당원들과 지지자들 수천 명이 믿고 있었던 그런 정당이었던 적이 결코 없었다.

PT는 룰라 정부를 뒷받침하는 데서 결정적 구실을 해 왔을 뿐 아니라 라틴아메리카에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들과 친미 외교정책들을 뒷받침하는 데서도 결정적 구실을 해 왔다. PT의 위기 때문에 이 두 프로젝트는 모두 약해지고 있다.

새로운 정치적 공간이 열리고 있다. PT의 경험은 끝났고, 새로 시작할 수 있는 길이 열리고 있다. 정치인들과 정당들의 위기에는 두 측면이 있다. 한편으로, 환멸과 회의주의, 즉 모든 형태의 참여와 정치 일반에 대한 전면적 불신과 거부가 있을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새로운 씨앗, 즉 뭔가 새로운 것을 건설할 가능성도 존재할 수 있다.

이런 논쟁의 핵심에는 비록 소수이지만 대중과 연결된 소수가 있다. 그들은 P-Sol이 대변하는 프로젝트에 공감하고 있다.

이 새로운 공간에서 우리는 현 정권에 참여한 정당들과 단절한, 반자본주의적·반제국주의적 정치 대안을 건설하고 있다.

P-Sol은 지금의 위기를 겪으며 더 강력해졌다. 중요한 소수 사람들은 이제 P-Sol 지도자들이 PT에서 축출당한 이유를 이해하고 있다. 현재의 위기는 그들이 옳았음을 보여 주었고, P-Sol과 대중의 연결을 강화할 것이다. P-Sol과 대중의 연결은 세계사회포럼, 반부패 시위, 공무원 시위, 국회 안에서 그리고 국회조사위원회에서 우리 동지들이 벌인 투쟁을 통해 이미 분명해지고 있다.

여론조사에서 P-Sol의 대통령 후보 엘로이자 엘레나는 7퍼센트의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새로운 그룹들이 PT를 탈퇴하고 P-Sol로 오고 있다.

이런 발전은 단선적 과정이 아니다. 그것은 더 광범한 사회운동이나 계급투쟁의 전개와 연결돼 있고, 그 전개 과정에는 온갖 우여곡절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또 P-Sol의 실천이나 P-Sol이 다양한 도전에 어떻게 대응하는가에도 달려 있을 것이다.

어쨌든, PT를 대체하는 과정은 시작됐다. 새로운 대안이 건설되고 있고, 그것은 대중운동의 일부가 재건되고 재편되는 과정의 일보진전을 의미한다.

이런 과정은 새로운 토대 위에서 진행되고 있다. 한때 PT가 갖고 있었던 정치적 독립성의 전통을 재발견하면서도, PT의 프로젝트에 내재해 PT를 파산으로 몰아간 그 한계들을 극복하면서 진행되고 있다.